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2화. 항왜(降倭) 병단
정왜 전쟁이 2단계로 접어들면서 광해는 부산포의 정왜 사령부에 머물고 있었다.
그로인해 국사도 정왜 사령부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로인해 한성의 조당과 부산포의 광해를 연결하기 위해 하루에도 서너 차례씩 파발이 달렸다.
구르기 시작한 개혁의 수레바퀴에 올라탄 조선은 빠른 속도로 개화되고 발전하고 있었다.
그것을 조당의 대소신료들과 운영하는 일도 급하고 중요한 일이었지만 정왜 사령부에서 이루어지는 왜의 본토 상륙작전은 국운을 건 일이었다.
우선순위에서 광해가 앞에 둘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다.
당장 투입된 육군과 수군의 전력만도 십만에 필적했다. 자칫 삐끗이라도 하는 날엔 그들이 날아간다.
아직 일본엔 20만이 넘어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휘하 다이묘들의 병력이 남아있었다.
그 수에는 조선과 일본의 전쟁엔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그를 따르는 다이묘들의 병력은 계산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안심 할 수 없었다.
찬찬히 정왜 사령부가 공식적으로 제출한 작전 계획서와 수군 총사 이순신이 개인적으로 제출한 작전 계획서를 검토하던 광해가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대전내감이 된 알지를 시켜 두 사람을 불러왔다.
내금의장인 태평이 칼을 차고 뒤에 서 있는 가운데 왕 앞에 바짝 엎드린 이들은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였다.
대마도 전투를 비롯한 정왜 전쟁에서 포로로 붙잡힌 왜인들은 대부분 그대로 부산포의 포로수용소에 갇혀있었다.
그곳에서 불려나온 고니시와 가토가 광해의 앞에 꿇어 엎드려 있었다.
자신 앞에 바짝 엎드려 있는 두 사람을 바라보는 광해의 눈빛이 차가웠다.
조선의 강토와 백성을 처참하게 짓밟았던 실제역사를 생각하면 두 놈을 포함해 사로잡은 왜군 포로 모두를 조각조각 포를 떠 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선 벌어지지 않은 일이다. 행하지도 않은 일로 죄를 물을 수는 없었다.
깊은 숨을 들이쉬어 감정을 가라앉힌 광해가 말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불렀다.”
역관을 통한 광해의 물음에 고니시가 순순히 답했다.
“하문 하소서.”
“내가 너희 족속을 어찌 대하길 바라더냐?”
“······.”
물음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 고니시가 얼른 답을 하지 못하자 광해가 말을 이었다.
“내 장수들은 너희를 노비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걸 어찌 생각하느냐 묻는 것이다.”
“처결은 승자의 몫, 패자가 무어라 말씀드릴 것이 되지 못합니다.”
고니시의 답에 광해가 가토를 바라봤다.
“네 생각도 같으냐?”
“패자가 승자의 뜻에 좇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가토마저 같은 답이다.
전국시대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왜국을 외형상이나마 통일하면서 막을 내렸다고는 하나 근 120년을 전쟁과 전투로 이어진 삶을 살아온 이들이었다.
수시로 전쟁이 일어나는 전국시대에선 승자와 패자가 나오고, 누군가는 당연히 패자로 남는다.
누구도 되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 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에 하나다.
승자에 대한 철저한 승복.
그것이 왜인들 전체의 몸에 배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단순히 전국시대만이 아닐 수도 있다.
그 이전부터 그런 성향이 있었을 수도 있고, 지금의 것이 왜인들의 기질에 맞을 수도 있었다.
조선인들이라면 정복자에게 순응하기 보다는 반발을 택했을 테니까.
그렇다고 비난할 생각은 없다.
저들의 삶을 살아보지 않았으면서 그 삶을 재단하고 비난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더구나 정복자의 입장에선 오히려 환영할 일이기도 했고, 그러니 그저 저들의 습성을 인정하면 그만이었다.
상념을 털어내며 광해가 물었다.
“내가 너희를 쓴다면 따르겠느냐?”
“패장(敗將)을 쓰신다하면 죽음으로 충성을 다하겠나이다.”
“은혜를 베푸시면 충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두 사람의 답이 같다.
