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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209화 (209/325)

제209화. 암구호 ‘성이 무너졌다’

난데없는 무장병력의 공격에 당황한 명군이었지만 대처는 상당히 빨랐다.

일단 왕궁의 경비를 맡은 명군 금의위의 병력이 정문으로 집결했다. 야간이었기 때문에 추가적인 병력의 동원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다보니 정문으로 집결한 병력의 수는 고작 4백 남짓이었다. 이번 번을 맞은 병력이 5백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8할이 정문으로 집결한 셈이었다.

나머지 병사들은 다른 세 곳의 궁문에 남아있었다. 정문이 공격을 받는다고 다른 궁문들을 방치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조선과 같은 시간 개혁이 이루어지지 못한 탓에 과거와 같은 시간 개념을 사용하는 명나라의 구분대로라면 일각(15분) 정도만 버티면 비번인 병사들이 달려올 터였다.

거기다 궁 밖, 그러니까 왕성인 남창성 내부의 경계를 맡은 1만의 대한제국군도 지원에 나설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미 궁 밖에서도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소수였기는 하지만 순찰 중이던 대한제국군 병사들이 궁문이 공격받는 것을 확인하고는 달려왔던 것이다.

문제는 공격자들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유충헌이 잠입시켜두었던 1만의 호남군단 중 절반인 5천이 이 공격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렀다보니 구시대 화기라고는 해도 모두가 화기로 무장한데다 훈련까지 받은 병력이라 공격력도 상당했다.

다행이라면 적에게 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 적을 향해 성문에 배치되어 있던 금의위의 홍이포들이 포격을 시작했다.

그 옆에서 방어에 임하는 명나라 금의위 병사들이 일총으로 적에게 맞섰다.

요란한 함성소리 뒤로 총소리와 포격 소기라 들려오자 전각을 방어하고 있던 조선 내금위에 비상이 걸렸다.

잠자리에 들었던 비번의 내금위들이 의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뛰어나와 사전에 배정된 경계 위치로 달려갔다.

내금위장인 지세창도 뛰쳐나와 전신마차에 명해서 조선의 통합지휘소로 이상 상황을 보고토록 하고, 비행대에도 출격명령을 내렸다.

전각 앞마당에서 비행대원들이 열기구를 띄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가운데 내금위 병사들이 전각 담장을 경계로 방어선을 형성했다.

아울러 근접경호를 맡은 1개오 5명의 내금위 병사들이 황급히 전각 안으로 뛰어들어 잠에서 깬 태왕을 둘러쌓다.

“무슨 일인가?”

광해의 물음에 급한 대로 주변을 지휘하고 들어선 지세창이 답했다.

“변고 같습니다. 정문 쪽에서 요란한 함성과 총소리가 들려오고 있습니다. 폐하.”

지세창의 답에 표정을 굳힌 광해가 물었다.

“심각한가?”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총소리들 중에 일총 사격음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명나라 금의위의 병력이 대응에 나선 것 같긴 하옵니다만······.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현재 금의위로 전령을 보내 확인 중이옵니다.”

지세창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광해가 옷을 걸치며 말했다.

“상황을 지휘해 주게.”

“예. 폐하.”

복명한 지세창이 다시 내금위 병사들을 지휘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순간, 천지를 진동하는 폭발음이 들리며 방안의 집기들이 흔들렸다.

대량의 화약이 폭발하면서 무너진 왕궁의 담장을 넘어 대규모의 병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미리 남창에 잠입시켜 두었던 호남군단의 나머지 5천의 병력이었다.

황궁을 방어하는 금의위의 병력과 왕궁 밖의 대한제국군 병력이 정문으로 몰린 틈을 타서 일총으로 무장한 5천의 호남군단 병력이 조선의 태왕이 머물고 있던 전각을 직접 공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을 받은 방향은 남쪽, 명나라 왕궁의 외부 궁벽과 바로 붙어있다시피한 지역이었다. 그렇다보니 공격이 전각의 사방 중 일부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전각의 담장을 따라 사방에 분산 배치된 조선 내금위의 경계 구조상 방어병력이나 화력의 부족을 불러왔다.

