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사라왁 해전
대한제국 해병대원들과 장비, 보급품을 조선무역선에 싣는 것에만도 3일이 걸렸다. 그에 따라 조선군 포르투갈 원정군은 5개 집단으로 나누어 이동했다.
맨 첫 번째로 부산포를 떠난 것은 원정군 총사령관이 타고 있는 이순신 함대였다.
두 번째는 1만의 대한제국 해병대와 많은 물량의 보급품을 실은 제11수송함대, 그리고 그들을 호위하는 제71기동함대였다.
세 번째는 마찬가지로 1만의 해병대와 다수의 보급품을 실은 제13수송함대였다. 해외 영토에 대한 보급임무를 맡고 있던 13함대는 5척의 해모수급 전열함과 20척의 왕건급 호위함을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호위함대가 따라붙지는 않았다.
네 번째는 30개의 조선 무역선단으로 이루어진 대규모 수송단이었다. 이들이 9만의 해병과 대량의 보급품을 싣고서 움직였다.
이들도 대규모의 자체 호위함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별도의 호위함대가 붙지 않았다.
다섯 번째는 제12 수송함대가 1만1천의 해병과 상당수의 보급품을 가지고 마지막으로 부산포를 출발했다. 이들을 호위하기 위해 제72기동함대가 따라붙었다.
이 대규모 함대가 움직이는 항로의 경비를 위해 별도의 함대도 추가로 투입되었다.
우선 부산포에서 시작해 대만섬에 이르는 항로의 경비는 1함대 소속 1개 전대가 투입되었다.
마찬가지로 대만섬에서 말라카, 말라카에서 마드라스, 마드라스에서 광무항, 광무항에서 포르투갈로 향하는 4개의 항로에 대한 경비를 위해 21해외원정함대로 소속을 옮긴 4개의 순찰전대들이 모두 동원되었다.
며칠간 조선의 남해가 온통 배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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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대규모 함대가 출발하던 시기 포라중도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우선 포라중 기지에 석탄 창고가 생겼다. 저장용량 10만 톤 규모의 이 창고는 여러 개의 격실과 환기시설을 포함하고 있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될 증기철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갖추진 이 창고가 가장 먼저 맞을 손님은 현재 빠른 속도로 항진해 오고 있는 이순신 함대의 주몽급 순양함들이었다.
그렇게 보급될 석탄들은 조선이나 대한제국 내 각 제후국에서 실어온 것이 아니었다. 가까운 보루네오 섬에서 생산된 석탄이 사용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 왕실 상단 중 하나인 광물전(鑛物廛) 포라중 지부가 설치되어 이때 만해도 보르네오섬 북부 전역을 장악하고 있던 브루나이 왕국과 사전에 교섭을 벌였다.
그 결과 보루네오 섬 서북부의 사라왁 지역에 위치한 석탄광맥에 대한 채굴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당시만해도 브루나이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거기다 네덜란드와 잉글랜드까지 진출해 주석광산의 중요도는 알아도 석탄 광산에 대해선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때여서 확보에 큰 자본이 들어가지는 않았다.
광산 기술자들과 운반선 등은 조선의 것이 쓰인다지만 광산 인부들은 브루나이 백성이 동원되었다. 임금 수준이 굉장히 싸서 광물전의 입장에선 상당한 저비용으로 석탄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데 그렇게 순탄하게만 흘러가던 일이 석탄을 실어오려는 순간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이 당시 말레이 일대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책임자는 야코프란 자였는데 그는 자신 휘하의 함대를 통해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이 차지하고 있던 지역을 야금야금 파먹고 있었다.
네덜란드가 일대로 진출하면서 가장 먼저 차지한 지역인 암본도 포르투갈의 손에서 빼앗은 지역이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포르투갈 함대와의 결전에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뒀다.
초선포와 폭발탄이라는 신무기 덕분이었다.
폭발탄을 가장 먼저 카피한 잉글랜드보다 그런 잉글랜드로부터 폭발탄 기술을 빼내간 네덜란드가 먼저 실전에 사용하여 그 효과를 본 셈이다.
더구나 잉글랜드가 자국산 철포용 폭발탄을 사용하는 반면 네덜란드는 포르투갈을 통해 초선포 제작기술을 빼내 아예 초선포를 카피 생산해 사용했다.