아무리 패장이라지만 배를 갈아탐이 손바닥 뒤집듯이 쉬웠다.
간혹 사무라이나 일본 무장들의 충성심을 말하는데 그건 지금 에도(江戸, 강호), 그러니까 도쿄에 웅크리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열게 되는 에도 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논리다.
지금은 상관을 배신하는 일도 잦고, 배를 갈아타는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심한 경우 두 명의 주인을 교묘하게 섬기는 경우도 일어난다.
실제역사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그 계승세력과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충돌할 때 지금 광해 앞에 엎어져있는 가토마저 배를 갈아탄다.
저자만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이 도쿠가와 쪽인 동군에 가담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이들의 태반이 그러했다.
그래서 왜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시대의 왜는 그러했다.
“가치를 증명해 보일 기회를 줄 것이다. 가서 기다려라.”
광해의 말에 고니시와 가토가 깊게 고개를 조아려보이고는 돌아갔다.
그 모습을 곁에서 모두 지켜보았던 이항복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전하, 정녕 저들을 쓰실 생각이시옵니까?”
“수군 총사가 묻더군. 왜인들을 누가 다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거 같으냐고. 그 말을 생각해 보았네.”
이순신은 개인적으로 제출한 작전 계획서에서 걱정하고 있었다.
왜인들을 조선인이 다스릴 때 나올 반발은 둘째 치고, 그들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몰이해는 또 다른 분란을 부르는 법이니까.
그로인한 소요를 누르자면 군력이 사용될 것이고, 상처는 더 깊게 남을 것이다.
이순신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그런 것들이 쌓이다보면 결국 커다란 반발로 돌아올 거라는 걸 광해는 알고 있었다.
역사가 증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걸 알면서도 그길로 갈 생각은 없었다.
더구나 잠시 장악했다 물러날 것도 아니고, 영구 점령을 하고자 한다면 시일을 두고 천천히, 완벽하게 하나로 품어야 했다.
단호해야 했지만 과격해서도 안 되었다.
조선군이 발을 디딘 땅의 왜인들은 점령지의 피정복민이 아니라 백성이 될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광해는 수많은 제국열강들이 식민지들에서 저지른 만행과는 다른, 조선만의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 첫발을 왜에서 떼어볼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광해의 생각을 모두가 이해하고 환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 측근이라 불리는 이항복부터가 그랬다.
“왜인을 왜인에게 맡기신다니요.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옵니다.”
“어째서 그러한가?”
“믿을 수 없는 것이 왜인들이옵니다. 저들에게 올곧이 왜인들을 맡기시면 반란은 눈에 보듯 뻔한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남간도를 보아도 그러한가?”
“여진······. 송구하옵니다.”
조선인과 여진인을 차별하지 말라는 왕명 때문이다. 그것에 움찔 하는 이항복에게 광해가 웃으며 말했다.
“경과 내 사이에 하지 못할 말이 어디에 있다고. 속 시원하게 말해보게. 경이 여진인을 차별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말이야.”
광해의 허락에 이항복이 조심스럽게 멈추었던 말을 이었다.
“여진인과 왜인은 다릅니다.”
“다르겠지. 하나 처음에 고가 여진인들에게 스스로 남간도의 관리를 선출하라 허락했을 때, 대소신료들은 같은 말을 했네. 믿을 수 없다. 반드시 반란이 일어날 것이다. 경도 같은 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하네만.”
왕이 된 광해의 곁에서 이항복이 모두 듣고, 자신도 한 이야기이니 아니라는 소리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이항복을 바라보며 광해가 말을 이었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진인들은, 남간도는 누구보다 잘 따르고 있네.”
사실이다. 광해를 신인으로 떠받들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간도의 여진인들은 짧은 시간 만에 조선의 그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충성스러운 조선의 백성들이 되어있었다.
그 탓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이항복에게 광해가 말했다.
“그러니 다른 때처럼 저들이 아니라 날 믿어보게.”
광해의 말에 이항복이 고개를 조아렸다.
“어찌 전하의 말씀을 믿지 않겠나이까? 소신 그저 걱정이 되어 드린 말씀이옵니다.”
“아네. 그러니 나도 주의를 기울이고 방심치 않겠네.”
