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4화. 제2111첩보정찰대
중전과 헤어져 대전으로 든 광해를 대신들과 무관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후금군이 또 패했다 하옵니다. 폐하.”
병조 판서의 보고에 광해의 눈매가 좁아졌다.
“이번에 동원한 군세가 5만이라 들었소만.”
“몽골이 추가로 병력을 동원한 것 같사옵니다.”
몽골이 전성기를 구가할 때는 20만의 대병도 동원한 전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그러니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5만 이상의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저력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의 몽골이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구심점을 잃고 모두 흩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몽골부족을 하나로 묶어 군대라 부를 만큼 대규모의 전사들을 동원해낼 지도자도 나오지 않았다. 부족들의 알력다툼이 그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대규모 병력이 움직이고, 그것도 모자라 추가로 군세를 더했다면······.
“혹시 몽골군의 지휘관을 알 수 있나?”
“현재 군부에서도 그것을 알고자 노력을 기울이고 있사오나 파악하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배석해 있던 권률의 답에 광해가 물었다.
“누르하치는?”
“후금의 왕은 2만의 패잔병들을 추슬러 태원(太原)까지 물러나 만약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만약이라면?”
“몽골군의 남하를 걱정하는 모양입니다.”
권률의 답이 끝나기 무섭게 영의정의 음성이 이어졌다.
“그와 연관하여 후금에서 공식적으로 원군을 청해 왔사옵니다. 정식 사신이 강소도에 도착하여 조선으로 향하길 원한다면서 강소 관찰사가 어찌 할지를 물어왔사옵니다.”
영의정의 말에 광해가 권률을 바라봤다.
“몽골군이 세력을 확장 중인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몽골과 연을 가진 서간도인들을 대상으로 정보를 취합하고 있는데 마땅한 것이 잡히지 않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저쪽에서 감추는 듯합니다.”
“바라는 것이 없다면 감추지도 않겠지.”
광해의 말에 권률이 고개를 끄덕였다.
“군부와 병조도 같은 생각입니다. 저들이 우리에게 숨겨 이득을 얻기 위해서 벌일 일이란 것이······.”
“결국 전쟁인가?”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대상이 불분명하긴 합니다만······.”
단지 후금이 목표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 후금을 속국으로 삼은 이상 실제 역사에서 명이 조선으로 원군을 보냈듯이 조선도 후금의 상국으로서 원군을 보내야 했다.
잠시 고심하던 광해가 결정을 내렸다.
“제7기동전단을 서간도로 이동조치하고, 첩보를 더 모아보도록. 실제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호들갑을 떨어 원군부터 들이밀 필요는 없겠지만 사태가 최악으로 몰린 이후에 병력을 투입할 필요도 없겠지. 상황이 벌어지면 곧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대비해 두도록 하라.”
“명을 받잡나이다.”
권률을 비롯한 무관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하면 후금의 청병(請兵) 사신은 어찌 하올지······?”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예조 판서에게 광해가 답했다.
“잠시 강소도 감영에 머물게 하라. 청병 사신을 받으면 답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곧바로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 그건 바람직하지 않으니 사신의 발을 붙잡아 대전에 도달하는 시간을 지체시킨다.”
광해의 답에 예조 판서를 비롯한 대신들의 허리가 일제히 숙여졌다.
“명을 받잡나이다. 폐하.”
그렇게 허리를 숙인 대신들을 바라보는 광해의 표정이 무거웠다. 아무래도 몽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
누르하치는 당황하고 있었다. 대군을 동원하고도 두 번이나 모두 패한 까닭이다. 더구나 이번엔 충분히 신뢰할 수 없음에도 한족 팔기까지 동원한 전투였다.
그럼에도 패했다는 것에서 누르하치의 충격이 컸다. 거기다 당장은 더 이상의 군대를 추가로 모집할 수 없다는 것도 부담이었다.
이주한 여진족과 후금의 영향력 하에 들어온 몽골 부족에서 더 이상 전사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풍부한 한족에서 병력을 추가로 모을 수는 있겠지만 자칫 그렇게 모아 무장시킨 한족의 군대가 반란을 획책할 수도 있었다. 그 위험을 감수 할 수 없었던 누르하치는 결국 조선에 원병을 청했다.
수하들은 조선이 외면하고 몽골군대가 남하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지만 누르하치는 상국으로써 조선이 후금의 위기를 모른 척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속국의 위기를 외면하는 상국에 속국의 예를 다할 나라는 그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머지 속국들을 생각해서라도 조선은 움직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문제는 정말로 몽골군이 남하할 것이냐 하는 점과 그랬을 경우 조선의 원군이 어느 시점에 투입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자칫 시기가 늦으면 간신히 차지한 기름진 땅에 막 정착하기 시작한 부족들이 몽골군의 손에 엉망이 될 수 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누르하치는 조선으로 보내는 청병 사신을 또 보내 시일을 재촉했다. 아울러 다수의 기마대를 풀어 몽골군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
조선군 제2전단 2111대는 조금 특별한 조직이다. 전단 직할인데다 전원이 전투병 특기가 아니라 정보병 특기로 조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붙은 이름은 제2111첩보정찰대다.
그들이 맡은 임무는 서간도와 접한 후금 및 몽골 부족에 대한 정보 수집 및 적정 정찰이었다.
임무지역은 서간도와 접한 후금의 산동과 몽골 지역, 그리고 고비 사막 너머의 몽골 고원까지로 광범위했다.
그렇게 임무지역이 넓었던 것은 그들이 조선군의 대몽골 첩보전의 최전선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적진에 침투, 잠입이 수반되는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면서도 최근 조선군 전체에 개량되어 보급된 철모나 방탄조끼 같은 신형 군장류는 지급되지 않았다.
