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2화. 해적함대
왕이 교태전에 붙어산다는 소리가 궐에 돌기 시작하던 날.
드디어 거제 건선단지에서 50척의 조선무역선이 완성되었다.
그 선박들에 대한 인수 항해 시험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배의 이름은 조선무역선이었지만 최초 인수자는 조선 수군이었다.
*****
이시기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난관의 타개에 골몰했다.
휘하 다이묘들의 분위기가 어떤 때보다 나빠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과의 전쟁은 소강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일본에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수군을 활용한 다수의 진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대량의 지출을 감수하고 외국에서 수입하려던 범선과 화포는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채 타국의 머나먼 땅에서 잿더미가 되었다.
조선 수군의 강성함은 명확해졌다.
바다를 건널 수 없다면 조선과의 전쟁은 불가했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에서 조선에 대한 정벌전쟁은 어긋난 것이나 진배없었다.
당연히 군을 흩고, 정벌 중단을 선언해야 했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조선과의 전쟁은 수많은 반대를 누르고 자신의 독단에 의해 추진 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실패했다면 당연히 그에 대한 책임소재가 따른다.
감히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말을 입에 담을 이들은 없겠지만 뒤에서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불만으로 이탈한 다이묘들이 에도에 웅크리고 있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붙어버릴 수도 있었다.
그리되면 자신의 실각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전쟁을 중단하더라도 명분을 쥐어 다이묘들의 이탈을 막아야 했다.
“명분, 명분······.”
가만히 되뇌어보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수군의 대부분이 대마도로 나와 있다는 보고를 떠올렸다.
그런 상태에서 조선 본토를 칠 수만 있다면, 다만 일부라도 조선 수군을 깨고, 일본 육군이 조선 땅을 밟을 수만 있다면.
설사 그 이후의 일이 실패한다 해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분을 얻는다.
자신의 계획은 완벽했다는 명분.
단지 그것을 실행하는 다이묘들과 장수들의 무능이 전쟁의 실패를 가져왔다는 명분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던 조선 수군에 일정한 타격을 입히고, 육군을 조선 땅으로 올려 보내야 했다.
그것을 가능케 하려면 조선의 바다를 제 손바닥처럼 잘 아는 수군 장수가 필요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이름은 도도 다카토라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휘하의 수군장수들 중에서는 최고 기량을 가졌다고 정평이 난 자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지난 날 독단적으로 출병한 부산포 해전 이후, 실종 상태다.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다음에 떠오른 것은 고니시였다.
우습게도 조선 정복전에 선봉을 섰던 그도 부산포에서 사라진 채 어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러고 나서 떠오른 이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쩌면 이번 작전엔 도도나 고니시보다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구키 요시타카(九鬼嘉隆, 구귀가륭)를 불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음성이 히젠나고야성을 떨어 울렸다.
구키 요시타카.
시마(志摩, 지마) 지역의 다이묘다.
출신은 구마노(熊野, 웅야) 해적이지만 일찍이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직전신장) 막하에서 수군 장수로 지내며 다수의 공을 세워 시마의 다이묘가 된 자였다.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부름을 받고 히젠나고야성으로 들어왔다.
“구키.”
“예. 태합전하.”
“더 넓은 영지를 원하지 않나?”
“태합전하의 은덕을 기다릴 뿐이옵니다.”
“기다리기만 해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게더냐.”
“제가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내 비수가 되어 조선으로 가라. 그렇다면 네가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네 가문은 더 넓은 땅을 가지게 될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말에 일순간 구키 요시타카는 답을 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자신에게 죽음을 불사한 임무를 맡길 것이란 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런 구키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물었다.
“죽음이 두려운 것인가?”
“아, 아닙니다. 태합전하.”
“하면?”
“며, 명을 주십시오. 죽음으로 따를 것이옵니다.”
달리 방법도 없었다. 자신의 명을 거부한 이를 그냥 두지 않는 것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치 방식이었으니까.
그러니 방법이 없다면 최선을 다해 얻을 것이라도 얻는 것이 나았다.
그런 구키에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이 길게 이어졌다.
히젠나고야성의 만남이 있던 날로부터 얼마 후, 구키 요시타카의 함대가 왜의 무역항인 나가사키(長崎, 장기)인근으로 모여들었다.
정확히는 나가사키의 북쪽에 위치한 사세보(佐世保, 좌세보)라는 곳이다.
