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0화. 군사고문단
조선군의 명령체계는 황궁에 마련되어 있는 최고사령부를 정점으로 한다.
최고사령부는 태왕이 각 군 총사의 보필을 받아 명령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경우 각 군 총사부의 군령권은 최고사령부로 귀속된다.
만일 외유나 외정 등 태왕이 자리를 비웠을 경우엔 태자가 중심이 되어 최고사령부를 지휘한다.
하지만 태왕의 명령으로 명령권이 원수부로 내려가면 조선군 원수가 각 군 부총사들의 보필을 받아 군령권을 행사한다.
이 경우 각 군 총사들의 군령권이 유명무실해 지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작전의 일원화를 중요시하는 광해는 해당 규정을 법제화해 두었다.
따라서 광해가 황궁을 떠나면서 군권을 대한제국군 원수이자 조선군 원수인 이순신에게 위임한 이상 원수부 통합지휘소가 모든 군령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그런 조선군 원수부 통합지휘소에 비상이 걸렸다. 남창으로 파견된 내금위 전신마차에서 발신된 급보를 받은 까닭이었다.
전군에 2급 전투대기 태세가 발령된 이후로 원수부 건물 내에 머물고 있던 이순신을 비롯한 고위 지휘관들이 소식을 받고 황급히 지휘소로 나왔고, 상황을 확인한 이순신의 명령으로 조선 전군에 1급 전투대기 태세가 발령 되었다.
또한 1급 전투대기 태세가 발령되어 있던 몇몇 부대들의 작전 개시가 명령되었다.
특히 강소도로 긴급 전개되어 1급 전투대기 태세로 대기하고 있던 기동전단 예하 2개 병단에 즉시 남창으로 진격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조선군은 내금위가 보유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형태의 발전마차와 전신마차가 규합된 통신대를 운용하고 있었다.
지금은 병단급까지만 보급되어있었지만 향후엔 단급까지 보급될 예정이었다.
물론 현재 벼락 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축전지와 연결한 전신장비가 개발되면 대급까지 통신대를 확대 배치할 계획도 세웠다.
그렇게 배치되어 있던 통신대를 통해 통합지휘소의 명령을 받은 제7기동전단 소속 제72, 75병단이 그간 주둔하고 있던 상해를 떠나 고속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조선 육군 전체가 이미 기마대와 기동보병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이들 두 병단의 이동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상해를 떠난 이 병력은 곧바로 조선과 명나라의 국경을 돌파하여 남창으로 진격하도록 명령받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남창에 파견되어 있던 내금위 전신마차가 발신한 전신을 받은 통합지휘소가 더 소란스러워졌다.
황자를 태자로 책봉한다는 내용의 황명을 담은 전신이 도착한 까닭이었다.
“즉시 황궁과 총리대신 관저로 사람을 보내 전신의 내용을 알리고, 특히 내금위에 황자 전하, 아니 태자 전하의 경호에 만전을 기하라 명하라.”
자신의 명령을 받은 전령이 달려 나가는 것을 확인한 이순신이 명령했다.
“해군 수송함대와 기동전단을 부산포로 집결시키고, 준비되는 대로 기동전단의 탑승을 지시하도록. 해병 강습함대에도 출동명령 내리고, 해병대도 부산포로 집결시켜!”
모두가 남창으로 병력을 추가 투입하기 위한 명령들이었다.
그것에 반응해서 통합지휘소에 마련된 통신실의 전신수들이 타전하는 것을 확인한 이순신의 명이 추가로 떨어졌다.
“서부 3도를 담당하는 3전단은 물론이고, 만주4도를 관할하는 2전단도 명과의 국경으로 병력 집중 개시 명령 하달해. 향후 명령이 떨어지면 2전단과 3전단은 지체 없이 진격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할 것이다.”
“예. 원수님!”
복명한 통신장의 눈짓에 2전단과 3전단을 맡은 통신병들이 전신을 보내는 동안 내금위 전신마차와 통신을 연결하고 있던 통신병이 비명 같은 고함을 쳤다.
“내금위 전신마차 타전! 서, 성이, 무너졌다. 다시 확인합니다. 내금위 전신마차 타전, 성이 무너졌다!”
순간 이순신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이순신만이 아니었다. 해당 암구호가 뜻하는 바를 아는 모든 이들이 행동을 멈추고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개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자들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이들 속에서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이순신의 음성이 잘게 떨려나왔다.
