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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81화 (81/325)

제81화. 오해(誤解)에서 정해(情海)로

내의원을 나온 광해가 대전으로 향하는 길에 아침햇살 가득한 정원을 거쳤다.

여름 꽃들로 가득한 정원을 지나다 잠시 걸음을 멈췄다.

가끔 정원을 걸을 때마다 마음이 허전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좋은 곳을 홀로 걷는 다는 것이 외로웠으니까.

“흠······.”

속 좁게 이게 뭔가 싶었다.

대비 마마의 말씀대로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와 낯설고 두려울 사람을 상대로······.

광해의 걸음이 교태전으로 돌려졌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교태전 궁문을 넘지 못했다.

무장한 명군이 교태전의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대번에 임금의 행렬을 따르던 내금위 별감들이 칼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런 별감들을 손을 들어 뒤로 물린 광해가 황급히 달려 나온 교태전 큰 상궁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소, 송구하옵니다.”

“물러서라 이르라.”

“그, 그것이······. 주, 중전 마마께오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중궁전 상궁에게 광해가 물었다.

“지금 무어라 했느냐?”

“지, 지금은 아니 되신다고······.”

덜덜 떠는 상궁의 답에 광해가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중전이 고를 교태전으로 들이지 말라 하였단 소리더냐?”

“주, 죽여주시옵소서. 전하.”

“하.”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나왔다.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하더라도 이건······.

그래도 잘못은 자신이 먼저 했지 싶어 광해가 애써 화를 내리눌렀다.

더구나 궁인들의 눈이 많은 이른 아침부터 교태전에 발도 못들인 채 새신부와 실랑이를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다 내 잘못인 것을. 알았으니 이제라도 대비전엔 문안을 가라 이르라. 그것이 도리이고, 예이니.”

그 말을 남긴 광해가 발길을 돌렸다.

밤에 다시 찾아와 화를 풀어 주리라 생각하면서.

대전에서 조회를 거치고 국사를 돌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렸다.

“알지야.”

“예. 전하.”

“교태전으로 갈 것이다. 차비를 하라.”

“예, 전하.”

다행스러운 표정의 알지가 준비를 갖추고 얼마 후 광해가 대전을 나섰다.

그렇게 걷길 얼마, 광해가 물었다.

“참, 중전께선 대비전에 문안은 갔셨다 하더냐?”

“그, 그것이······.”

선뜻 답을 하지 못하는 알지의 모습에 광해가 걸음을 멈췄다.

“설마 가지 않은 것이냐?”

높아진 광해의 음성에 알지가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굽어 살피시옵소서, 전하.”

“답을 하라. 정녕 가지 않은 것이더냐?”

“전하······.”

알지의 반응 상 답은 뻔했다.

“감히!”

속 좁다 말해도 좋고, 기껏 왕이 되어 새신부와 기세 싸움이냐고 손가락질을 해도 좋았다.

적어도 웃어른에게 인사는 해야 했다.

그것이 최소한의 예였다.

그것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웃어른을, 나아가 조선을 업신여긴 것이었다.

황가의 여식이라는, 그 우월감을 꺾지 않으면 두고두고 문제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강녕전으로 갈 것이다.”

자신의 명에 당황하는 알지를 두고 광해가 자신의 침전인 강녕전으로 거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광해를 알지를 포함한 궁인들이 황급히 따랐다.

*****

며칠 후, 허준의 말대로 종두법의 성공이 공식적으로 보고되었다.

광해가 종두법의 전국적인 시행을 위해 약제화를 명했다.

그것의 연구를 위해 궐 외부에 별도의 시설을 짓고 전염병 연구소를 세워 초대 연구소장으로 어의 허준을 겸직하도록 했다.

최초의 개발 대상은 약제화 된 천연두 백신이었다. 조선에선 천연두 예방제라는 명칭을 쓰게 하였다.

일단 성공한 종두법을 한성에 시행하게 하였고, 그 모범을 보이기 위해 광해가 첫 대상으로 나섰다.

한성의 접종이 완료되면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었다.

같은 달, 한성의 도로 확장이 마무리되었다.

