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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86화 (86/325)

제86화. 관매도 자치군

상대적으로 속도가 느린 조선 수군의 함선들이 미친 듯이 노를 저어 쫓았다.

그렇게 쫓기는 왜선들은 갈등했다.

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함대가 조선 수군인지, 아니면 계획대로 구키가 지휘하는 자신들의 함대가 나포한 조선의 함선인지 얼른 식별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도주할 방향도 없었다.

좌우는 섬이었고, 뒤는 조선 수군 순찰분함대가 사납게 쫓아오고 있었으니까.

결국 도박을 걸기로 한 5척의 왜선들이 앞에 넓게 벌려 있는 함대로 달려갔다.

점점 가까워져 깃발이 선명해지던 순간.

콰과과과쾅!

수십 발의 포탄이 왜선을 향해 쏘아졌다.

순찰분함대의 생각처럼 왜선들은 죽음의 덫으로 걸어들어간 셈이었다.

그날 그렇게 강화수군별영 본대로 달려가던 왜선 5척은 모조리 격침되었다.

이후, 다른 지역으로 쪼개 나아갔던 순찰분함대를 모두 합류시킨 강화수군별영 함대가 도주한 왜군을 찾아 천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

연락선을 통해 고금도 해전의 결과를 보고받은 정왜 사령부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안주 할 수는 없었다.

고금도 전투를 겪으며 강화수군별영의 함선수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침습해온 왜적의 일부는 도주했다는 보고는 여전히 적 함대의 기습 가능성을 열어놓은 셈이었다.

서해와 남해 일대의 해안 방어를 강화할 필요가 요구되었지만 마땅한 전개 전력이 없었다.

여전히 부산포 앞바다엔 경상 수영의 함대가, 동해엔 함경수영의 함대가 남아있었지만 그들을 동원하는 것은 위험했다.

왜군에 남아있는 함선의 수를 조선은 명확히 짐작해 내지 못하고 있었다.

부산포에 잡혀 있는 고니시와 가토를 비롯한 왜군 포로들이 내놓은 왜선의 수치는 이미 오래전에 초과한 상태다.

그러니 왜군은 전선을 새로 건조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건조된 왜선의 수를 조선은 알 수 없었다.

얼마 전에 투항한 사야가는 그러한 정보에 접근할 위치에 있지 못했다.

겨우 지방 무사가 전국전인 전력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사야가가 내놓은 정보대로면 왜군은 대량의 정예 병력을 두고서도 굳이 주장을 잃은 지역에서 비정예 병력을 차출했다.

그 점을 광해와 정왜 사령부 장수들은 의심했다.

정예 병력을 실은 별도의 함대가 양동작전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럴 경우 병력 구성상 사야가가 포함되어 있던 함대는 미끼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이 조선군 지휘부로 하여금 수군 동원의 운신 폭을 줄였다.

그럼에도 결국 정왜 사령부의 수군 장수들은 함경 수영의 함대를 동원하길 원했다.

가용 가능한 방법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심 끝에 그것을 광해가 거부했다.

장수들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으며 광해가 곧바로 사야가를 불러들였다.

내금위 별감들의 삼엄한 경비 하에 다시 광해 앞에 엎드린 사야가에게 광해가 물었다.

“내가 너를 중히 쓰려한다. 너를 써야 할 만큼 다급하고 중하니 목숨을 걸어야 할 일이다. 하겠느냐?”

어차피 목숨을 걸기로 하고 투항한 조선이었으니 사야가로써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하겠습니다,”

“수하들이 믿고 따르겠느냐?”

“이미 목숨을 걸고 투항한 일입니다. 조선에서 발을 붙이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할 것입니다.”

“좋다. 파발과 함께 가라. 가서 너희들의 가치를 증명해 보여라. 하면 내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너희를 백성으로 삼아 중히 쓸 것이다.”

“예.”

흥분된 목소리로 답한 사야가가 별감들과 함께 나가자 장수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광해는 그 모든 우려를 일거에 끊어냈다.

“고를 믿어라!”

왕의 한마디에 장수들의 입이 다물렸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수많은 일들을 실제로 성사시킨 왕이 한 말이었다.

그 말에 토를 달 정도로 미련한 장수는 정왜 사령부에 아무도 없었다.

결국 사야가와 그의 수하들이 제물포로 달려가는 파발과 함께 말을 달려갔다.

그와 동시에 장원과 한성에 주둔중인 기동군단으로도 왕의 파발이 달렸다.

