제248화. 유리급 순양함 ‘충무05’함
선수에 이순신 함대를 뜻하는 ‘충무’와 숫자 ‘15’가 선명하게 쓰인 온조급 구축함이 도쿄만에 정박 중인 조선군 함대의 가장 선두였다.
1급 경계 태세가 내려진 상황인 함교는 함장을 위시한 함교요원 전원이 3천보(약5.4km) 앞을 지나가는 동일본 함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 주포 포수 배치 완료.”
확성관을 통해 전달되는 포격지휘소의 보고에 함장의 고개가 끄덕여지자 부장이 재빨리 하갑판 포격지휘소와 연결된 확성관에 대고 외쳤다.
“함교 접수!”
전투 격화 시 조타 및 지휘로 복잡해지는 함교에서 분리되어 하갑판에 위치하는 포격지휘소는 함교의 명령에 따라 함에 배치된 모든 포를 지휘한다.
현대시대 함선으로 말하자면 전투정보실인 셈이다. 다만 레이더가 없으니 함교에서 전달되는 정보에 완전히 의지해야 한다는 맹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의견이 적지 않아서 거제 건선단지에서는 망루에서부터 포격지휘소로 직접 연결되는 확성관을 추가로 설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었지만 확정되지 않았고, 따라서 망루와 포격지휘소를 연결하는 확성관을 가지고 있는 조선군 함선은 아직까지 단 한척도 없었다.
“일렬로 항해하는 건 비 효율적 아닙니까?”
일렬종대로 서서 움직이고 있는 동일본 함대를 바라보던 부장의 물음에 함장은 담담히 답했다.
“도쿄만이 좁은데다 우리까지 있으니 안전을 위해 좌우로 다른 함선을 두지 않은 모양이다. 여하간 완전히 빠져나갈 때까지 눈을 떼지 마라.”
“예.”
부장의 복명이 나오는 순간 망루와 연결된 확성관에서 견시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동일본 함선 상갑판에 다수의 이포 확인!”
해모수급 전열함의 경우 상갑판에 설치된 포는 모두 4문으로 선수와 선미에 각기 2문씩 배치되어 있다. 조선군이 사용할 때는 별도로 4문의 구포가 추가로 배치되어 있었지만 외부로 팔려나갈 때 모두 제거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상갑판에 다수의 이포가 배치되어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의아한 표정으로 함교 앞으로 나선 함장이 쌍안경으로 동일본 함선들을 확인했다. 망루 견시수의 보고대로 상갑판에 이포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더구나 그런 이포들에 포수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등을 타고 알 수 없는 전율이 흐르는 순간 이포들의 포구에서 불이 번쩍하는 것이 쌍안경으로 보였다.
그리고.
콰과광.
요란한 포격음이 들려왔다.
쌍안경을 눈에서 뗀 함장이 명령했다.
“총원 전투······.”
콰앙!
함장의 말은 거센 충격을 동반한 요란한 굉음에 묻혀버렸다. 그리고 창문을 박살내며 함교 안으로 뛰어든 폭발탄의 모습에 함교가 얼어붙었다.
쾅!
섬뜩한 폭발음과 함께 파편과 화염이 좁은 함교 안을 휘감았다.
요란한 폭음과 충격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포격지휘소에서 포술장이 함교의 명령을 요청하는 고성이 꺾이고 부서진 함교 확성관에서 연신 울려대고 있었지만 부서진 집기와 전사자, 그리고 부상자로 뒤덮인 함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와 같은 일들이 도교만에 정박해 있던 조선군 함선들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랬다.
나구모 함장이 계획한 이번 작전의 목표는 함교, 그중에서도 유리창이었다. 해모수급 전열함이 보유한 이포로 유일하게 격파 가능한 신형 증기철선의 부위가 바로 함교의 유리창이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개시되면 장갑판으로 뒤덮이겠지만 그전엔 유리창이 그대로 노출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구모 함장이었기에 세울 수 있었던 작전이었다.
사실 나구모 함장도 이 작전을 세우면서 성공여부를 장담하지 못했다.
파도로 일렁이는 선상에서의 포격은 조준 정밀도가 상상이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목표인 함교의 창문은 폭은 넓어도 높이가 낮아서 꽤나 작은 목표였다.