완벽하게 조선군이 초기에 사용했던 무장을 갖춘 셈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는 말레이 일대의 바다에서 무적에 가까운 파괴력을 보였다.
자신감이 붙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밀레이 지역 향료 수출의 중심지인 암본을 장악한 것을 시작으로 곧바로 육두구의 주생산지인 룬섬을 장악했다. 이 또한 포르투갈의 점령지였던 섬을 빼앗은 것이었다.
이후 반다제도의 섬들을 점령해서 육두구 생산지를 완전히 장악했다.
이렇듯 일대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입장에서 자국을 제외한 모든 세력은 경쟁자였고, 적이었다.
그런 적은 하나라도 적을수록 좋았다.
때마침 포르투갈에 밀려 말라카를 내어준 이래 말레이 일대에서 조선의 세력이 위축되어 있다고 판단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이참에 조선세력을 아예 말레이 지역에서 제거하기로 작정했다.
그 결정을 내린 이는 말레이 책임자인 야코프였다. 그는 조선이 말라카를 내준 일련의 과정이 포르투갈의 야비한 술책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이 강경책이 아니라 양보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군사력부분에서 소문처럼 강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거기다 자신들도 조선군이 무장한 것과 같은 포와 폭발탄으로 무장하고 있음을 자신했다. 마카오에서 보여주었다는 조선군 함대의 장거리 포격 능력은 소문이 과장된 것이라고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아니라면 조선이 지금처럼 포르투갈에 휘둘리며 끌려 다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말레이 일대에 배치된 동인도 회사의 함대는 전열함 10척과 20척의 무장상선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민간회사인 주제에 동인도 회사가 전열함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네덜란드의 독립을 지원하고 있던 잉글랜드를 통한 것이었다.
에스파냐의 기득권에 대항하기 위해 막대한 자본을 필요로 했던 잉글랜드와 막강한 함선이 필요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입장이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렇게 잉글랜드에서 건조되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보유하게 된 전열함들은 모두 초선포와 폭발탄을 장비하고 있었다.
야코프는 그들을 보르네오섬으로 보내 브루나이를 압박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나올 조선군 함대를 격파한 후, 포라중을 점령하기로 했다.
이당시 포라중 주둔 조선군은 1천 병력으로 이루어진, 육군 5전단 소속 제553 기동단이었다. 이들을 지원하는 주둔 함대는 21원정함대 소속의 213원정전대였다.
3척의 해모수급 전열함과 5척의 왕건급 호위함으로 구성되어있던 원정전대에는 광물전이 동원한 3척의 조선무역선이 임시로 배속되어 있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농간을 알지 못했던 포라중 주둔 조선군 지휘부는 계획대로 3척의 조선무역선을 보내 채굴한 석탄을 실어오기로 했다.
그들을 호위하기 위해 1척의 해모수급 전열함과 2척의 왕건급 호위함이 동행했다.
유사시의 지상 작전을 위해 해모수급 전열함이 접안해서 탑승하고 있던 해전대원 50명을 하선시켜 주변을 경계하는 가운데 석탄을 싣기 위해 조선무역선들이 붙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함대의 접근은 그 시점에 이루어졌다.
10척의 전열함을 앞세우고, 사라왁 항구로 다가서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를 앞바다에서 경계를 펴던 왕건급 호위함 2척이 가로막았다.
이당시의 상호 연락체계가 미비되어 있었던 관계로 바다에서 마주친 배들은 가까이 붙어 육성으로 의사를 소통했다.
물론 적성국이었다면 접근 자체가 공격행위로 받아들여졌겠지만 네덜란드와 조선은 외교적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 하고 이었기에 단순히 접근한다고 선제공격을 가할 수는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양측의 거리가 5백보까지 좁혀졌다. 왕건급 호위함이 가까이 붙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에 접근 이유를 물으려던 찰라 공격이 시작되었다.
콰과과쾅!
10척의 전열함이 2척의 왕건급 호위함을 반월형으로 감싸고 퍼부은 포탄은 폭발탄이었다.
쾅쾅쾅쾅.
연속적으로 폭발하는 폭발탄의 타격에 휘말렸음에도 왕건급 호위함들은 곧바로 응사했다.
과거 왜의 해적함대에 의해 폭발탄 공격을 받아본 경험이 있던 조선 해군 함선들은 이후, 모조리 격실구조로 건조되었다.