“전하가 그러하신다면 소신은 전하를 믿을 것이옵니다.”
이항복의 말에 광해가 빙긋이 웃었다.
왕명으로 왜인 포로들에 대한 선별이 시작되었다.
고니시와 가토가 믿을 수 있다고 판단한 이들만으로 군대를 꾸렸다.
2만 가까운 포로들 중에서 그렇게 1만이 추려졌다.
고니시에게 5천, 가토에게 5천을 주고 조선군이 사용하는 훈련장에서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것을 위해 압수했던 갑주와 무장을 돌려주었다.
최초의 정규 병력을 갖춘 항왜(降倭) 병단의 출현이었다.
훈련장 인근에 배치된 조선군 소총 병단이 긴장어린 눈으로 그런 항왜 병단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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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하라 전투의 패배로 큐슈 북부의 다이묘들은 모두 참살 당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왜군 병사들도 1만이 전사하고, 2만 9천이 포로로 잡혔다. 포로 중에도 부상자가 5천이나 되었다.
왜군의 군열로 파고든 개마 돌격기마 병단이 거칠게 기마로 짓밟고 도주하는 왜병들에게 창과 칼을 무자비하게 휘두른 결과였다.
도주에 성공한 왜군은 없었다. 보군을 기마대가 쫓았으니 도주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에 반해 돌진해 들어갔던 개마 돌격기마 병단의 피해는 겨우 1백 남짓이었다.
개마 돌격기마 병단이 들이닥치자마자 왜군들 사이에서 아쿠마란 외침이 터져 나오며, 도주가 왜군 전체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그로인해 전투라기보다는 추격전에 가까웠다.
하긴 포격으로 혼란해진 왜군의 군열은 형편없이 깨어지고 흩어진 상태였으니까.
그런 왜군의 군열로 1만의 중무장 기마대가 돌진했으니.
조선군의 피해는 돌격 중에 말에서 떨어지거나 퇴각하면서 정신없이 쏜 왜군의 눈먼 조총에 재수 없이 맞은 이들이었다.
실질적인 전투 피해가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요시하라 전투의 승리로 후쿠오카를 비롯한 큐슈 북부가 조선군의 치하로 들어왔다.
그로인해 조선군의 상륙지가 기타큐슈에서 후쿠오카 인근의 가라쓰 포구로 바뀌었다.
왜군이 조선을 침공하기 위해 모여 있던 포구가 이제는 왜를 정벌하기 위한 조선군의 거점으로 사용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하긴 후쿠오카를 장악한 조선군 사령부가 차려진 곳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정복을 위해 지었다는 히젠나고야성이었으니 말해 무얼 할까.
그렇게 후쿠오카를 장악한 직후, 신립은 생각지 못한 이들의 방문을 받았다.
“고맙소. 내 장군의 덕에 이제야 살았습니다.”
조선에서 왜로 보내진 통신사들 중 정사 황윤길이었다.
그들이 후쿠오카에 발이 묶여 있다가 비로소 신변의 자유를 찾았던 것이다.
그런 황윤길에게 신립이 시큰둥하니 물었다.
“이리 전쟁이 날 일을 괜히 통신사를 보내야한다고 시간을 끌었으니······. 쯧. 가시면 조당의 대신들에게 이야기 좀 하시구려. 정신들 좀 차리자고 말이외다.”
황윤길을 포함한 통신사의 문관들은 분노한 표정이었지만 감히 대꾸를 하지 못했다.
전단장을 맡고 있는 신립의 지위는 3품이었다. 참판의 위와 같았으니 감히 대거리를 할 수 없었다.
과거처럼 무관들이 천시 받던 시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무안을 당한 통신사 일행이 나가자 신립이 김여물에게 명했다.
“수군에 협조 넣어서 저것들 대마도로 보내. 그러면 그쪽에서 알아서 귀국시키겠지.”
“예. 전단장님.”
두말없이 고개를 숙이는 김여물에게 신립이 물었다.
“왜 아무소리도 안 해? 괜한 말을 했다면서 한마디 할 줄 알았더니.”
“당연히 하실 말씀 하셨는데요. 뭐.”
김여물의 답에 피식 웃은 신립이 전투 결과와 이후 전투 계획서에 시선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