그것을 이포의 유호사거리인 3천보(약5.4km) 거리에서 정확히 맞추기란 쉬운 일이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동일본 함대의 훈련 시 명중률은 2할에 근접한다. 물론 실전에서는 이보다 훨씬 떨어질 것이다. 심리적인 압박, 실전의 급박감이 포수들의 조준 정확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군이 실전에서 보여주는 5할의 명중률이 신기에 가깝다고 말하는 것이다.
조선 해군 함선들을 향해 포격한 동일본 함선의 포수들이 그러했다. 훈련 때보다 훨씬 낮은 명중률을 보인 것이다.
그래서 나구모 함장은 일렬종대로 함선들을 항진시키면서 조선군 함선 한 척당 적어도 3척씩은 포격을 퍼부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계획이 성공을 거두어 조선군 함선 한척 당 적어도 한두 발씩은 정확히 함교의 창문을 뚫고 폭발탄을 함교 안으로 투사시키는 데 성공했다.
충무15함처럼 함교 안으로 파고든 폭발탄들이 폭발하면서 조선군 함선의 함교는 일순간에 아비규환의 장이 되어 버렸다.
화염탄이 폭발하면서 내뿜은 파편과 화염이 좁은 함교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부서진 집기와 죽거나 부상당한 이들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함교는 일순간 기능이 정지되었다.
함선에서 함교는 머리이자 눈이다.
갑판에 떨어진 폭발탄의 폭발화염에서 보호하기 위해 조선군 함선들이 장비한 포가 모두 폐쇄식인 탓에 표적 획득도 함교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렇게 획득된 좌표를 가지고 포격지휘소가 그에 알맞은 함포를 지정해 포격을 지시하는 것이다. 물론 각 포마다 덮개가 달린 작은 확인창이 존재하지만 방호력을 위해 너무 작아서 시야가 형편없을 정도로 좁다.
현식총좌의 경우엔 그 창이 조금 넓다지만 상대적일 뿐 방탄성능을 위해서 그 역시도 좁고 작은 창문을 달고 있을 뿐이었다.
방탄 성능을 가진 유리가 없기 때문에 방탄능력을 모두 철로 충당했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그렇다보니 함교가 기능을 정지하자 일순간 함선들이 일체 먹통이 되어버렸다.
실전경험이 수도 없이 많은 이순신 함대였건만 함교가 무너진 경우는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에 일순간 혼란에 휩싸인 것이다.
찌그러지고 부러진 각함 함교의 확성관에선 하갑판에 위치한 포격지휘소에서 명령 하달을 요청하는 고성이 계속해서 터져 나오고 있었지만 사상자로 뒤덮인 함교들은 그 요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더구나 공격을 받은 직후, 교전규칙에 의해 갑판에 나와 있던 탐망병들은 모두 함 내로 몸을 숨겼다. 이때부터는 망루의 견시수가 배의 눈이 된다.
운항은 물론이고, 각 포의 포격 목표에 대한 정보도 견시수가 전달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망루 견시수의 보고가 함교를 거쳐 기관부와 포격지휘소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 기능이 정지된 조선군 함선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그런 조선군 함선들 사이로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모습을 드러내는 함선이 있었다. 선수에 충무05라는 함명이 선명한 유리급 순양함이었다.
함교에서 검은 연기를 쏟아내고 있는 5척의 함선들과 마찬가지로 충무05함도 함교가 피격되었다. 하지만 다행히 함교 안으로 투사된 폭발탄이 함교 내의 복잡한 구조물 구석으로 처박혀서 폭발한 덕에 그 피해는 한정적이었다.
폭발이 일어난 근처에 있던 함교 요원 둘이 전사하고, 한명이 중상을 당하긴 했지만 나머지 함교 요원들은 대부분 무사했다.
분노로 일그러진 눈매로 깨어져버린 함교 창문을 통해 동일본 함대를 노려본 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함교 장갑판 내려!”
함장의 명령에 함교 요원들이 급히 구동장치를 연결하는 버팀쇠를 올리자 기관과 연결된 구동기관이 움직이면서 위로 젖혀져 있던 장갑판이 천천히 내려오며 깨진 함교의 창문을 완전히 가렸다.