아울러 이미 내려진 경계령에 더해 한층 해안가 경비를 강화하라는 추가 명령을 전라, 충청, 경기 일대의 육군에 전달했다.

그 비상령에 해당 지역의 기마총병 병단에서 대규모 정찰대가 해안 일대를 샅샅이 훑으며 감시했다.

왜군의 상륙에 대한 경계의 일환이었다.

파발을 받은 장원에서 대량의 야포와 폭발탄이 반출되어 제물포로 이동되었다.

마찬가지로 왕의 파발을 받은 제물포가 해군학당을 중심으로 무섭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서둘러라! 전하의 급보가 추상같으시다!”

직접 제물포 포구까지 나와 진두지휘하는 것은 여전히 해군학당을 맡고 있던 정걸이었다.

퇴임을 겨우 5일 앞둔 그가 나라의 위기에 82살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섰던 것이다.

정걸의 지휘 하에 교역을 위해 제물포에 머물고 있던 교역선들에서 화물이 내려지고, 각 교역선 상갑판 측면에 덧대어 있던 목판이 제거되었다.

이내 막혀있던 박혈(礟穴, 포구)이 드러났다.

그곳에 장원에서 급히 도착한 야포가 장착되기 시작했다.

조선 교역선 선원들은 의무적으로 1년에 2차례에 걸쳐 해군학당에서 일주일씩 훈련을 받는다.

군함으로써의 함선운영과 야포를 통한 해상 포격전을 중점적으로 교육되는 이 훈련은 상당히 실전적이다.

따라서 조선 교역선의 선원들은 능숙할 정도는 아니지만 야포를 다루는데 서툴지는 않았다.

광해의 파발이 도착했을 당시 제물포 포구에 머물고 있던 교역선의 수는 1백 척이었다.

그 배가 모두 무장되는 데 걸린 시간은 채 몇 시간이 되지 않았다.

뒤이어 들어오는 교역선도 같은 수순을 밟았다.

제물포 항구 전체가 마치 군항처럼 순식간에 변모하고 있었다.

비효율성에도 불구하고 판옥선으로 명과의 교역선을 삼았던 광해의 대비책이 최악의 상황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순간이었다.

급한 대로 동원 가능한 교역선을 모조리 무장시켜 정걸이 제물포를 떠난 것은 18일이었다.

이때 그의 휘하에 소속된 무장교역선단의 수는 2백 척이었다.

이 선단에는 왜군의 도선전투에 대항하기 위해 광해가 올려 보낸 사야가와 그 부하 2천명은 물론이고, 한성에 주둔 하고 있는 기동군단에서 남간도 출신 기마병들 중 난전에 능한 이들로 추려낸 5천의 병력을 추가로 태웠다.

모두 왕의 파발을 받고 진행 된 일이었다.

*****

왜군의 상륙에 대한 우려는 정걸에게도 큰 심리적 압박이었다. 그것이 어두운 밤에도 함대를 움직이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렇게 짙은 어둠을 가르고 나아가는 배의 선수에 서 있는 정걸에게 부장이 다가왔다.

“바람이 찹니다. 장군.”

“왜군의 상륙 위험에 내몰린 백성들의 두려움보다 찰까. 나는 괜찮다.”

“충청 수영의 함대가 그렇게 쉽게 당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거리를 잃었기 때문일 게다. 우리의 배는 포함. 거리를 잃으면 적선과 다를 것이 없으니, 수의 불리함을 이겨내지 못한 것이겠지.”

“하면 지금 우리 함대의 거리를 넓게 하신 것도...?”

“거리를 가져가야 한다. 적의 배는 우리 배보다 빠르고, 적병은 우리 병사들 보다 날쌔다. 적선의 접근을 최대한 막고, 적병의 도선을 허락해선 안 될 것이다.”

“전하가 보내신 항왜들에다 기동 군단의 병사들이 충원되어 있지 않습니까? 저는 해볼 만하다 생각되어집니다만······.”

부장이 거론한 이들을 정걸은 선두함선들과 후위를 맡은 함선들에 과밀하다 싶을 정도로 집중적으로 태웠다.

적선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무조건 달려들 것이다. 그것에 맞서 선두와 후위는 뚫리지 않아야 했다.

그들이 뚫리지 않는다면 포격으로 적을 충분히 격멸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와중에 선두와 후위가 겪어야 할 피해였다.