왕복 4차선의 도로들이 6차선으로 늘었다.

초기에 만든 도로 양옆으로 10보를 비워두었기에 아직 확장할 여유는 더 있었지만 추가확장을 위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없었다.

노비들을 활용할 때와는 그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도로를 놓는 과정에 참여한 모든 노동자들에게 임금이 지급되었다.

그것에도 고임금 정책에 따른 대량의 자금이 소요되었다.

왕실 자금을 관리하는 환관이 돈을 내주며 손을 떨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긴 요 몇 년간 들어오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더 컸으니까.

광해가 씀씀이를 줄이겠다는 약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돈에 관해선 명나라에서도 문제가 터졌다.

임진왜란의 참전이라는 부담이 사라졌음에도 명은 국방비로 상당한 돈을 지출했다.

여진과 몽골에 대한 방비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부에서 벌어지는 변란도 적지 않아 그것을 진압하는 것에도 많은 재정이 소모되었다.

그 와중에 자금성에선 화재까지 일어나 그것을 복구한다고 또 다량의 재정이 소모되었다.

은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막대한 지출을 유지해야 했던 만력제가 환관들을 달리 광세사(鑛税使)라 불리는 광감(鑛監)과 세감(稅監)으로 임명하여 전국 각지로 보내 세금 징수를 독촉했다.

본래는 광산과 상인들에 대해 세금을 징수하는 임무를 맡은 자들이었으나 은을 모으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백성들의 원성이 높았다.

하지만 황제인 만력제는 마치 귀를 닫아둔 것처럼 백성들의 원성에 반응하지 않았다.

명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명 조정과 황실을 이탈하고 있었다.

그렇게 분탕질을 치고서도 부족했던지 사신의 이름을 단 세감이 조선의 영토로 들어왔다.

명분은 성혼한 서안 공주의 안부를 묻고 그 결혼 생활을 살피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제물포를 통한 사신의 왕래 후 뱃길로 오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지던 일을 깨고, 이번의 사신은 과거처럼 육로로 들어왔다.

그렇게 조선 땅에 발을 딛자마자 사신은 본색을 드러냈다.

의주에서 부터 걸음을 옮기기 위해서는 은을 내놓으라고 강짜를 부렸던 것이다.

의주시장은 자신의 사재까지 털어 은과 인삼을 마련해 사신이 걸음을 옮기도록 했다.

하지만 사신은 평양 북쪽의 안주에서 또 걸음을 멈추고 다시 은과 인삼을 요구했다.

의주의 시장과 달리 안주의 시장은 곧바로 해당 소식을 왕에게 장계로 올렸다.

그 소식을 접한 광해는 예상과 달리 담담했다.

“내버려 두라 회신을 보내라.”

“전하!”

놀라는 이항복에게 광해가 말했다.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원하니 주지 않으면 그뿐이다. 제 놈이 임무를 망각하고 지체하면 그 죄야 제 놈이 지면되겠지.”

둘뿐인 침전이라면 모를까 대신들이 즐비한 대전에서 명국의 사신을 ‘제 놈’이라 표현했다는 것에 이항복이 당황과 걱정으로 물든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 그 지체의 이유가 우리 조선에 있다고 뒤집어씌우면 곤란을 겪을 것이옵니다.”

“그땐 그 일을 다시 해결하면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여 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챙겨 줄 필요 따위는 없다.”

조필을 통해 대량의 뒷돈이 명나라 조정에 풀어지고 있으니 다를 게 없질 않느냐고 물을 사람도 있겠지만 광해는 달리 받아들였다.

뒷돈이 왜 뒷돈일까,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은밀히 주고받기에 뒷돈이다.

하지만 지금 사신이 보이는 행태는 강탈이었다. 상대를 낮잡아 보고 이러해도 네들이 어쩔 것이냐는 마음에서 벌이는 짓거리였던 것이다.

그것이 이번 일을 광해가 용납하지 않게 만들고 있었다.

왜국만 정리되면 어떻게 하든 명과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하는 가운데 예조판서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상국을 섬김에 예가 있으니 그냥 둘 수는 없는 법이옵니다. 전하.”

