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9화. 네덜란드 전쟁
네덜란드에서 리스본으로 사절단을 보내기 전에 열린 회의에서 대한제국과의 분쟁을 반대한 사람은 정치 지도자들 중 한명인 올덴바르네펠트뿐이 없었다.
특히 네덜란드를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던 오라녜 공작 마우리츠의 열정은 대단했다.
이 황백색 머리칼의 지도자는 네덜란드의 자유와 이익을 위협하는 그 어떤 나라와도 전쟁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를 따르는 각지의 영주들과 장군들도 비슷했다.
네덜란드가 그렇게 자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동인도 회사가 잉글랜드로부터 빼내어 복제해낸 폭발탄 덕분이었다.
폭발탄 공격에 막대한 피해를 입은 에스파냐군을 긴 전쟁 끝에 물리치고, 작년엔 드디어 독립을 쟁취해 내는 조약을 맺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역사에서는 12년간의 기한제 휴전 조약이었지만 여기서는 포르투갈에 진주한 조선군과 당장 전투가 벌어질 상황에 처했던 에스파냐가 네덜란드를 포기하고 그냥 그들의 독립을 인정하고 전쟁을 끝내는 협정을 체결했던 것이다.
아니고서는 네덜란드에 투입된 병력을 돌릴 수 없었던 에스파냐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에스파냐가 유럽의 강국이긴 했어도 2개의 전장에서 전면전을 벌일 정도의 경제력이나 군사력을 갖추고 있진 못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네덜란드에 유리하게 체결된 종전 조약은 실제역사와 달리 지금의 벨기에 지역인 남부 네덜란드까지 네덜란드의 영토로 인정하는 안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마우리츠 공작을 비롯해 네덜란드의 위정자들에게 오해를 심어주기에 충분할 만큼 일방적인 조약이었다.
오죽하면 에스파냐와 조약을 맺은 당일, 마우리츠가 측근들을 모아서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을 정도였으니까.
거기다 에스파냐가 물러간 직후, 남부 네덜란드에 욕심을 내어 살짝 발을 담갔던 프랑스군을 초선포와 폭발탄으로 가뿐하게 짓밟아준 것이 결정타였다.
프랑스의 입장에서는 지난 네덜란드 독립전쟁 내내 미온적이었던 남부지역을 찔러봐서 넘어오면 좋고, 아님 말고 였기 때문에 전면적인 침공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네덜란드 쪽에서 강하게 반발이 나오자 바로 물러난 것이었지만 에스파냐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고무되어 있던 네덜란드 위정자들은 그 결과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실 이런 생각의 저변에는 마우리츠가 단행한 여러 가지 군부 개혁이 밑바탕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당시 네덜란드 군대는 당대 유럽군대 중에서도 가장 근대화 되어 있다고 평가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오해와 오판들이 쌓여 네덜란드 군부가 실제 이상으로 자신들의 전투 능력에 대해 과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군과 분리되어 있던 정치 지도자였던 올덴바르네펠트는 현실을 조금 더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포르투갈이라는 강자를 단 몇 개월 만에 무너트리고 점령한 조선, 나아가 대한제국의 저력이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또한 현실적이다 못해 기회주의적이라고 까지 이야기를 듣는 잉글랜드가 대한제국 편에 붙어서 병력을 파견하였다는 것도 주의 깊게 보아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라녜 공작인 마우리츠의 생각은 달랐다.
에스파냐와 전쟁을 겪는 등 어떻게 하든 에스파냐의 힘을 꺾어두어야 하는 잉글랜드의 입장에서는 대한 제국을 이용하여 에스파냐의 힘을 조금이라도 더 빼려는 수작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더구나 그는 유럽일대에서 불고 있는 식민 전쟁에서 소외되고서는 네덜란드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자신들이 세운 동인도 회사가 말레이 일대에서 획득했던 식민지를 빼앗아간 조선이라는 나라를 극복해 내야만 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는 동방무역로의 진출이 사실상 불가능 할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대다수의 군지휘관들과 정치가들도 그런 마우리츠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것에 대해 올덴바르네펠트는 말레이 해전에서 조선군 함대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가 패배한 것을 거론하며 반대를 이어갔다.