“해볼 만은 하겠지. 하나 그렇게 죽어가는 병사들의 목숨은 어찌하고. 그러니 거리를 확보하고 최대한 포격전으로 맞아야 한다. 그것이 전하의 뜻이고 내 생각이다.”

정걸의 말에 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20일 새벽.

어둠에도 불구하고 항진을 거듭해 내려오던 정걸의 무장 교역선단이 드디어 진도 앞바다에서 경계 임무 중이던 강화수군별영의 함대와 마주쳤다.

이억기는 남해에서 서해로 넘어가는 지역을 무장 교역선단에게 맡기고 남해 일대를 수색하기 위해 다시 기동했다.

*****

강화수군별영 본대와의 전투를 끝내고 도주한 구키의 함대는 큰 피해를 입었다.

전사로 인한 결원도 컸지만 부상자의 수가 너무 많았다. 그들을 치료할 약재나 면포가 부족할 지경이었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량까지 부족해졌다. 특히 식수로 사용되는 물의 부족이 심각했다.

그간은 조선 수군의 함선을 나포하며 함께 얻어진 것들로 감당해 왔는데 이젠 그도 어려웠다.

다른 방법으론 상륙해서 채우는 것이 있겠지만 이미 경험한 대로 조선 육군의 저항이 너무 격렬했다.

거기다 상륙작전을 벌일 만큼 충분한 시간을 조선 수군이 허락할리도 없었다.

향후의 향배를 두고 구키의 함대 내부에서 격렬한 토의가 벌어졌다.

아무것도 손에 넣은 것 없이 돌아갈 수 없다는 몇몇 해적단의 두령들과 지금 상태에서 무얼 할 수 있겠냐며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한다는 해적단의 두령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구키 요시타카가 나서 일단 조선의 작은 섬 하나라도 차지해 부족한 식수를 채운 후 다시 논의해 보자고 설득해 합의가 이루어졌다.

구키의 함대가 남해의 작은 섬, 관매도로 접근했다.

조선의 도서지역 방어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다.

제한된 병력으로 인해 군을 주둔시키지 못한 곳이 대부분이었고, 치안 병력으로 파견된 포청의 포졸도 극히 소수였다.

그로인해 도서지역 방어 미비가 문제가 되어 그를 보완하기 위한 방법들이 여러지로 구사되어 실행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민간의 자치군 구성해 도서의 방어를 맡기는 거이었다.

민간을 무장시킨다는 점에서 군부가 우려를 표명했지만 광해는 몇 곳을 골라 시험운영해 보고 효과가 있다면 확대하라 명을 내렸다.

그렇게 선택된 몇 곳의 섬들 중에 관매도가 들어있었다.

그로인해 관매도의 백성들은 치안을 위해 파견된 포졸을 중심으로 자치군을 조직하였다.

그들은 이미 조선 수군 순회 교육단에 의해 기초 훈련이 되어있었으며, 1년에 2번씩 순회 교육단이 섬을 방문하여 유지 훈련을 시키는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자치군의 무장은 전통적인 살수무장인 창칼, 그리고 활에 더해 장원에서 몸체를 부착해 만든 승자총통과 조선철포가 지급되어 있었다.

포탄은 그나마 조선철포용 화염포탄이 보급되어 있었다.

섬의 지리를 잘 아는 백성들과 조선 수군이 합의하여 포구와 바다가 제일 잘 보이는 몇 곳을 선정해 포진지를 짓고 조선철포를 배치해 두었다.

그것을 운영할 포수들의 훈련도 초기에 모두 마쳤다.

관매도엔 8문의 조선철포가 바다 곳곳을 겨누고 있었다. 특히 포구를 향해서는 3문의 조선철포가 배치되어 있었다.

아울러 섬의 가장 높은 산엔 망루를 지어두었다.

정왜 전쟁이 벌어진 이후로 그 망루엔 언제나 한명 이상의 자치군 견시수가 배치되어 있었다.

그것은 새벽에도 마찬가지였다.

달빛만 고요한 바다를 비추던 새벽, 망루위에서 애써 졸음을 쫓던 관매도 자치군 견시수의 눈에 묘한 것이 보였다.

달빛이 비춰지는 물결위로 그림자들이 드리운 것이다.

망원경이 보급되지 않았던 자치군인 탓에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을 바라보던 견시수가 화들짝 놀라 망루에 달린 비상종을 흔들었다.

댕댕댕댕댕.

