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75화 (75/325)

제75화. 조선 대양함대(大洋艦隊)

광해3년 10월 중순. 홍콩 연안.

대양함대의 대장선 뱃머리에 선 이순신의 전포가 거센 바람에 나부꼈다.

뱃머리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 위를 아슬아슬하게 날아오른 갈매기가 위로 날아올랐다.

갈매기를 따라 들어 올린 이순신의 시선에 바람을 가득 안고 부푼 하얀 돛이 들어왔다.

그 돛 꼭대기에 삼색 태극문양의 조선 수군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그것에 시선을 주고 있던 이순신에게 부장, 정경달이 다가왔다.

“해도와 백분의에 따르면 잠시 후, 홍콩입니다. 총사.”

“속도 줄이고, 연안에 도착하면 연락선을 내려 철산 상단 홍콩지점과 연결하여 정보를 얻어라.”

“예, 총사.”

복명한 부장의 고함소리가 상갑판 위를 떨어 울렸다.

그 소리에 놀란 듯 배에서 떠나가는 갈매기에게서 시선을 거둔 이순신이 돌아섰다.

천천히 속도를 줄여가는 수십 척의 전열함이 그의 시선에 들어왔다. 조선이 가진 최신의 기술들을 모조리 쏟아 부어 만든 함대였다.

이 함대를 자신의 손에 쥐어주며 왕이 했던 말을 이순신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조선의 미래를 장군에게 맡기오. 그러니 그 미래도, 장군도 무사히 돌아오시오.>

전쟁에 나가는 장수에게 무사히 돌아오라는 명령만큼 무겁고 어려운 것이 없었다.

그것을 지키기 위해 적함대와의 결전을 벌일 전술을 찾아 몇 날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한 것들이 과연 제대로 먹힐지 장담할 수 없었다. 조선에게도, 이순신에게도 범선 전투는 처음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상념에 잠겨있는 사이 전열함들이 완전히 멈추고 이내 대장선에서 연락선이 내려졌다.

비로소 상념을 떨쳐낸 이순신의 시야로 바다에 내려진 연락선이 돛을 펴고 달리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연락선이 달려가는 쪽에 어스름하게 항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홍콩이었다.

연락선은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철산 상단 홍콩 지점에서 제공한 정보는 구체적이고, 간결했다.

<마카오 근해. 왜인 탑승 포도아 범선단 현재 훈련 중.>

우습지만 그 정보를 철산 상단에 제공한 이는 명나라에서 영길리 대사직을 수행 중이던 벤투 자작이었다.

철산 상단이나 조선 수군의 입장에서는 그 정보가 어디서 나왔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곳에 왜인들이 탑승하여 훈련 중인 포도아의 함대가 있는지가 중요했을 뿐이다.

곧바로 연락선을 수납한 이순신이 함대의 항진을 명령했다.

목적지는 마카오였다.

광해3년 10월 28일 오후의 햇살이 바다위에 부서지던 시간, 조선 수군 대양함대가 마카오 근해에서 포도아 깃발을 걸고 훈련 중이던 일단의 범선단과 조우했다.

깃발이 포도아의 것인 이상, 검문을 겸한 이쪽의 의도를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다시금 대장선에서 연락선이 내려지고 포도아 범선단으로 접근해 갔다.

대규모 범선단의 접근이었기 때문인지 포도아의 범선단도 정선 한 채 이쪽에서 출발한 연락선을 기다렸다.

그런 포도아의 함선 수는 42척.

함종은 갤리온 5척, 무장 캐럭 30척, 중캐러벨 7척이었다.

애초에 예수회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맺은 계약은 포도아의 철포로 무장한 50척의 함선을 공급하는 것이었지만 잉글랜드와 벌인 희망봉 해전에서 8척의 중캐러벨을 잃은 탓에 42척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포도아 범선단으로 접근한 조선 수군의 연락선은 자신들의 정체를 밝히는 것과 동시에 포도아 함선에 왜인들이 탑승해 있는 것을 확인하자 항복을 요구했다.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포도아 교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왜인 선원들이 연락선을 타고 간 조선 수군들을 모조리 살해했기 때문이다.

목이 잘린 조선 군인들의 몸뚱이가 바다로 버려지고 목이 장대에 걸렸다.

그 모습을 확인한 이순신이 망원경을 내리고 이 악문 음성을 토했다.