그 짧은 비세를 비집고 적이 노도처럼 밀어닥쳤다. 전각의 남쪽 담장을 경계하던 병사 40명이 다총으로 응사하고, 5문의 현식총이 불을 뿜었다.

조선 내금위 병사들의 방어사격이 시작되면서 달려들던 호남군단 병사들이 무더기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문제는 달려드는 이들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죽어나자빠지는 호남군단의 병사들보다 새롭게 달려드는 병사들의 숫자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거기다 공격해 오는 적병들의 무장이 조선이 제후국들에 공급한 일총이었다. 그런 적병들의 사격에 피격당해 쓰러지는 내금위 병사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로인해 발생한 방어력의 공백을 틈타 달려드는 적병들과 전각의 담장 사이의 간격이 너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서둘러 포격 준비를 마친 구포가 비격진천뢰를 쏘아 올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전각의 담장에 접근한 적병에겐 쓸 수 없었다.

거리가 너무 가깝다 보니 자칫 아군에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구포는 멀찍이 접근하는 적병들에게 죽음의 쇠비세례를 퍼붓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이미 궁 안으로 밀어닥친 상당수의 적병들에게 구포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런 까닭에 적병들이 새카맣게 전각의 담장으로 몰렸다. 그것을 확인한 내금위 병사들이 일제히 수탄을 던졌다.

콰과과과쾅.

요란한 폭음과 함께 전각 담장으로 접근했던 이들이 우르르 무너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금 대규모의 적병들이 와락 전각의 담장으로 달려들었다.

왕궁 내 전각의 담장은 방어를 위한 장치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높이가 낮았다. 성인의 키에 비하자면 가슴팍 정도의 높이에 불과했다.

총을 거치하고 사격하는 엄폐물로 삼기에 약간 불편할 정도의 높이. 그렇다보니 적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타고 넘기에도 수월한 높이였다.

그 낮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50여명이 채 안 되는 조선 내금위 병사들과 5천에 달하는 호남군단 병사들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상황을 주시하던 지세창이 곧바로 나머지 세 방향에 배치된 병사들의 대부분을 전각의 남쪽 담장으로 돌렸다.

병사들의 수가 강화되자 방어는 훨씬 수월해졌다. 특히 5정에서 17정으로 늘어난 현식총의 화력지원은 큰 역할을 해냈다.

빨랫줄처럼 뻗어나가는 현식총 세례에 접근하던 적병들이 무더기로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이상상황을 눈치 챈 명나라 금의위의 병력이 달려왔다. 전각 밖에서 적과 그들 사이에서도 전투가 벌어졌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했지만 명나라 금의위의 대응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뜻이었기에 조선 내금위에는 상당히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한데 그렇게 흘러가던 상황이 갑작스런 폭음과 함께 일변했다.

쾅!

모골이 송연한 폭발음과 함께 전각의 남쪽 담장이 날아갔다. 담장에 몰려있던 내금위 병사들과 현식총 사수들의 상당수가 그 폭발에 휘말렸다.

화약이 담긴 주머니를 온몸에 두른 자살공격조가 담장을 공격하는 병사들 사이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그들 중 한명이 담장에 접근하는 것에 성공해서 화약에 불을 붙였던 것이다.

폭발의 여력은 조선 내금위에만 미쳤던 것은 아니었다. 담장 밖에서 공격에 나섰던 적병들도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하지만 적병들에겐 그 피해를 삽시간에 메울 수 있는 병력이 있었지만 조선 내금위는 그렇지 못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린 남쪽 담장의 경계 병력들이 다시 방어에 나섰지만 살아남아 다시 전투에 나선 수는 겨우 50여명, 남은 현식총의 수는 3정에 불과했다.

거기다 담장이 뚫린 탓에 곧바로 적병들이 전각 담장 안으로 파고드는 것에 성공했다.

지휘를 위해 전각 안마당에 서있던 지세창이 즉시 일권총을 빼들고 사격을 시작했다. 그런 그를 따라 구포병들도 즉시 일권총 사격에 합류했다.