“하면 어찌하자는 겐가?”

“영접사에게 은을 주어 보내 사신을 달래서······.”

“그 은을 누가 내고? 예조 판서가 사재를 털어 내려는가?”

광해의 물음에 화들짝 놀란 예조 판서의 입이 다물렸다.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바라본 광해가 말했다.

“사재를 털어 그리할 것이 아니면 나서지 말라.”

그 말로 대신들의 입을 막은 광해는 그에 대해선 더 이상 아무 지시도 없었다.

결국 그냥 두라는 왕명을 담은 교서가 안주로 달려갔다.

왕명을 받은 안주시장이 무시로 일관하자 명나라의 사신은 패악질을 부렸다.

식사로 들여보낸 음식을 모조리 뒤엎지를 않나, 안주 시장에게 상국의 칙사를 업신여긴다며 소리 소리를 질러댔다.

왕은 상대하지 말라지만 안주 시장으로써는 그렇게 방치해 둘 수만도 없었기에 그 곤욕을 고스란히 겪어야만 했다.

그렇게 사흘정도가 지났을 때, 안주시장은 생각지 못한 손님을 맞았다.

명군 장수가 말을 타고 달려온 것이다.

한데 방향이 북쪽이 아니라 남쪽 이었다. 더구나 그 명군 장수와 함께 달려온 이는 중궁전의 호위를 맡고 있는 내금위 별감이었다.

사신이 머무는 전각으로 들어가는 명군 장수를 가리키며 안주 시장이 물었다.

“누구요?”

안주시장의 물음에 명군 장수와 함께 온 내금위 별감이 답했다.

“두사충이라고 중전 마마의 호위 책임자입니다.”

“높은 자요?”

“명에서의 지위는 잘 모르겠습니다.”

별관의 답이 끝나기 무섭게 방안으로 들어간 두사충이 똥 씹은 표정의 사신과 함께 나왔다.

사신은 그길로 안주를 떠났다.

마치 죄인이 압송되는 모양새로 사신은 평양도 그냥 지나쳐 한성으로 달렸다.

사신이 궐로 들어왔다는 보고를 광해는 중궁전의 별감을 통해 받았다.

더구나 그렇게 궐로 들어선 사신은 왕이 아니라 중전이 머무는 교태전으로 직행했단다.

중전은 한 달이 다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대비전에 문안을 가지 않았다.

밉다, 밉다 했더니 이젠 국사에 속하는 사신과의 일까지 마음대로 처리하는가 싶어 광해가 분노했다.

화가 치민 광해가 거친 걸음으로 교태전으로 향했다.

한데 막 교태전의 문턱을 넘던 광해의 귀로 날카롭게 올라간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중국말이다.

중궁전에서 저리 높은 음성으로 중국말을 할 사람은 한명 밖에 없었다.

광해가 알지를 바라봤다.

과거 잠시 명나라에 의탁했을 때 알지가 한어를 할 줄 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광해의 의도를 알아차린 알지가 재빨리 다가와 들리는 말을 통역했다.

“감히, 네가 황제 폐하의 용안에 먹칠을 하고, 내 명예에도 누를 끼쳤으니 그 죄로 목을 친다한들 과하다 할까. 엎드려 빌고, 눈물로 사죄하여 죄를 청하라.”

그 뒤로 정말로 울먹이는 사내의 음성이 이어져 나왔다.

누구의 음성인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중국말인데다 중전의 높은 음성과 달리 작아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알지도 그러했던지 고개를 숙여 광해에게 알아듣지 못함을 아뢰었다.

한데 곧바로 중전의 것으로 보이는 높은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을 다시금 알지가 통역해 올렸다.

“내게 말고 조선의 국왕전하께 가서 고하라. 공손하게 엎드려 그 죄상을 낱낱이 고하여야 할 것이다. 감히 황상을 팔아 고개를 들고, 위세를 세우면 내 친히 황제 폐하께 네놈의 죄를 낱낱이 적어 올려 반드시 목을 칠 것이니라.”