전구들로 환하게 밝혀진 함교가 어둠에 잠기는 일은 없었지만 당장 조타수가 시야정보를 잃었다. 그것을 보강해주는 것은 이제 망루의 견시수뿐이었다.
곧바로 견시수와 함교를 연결하는 확성관에서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 속에서 이순신의 제자들 중 한명으로 분류되는 함장, 하상훈 장령의 명령이 떨어졌다.
“5분의 1속. 전진. 총원 전투배치!”
하상훈 함장의 명령에 곧바로 부장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총원 전투배치!”
이후 요란한 비상종소리가 울리고 당황해 있던 수병들이 분주하게 각자의 자리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포수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고 전포가 사격 준비태세를 갖추었다는 보고가 하갑판에 위치한 포격지휘소에서 올라왔다.
아울러 2문의 선수 주포가 표적 조준 완료했다는 보고가 확성관을 통해 들려왔다.
견시수의 보고 상 동일본 함대와 조선 전대와의 거리는 겨우 2천보(약3.6km)에 불과했다. 해모수급 전열함이 보유한 이포의 사거리가 3천보(약5.4km)임을 감안하면 포격 직후 선수를 돌려 조선군 전대 쪽으로 급속히 달려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하상훈 함장의 명령이 떨어졌다.
“방포!”
함장의 명령을 포격지휘소를 통해 전달받은 선수주포 2문이 일제히 발사되었다.
콰과쾅.
굉음과 함께 함 전체가 가볍게 부르르 진동했다.
9치(약272mm) 구경의 일장함포 2문으로 이루어진 주포의 발사 진동이 무지막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주포 2문이 동시에 발사되었기에 그 진동이 더했다.
그렇게 발사된 9치 작렬탄 4발이 선두에 서서 달려오던 동일본 함대 소속 전열함 2척의 선수를 후려 갈겼다. 1발은 완전히 빗나갔지만 3발은 정확히 명중했던 것이다.
급박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5할의 명중률을 넘어서는 무서운 정확도였다.
쾅!
거친 폭음과 함께 달려오던 전열함 2척의 선수부분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뱃머리를 상실한 배가 마치 달리다 고꾸라지는 것처럼 선수를 바닷물에 처박으며 멈춰 섰다.
동일본 함대는 일렬종대를 여전히 유지한 채 차례차례 선회하며 달려드는 방법을 택했다. 그 사이 수평항해를 하는 일부는 대응 포격을 하여 조선 해군의 정신을 빼놓고, 접근 시엔 피격면적을 줄이려는 노력으로 보였지만 그것으로 인해 즉각적인 대응속도에는 오히려 늦어진 감이 없지 않았다.
하상훈 장령은 그런 동일본 함대의 모습을 견시수의 보고를 통해 머릿속으로 그려보며 자신 같았다면 전 함선을 그대로 전타 시켜 일제히 달려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승인 이순신 원수는 언제나 아군의 가장 적은 피해보다는 적군에 가장 확실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작전을 우선하라 말하곤 했다.
‘기회는 한번뿐이다. 두 번, 세 번은 존재하지 않는다. 왔을 때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놓는다. 어설프게 대해서 종래엔 기어 나와 아군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말라는 말이다.’
이순신 원수의 말을 기억에서 꺼내며 하상훈 함장이 명령했다.
“함 전속! 그대로 적함 사이로 파고들어 전포로 대응한다. 놈들이 피해를 입은 아군 함선들로 붙지 못하게 하라!”
함장의 명령이 부장을 통해 확성관으로 기관부에 전달되었지만 원하는 속도를 얻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4개의 증기기관 중 가동 중이었던 것은 2개뿐이었고, 완전가동은 그 중에서도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3개의 증기기관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관부의 ‘접수’ 확인이 확성관을 통해 들려왔지만 배가 빠르게 치고 나가는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나의 증기기관으로 유리급 순양함이 낼 수 있는 속도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탓에 하상훈 함장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조선군 함선들 사이를 빠져나와 앞으로 나서는 충무05함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주오던 동일본 함선들도 주춤거렸다. 선수가 날아간 선두의 함선 2척이 깨어진 선수로부터 무서운 속도로 바닷물이 들어차는 까닭에 급격한 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달려오던 속도가 단박에 죽고 침몰하기 시작한 선두함들을 피해 동일본 함대 소속 함선들이 비스듬히 전진해 나왔다.