6발의 총탄으로 적병 여섯 명을 쓰러트린 지세창이 비어버린 일권총을 집어넣고 검을 빼들고는 곧바로 전각 안으로 파고든 적병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일격필살.

지세창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적병이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조선 제일검’이란 칭호가 왜 그에게 붙어있는지 여실히 증명하는 화려한 검술이었다.

일총으로 무장한 적병 20여명을 순식간에 도륙한 지세창의 무위가 사나웠지만 짧은 시간동안 전각 안으로 파고든 적병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 탓에 지세창의 무위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수백 중에 겨우 수십을 죽인 셈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수백이 계속 불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대량으로 쏟아져 들어온 적병들과 조선 내금위 병사들 사이에서 난전이 벌어졌다.

총과 칼이 마구 뒤섞인 난전이었다.

내금위와 적군 사이에서 총이 쏘아지고 칼이 부딪쳤다. 총이든 칼이든 실력 면에서 조선 내금위 병사들의 우위는 명확했다.

조선에서 검을 가장 잘 쓰는 이들이 모여 있었던 데다가 최근엔 조선 제일검에게 매일같이 훈련받았다. 거기다 내금위는 사격 훈련도 충실하게 받는다. 그들의 실력이 나온 것이다.

같은 수의 적이었다면 순식간에 도륙되었겠지만 불행히도 적의 수가 너무 많았다. 거기다 간간히 적병들 속에서 발사되는 일총 사격에 쓰러지는 내금위 병사들이 속출했다.

안마당에서 난전이 벌어지자 다른 쪽 담장을 경계하기 위해 남아있던 병사들이 모두 달려왔다.

하지만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 난전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현식총이나 다총의 사격은 불가했다. 결국 그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들고 난전에 합류했다.

그들의 합류로 약간의 여유를 얻은 지세창이 전장에서 몸을 빼내 안마당 한쪽에서 열기구 준비에 여념이 없는 비행대로 달려왔다.

“준비는?”

“10분, 10분만 버텨주십시오.”

비행대장의 답에 뒤를 돌아본 지세창이 말했다.

“5분. 그 이상은 무리다!”

“어떻게든 그 안에 띄워보겠습니다.”

비행대장의 결연한 의지를 확인한 지세창이 곧바로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폐하. 적병들이 전각의 담장 안으로 들어섰나이다. 열기구가 준비되고 있사오니 탑승에 대비하시옵소서.”

“짐에게 도망가라 말하는 것인가?”

광해의 물음에 지세창이 굳은 표정으로 답했다.

“예. 폐하. 지금은 그것이 폐하가 하실 수 있는 최선이옵니다. 적에게 사로잡히지 마소서. 폐하가 사로잡히면 조선이 볼모가 되옵니다.”

지세창의 답에 굳은 표정의 광해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적에게 잡히지 않는 것이 태왕이 해야 할 가장 우선된 일이라는 지세창의 말엔 동의한다. 하지만, 광해는 다시는 조선의 역사에 적을 피해 도망간 왕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아니. 짐은 도망가지 않는다.”

“폐하!”

당황하는 지세창이 말릴 사이도 없이 밖으로 나온 광해가 전신마차로 향했다.

태왕이 들어서자 전신마차 안에서 연신 상황을 보내고 있던 전신수가 벌떡 일어섰다.

그런 전신수에게 광해가 말했다.

“황궁으로 지급. 황자 호를 태자로 책봉한다. 향후 짐에게 유고 상황이 발생하면 생사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즉시 태자를 태왕으로 삼아 국정을 살펴라.”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전신수에게 태왕의 호통이 떨어졌다.

“무얼 하는가? 즉시 타전하지 않고!”

태왕의 호통에 황급히 직전의 내용을 타전하는 전신수를 광해가 지그시 바라보았다.

잠시 후, 타전이 끝나자 광해가 말을 이었다.

“태자가 성년이 될 때까지 섭정은 황후가 맡되 군무는 조선군 원수인 이순신과, 내정은 총리대신인 이원익과 상의하라.”