하지만 마우리츠를 비롯한 군지휘관들은 말레이 해전의 패배를 수적 열세에 의한 불가피한 패배라고 단정해 버렸다.
마우리츠는 그 증거로 포르투갈 일대에서 운용되고 있는 조선군 함대의 함선수가 50척을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내세워 올덴바르네펠트의 입을 막아버렸다.
따라서 조선군 함대의 규모와 견줄 수 있을 정도의 함대를 네덜란드가 구성할 수만 있다면 조선 해군과도 충분히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결정이 네덜란드 내부에서 떨어졌던 것이다.
사실 이러한 오판의 가장 밑바닥엔 초선포과 폭발탄에 대한 과대한 자신감이 깔려있었다. 조선, 또는 대한제국 함대도 같은 무장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착각의 원인은 조선해군과의 전투에서 발생한 패잔병들이 네덜란드로 귀환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다시 말해 조선과 실제로 전투를 겪어본 이들이 네덜란드로 귀국하지 못했기에 갖는 착각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네덜란드가 조선에 포로 귀환협상을 걸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네덜란드 포로들이 포라중에 갇혀 있어서 네덜란드 측이 그들에게 접근하여 정보를 얻을 수 없었던 탓이다.
거기다 포르투갈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한 정보 수집에도 조흘했다.
하긴 에스파냐와 독립전쟁을 치렀던 네덜란드가 에스파냐와 동군협정으로 묶인 포르투갈에서 정보를 얻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긴 했지만 그 노력도 사실 많이 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하간 그런 일련의 착각과 부주의 속에 결정된 네덜란드의 대(對) 조선 및 대(對) 대한제국 정책은 강경일변도로 흘러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결정과정에서 올덴바르네펠트는 포르투갈에 상륙한 대한제국군이 20만을 넘어간다는 점을 들어 자칫 그 병력이 네덜란드를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를 개진하며 마지막으로 반대를 표명했다.
그런 올덴바르네펠트의 우려에 마우리츠와 군지휘관들은 대한제국군이 아무리 병력이 많고 강성해도 에스파냐와 프랑스를 거쳐야 하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육군을 직접 네덜란드에 투사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주장에 올덴바르네펠트는 저들이 포르투갈에 그러했듯이 상륙전을 펼칠 수도 있다며 전면적인 무력 충돌은 벌이지 말아야 한다며 거듭 반대의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마우리츠를 비롯한 대다수의 네덜란드 군지휘관들과 정치가들은 조선과 대한제국의 함대를 바다에서 막아낼 수 있다고 판단해서 올덴바르네펠트의 반대를 무시했다.
실제로 네덜란드는 대량의 어선들과 일부 상선들을 활용해 네덜란드의 온 바다를 주시하는 경계망을 완성했다.
거기다 네덜란드 역사상 가장 큰 함대도 준비했다. 70척에 달하는 이 함대의 핵심은 잉글랜드로부터 사들인 전열함이었다.
초선포와 폭발탄을 장비한 10척의 전열함에 60척에 달하는 크고 작은 무장상선들을 결합한 이 함대의 최대 구성원은 동인도회사였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를 취한 이 무역회사는 사실상 회사라는 개념을 초월한 규모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실제로 투자자들의 면면도 대부분이 네덜란드를 좌지우지하는 위정자들과 대부호들로 사실상 네덜란드 대표하는 국영회사와 다를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에 전개된 대한제국, 나아가 조선의 함대를 격파한 후 곧바로 말레이 바다로 진출해서 빼앗긴 식민지들을 되찾아올 준비도 갖추기 시작했다.
대한제국 포르투갈 총독부로의 사절 파견은 그런 네덜란드 국내의 결정이 내려진 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절의 태도는 강경하고, 고압적이기까지 했다.
*****
미처 생각지 못했던 네덜란드 사절의 태도와 요구에 대한제국 포르투갈 총독인 이항복은 황당해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네덜란드 사절단이 방문했다기에 포라중 함대를 급습했던 과거를 사과하고, 조선과의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해 방문했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사절단은 당당하게 자신들의 영토였던 암본과 반다 제도의 반환을 요구했다.