“전투 깃발 올리고, 전고를 울리게.”

“예, 총사.”

명을 받은 부장의 고함소리가 울리자 곧바로 깃발이 올라가고 묵직한 전고소리가 바다를 채우듯 울려 퍼져갔다.

둥, 둥, 둥.

함대 전체가 부산해졌다.

접어두었던 돛이 펼쳐지고 멈춰있던 함선들이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훗날 역사서에 마카오 해전이라 기록되는 전투의 시작이었다.

풍향은 조선군에 유리했다.

접근 자체를 조선군 대양함대가 바람을 가득안고 해왔기 때문이다.

불리함을 알았던지 왜인 탑승 포도아 범선단은 일렬종대로 서서 우측으로 바람을 안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자 조선 대양함대가 달려들면 그들의 측면 포선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과 같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그대로 전진을 명했다.

몇 날을 고심했던 전술 중 하나를 적용하기로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순신의 명에 조선 대양함대는 일렬횡대로 그대로 달려 들어갔다.

그렇게 달려가던 와중에 이순신의 명령이 떨어졌다.

“적함과 떨어지지 않도록 사선으로 따라간다.”

이순신의 명을 부장이 복창하고 이내 깃발이 오르며 대장선이 사선으로 비스듬히 뱃머리를 돌려 적함들을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달려오는 조선 대양함대를 바라보는 포도아 교관들은 자신 만만했다.

상대가 자신들보다 대형함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겁을 먹지 않았다.

조선의 하백급 전열함보다 더 큰 프린스 오브 웨일즈도 격침시켰던 전력을 가진 까닭에 자신감에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자신들이 무장한 초선포에 대해 포도아 선원들의 자부심은 강했다.

그 포가 지금 마주친 조선의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물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전으로 이미 증명된 자신들의 포격술에 포도아의 교관들은 자만하고 있었다.

더구나 초선포를 만들어낸 기술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조선이 사용하는 화약은 유럽이 사용하는 화약보다 성능이 떨어진다고 하였다.

사실 그것은 포도아의 기술자들이 개량 이전의 화약을 접한 까닭이었다.

서반아 철포기술자들이 무산 제철단지에 머물며 제반 기술을 익히던 시기 그들에게 공개된 조선의 화약은 과거에 사용하던 개량이전의 화약이었다.

개량 화약을 보여줘 기술 유출을 하나 더 할 필요가 없다는 결정에서 나온 조처였다.

그걸 알길 없는 포도아의 선원들은 서반아 기술자들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더구나 서반아 기술자들은 조선철포가 조선의 최신 철포라는 잘못된 지식까지 옮겨놓았다.

그로인해 포도아 선원들은 조선군이 자신들과 같은 포로 무장했다는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같은 포에 더 좋은 화약을 쓰니 포격전의 우위는 자신들에게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로인해 포도아 상인들은 유럽의 화약을 넘기며 왜로부터 상당한 은을 추가로 넘겨받기도 했었다.

문제는 그걸 바로잡은 왜인 장수나 선원들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초선포가 조선군이 사용하는 철포와 같다는 포도아의 설명을 그대로 믿었다.

왜군 장수들도 폭발탄의 부재가 아쉬웠지만 같은 포에 더 뛰어난 화약이라면 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다.

조선 수군이 그랬듯이 초선포로 무장한 포도아 함대가 영길리의 함대를 무찔렀다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에 왜인 선원들과 장수들도 용기백배했다.

포도아 교관들은 왜인 선원들을 독려해 완전한 전투태세를 갖췄다.

이순신은 대장선 선미루에서 점점 다가오는 왜인 탑승 포도아 범선단을 주시하고 있었다.

양측의 거리가 1천 5백보로 줄어들자 이순신의 명이 떨어졌다.

“각함 우현 전타. 적함들과 나란히 항행한다.”

곁에 대기하고 있던 부장의 고함이 울리고 곧바로 깃발이 올랐다.

그와 함께 대장선이 우측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그런 대장선과 함께 조선 대양함대의 전열함들이 깃발 신호에 맞춰 모두 우측으로 선회했다.

결과적으로 조선 대양함대와 왜인탑승 포도아 범선단이 나란히 항해하는 형태가 되었다.

양측의 거리는 1천 2백보.

날카로운 눈빛으로 양측의 거리를 확인한 이순신의 명이 담담한 음성으로 떨어졌다.