“황궁으로 지급. 태왕 폐하······, 붕어(崩御). 전군에 지급! 태왕 폐하께오서 남창에서 적병의 공격에 붕어하셨다.”
이순신의 명을 받은 통신병들이 분주하게 해당 사실을 타전하기 시작했다.
통합지휘소의 전통을 받은 각 단위 부대와 연결된 전신이 일순간에 침묵했다. 모두가 극심한 충격에 빠진 것이다.
그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신의주에 총사부를 둔 육군이나 해군과 달리 포항에 위치한 해병대 총사부와 연결된 전신이었다.
<명나라 것들을 죄다 씹어 먹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해병대 총사인 곽재우가 막 포항에서 출항했다고 보고해온 해병 강습함대에 탑승하며 보내라 명했다는 전문이었다.
보고하는 통신병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이순신이 눈을 감았다.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는 마음을 다잡으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잠시가 지나고 눈을 뜬 이순신의 눈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눈을 바라본 통합지휘소의 요원들은 이순신에게서 그처럼 사나운 눈길을 본 것은 기필코 처음이었다.
“전군에 타전하라. 모든 병력은 출병 준비를 갖춰라. 명을······, 멸절시킨다.”
서늘한 이순신의 명에 통합지휘소 요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과격한 이순신의 명에 반대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통합지휘소에 있는 모두가 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복수!’ 였다.
태왕이 신의주의 황궁을 떠나면서 군부 장수들이 긴장하고 각 지휘소에 대기하고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문신들도 모두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특히 도승지인 허균의 경우엔 황궁의 숙직실에 머물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원수부 통합지휘소의 전갈이 닿았다.
남창에 이상상황이 발생한 것 같다는 내용에 황자를 태자로 책봉한다는 황명이 함께 뒤섞여 있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허균은 황급히 움직였다.
지밀상궁을 통해 황후에게 전갈을 보내고, 황자 이호에게는 직접 허균이 달려갔다.
총리대신 관저에서 해당 소식을 받은 이원익은 곧바로 의관을 정제하고 황궁으로 입궁했다.
연락을 받자마자 총리 관저의 사람들을 급히 보내 연통을 취한 덕에 각부 대신들도 비슷한 시간에 황급히 황궁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모인 대신들이 막 회의를 시작하려는 상황에서 통합지휘소로부터 태왕의 붕어 소식이 전해졌다.
순간, 모두가 망연자실해질 수밖에 없었다. 넋이 나간 표정의 대신들이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도 움직이지 못했다.
소식을 들은 황후가 실신해 쓰러지고, 어린 태자가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일순간에 황궁의 모든 기능이 정지된 것 같았다.
상선, 알지에게 용포가 건네졌다.
임금이 승하하셨으니 대전 처마에 올라 용포를 펄럭이며 ‘상위복’을 세 번 외치는 것으로 임금의 인산(因山:황제의 장례)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지는 대전 처마로 오르길 거부했다.
“승하하신 폐하의 용체를 내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결단코 그리 할 수 없다. 절대로!”
상선의 거부에 다른 고위 환관이 나서려는 것을 알지가 눈을 부라리며 저지했다.
“감히 용포에 손을 대는 자, 역적으로 아뢰어 반드시 목을 벨 것이다.”
서슬 퍼런 상선의 호통에 놀란 환관들이 용포를 놓아두고 물러가자 덩그러니 남은 알지가 용포자락을 붙잡고 눈물을 쏟았다.
명나라 길을 수행하겠다던 알지에게 자신이 자리를 비울 황궁에서 환관들과 궁녀들의 중심을 잡아주길 바란다며 어린 태자와 황후의 흔들림 없는 보필을 부탁하던 태왕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폐하······.”
자신의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갈까 싶어 입을 틀어막고 흐느끼는 알지의 눈물이 대전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
조선은 외교관계를 맺은 모든 나라에 대사관을 두고 있었다. 그에 따라 조선은 대한제국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에 함께 있게 된 11개 제후국들에도 대사관을 설치했다.
물론 명칭은 달랐다. 대한제국의 제후국들은 종주국인 조선의 입장에서 외국이 아니라 대한제국의 한 지방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1개 제후국들에 설치된 관청의 이름은 대한제국 조선 사무국이다. 이름만 다르지 실제로 수행하는 업무는 다른 외국에 설치된 대사관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기능과 형식이 대사관들과 같았다. 당연히 주(駐)명 대한제국 조선 사무국에도 조선 해병대 병력이 경비대로 나와 있었다.