애초에 작전을 나갈 때 군복을 착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2111대 03오 준사(俊士) 마랍지타의 복장도 평범한 몽골족의 의상 그대로였다.
준사는 조선군에 최근 도입된 계급으로 현대시대로 보면 준사관이다. 모병제의 전단계로 군역에서 해제된 병사들 중 군에 계속 남길 희망하는 이들 중 선발과정을 통과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계급이었다.
병사들 중 가장 윗계급인 만병의 상위 계급이었고, 9품 무관직인 사용의 바로 아래 계급이었다.
마랍지타도 군역이 끝나기 직전 장기 복무를 신청했고, 선발과정을 통과해 3개월간의 준사관 과정을 수료하고 나서 임무에 투입되었다.
몽골 부족 출신인 마랍지타는 조선군이 마음에 들었다. 대우도 나쁘지 않았고, 급료도 다른 직종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 편인데다 전투에라도 투입되면 상당히 높은 수준의 전투 수당이 붙었다.
주변에서는 목숨을 팔아 버는 돈이라 걱정하기도 했지만 자신이 어딜 가도 그 이상을 벌수 있을 거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군생활이 자신의 성향과 맞기도 했고.
물론 그건 오늘 이전까지의 생각이었다. 지금은 군에 남은 것을 무지막지하게 후회하는 중이었다. 이번에 부대로 돌아가면 반드시 전역 신청서를 내고 말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털어버리며 마랍지타가 달리는 지역은 사막이었다. 추적을 따돌리고 살아 돌아가기 위해 마랍지타가 제 발로 들어온 곳이었다.
모래라 흔적이 길게, 오래 남을 것 같지만 아니다. 바람 한번만 불면 고운 모래로 구성된 고비사막의 특성상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드넓은 사막지대라서 시야가 넓게 형성되어 추적에 용이할 것 같아도 수없는 사구로 인해 오히려 시야에 방해를 받는다.
과거 고비사막 일대를 횡단하며 살았던 부족 출신인 덕에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아는 마랍지타였기에 추격이 붙었다는 것을 알자마자 고비사막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물론 벌써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도주를 추격해 오고 있는 몽골전사들도 자신만큼이나 사막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 문제이긴 했지만.
어쩌면 같은 부족 출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자신의 부족에서 조선으로 귀의한 부족민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살기 좋다는 땅을 찾아 무조건 남하해 철산까지 도달하는 여정을 떠난 것은 전대 부족장이었던 마랍지타의 아버지와 그를 믿는 일부 부족민들뿐이었으니까.
나머지 절반의 부족민들은 새부족장과 함께 자신들의 영역에 그대로 남았다. 가뭄이 심해 먹고 살길이 막막했지만 그들은 조상의 땅을 떠날 수 없다고 버텼다.
그런 이들 중에서 몽골군에 들어간 이들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사막을 걷고 또 걷는 마랍지타의 입술이 바짝 말라있었다. 물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추격이 생각보다 집요해서 길게 도느라 예상보다 사막을 헤매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준비한 물이 부족해졌던 것이다.
다행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밤이 되면 목마름이 조금 가실 테니까. 조금이라도 해가 빨리 지길 바라며 마랍지타가 분주히 걸음을 옮겼다.
6일. 극심한 탈수현상으로 침조차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도 마랍지타는 걷고 또 걸었다. 멈추면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것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쳤던 거야. 내가 왜 군대에 남아서 이 꼴을. 돌아가면, 돌아가면 반드시 전역 하고야 말겠어!’
다짐에 다짐을 더하며 걷는 마랍지타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부여잡기 위해 애를 썼지만 넘어가는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렇게 모래벌판에 쓰러진 마랍지타가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렇게 마랍지타가 쓰러진 곳으로 접근하는 일단의 인원이 있었다. 그들도 마랍지타와 같은 복장을 한 이들이다.
그렇다고 마랍지타와 같은 조선군도 아니었다. 그동안 끈질기게 뒤를 쫓던 몽골전사들이었다.
저만치 쓰러져 있는 마랍지타의 모습을 확인한 그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뛰기 시작했다. 그들로써도 지겹도록 길어지던 추격이 드디어 끝을 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몽골전사들이 달려 쓰러진 마랍지타에게 다가서던 순간.
탕!
사막을 울리는 총소리와 함께 달려가던 몽골전사 한명이 픽 쓰러졌다.
놀란 몽골 전사들이 뛰던 것을 멈추고 주변을 확인하는 가운데 다시금 총소리가 울렸다.
탕!
곧바로 또 한명의 몽골전사가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나동그라졌다. 그제야 자신들의 신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는 것을 자각한 몽골 전사들이 몸을 낮췄다.
자신들보다 높은 지대에서 쏘고 있는 것이 확실했지만 그런 사구는 지천이었다. 그 탓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몽골 전사들의 귀로 다시금 총성이 들려왔다.
탕!
그리고 뜨거운 사막바닥에 엎드려 있던 몽골 전사들 중 한명의 머리가 다시 피투성이가 된 채 움직임을 멈췄다.
몸을 낮춰도 죽어나간다면 엎드려 있어봐야 소용이 없었다. 살아 남아있는 몽골 전사들의 수는 셋. 그들이 눈을 맞추곤 이내 벌떡 일어서 뛰기 시작했다.
방향은 마랍지타가 쓰러져 있는 방향이었다.
몽골 전사들이 도주가 아니라 임무의 완수를 위해 목숨을 걸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