서쪽 먼 바다로 나갈 때 이용하는 뱃길에 가까우면서도 무역항인 나가사키보다 북쪽에 있어 외국 상인들의 눈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
모여든 함대는 함선도 제각각, 깃발도 제각각이었다.
일본 각지에서 조선으로 해적질을 다녔던 모든 해적출신들을 모아들여 구성한 함대였기 때문이다.
그나마 이정도의 배가 남아있었던 것도 각지의 해적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내린 해적금지령으로 발이 묶여있었던 까닭이다.
그로인해 날이 다르게 세력이 위축되어가던 해적들이 한탕을 제안한 옛 동료, 구키 요시타카의 부름에 달려온 것이다.
그들은 구키만큼이나 조선의 앞바다와 조선군과의 전투에 익숙한 이들이었다.
구키 요시타카는 그렇게 해적 출신들을 사세보로 모으는 동시에 나가사키에서 외인 상인들과 접촉했다.
화포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요시타카가 구상중인 조선 수군과의 전투는 무조건 적선을 나포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했다.
그간의 해전들을 참고하면 조선 수군과의 정면대결은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다.
적은 수의 조선 수군함대를 끌어내서 어떻게 하든 그들의 전선을 나포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조선의 화포와 전선으로 무장하고서야 조선 수군과의 제대로 된 전투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휘하의 병력이 화포의 발사에 익숙해야 했다.
조선의 것이 아닐지라도 화포의 발사에 익숙해지면 적응이 빠를 테니까.
그러기 위해 구라파의 화포가 필요했다.
일본이 만들어내는 석화시는 조선의 화포와는 발사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구라파 상인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수를 구할 수도 없겠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훈련을 위해 2문, 2문만 있으면 되었다.
그것을 위해 구키는 많은 외인 상인들을 만났고, 종래엔 막대한 양의 은을 주고 화포 2문을 구할 수 있었다.
그것도 조선과 전쟁에 쓸 거라는 소리에 포도아의 한 다혈질 선장이 자신의 배에서 사용하는 화포를 뜯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두 동생이 마카오에서 벌어진 조선군과의 전투에서 죽었다면서, 복수를 해달라는 말도 남겼다.
그 덕으로 마련한 2문의 화포를 가지고 사세보로 돌아온 구키는 모여든 해적들을 훈련시키기 시작했다.
그러기 위해 들어가는 화약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청해 지원받았다.
구키로부터 그의 계획을 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화약만이 아니라 몇 가지를 더 지원했다.
우선 자신 휘하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던 왜군의 함선 1백 척을 보내 합류시켰다. 그들은 대마도에서 조선 수군 장갑귀선에 대한 침투를 성공시킨 사례를 가지고 맹렬히 훈련까지 거친 이들이었다.
그로인해 구키의 함대는 3백 척으로 늘어났다.
거기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상륙전을 전개할 일단의 육군 병력도 추가로 지원했다.
1만에 달하는 육군 병력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력5천에 고니시와 가토, 그리고 도도가 남기고간 소수의 병력들을 추려 만든 것이었다.
<사라진 너희 다이묘의 명예를 찾아오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구한 명제에 다이묘가 실종 상태였던 그 세 영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병력을 내어 합류해야했다.
그로인해 고니시와 가토, 도도의 영지엔 정말 병사라고는 한 톨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 병력을 내기 위해 고니시와 도도의 영지는 병사로 쓸 수 없을 정도의 사내들까지 끌어 모아야 했다.
그나마 가토의 영지인 구마모토의 병력이 나름 실전도 겪은 이들이라 다른 영지에 비해 나았다.
하지만 그들조차 수비대장인 사야가(沙也可)와 함께 떠나면서 구마모토도 다른 두 영지처럼 병사들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배에 오르며 사야가와 그 수하들은 참담함을 금할 수 없었다.
도무지 무엇을 위해 일으킨 전쟁인지 알 수가 없었다.
구마모토 사람들은 자신들의 다이묘를 포함해 모든 병사들이 조선 수군과의 전투에서 죽었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알려진 지난 수전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들을 그저 ‘실종 상태’라고 주장하는 것은 온 일본에서 오로지 도요토미 히데요시 뿐이었다.
애초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요구한 대규모 병력을 맞추기 위해 무리를 한 까닭에 병사를 내지 않은 집이 단 한집도 없었다.
그러니 온 영지가 초상집인 셈이었다. 그럼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눈치를 보느라 초상을 치르지 못했다.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 수군과 부딪치면 모두가 죽는다고.
