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3화. 수색대
신립의 명대로 김여물은 통신사 일행을 상륙병력을 내리고 다시 대마도로 떠나는 수군 수송 함대에 태워 보냈다.
통신사들은 대마도에서 다시 부산포로 가는 배를 타고 귀국길에 오를 것이었다.
요시하라 전투 후의 정비가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포로의 감시와 점령지의 관리를 위해 일부 점령군을 후쿠오카에 남겨둔 조선군은 다시금 남부를 향해 병력을 이동시켰다.
기타큐슈에 남아있던 병력과 후쿠오카에 추가 상륙을 통해 증원된 병력이 합류했다.
그로인해 신립의 지휘 하에 모인조선군의 수는 5만이었다.
개마 돌격기마 병단과 소총 병단 2개, 기마총병 병단 1개였다.
그렇게 남하하는 신립의 타격전단이 먼저 목표로 삼은 것은 구로다를 중심으로 하는 큐슈 동부 세력이었다.
이시기 여전히 이순신의 동태평양 함대 중 일부는 간몬 해협을 틀어막고 있었고, 또 일부는 이순신의 직접 지휘를 받으며 큐슈 남부 일대에서 계속 분탕질을 처대서 남부 지역 다이묘들의 시선을 휘어잡고 있었다.
그로인해 남부 지역의 다이묘들과 그들의 군대는 움직일 수 없었다.
*****
큐슈 동부 지역은 산지가 많았다.
구스(玖珠, 구주)까지 전진한 조선군은 강을 끼고 좁게 연결된 산길 앞에서 멈춰 섰다.
대군이 진군하기에 너무 좁은 산길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쪽이 강으로 막혀 있어서 매복 공격을 당할 경우 대규모 피해가 우려되는 지형이었다.
큐슈 동부의 왜군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북부의 왜군들처럼 회전으로 나와 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다.
애초에 정왜 전쟁 계획을 짤 때 수군 총사인 이순신이 큐슈 동부지역의 경우 상륙전이 더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펼쳤지만 정왜 사령부의 육군 장수들은 그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와지처럼 섬도 아니었고, 적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적지에 초기 상륙병력 1만으로 추가 상륙이 이루어질 때까지 사흘을 버텨야 한다는 제약 때문이었다.
더구나 기타큐슈 상륙전 때처럼 서태평양 함대나 하다못해 동태평양 함대가 잔류하며 계속 지원사격을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양 함대 모두 별도의 작전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상륙 초기를 제외하면 그것도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에 따라 육군 장수들은 익숙한 지상전을 통해 대규모 병력을 큐슈 동부로 투입해서 작전을 진행하길 원했고, 결국 그 것이 받아들여졌다.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었다.
“이래서 책상 결정이 위험한 거다. 현장을 와보지 않고서 내린 결정이란 거지. 차라리 상륙전이 나았겠어.”
신립의 투덜거림에 김여물이 말했다.
“이젠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죠. 일단은 돌파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긴 하겠지만······. 시간 좀 걸리겠으니까 하는 소리지.”
신립의 걱정에 김여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력이 딸리니 기계로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군이 곤혹스럽게 생겼습니다. 산악지대는 총병과 기마대 모두에게 어려운 공간이니까요.”
“그러니 문제라는 거다. 뭐 그렇다고 계속 이렇게 투덜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겠지. 일단 더듬어보자. 척후대라 내보내봐.”
신립의 지시에 김여물이 몇몇 장수들과 의논하더니 이내 기마대 수 십 기가 조선군 주둔지를 이탈해 산속 오솔길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렇게 투입되었던 정찰 기마대는 해가지고, 날이 바뀌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정찰대가 돌아오지 않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신립의 표정이 굳었다.
좁은 산길로 길게 이어진 길들 어딘가에 왜군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그냥 전진할 수는 없었다. 결국 기마대가 아닌 보군 중에서 고른 정찰대를 다시 들여보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정찰에만 매진하라는 명을 내려놓아 추가 손실을 막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보군으로 구성한 정찰대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으로 명확해 졌다.