더구나 그렇게 반환을 요구한 영토들에는 포르투갈의 해외식민지였던 것을 잠시 집어삼켰던 동티모르도 들어있었다.
자신을 라이몬트라고 소개한 네덜란드의 사절은 시종일관 당당하다 못해 고압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 그에게 이항복이 물었다.
“타당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 대책 없이 당당한 사절에게 이항복이 물었다.
“대한제국이 거부하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불행히도 그렇게 된다면 힘으로 되찾아야겠지요.”
“힘으로요.”
“당연한 일이지요.”
라이몬트의 답에 이항복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총독으로 부임한 이래 첫 유럽외교가 시험대에 오른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것도 가벼운 충돌도 아니고 전면적인 군사적 충돌에 직면해 있었다.
이항복은 이 사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잠시 고심했다. 그 과정 중에 총독으로 부임하기 직전 광해가 건넨 당부가 떠올랐다.
<항상 당당하시오. 그대는 대한제국과 조선의 얼굴이며, 짐의 대리자요. 설사 일이 틀어져 온 유럽과 전쟁을 벌여야 할지라도 결코 상대에게 허리를 굽히지 마시오.>
광해가 건넸던 그 말을 떠올리며 결심을 굳힌 이항복이 물었다.
“그럼 이번의 방문은 선전포고라고 보면 되겠습니까?”
이항복의 도전적인 물음에도 네덜란드의 사절인 라이몬트는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돌려줄 생각이 없다면 그렇게 되겠군요.”
그런 그의 태도에서 이미 네덜란드가 내리고 있는 결정을 알아차린 이항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귀국의 선전 포고는 잘 받았습니다. 조만간 답을 돌려 드리지요.”
“그럼 전장에서.”
그 말을 남겨둔 네덜란드의 사절이 돌아가자 이항복이 이순신과의 만남을 청했다.
이순신은 포르투갈 원정군 총사령관 이자 대한제국군 원수 겸 조선군 원수였다. 아무리 이항복이 포르투갈 총독으로 부임했다고는 해도 그를 부릴 위치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항복과 마주한 이순신은 네덜란드에서 전해진 소식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어찌 해야 하겠습니까?”
이항복의 물음에 이순신이 답했다.
“피를 덕으로 갚고자 기다렸으나 피로 갚으라고 강자를 부린다면······. 그리 해 주어야겠지요.”
“전쟁이 계획보다 길어질 겁니다.”
이항복의 걱정에 이순신이 물었다.
“네덜란드를 점령하실 생각이십니까?”
“걸어오는 전쟁이라 피하지 않았을 뿐, 그들을 점령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명을 폐하께 받은 적도 없고요.”
“그렇다면 전쟁은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우리의 임무가 네덜란드의 격파에 있다면 말이지요.”
“원수께 부담만 지어드린 것이 아닌가 걱정입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아도 전투가 없어 몸이 근질근질한 놈들이 지금 리스본에 가득합니다. 그들과 함께 곧바로 해결 하겠습니다.”
자신만만한 이순신의 답에도 여전히 걱정이 가시지 않은 표정인 이항복이 말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든든하긴 합니다만. 전 아직도 제 결정이 옳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솔직히 조선을 떠나기 전, 폐하께 포르투갈 일대와 유럽에 대해 전권을 위임받기는 했습니다만 이렇게 제가 독단으로 타국과의 개전 결정을 내려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이항복의 답에서 그의 고충을 알아차린 이순신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전 폐하의 혜안을 믿습니다. 그런 폐하가 가장 곁에 오래 두고 계셨던 분이 바로 총독입니다. 그런 분을 포르투갈로 보냈을 때는 총독의 판단과 결정을 믿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 판단과 결정을 태왕 폐하께오서 믿으실 거란 말씀이십니까?”
“예. 저는 그럴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순신의 확답에 비로소 갈등을 걷어낸 표정인 이항복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럼 장군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항복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이순신이 총독부를 물러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대한제국군 포르투갈 원정군 지휘부회의가 소집되었다. 그 회의에서 결정된 네덜란드 공략 계획에 붙은 작전명은 ‘충격과 공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