폭발탄이 가하는 파괴력을 차단하고, 화염 또는 산탄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던 것이다. 이것은 포대들이 늘어서 있는 포갑판에도 적용되어 각 포대들이 격실구조로 구분되어 있음을 뜻했다.
다시 말해 바로 옆 포대 공간에서 폭발탄이 터졌다고 해도 그 옆 포대는 철제격벽으로 보호되어 폭발탄의 파괴력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낸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로 인해 밀폐형 구조를 가지게 된 포대의 공기의 환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복잡한 환기 시설이 추가로 설치되어야 하긴 했지만 충분한 방호능력을 구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주효했다.
폭발탄의 피해가 공격받은 격실에 한정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의 집중 포격에도 불구하고, 왕건급 호위함들이 매서운 대응 포격을 퍼부을 수 있었던 연유였다.
양측 공히 폭발탄을 사용했다. 단순 파괴력만을 놓고 따지면 오히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의 폭발탄이 훨씬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구경과 탄의 크기가 커서 내장된 인화물질의 양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악착같은 조선군 왕건급 호위함의 대응포격 속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전열함 4척이 화염에 휩싸였고, 그중 2척은 유폭을 일으켜 커다란 굉음과 함께 폭발해버렸다.
하지만 조선군의 반격은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격벽에 의해 보호를 받아도 선체의 상당수가 목재로 이루어진 것은 다르지 않아서 왕건급 호위함들이 결국 배 전체로 번진 화재로 인해 침몰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서둘러 항구에 접안해 있던 해모수급 전열함이 포구를 이탈해 바다로 나오고 있었지만 그 배도 나오자마자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선들의 폭발탄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렸다.
만 안으로 들어가 있던 사라왁 포구의 특성 때문이었다. ‘ㄱ’자로 꺾어진 포구를 벗어나면 곧바로 넓게 터진 바다와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로인해 해모수급 전열함은 거리의 이득을 취하지 못했다. 넓게 열린 바다의 입구를 이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가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해모수급 전열함의 피해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해모수급 전열함의 경우 왕건급 호위함과 달리 포갑판 외벽을 철제장갑판으로 제작했기 때문이다. 해모수급 전열함들이 햇빛을 받았을 경우 검붉은 띠를 두른 듯 보였던 것도 부식방지를 위해 포갑판 외벽에 장착된 장갑판들이 구리로 얇게 코팅되어 있었던 까닭이다.
그로인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가 쏜 폭발탄들의 대부분이 장갑판에 맞아 튕겨나갔다.
물론 고정을 위해 일부 목재를 쓴 곳을 강타당하거나 부식이 진행되어 약화된 장갑판이 충격에 떨어져나가면서 폭발탄이 내부로 투사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초기에는 그런 경우가 매우 적었다.
그것이 해모수급 전열함이 적 함열을 돌파하려 마음먹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해모수급 전열함은 적을 돌파하여 포라중으로 귀환해서 아군에 이 공격을 알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후 전대와 함께 돌아와서 침몰한 동료함들의 복수를 해줄 생각이었다.
해모수급 전열함의 의도를 간파한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는 당연히 놓아 보내려 하지 않았다.
돌파를 시도하는 해모수급 전열함을 길게 둘러싼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함대들의 포격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뒤에서 뒷짐 지고 있는 듯 했던 무장 상선들까지 가세한 이 포격전은 마치 양측으로 길게 늘어선 동인도 회사 함선들로 이루어진 골목을 해모수급 전열함이 무지막지한 표격을 주고받으며 지나가는 형상이었다.
양측의 피해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쏘면 쏘는 대로 맞아야 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선들도 피해가 컸지만 연속적으로 포격을 당한 해모수급 전열함의 장갑판들이 여기저기서 떨어져나가면서 폭발탄이 내부로 들어오는 경우가 증가했다.
그로인한 내부 폭발과 화염으로 해모수급 전열함이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런 격렬한 포격전을 간신히 이겨내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의 함대가 구성한 포선을 완전히 벗어난 순간, 불행히도 내부 화염이 반쯤 부서진 화약고로 옮겨 붙어버렸다.
콰과광!
엄청난 굉음과 강렬한 빛을 남긴 채, 해모수급 전열함이 폭발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