대사관의 경비 병력으로 배치되는 해병대는 4개 오, 20명가량이다. 11개 제후국에 개설된 사무국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명 대한제국 조선 사무국에는 3개 대, 3백 명의 육군병력이 추가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들은 명왕의 요청으로 조선의 선진 군사훈련을 가르치기 위해 2년의 기한으로 파견된 일단의 군사고문단이었다.
군사고문단의 임무는 명군 교관단에 대한 훈련과 교육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명나라 중앙군단과 대한제국군으로 편성된 1만의 병력에 대한 훈련도 맡고 있었다.
그런 임무들을 수행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이다 보니 상당수의 실전을 거친 전투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태왕이 머물고 있던 명나라 왕궁 일대에서 총포소리가 요란하게 일자 지체 없이 집결하여 출동했다.
전원이 기마대원으로 구성된 이들은 야간의 도심에도 불구하고 말을 전속으로 달렸다. 사무국이 위치한 곳과 명나라 왕궁과의 거리가 말로 달려 5분 내외였다.
그 짧은 거리에도 달리는 조선군 병사들의 마음이 급했다. 집결하느라 소요된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리엔 총포소리에 놀라 집에서 뛰쳐나온 이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무섭게 질주하는 조선 군사고문단의 위세에 놀라 분분히 비켜서느라 소란을 떨어야 했다.
그런 소란에도 불구하고 말을 달리는 속도를 줄이지 않은 조선 육군 군사고문단이 도착한 명나라 왕궁의 정문은 전투로 혼란스러웠다.
대규모의 적이 몰려있는 정문을 돌파해 태왕이 머물고 있는 전각까지 간다는 것은 시간 낭비로 보였다.
“정문은 포기한다. 남쪽이다. 폐하께서 계시는 전각 쪽으로 전속으로 달린다!”
지휘 장수의 명에 고문단이 다시 말고삐를 챘다.
살아남아 거친 숨을 내어 쉬는 내금위의 병사들은 지세창을 포함하여 겨우 10여명에 불과했다.
그들의 뒤로 태왕의 곁에 바짝 붙어선 임경업과 시설자폭 임무 수행을 위해 남은 비행대원과 발전마차병, 그리고 전신수 각 한명씩 3명이 서있었다.
나머지 내금위 장졸들은 모두 주검이 되어 타국의 차가운 땅위에 상처투성이의 육신을 뉘었다.
적들도 지세창을 위시한 내금위의 전투력에 질린 표정으로 잠시 대치한 채 멈추어 섰다. 수천이었던 저들의 수도 이젠 겨우 수백으로 줄어있었다.
조선 내금위의 결사항전에 대량의 병력을 잃은 데다 지속적으로 달려온 명군과의 전투에서도 많이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했던지 적병들의 지휘관이 비틀린 미소를 지은 채 막 명령을 내리려던 순간이었다.
타다다다탕!
갑작스런 총소리에 놀라 모두가 전각 밖을 바라봤다. 그곳에 그 깃발이 있었다. 어둠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그 깃발이.
“사, 삼족오다!”
용케도 검은색 바탕에 그려진 붉은 원안에 들어앉은 삼족오를 알아본 전신수의 외침에 조선 내금위 병사들의 얼굴에 희망이 들어섰다.
하지만 반대로 적병들에겐 사형선고와 같은 소식이었다. 거기다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뒤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호남군단의 지휘관은 뭐가 어떻게 되든 태왕을 사로잡으면 자신들이 이긴다는 것을 직감했다.
“뒤는 무시한다. 태왕을 사로잡아라! 태왕을 사로잡으면 살길이 생긴다!”
지휘관의 고함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호남군단 생존병들이 거센 함성과 함께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그런 적에 마주쳐나가며 지세창이 외쳤다.
“죽음으로 폐하를 지켜라!”
와아아아.
검을 굳게 움켜쥔 10여명의 내금위 병사들이 고함 같은 함성을 지르며 마주쳐나갔다.
그들의 함성과 고함으로 태왕이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군사고문단의 공격도 거세졌다.
“뚫어라! 적도들 너머에 폐하께서 계신다. 돌격!”
지휘 장수의 명령에 군사고문단이 다총을 무차별로 쏘아대며 돌진하기 시작했다. 거치적거리는 적은 총으로 쏘고, 칼로 베어 내는 것도 모자라 말로 짓밟는 무자비한 돌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