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0화. 애덤스 백작의 요청
비아나두카스텔루 앞바다에서 에스파냐 함대를 격파한 이순신 함대는 리스본으로 귀환했다. 소모된 탄과 석탄의 보급을 위해서였다.
리스본 항에서 기다리던 혁거세급 석탄운반선에서 여분의 포탄과 석탄을 보급 받은 이순신 함대는 생각지 못한 손님을 맞았다.
바로 애덤스 백작이다.
정해양변의 일로 20년 전인 선조21년에 조선을 방문했던 애덤스 백작은 귀국 후, 잉글랜드에서 유일하게 조선파로 불리는 귀족이 되었다.
그가 당시 받았던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당시의 조선 방문기를 쓴 책을 잉글랜드에서 출간했을 정도였다.
그 책이 조선의 기술과 그 기술 발전을 이끌고 있던 광해라는 왕자에 대해 예찬을 늘어놔서 당시에는 허풍쟁이에다 아시아 예찬론자라는 비난까지 받았었다.
하지만 최근엔 그의 예상대로 조선이 굉장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아시아를 제패한 것이 알려지면서 그의 선견지명이 높이 평가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조선군 포르투갈 원정군 사령관을 찾아 리스본으로 직접 온 것이다.
주몽급 순양함에는 외부인을 태울 수 없었기 때문에 이순신은 애덤스 백작을 리스본 항구의 한 건물에서 만났다.
이순신의 눈에 비친 애덤스 백작은 머리가 하얗게 샌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허리가 곧고 눈빛이 형형해서 그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조선군 원수 이순신입니다.”
“잉글랜드 외무대신 애덤스 백작입니다.”
인사를 나누며 애덤스 백작의 눈빛이 반짝였다.
상대의 직함을 조선의 통역병이 ‘제독’이나 장군이 아니라 제국군 원수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직함에서 나타내는 제국이 조선을 뜻하는지, 아니면 대한제국을 뜻하는지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애덤스 백작은 그것에 연연하지 않았다.
이제 논의할 이야기를 생각하면 상대가 예상보다 더 거물이라는 부분이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순신 측은 통역병을 통해, 애덤스 백작은 조선말을 할 줄 아는 잉글랜드 상인을 통해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이야기는 주로 애덤스 백작이 했고, 이순신은 듣는 입장이었다. 용건이 있는 쪽이 잉글랜드 쪽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건네진 이야기를 한참 동안 듣던 이순신이 다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잉글랜드가 참전을 하겠다는 말씀이오?”
“예. 그렇습니다. 우리는 저 간악한 펠리페 3세와 그 일당에게 정의를 가르쳐 주는 일에 동참하길 원합니다.”
“정의······요?”
“예. 무고한 상단을 나포하여 약탈하고, 선원들을 참혹하게 죽이기까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 일을 앞장서 벌인 포르투갈을 점령함은 물론이고, 동방의 식민 거점들을 모조리 빼앗아 그 죄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잉글랜드의 의도를 잘 몰랐던 이순신은 방금 전의 이야기로 그들이 이 전쟁에 발을 담가서 얻고자 하는 바를 눈치 챘다.
에스파냐가 발을 담그면서 전쟁의 규모는 더 커질 것이 분명했다. 사실 포르투갈 원정군 지휘부 내에서도 조선에 증원을 청하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조선에서 증원 병력이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이후에는 늦을 거라는 생각들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는 주장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잉글랜드의 참전은 조선에게 나쁠 것이 없었다. 조선 보다 훨씬 가까운 잉글랜드에서 원군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태왕이 이번 일을 어찌 받아들일지 하는 부분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이 문제에 대해 태왕의 비답을 받는 것이었는데 그러자면 아무리 빨라도 4개월, 여차하면 6개월도 넘게 걸린다.
전쟁의 와중에 시간을 그렇게 길게 끌고 갈 수는 없는 법이었다. 따라서 이 사안에 대한 결정은 이순신의 선에서 내려져야 했다.