산속에 놈들이 함정을 파고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기마총병 병단 애들 중에서 몸이 날래고 칼 잘 쓰는 이들로 추려봐.”
“남간도 애들을 쓰실 생각이시군요.”
“우리 애들 중에서 난전에 걔들보다 날랜 애들이 있어야지.”
“그렇긴 합니다만······. 개마 애들 중에도 제법 있습니다.”
“개마 애들은 겉멋 들어서 안 돼. 나도 기마 출신이지만 팔도출신 기마 애들은 전부 쓸데없는 자존심에 차있어서. 괜히 일 그르친다.”
그 말을 하는 신립을 김여물이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팔도 출신 기마대의 자존심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던 것이 신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신립에게 김여물이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기마총병 병단에서 차출하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해. 일개대만 뽑아보자.”
“백 명씩이나요?”
“몇 십 명 들여보냈다 또 못 돌아오면 괜히 애들만 희생시키는 꼴이 될 거다. 차라리 화끈하게 나가는 게 낫다.”
“화끈이라······. 알겠습니다. 제대로 놀 줄 아는 놈들로 뽑아보겠습니다.”
김여물의 말에 신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김여물이 참모들과 논의하여 선발한 인원은 정확히 1백 명이었다.
애초에 기마총병 병단의 기마대원들은 살수무장을 쓴다.
대신 자신들이 원하는 무장은 모두 갖춰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남간도 출신 기마대원들이 늘어선 앞으로 나선 신립이 말했다.
“전투를 치러 적을 격멸하라고 들여보내는 거 아니다. 정찰하라고 보내는 거야. 왜놈들이 저놈의 빌어먹을 산속에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보고 오라고. 알았냐?”
“예!”
“좋다. 살아서 와라. 정찰임무에서 네들 정도의 병력을 잃으면 주상 전하께서 날 죽이려 드실 거다. 나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신립의 너스레에 병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와하하하.
웃는 병사들을 일별한 신립이 돌아섰다.
“이따 보자.”
그 말이 신호가 되었는지 이내 지휘관들의 명이 떨어지고 1백의 수색대가 산속으로 들어갔다.
그런 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신립에게 김여물이 다가왔다.
“잘 하고 돌아 올 겁니다.”
“알아.”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신립의 눈 밑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 무지막지한 맹장이 긴장하는 것이다.
하긴 전투도 아니고 정찰에 1백이나 하는 병력을 들여보내는 실정이었으니까.
김여물도 제발 별일 없이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길 바랐다.
지역 부대, 그러니까 경기 소총 병단, 전라 기마총병 병단 등 본래의 주둔지가 있는 병력과 달리 타격 전단의 경우엔 부대 식별명에 지역 이름이 아니라 동물의 이름을 썼다.
범, 이리, 곰, 여우 등등.
그중 이번에 수색대로 뽑힌 이들은 승냥이 기마총병 병단에 속한 승냥이 제3 기마총병단 소속이었다.
지휘관은 승냥이 제32 기마총병대장인 아원이란 자였다.
본명은 아라부카, 요즘 남간도에서 불고 있는 유행을 좇아 조선식으로 한자음을 따라 고친 이름이 바로 아원이었다.
그의 지휘 하에 수색대가 산속 깊이 조심스럽게 이동해 들어가고 있었다.
“너무 늦는 거 아임까?”
뒤에서 따라오던 부장의 물음에 아원이 눈가를 찌푸렸다.
“조용히 하라. 왜놈 아새끼들 들으면 어케하려고 소리를 내니.”
마치 현대의 연변 사투리와 비슷한 발음이 최근 들어 조선말을 쓰는 이들이 늘어가는 남간도인들의 말투였다.
“죄송함다.”
“아새끼 조용히 하라는데도.”
비로소 입을 다문 부장에게서 시선을 뗀 아원이 수하 몇을 손짓했다. 그렇게 지목당한 이들이 재빨리 다가왔다.
“앞쪽이 기분이 영 좋지 않아. 살펴보라.”
아원의 명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인 병사들 셋이 조심스럽게 우거진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뭐임까?”
“모르니까 들여보냈지. 좀 기다리라.”