요란한 종소리가 고요한 새벽의 관매도를 떨어 울렸다.

놀란 주민들이 나와 보는 가운데 자치군으로 지정된 사내들이 칼을 들고 뛰쳐나와 각자 정해진 지역으로 달렸다.

이장이 남은 섬주민들을 모아 대피 장소로 건설된 산속 지하대피소로 이끌었다.

그러는 가운데 성급한 자치군 포수에 의해 한문의 조선 철포가 발포되었다.

쾅!

포탄은 헛되이 바닷물에 빠져버렸지만 다가오던 구키의 함대는 움찔 놀랐다.

섬이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 탓에 많은 배들이 속도를 늦추고 주저하는 가운데 강경파에 속한 단장을 두고 있던 몇몇 해적단의 배들이 앞서 치고 나갔다.

자치군의 지휘는 섬에 배치된 포청의 포교나 포졸이 맡는다.

관매도도 마찬가지였다.

워낙 작은 섬이라 포교는 없었고, 모도(母島)로 여겨지는 진도 출신의 고참 포졸이 1명 배치되어 있었다.

그가 관매도 자치군의 포격을 지휘했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달려온 자치군들은 관매도의 어부였고, 농부였으며, 나이도 15살 어린 소년부터 60살 노인까지 뒤섞여 있었다.

워낙 작은 섬이라 가용한 사내들은 전부 자치군으로 삼아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화약을 쟁여 넣고, 포탄을 채우고 기다렸다.

왜선들 중 돌출한 몇 척이 사거리 내로 들어온 것을 확인한 포졸의 손이 내려지고, 이내 관매도의 조선철포가 제대로 불을 뿜었다.

콰과쾅!

과거 이순신의 시험사격에서 증명되었듯이 조선철포용 화염포탄의 파괴력은 야포용 화염포탄보다 크다.

들어있는 인화물질의 양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효과가 이번에도 톡톡히 발휘되었다.

8문의 포가 모조리 발사되었고, 그 중 3발이 명중되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3발이 맨 앞에 나서있던 단 한척에 몰렸다.

판옥전선도 5발로 격침시켰던 조선철포용 화염포탄이 그보다 작은 왜선에 3발이나 날아들었으니 결과는 뻔했다.

콰과쾅!

선체를 뚫고 들어간 화염포탄이 폭발하며 거센 불길이 왜선을 휘감았다.

놀란 왜병들이 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와 함께 관매도에서 하늘높이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잠시 후.

펑!

불꽃이다.

그렇다고 화려함에 기뻐하며 놀자고 터트린 게 아니다.

자치군에게 보급된 신호용 폭죽이다.

이제 저걸 본 조선 수군이 달려올 것이었다.

그걸 구키의 함대도 보았다.

의미도 알아차렸다.

자칫 실기하면 오도 가도 못하고 갇힌 채 조선 수군에게 사냥당할 수 있었다.

북을 울려 앞서 나간 해적선들을 불러들인 구키가 함대의 뱃머리를 남쪽으로 돌렸다.

더 이상은 조선에 남아있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놀란 탓인지 앞서 나가 있던 강경파 해적단의 두령들도 두말없이 돌아와 빠져나가는 본대에 합류했다.

그렇게 멀어져가는 왜군 함대의 뒤로 불타며 가라앉는 왜선이 관매도 앞에 남겨졌다.

그 모습에 관매도 자치군과 백성들이 함성을 질렀다.

하루 뒤, 부산포에서 전개된 탐망선들에 의해 보길도 앞을 지나, 탐라 동편의 먼 바다로 나가는 왜군 함대가 목격되었다.

방향과 속도 상, 그들은 그대로 철군하는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로써 조선군의 허를 비수처럼 찔러 들어왔던 왜군 해적함대의 공격을 조선이 격퇴한 것이었다.

진도 인근 해역까지 내려온 무장 교역 선단이 만일에 대비해 서해를 강화수군별영이 남해를 지켰다.

동해엔 함경 수영의 함대가, 부산포엔 여전히 경상 수영의 함대가 남아 왜의 본토에서 가해질지도 모를 반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

그렇게 구키의 해적함대가 조선의 바다에서 물러나던 시간, 조선에서 벌어지던 위기상황을 알지 못했던 이순신의 동태평양 함대는 사전 작전 계획대로 시모노세키(下関, 하관)와 기타큐슈(北九州, 북구주) 사이의 간몬해협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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