알지의 통역에 광해의 눈이 커졌다.

그런 그의 시선에 교태전의 문이 열리며 사신으로 보이는 이가 뒷걸음으로 나서는 것이 보였다.

조선에 온 사신이 단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행동이었다.

한데 그런 사신의 발을 잡는 음성이 안으로부터 새어나왔다.

중전의 음성이었다.

그것을 알지가 재빨리 통역해 올렸다.

“내가 이 땅에 숨 쉬고 있는 이상 다시 오는 사신들은 예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 감히 황실의 공주가 여기 있음에도 오랑캐의 속국을 대하듯 다가오지 말라. 두 번은 참지 않을 것이다.”

깊게 허리를 숙여 보이는 사신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광해가 서둘러 교태전을 나섰다.

대전으로 돌아온 광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신의 방문을 받았다.

사신은 대전에 들어서자마자 정말로 광해의 발치에 엎드려 죄를 고했다.

대신들이 경악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가운데 광해는 왕좌에 앉은 채 사신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무어라 말해야 할까? 완전한 하대도 상관없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광해가 말했다.

“다시는 그리 행하지 말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똑똑한 조선말이었다. 잠시 놀란 눈으로 사신을 바라보던 광해가 물었다.

“조선 사람이더냐?”

“예, 예······.”

역사적으로 명나라 황실엔 조선인 환관이 적지 않았다.

공물로 받치는 이들 중에 환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 나라가 힘이 없어 생긴 피해자와 같았다.

그 억울함을 풀려는 듯 사신으로 오게 된 조선인 출신 환관들은 지독하게 굴었다.

아마 이번 사신도 그러했던 모양이었다.

“널 지키지 못했음을 이 나라 조선의 왕으로써 사과하마. 다 힘이 없던 나라의, 왕실의 죄이니라. 서운타 하여 조국을 험하게 대하지 말라. 내 부탁하마.”

이번엔 사신이 놀랐던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엎드려 있었다.

그런 사신의 얼굴 밑으로 눈물이 떨어졌다. 적어도 분해서 흘리는 눈물은 아니듯 보였다.

이후 정상적인 사신과 마찬가지로 광해는 황제의 칙서를 대해 절을 올리고 그것을 받았다.

다른 때는 사신들이 그 칙서를 들고 왕의 절을 받았으나 이번엔 왕좌에 칙서를 올려두고 사신은 조심히 물러섰다.

그 덕에 명나라 사신에게 조선의 국왕이 절을 올리는 참경은 벌어지지 않았다.

칙서는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

그저 서안 공주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을 뿐이었다.

사신을 접대하라 명해 모화관으로 돌려보낸 후 광해가 생각에 잠겼다.

날이 저문 밤, 광해가 교태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엔 광해의 앞을 가로막은 명군은 없었다.

안으로 걸음을 옮기는 광해의 모습에 교태전의 궁녀들이 놀라 잠시 소란을 떨었다.

하긴 국혼을 올린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교태전엔 발길을 하지 않았던 광해가 찾아왔으니.

궁녀들이 열어주는 문을 통해 전각 안으로 들어서니 주안상을 두고 앉아 있는 중전이 보였다.

그런데······.

국혼 때 보았던 붉은 면사를 여전히 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광해가 중전의 맞은편에 앉았다.

주안상은 손을 대지 않았는지 모두가 가지런했다.

광해가 오기 전에 들인 것이 분명하거늘 손 하나 대지 않은 듯 보이는 그 모습에 궁금증이 들었다.

“먹지도 않을 것을 왜 들인 거지?”

그저 궁금증에 흘러나온 말이었다. 상대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니 답을 원한 것도 아닌 그저 그냥 혼잣말 같은.

한데······.

“합환주는 새신랑이 없이는 들지 않는 것이 조선의 법도라 하여······.”

“조, 조선말을 할 줄 하시오?”

놀라서 말까지 더듬은 광해에게 면사속의 중전이 답했다.

“조선의 왕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으로 결정 난 것이 벌써 수년 전이옵니다. 어찌 배우지 않겠사옵니까.”