그 내용이 다시금 타전되는 것을 확인한 광해가 짧게 말했다.

“황후와 태자에게. 사랑했다.”

전신수가 그것을 타전하기 시작하는 것을 확인한 광해가 돌아서 전신마차를 나섰다.

전각 안마당은 온통 피바다였다. 내금위 병사들과 적이 뒤엉켜 죽고, 죽이며 피를 쏟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광해가 가까이에 서 있는 내금위 병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일권총.”

태왕의 요구에 내금위 병사가 황급히 일권총을 내밀자 광해가 그것을 받아들고 지세창을 바라봤다

“최악의 상황이 오면 내 처분은 스스로 할 테니 내가 적에게 사로잡힐 걱정은 말라.”

“폐, 폐하!”

당황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지세창에게 광해가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조선 제일검 지세창은 황명을 받으라!”

태왕의 표정과 음성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지세창이 지체 없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조선 제일검, 지세창. 폐하의 명을 기다리옵니다!”

자신 앞에 꿇어앉은 지세창의 답에 자신의 허리에 묶여있던 검을 풀어 내리며 광해가 명했다.

“어검을 내린다. 이 검으로 적을 모조리 참살하여 조선에 반한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적에게 명확하게 보여주어라.”

“존명!”

절도 있게 고개를 숙인 지세창이 두 손을 올려 광해가 내린 검을 받았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명했다.

“가라. 가서 조선의 무인답게 죽어라! 짐은 여기서 조선의 태왕답게 죽을 터이니.”

그 말로 태왕의 결의를 읽은 지세창이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섰다.

“폐하의 명을 받드옵니다.”

복명한 지세창이 근접호위를 위해 서있던 내금위 병사들 중 9품 사용의 계급장을 단 앳된 얼굴의 하위 무관을 바라보았다.

“경업.”

“예. 내금위장.”

“내금위장이 아니라 네 스승으로서 부탁한다. 지금부터 네가 죽는 그 순간까지 폐하의 곁을 떠나지 마라.”

“예. 스승님!”

결연한 의지를 담아 답하는 하위 무관을 확인한 지세창이 태왕에게 말했다.

“제가 왕립군관학당에 있을 때부터 곁에 두고 가르친 녀석입니다. 임관한지 이제 몇 개월 안 되는 햇병아리이긴 합니다만 조선의 그 누구보다 검술 실력이 뛰어난 녀석이라 자부합니다. 저 녀석을 넘지 않고서는 누구도 폐하께 닿지 못할 것이옵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태왕을 일별한 지세창이 다른 내금위 병사들을 이끌고 전장으로 달려갔다.

그런 그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광해가 뒤에 서있던 비행대원들과 전신마차병, 그리고 발전마차병을 돌아봤다.

“이럴 때 절차가 있을 것으로 안다. 그대로 시행하도록.”

태왕의 명을 받은 이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우고 황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기구와 발전마차, 그리고 전신마차에 자폭용 폭발탄을 설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광해가 시선을 돌려 전장을 바라봤다.

싸움은 치열했고, 내금위 병사들은 조선 제일의 정예라는 그 이름들이 부끄럽지 않게 잘 싸웠다. 특히 지세창의 움직임은 조선 제일검이란 칭호가 부족할 정도로 눈부셨다.

하지만 적병들의 군세가 너무 많았다. 전투는 끝나기 전까지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지만 광해가 바라본 전장은 내금위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패색이 짙었다.

손에 들고 있던 일권총을 굳게 움켜쥐는 광해에게 자폭용 폭발탄의 설치를 끝마친 비행대장과 발전마차병, 그리고 전신마차병이 보고했다.

“준비 마쳤습니다.”

그 보고에 전장을 다시 한 번 일별한 광해가 명했다.

“통합지휘소로 최후 발신. 성이······, 무너졌다.”

암구호다. 태왕이 사망했다는 뜻을 담은.

당황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는 전신수에게 광해의 명이 떨어졌다.

“서둘러 타진하라.”

태왕의 굳은 명령에 전신수가 황급히 마차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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