그러라고 태왕이 어검까지 하사했던 것이니까.
생각이 그에 이르자 이순신이 자신의 허리에 채워져 있는 어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무언가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이 오면 경의 직감을 믿으시오. 나는 경의 그 직감을 따를 터이니.>
출전 직전 부산포까지 내려온 태왕이 이순신에게 건넨 말이었다. 아무래도 태왕의 ‘예지’는 이 순간까지 내다보았던 모양이라고 이순신은 생각했다.
태왕의 뜻이 자신의 직감과 맞닿아있다면······.
잠시의 갈등을 끝낸 이순신이 물었다.
“잉글랜드가 참전 한다면 어느 선까지 조선과 함께 할 생각입니까?”
“우리 잉글랜드는 에스파냐가 포르투갈을 포기할 때까지 전력을 다할 것입니다.”
애덤스 백작의 답에 이순신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물었다.
“적지 않은 전력이 필요할 텐데요?”
“당장 50척의 함대와 2만의 육군을 파병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병력이었다. 몇 천 보내놓고 눈치를 살필까 걱정했던 것이 기우였던 모양이다.
“그 말은 추가로 더 보내실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만.”
“아마도 에스파냐가 이 전쟁에 발을 들인 이상 신성로마 제국도 끌려 들어올 겁니다.”
“신성로마 제국이요?”
“예. 그들은.”
애덤스 백작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이순신의 표정이 굳어갔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애덤스 백작이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전열함 2척으로 이루어진 호위 함선들까지 딸려있는 그의 함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순신이 원정군 지휘부를 소집했다.
애덤스 백작에게서 들은 정보를 공유하고 필요한 사항을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북방에서 활개(?)를 치고 있는 ‘해병 기마대’와 최전선에서 전투에 돌입해 있던 몇 개 여단은 제외한 나머지 모든 여단장들과 고위 참모들이 참여한 회의에서 주요하게 다뤄진 것은 펠리페 3세가 속한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한 것이었다.
특히 신성로마 제국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애덤스 백작이 토해놓고 간 정보대로라면 당장 그들의 구원군이 전쟁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말을 다 들은 지휘관들 속에서 한 여단장이 물었다.
“그 에덤스라는 잉글랜드의 귀족이 한 이야기대로라면 신성로마 제국이 원군을 보낸다고 해도 대병력은 어렵지 않겠습니까?”
“오스만 제국과 긴 전쟁을 끝낸 데다 내부 분란까지 겪고 있다니 그렇긴 하겠지만 제후국들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 대공국만으로도 수만의 병력을 보낼 여력이 된다하니 주의를 기울일 필요는 있어 보인다.”
“저들이 병력을 보내려 해도 프랑스를 건너서 와야 할 텐데 완충지대로써의 역할을 하지 못할 까요?”
“해상 수송도 염두에 둘 수 있겠지. 또한 프랑스가 협조할 수도 있고. 애덤스 백작의 말로는 그 프랑스조차 발을 담글 수도 있다더군.”
이순신의 답에 다른 여단장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전 정보 보고대로라면 프랑스와 에스파냐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만.”
“나도 그렇게 보고 받았네. 하지만 애덤스 백작의 말로는 에스파냐가 무엇을 내놓느냐에 따라 프랑스가 발을 들일 수도 있다고 말하더군. 회의 전에 우릴 돕기 위해 나와 있는 조선 무역선단 상인들에게 물었더니 가능한 이야기라는 답을 들었네.”
“그럼 자칫 유럽의 3개의 대국과 전쟁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이군요.”
“애덤스 백작의 주장대로라면 그렇게 될 수도 있겠지.”