중국 특유의 발음이 섞여있었지만 굉장히 유창한 조선말이었다.

놀람 속에 광해가 다시 물었다.

“합환주라면······?”

“첫날밤 새신랑과 새신부가 함께 마셔야 백년해로하여 화목할 수 있다하니······.”

“하면 그날 이후 계속 들였다는 소리요?”

“어느 날 중궁전으로 드실지 알 수 없어서······.”

“이리 기다리면서 왜 일전엔 내 앞을 막은 거요?”

“낯엔 합방례를 치를 수 없으니······. 합방례를 거치지 않고 부부가 낯에 얼굴을 맞대는 것은 액운을 불러온다 하오니······.”

도대체 어디서 무슨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이래서는 완전히 순진한 새신부에게 소박을 놓은 못된 새신랑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래서였다 괜히 트집을 잡듯 말한 것이.

“한데 왜 면사는 쓰고 있는 것이오?”

“새신랑이 벗겨주기 전에 벗으면 액화가 들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여······.”

조선엔 없는 이야기다. 그러니 중국의 풍습이리라.

나름 새신부가 지켜야하는 조선과 중국의 풍습을 다 지키고자 했음이다.

“설마 그럼 단 한 번도 벗은 적이 없단 말이오?”

“소세할 때 외에는······. 액운을 막자면 그러하여야 해서······.”

“하면 대비전에 문안을 가지 않았던 것도······?”

“면사를 벗기 전에는 방을 나서지 못하는 것이 또한 법도이기에······.”

“설마 그날 이후 방을 나서지 않았단 소리요?”

놀라는 광해의 물음에 면사속의 중전이 답했다.

“아직 면사를 벗지 못하였으니······.”

“하.”

완벽하게 나쁜 새신랑 맞았다.

쓰게 웃은 광해가 조심스레 다가앉아 물었다.

“어찌 벗기면 되는 것이오?”

“우선 합환주부터······.”

“아!”

놀라 물러앉은 광해가 다시금 쓰게 웃었다.

그런 그에게 중전이 술병을 들었다.

그것에 광해가 서둘러 술잔을 잡자 중전이 그 잔에 술을 따랐다.

광해가 술병을 받아 중전의 술잔을 채웠다.

그것을 서로 나누어 마신 후, 광해가 중전의 말에 따라 면사를 걷어냈다.

“흠······.”

침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사신으로 명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공주를 본 일이 있던 조선의 관리들은 분명 그녀가 미인은 아니라고 했다.

물론 박색이라 하여 박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해, 그래 오해였다.

풍습과 생각이 달라 벌어진 오해. 그것을 풀고, 비로소 확인한 중전의 얼굴은······.

‘도대체 눈을 어디다 달고 다니기에.’

자신에게 공주의 외모를 설명한 관리들의 미적 감감을 심각하게 의심해야 했다.

하지만 그건 광해의 착각이다.

이 시절 미녀는 통통하게 살이 올라 후덕한 상이니까.

지금의 중전처럼 갸름해서는 미녀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이다.

광해가 서둘렀다.

불이 꺼지고.

······.

갑자기 다시 불이 켜졌다.

“다 물러가라!”

미친 것도 아니고, 불이 꺼지기 무섭게 사방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해 온 것이다.

그 갑작스런 상황에 얼마나 놀랐던지.

교태전의 방을 빙 둘러싸고 이렇게 많은 궁녀들이 들어앉아 있는 줄 광해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알았으면 진즉에 쫓아냈을 것이니까.

“전하. 왕실의 법도이옵니다.”

“천하의 어떤 법도가 왕명 위에 있을까. 감히 어명에 반하려는가!”

광해의 준엄한 명에 당황한 궁녀들이 이내 그 명을 좇았다.

“명을 받잡나이다. 전하.”

궁녀들이 물러갔는지 광해가 일일이 주변을 둘러싼 여덟 개의 문을 확인 한 후에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 광해를 보며 중전이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어깨가 반쯤 드러난 채 그러고 있는 중전을 바라보는 광해의 입이 반쯤 벌려졌다.

‘와······.’

다시 불이 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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