접근 시 피탄 면적을 줄이기 위해 일렬종대를 고집한 폐해였다. 그로인해 약간이긴 했지만 사선으로 동일본 함대 전열함들의 선측이 노출 되며 피탄 면적이 늘어났다.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한 폭음들이 울려나왔다.
콰과광.
도처에서 터져 나온 폭음과 함께 함교에서 여전히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조선군 함선들의 주포들이 불을 뿜은 것이다.
함교가 먹통이 되면서 잠시 당황했다지만 조선 해군, 특히 이순신 함대는 실전으로 다져진 이들이다. 곧바로 정신을 차리고 함교의 명령 없이도 대응 포격에 나선 것이다.
폐쇄식인 주포의 목표 획득을 위해 함 내로 몸을 숨겼던 탐망병들이 연신 갑판위로 쏟아지는 동일본 함대의 폭발탄 공격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뛰쳐나와 적함의 위치를 파악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연식 폭발하는 폭발탄의 폭음과 화염 속에서 들려오는 그 고함소리들을 따라 각 조선군 함선들의 주포가 포를 쏘기 시작했다. 정확한 사격유도가 아니었기에 빗나가는 탄들이 다수였지만 일부는 자로 잰 듯 정확히 침몰하고 있는 선두의 함선을 피해 사선으로 나온 동일본 함선들을 타격했다.
그렇게 명중된 조선군의 작렬탄 중 일부는 전열함 포갑판을 둘러싼 장갑판에 맞으면서 큰 충격과 화염이 선체 겉면을 타고 번지긴 했지만 격파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포갑판보다 아래 부분을 타격한 작렬탄은 외피의 대부분을 목조로 건조한 전열함에는 치명적이었다.
커다란 구멍이 뚫려버린 곳으로 다량의 해수가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기우는 동일본 함선들이 생겼다. 그런 동료 함을 비켜나며 동일본 함대 전열함들이 치고 나왔다.
그들에게도 살려면 어떻게 하든 조선군 함선에 달라붙어야 했기 때문에 사력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동일본 함대를 향해 함교의 기능이 정지된 탓에 제자리에 서 있는 상태로 조선군 함선들의 주포들이 연신 포격을 퍼부었다.
그때였다.
콰광!
조선군 함선들의 모든 탐망병들의 시선이, 동일본 함대를 향하고 있었다. 사격 위치, 각도, 좌표를 찾기 위해 분주했던 그 순간, 동일본 함대의 자살특공대가 기어코 조선군 함선들로 다가와 자폭을 개시한 것이다.
함선 옆구리에 화약주머니를 붙이고 폭발시킨 여력에 의해 도처에서 굉음이 터져 나오며 정박해 있던 함선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각 함의 조선군 수병들은 재빨리 알아차렸다.
수병들이 다총을 꺼내 다급히 선측난간으로 달려 나와 바닷물을 바라보며 사격을 가했지만 폭발음은 연속해서 들려왔다.
견시수의 보고로 뒤에 정박해 있던 아군 함선들의 상황을 인지한 하상훈 함장의 이가 악물렸다.
“함 전타 후 정선! 적함들과 수평 포선을 구성한다. 전포 방포해서 개새끼들을 모조리 죽여 버려!”
돌진해오는 적함들과 충돌할 수 있는 위험한 결정이었지만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함교요원들은 반대하지 않았다.
하상훈 함장의 명령이 곧바로 확성관을 타고 전달되면서 함이 급격하게 선회했다.
그렇게 달려오는 동일본 함대와 수평이 된 충무05함의 함포들이 일제히 돌려졌고 곧바로 포격이 개시되었다.
여기에는 선수와 선미에 장비된 주포 3문은 물론이고, 우측면에 장비되어 있던 2연관 삼함포 4문과 일속포 6문도 합류했다.
콰과과과과쾅.
요란한 폭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오며 수십 발의 포탄이 전속으로 돌진해 오는 동일본 함대를 향해 날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