“전함, 좌측 포대 방포.”

마찬가지로 그 명을 부장, 정경달이 복명하여 외쳤다.

“전함, 좌측 포대 방포하라!”

곧바로 해당 명령이 깃발로 오르고 대장선의 좌측 포대가 발포를 시작했다.

콰과과쾅!

하백급 전열함의 측면 포수는 32문이다.

50척의 전열함 일제사는 1천 6백발의 폭발탄이 발사됨을 뜻했다.

일렁이는 파도로 빗나가는 포탄도 나오고 일부는 선체를 뚫지 못하고 튕겨나가기도 했지만 상당수가 포도아의 범선을 뚫고 들어갔다.

포도아 범선은 1척당 적게는 10여발, 많게는 40여발이 넘는 폭발탄을 뒤집어 섰다.

특히 2척의 사격을 홀로 뒤집어 썼던 포도아 범선들의 경우엔 곧바로 유폭을 일으켜 배전체가 폭발해 버렸다.

포도아 범선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포도아 범선이 장비한 초선포의 사거리 너머에서 조선 대양함대의 공격이 가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비규환의 장이 펼쳐진 포도아 범선단을 향한 대양함대의 2번째 포격 준비가 분주하게 이루어졌다.

하백급 전열함의 경우 1문의 포에 2명의 포수가 배치되는 탓에 지금처럼 한쪽 측면만을 사용할 경우 반대편 포수들이 지원을 한다.

다시 말해 한쪽 측면 포만을 사용할 경우 1문의 포에 포수가 4명이 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하백급 전열함이 포수 수를 극단적으로 줄일 수 있었던 연유였다.

실제로 전투 시에 양쪽 포를 모두 쏘는 경우가 드물었고, 한쪽 포를 쏘는 동안 반대편 포수들이 놀게 된다는 것을 잉여인원으로 상정했던 것이다.

물론 양쪽 포를 모두 쏘게 되는 상황에서는 인원부족을 감수하는 결정이었다.

그렇다 해도 조선 수군 포병은 2명이서 완벽하게 포를 장전하고 발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을 돕기 위해 다수의 장비와 밧줄이 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 조선군 함선의 특징이기도 했다.

여하간 이번엔 4명이 달라붙었기에 2명으로 이루어지는 정규장전보다 속도가 빨랐다.

곧이어 하백급 전열함들의 2차 포격이 이루어졌다.

콰과과과쾅!

이미 불타오르기 시작한 포도아 함선들이 이번의 사격으로 완전히 화염에 휩싸였다.

여기저기서 유폭되어 폭발하는 배들이 늘어갔다.

더 강력한 화포를, 더 많이 장비한데다, 더 많은 수의 함선을 가진 조선 대양함대를 상대하며 부린 포도아 범선단의 만용은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

연쇄 유폭되어 완파당해 침몰한 함선이 33척, 7척은 대파된 채 서서히 침몰되어갔고, 2척이 심각한 파손을 입은 채 백기를 걸었다.

선체를 여지없이 파고들어 폭발한 화염포탄의 파괴력은 확실하고 잔인했다.

더구나 한 척당 수십 발의 폭발탄을 뒤집어썼다.

그 정도면 살아날 방법이 없었다.

온 바다가 파괴된 포도아 범선들의 잔해로 뒤덮이고, 그 사이사이가 왜인과 포도아 선원들의 시신과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 생존자들로 가득 채워졌다.

조선 대양함대 전열함들에서 연락선을 내려 생존자들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아 투항했던 2척의 배도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자침시켰다.

대장선에서도 일단의 생존자들을 수습해 분류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순신에게 생존자 분류작업을 지휘하던 정경달이 다가왔다.

“총사, 저들을 싣고 온 왜선들이 아직 마카오에 있답니다.”

정경달의 말에 이순신의 눈빛이 빛났다.

“은(銀)은?”

이순신의 물음에 그 배들이 은도 싣고 왔다는 것을 떠올린 정경달이 몸을 돌렸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곧바로 왜인 구출자들에게 다가가 이것저것을 묻던 정경달이 달려왔다.

“아직 배에 실려 있답니다. 총사.”

그랬다. 왜인들은 예수회와 포도아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그들은 훈련이 끝나고 완전히 범선들을 인수하면 지불하기로 한 채 은을 자신들의 배에 그대로 실어두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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