짜증이 묻어나는 아원의 음성에 부장이 목을 움츠리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 부장을 힐긋 일별한 아원이 병사들이 들어간 앞쪽 숲속을 노려봤다.
그러길 얼마.
바스락.
숲이 흔들리는 작은 소리에 아원을 비롯한 수색대 병사들의 손이 저마다 무기를 꽉 움켜쥐었다.
다행히 소리가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앞서 들어갔던 세 명의 남간도 병사들이었다.
“어찌 되었니?”
“왜놈들이 깔렸습니다.”
“얼마?”
“이백은 넘지 싶습니다.”
제법 깔끔한 조선말을 구사하는 병사의 발음이 부럽다는 생각을 접으며 아원이 부장을 돌아봤다.
“어찌 생각하니?”
말은 많아도 머리 하나는 비상한 부장이었기에 그에게 물은 것이다.
“단장이 확인만 하고 기냥 돌아오라고 그랬지 않슴까? 뭘 할 게 아니라 돌아가야 하지 않카슴까?”
“이백이라잖니. 겨우 왜놈 이백이 뭐하는지 알자고 우리가 예까지 기어들어왔단 말이가?”
“그럼 어짜시려구요?”
“싹다 잡아먹고 안쪽으로 더 기어들어가 봤음 좋갔구만.”
“애들 상할 거에요.”
“기럼 전쟁터에 놀러왔니. 일하다 보믄 죽기도 하고 그런 기지. 아니 그러니?”
아원의 물음에 병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물이 들어 많이 부드러워지긴 했어도 여전히 남간도출신들은 드셌다.
전투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흥분이 더 컸다는 소리다. 그런 병사들을 돌아본 부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렇다면야, 알가시요.”
부장까지 동의하자 아원이 작은 손도끼를 허리춤에서 꺼내들었다.
“조용히 시작하자. 소란스러우면 안쪽에 있는 사냥감 놀란다.”
저마다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비수나 소도, 꼬챙이 등 각자 편한 무기를 꺼내 쥐는 병사들을 확인한 아원이 앞장서 숲속으로 기어들어갔다.
그 뒤를 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소리 없이 따라 움직였다.
무로마치는 조선군 정찰대를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을 받고 250명의 수하들과 함께 산속에 은신해 있었다.
산 쪽으로는 절벽이라 길에서 잘 안 보이는데다 길 쪽에서 올라오기에도 어렵고, 길과 맞닿아 있는 강폭이 넓어지고 오히려 길은 좁아져서 그 길을 지나가는 적의 움직임은 둔해지는 요충지였다.
그곳에서만 벌써 오십이 넘는 조선군을 잡았다.
처음엔 기마대, 나중에 보군.
아무것도 모른 채 기어들어오는 조선군을 잡는 건 무로마치와 그 수하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눈을 떼지 마라, 조선군이 나타나면 활을 겨누고 기다려라. 명령을 내리기 전까진 절대로 쏘지 말아야 한다.”
“예.”
낮게 답하는 수하들을 확인한 무로마치의 시선이 다시 길가로 향했다.
산속으로 들어오는 조선군은 걱정하지 않았다.
수많은 해적들로 부터 전해진 정보에 따르면 조선 육군에서 가장 강력한 병과는 기마대다.
그들만 아니라면 조선군은 상대하기 어려운 이들이 아니라 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들어앉아있는 절벽 위는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어 기마대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그러니 들어온다면 단병을 쓰는 살수들일 터, 단병접전이라면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는 전투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무방비로 두었던 것은 아니다.
경계병을 세워 혹시라도 모를 숲속으로의 침투도 경계를 해두었다.
그러니 오로지 길만 주시하면 되었다.
그렇게 뚫어지게 절벽 아래의 길을 노려보던 무로마치의 귓가로 말이 들려왔다.
“니 뭐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말. 조선말이었다!
놀라서 돌아보는 무로마치의 눈으로 씨익 웃는 아원의 얼굴과 사납게 들이닥치는 손도끼가 한 번에 들어왔다.
그것이 무로마치가 기억하는 이세상의 마지막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