그럼에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계속해서 병사들을 부려 조선 수군과의 전투를 지속했다.
그 일을 사람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수군이란 바다 괴물에게 백성들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사야가와 함께 배에 오른 병사들 모두가 도요토미가 조선 수군에 던져주는 먹잇감이 되어 죽으러 간다고 믿고 있었다.
욱일승천의 기세, 그런 건 배안에 없었다. 그저 암울한 죽음의 그림자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심지어 다른 배에 오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병사들마저 죽음을 직감한 눈들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원한 병력 1만이 모두 도착해 배에 올랐을 땐 구키의 함대도 화포에 대한 적응 훈련을 어느 정도 끝낸 상태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출병허락이 떨어진 지 사흘 후, 구키의 해적함대 3백 척이 사세보를 떠났다.
9월로 접어들며 습기가 한층 사라진 바람이 그렇게 떠나는 구키 함대를 밀어 보냈다.
멀어지는 일본 땅을 바라보며 구키의 함대에 타고 있던 육군들은 다시는 일본 땅을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
홍콩으로 향하는 뱃길에서 선수를 돌린 구키의 함대가 오로지 별과 과거의 경험만으로 조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방향은 탐라와 대마도 사이의 길을 지나 조선으로 가는 것이었다.
함대의 후미에 걸쳐 따라가는 배에 타고 있던 사야가에게 수하들이 찾아왔다.
“이대로 가실 겁니까?”
“가지 않으면?”
사야가의 물음에 자신들끼리 눈을 맞춘 수하들 중 한명이 나섰다.
“돌아가죠.”
“어디로? 영지로 돌아가면 주군을 찾지 않고 돌아왔다는 불명예는 둘째 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칼날이 기다릴 거다.”
“산속으로 숨어들면······.”
“짐승처럼 살잔 말인가? 그게 죽는 것과 뭐가 다른가?”
사야가의 물음에 수하들은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런 수하들에게 사야가가 물었다.
“왜 이런 생각을 한 건가?”
“병사들의 동요가 큽니다. 저런 이들을 전투에 내보내면······. 죽기 쉬울 겁니다.”
“단지 병사들을 위해서란 말인가?”
“저희들도······. 도요토미에게 패해 주군을 잃고, 전봉(轉封)해온 가토의 수하가 되긴 하였지만 우린 구마모토(熊本, 웅본-글쓴이 주(注): 본래 사야가의 출신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큐슈의 구마모토 출신이라는 설정은 당시 가토가 구마모토의 다이묘였다는 것에서 출발한 순전히 글쓴이의 창작에 의한 것임을 밝혀둡니다.)의 아들들 입니다. 이렇게 가치 없이 죽고 싶지 않습니다.”
“가치라······.”
그 말만을 되뇐 후 한동안 말이 없던 사야가가 무엇인가를 결심한 눈빛으로 수하들에게 물었다.
“조선은 어떠하냐?”
“예?”
“조선말이다. 조선으로 가면 어떻겠느냔 말이다.”
“그들이 받아줄까요?”
“이 함대의 정보를 가지고 가면 죽이진 않겠지. 일본으로 돌아가면 그 곳이 어디든 살아남지 못한다. 산속으로 숨어들어가 짐승처럼 사느니 조선에 목을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만.”
사야가의 말에 한참을 골몰하던 수하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수하들의 동의가 서자 사야가가 차갑게 빛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럼 먼저 배부터 장악······.”
“같이 갑시다.”
갑작스런 음성에 시선을 돌리니 구석에서 자신들이 타고 있던 배의 선장이 모습을 보였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던 거요?”
“그쪽들이 들어들 오기 전부터 이곳에서 잠을 자고 있었소.”
선장의 답에 잠시 생각하던 사야가가 물었다.
“그쪽은 왜 마음이 바뀐 거요?”
“우리 단장이 미쳐서 어쩔 수 없이 따라 왔을 뿐, 죽음만이 기다리는 조선 수군과의 전투에 나설 마음은 없소.”
“수하들은 어떨 거 같소?”
“나와 같은 생각일 거요. 내배의 수하들만이 아니라 몇몇 배의 선장들도 같은 생각이오. 솔직히 여기로 오면서 중간에 빠지자는 이야기들이 있었소만 당신들이 타는 바람에 그것도 못하고 있는 중이었으니까.”
선장의 말에 수하들과 눈을 맞춘 사야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하면 함께 살아봅시다.”
사야가의 말에 선장의 고개가 힘차게 끄덕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