이순신의 답에 지휘관들의 표정이 굳었다. 적지에서, 그것도 원거리 원정에서 상대해야 할 적이 늘어난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지휘관들 속에서 한 고위 참모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며칠 후부터 본격적인 점령 작전에 나서면 여단들이 포르투갈 각지로 흩어질 겁니다. 그 상황에서 적의 원군들이 개입한다면······. 아군의 병력부족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리스본만 깔고 앉아있을 수는 없네. 겨우 도시 하나 점령하자고 우리가 12만이 넘는 병력을 동원한 것은 아니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잉글랜드가 참전하면 얼마나 병력을 투입하겠답니까?”
고위 참모의 물음에 이순신이 답했다.
“50척의 전투함과 2만의 육군. 추가적인 투입도 논의해서 알려주겠고 하더군.”
“생각보다 적극적이군요.”
“말레이를 비롯해 동방 무역항로에 흩어져 있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들을 가져가고 싶어 했으니까.”
이순신의 답에서 잉글랜드가 그렇게 적극적인 이유를 알아차린 고위 참모의 입가로 미소가 깃들었다.
“차라리 다행입니다. 원하는 바가 분명하다는 것은 뒤통수를 맞을 일이 더 적다는 뜻이니까요.”
“나도 같은 생각일세. 그래서 한번 믿어보기로 했지.”
이순신의 답에 고개를 끄덕인 고위 참모가 말했다.
“그럼 점령 작전을 개시하면서 병력이 엷어지는 리스본으로 충원하시죠.”
“그 보다는 북부로 투입할 생각일세.”
“북부라시면······?”
“해병 기마대를 지원할 생각이네. 그들이 분탕질을 치고 지나간 지역을 잉글랜드군을 투입해서 점령할 생각이지.”
“저항이 거셀 텐데요. 2만으로 가능할까요?”
“어려움에 처하면 기마대가 지원 가능할 테고, 또 기마대가 어려움에 처할 경우 물러날 근거지를 잉글랜드군이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네.”
“잉글랜드군이 잘만 해준다면 가능하긴 하겠습니다만······. 전투력을 믿을 수 있을까요?”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믿어봐야겠지.”
물어온 고위 참모도 이순신도 확실한 답을 하지 못한 것은 사전에 접한 정보대로면 잉글랜드의 해군은 몰라도 잉글랜드 육군의 전투력은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세력이 많이 위축되긴 했지만 에스파냐 육군은 유럽 최강군이란 평가를 들었던 군대였다. 따라서 에스파냐의 군대와 충돌할 경우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걱정 속에서 잉글랜드의 문제를 그쯤에서 마무리 지은 지휘관들은 향후 점령 작전에 대해 심도 있는 의견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조선의 포르투갈 점령은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일 단계는 리스본을 기점으로 하는 남부지역에 대한 점령이었다.
해변을 따라 바다까지 남하하고, 다시 동진해서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국경까지 밀어붙여 점령 작전을 펼칠 예정이었다.
원정군 지휘부는 작전계획에 따라 10개 여단 5만 병력을 투입해서 작전을 개시했다. 차례차례 리스본을 떠나 남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열흘 만에 선봉인 105여단이 라고스의 해변에 도착하면서 남하는 일단 큰 저항 없이 마무리 되었다. 곧바로 진군 방향을 동쪽으로 바꾸어 본격적인 포르투갈 남부에 대한 제국군의 점령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 당시 포르투갈군과 에스파냐 지원군으로 이루어진 이베리아 연합군은 리스본에서 150Km 떨어진 카스트루베르드(Castro Verde)에 집결 중이었다.
병력은 포르투갈군이 2만, 에스파냐군이 3만으로 총 5만에 달하는 대병이었다.
그들은 대규모의 대한제국군 병력이 리스본을 떠나 남하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그간 웅크리고 있던 카스트루베르드를 떠나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들은 대한제국군이 본격적인 점령전으로 전환해서 병력분산이 이뤄지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이동하는 이베리아 연합군이 향하는 곳엔 그들의 접근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111여단이 한창 점령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