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4화. 역습(逆襲)
광해1년 4월 13일 정오 무렵.
일단의 탐망선이 대마도를 돌아 나오는 대규모 선단을 발견했다.
그 소식은 탐망선들로 이루어진 경비망을 통해 부산포 앞바다에 대기 중이던 조선 수군에 통보되었다.
수군 총사 이순신의 명으로 부산포 앞바다에 떠있던 전라, 경상, 강화수군별영의 함선들로 이루어진 조선 수군 함대에 실전대비 명령이 떨어졌다.
탐망선의 인도 하에 부산포 앞바다에 대기 중이던 함선들이 천천히 움직여 대마도를 돌아 나온 왜군 함대의 예상 진로를 가로막는 형태로 이동했다.
조선 수군은 철저하게 외해로는 나아가지 않았다.
평저선인 장갑귀선과 판옥전선은 외해의 높은 파도에는 취약했다.
왜가 명 정벌에 앞서 벌이는 조선 정벌의 선봉은 고니시 유키나가가 섰다.
그는 크고 작은 7백 척의 군선에 2만에 달하는 병력을 싣고 있었다.
그에게 내려진 명령은 부산포에 왜군의 상륙거점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상륙해 거점을 만들면 대마도에서 대기 중인 가토 기요마사의 2군이 뒤를 받칠 예정이었다.
4월 13일 신시초(申時初, 오후 3시).
부산포 앞바다에 당도한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는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조선 수군과 마주쳤다.
조선군이 미리 알고 기다렸다는 것에 고니시 유키나가는 꽤나 당황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는 상황, 전투는 고니시 유키나가 쪽에서 먼저 걸어왔다.
선봉에 선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위이기도 한 대마도주 요시토시(宗義智, 종의지)였다.
아타케부네(安宅船, 안택선)50척과 2백 척의 세키부네(関船, 관선), 그리고 그보다 작은 배들 1백 척으로 이루어진 왜군 함대가 조선 수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선봉 함대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세키부네의 크기는 판옥전선이나 장갑귀선에 비해 작지만 전투선의 기본은 갖춘 배였다.
그들의 앞에 조선 수군은 커다란 갈매기 형상을 취했다.
학익진이다.
종심을 돌파할 생각으로 판옥선보다 큰 아타케부네들을 선두에 세운 요시토시의 선봉 함대는 그대로 달려 들어왔다.
쇄기모양인 방추형을 짜고 돌진해 오는 왜군 함대를 향해 포선을 구성하고 대기하던 조선 수군 함선들에 이순신의 명이 떨어졌다.
“방포하라!”
이순신의 대장선이 야포를 쏘는 것과 동시에 280척의 조선 수군 함선들이 일제히 포를 쏘았다.
콰과과과쾅!
2천150발의 폭발탄이 돌진해 오는 350척의 왜군 함선에 쏟아졌다.
수백발이 바다로 헛되이 떨어졌지만 나머지 폭발탄은 모조리 왜선들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콰과과과쾅!
폭발탄이 폭발한 왜선 안에서 불길이 일었다.
놀란 왜군들이 배 밖으로 뛰어내리는 와중에 몇몇 왜선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보관하고 있던 화약이 유폭되어 폭발한 것이다.
하지만 다수의 배는 폭발이 아니라 화염에 휩싸였다.
많이 얻어맞은 배는 30발도 넘는 화염포탄을 뒤집어썼으니 순식간에 배 전체로 불이 번지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이다.
전방과 좌우의 선두를 섰던 선박들이 화염에 휩싸인 채 침몰해가는 탓에 안쪽에 있던 배들이 진로에 곤란을 겪었다.
종심돌파를 위한 방추진형은 밀집도가 높다.
지상처럼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배를 움직이는 입장에서는 방추형의 밀집도는 조종에 최악이다.
그 상황에서 진로에 방해를 받은 선박들이 그대로 불길에 휩싸인 선두함을 추돌하는 일이 벌어졌다.
한번 뒤엉키자 그 소요가 전체로 번졌다.
그 아비규환의 장에 다시금 조선 수군의 포탄이 일제히 쏟아졌다.
조선 수군의 함열에 변화가 생긴 것은 그때였다.
횡대로 막아선 가운데는 그대로 두고 좌우의 날개가 떨어져 나와 종대로 길게 전진해 왔다.
포위다.
엉망으로 뭉친 왜군 선봉 함대의 뒤까지 포격선 안에 가두고 조선 수군이 무수히 두들겼다.
3백 척이 넘는 왜의 전선이 불타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고니시 유키나가는 구원하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조선 수군은 자그마치 1천보도 넘는 거리에서 포탄을 퍼붓고 있었다.
저런 전투방법은 전혀 보지 못했다.
포도아(蒲萄牙, 포르투갈)의 배도 저 정도 거리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선의 전선들은 대량의 화포로 왜선들을 깨부수었다.
더구나 조선의 화포는 철환으로 선박을 단순히 부수는 것이 아니라 그 포탄이 폭발하여 배에 불이 붙게 만들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러서야 합니다.”
부장의 말에 고니시 유키나가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선 수군은 여전히 280척, 근접전투를 치르지 않은 덕에 전투로 손실된 조선군 함선은 단 한 척도 없었다.
그에 반해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남은 배는 350척. 여전히 왜군 함선이 더 많았다.
하지만 물러서는 것은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나무로 만든 배에 화염은 그 무엇보다 무서운 존재였다.
1천보를 넘게 떨어져 화염 공격이 가능케 하는 조선 수군에 달려들기엔 어려웠다.
물러가는 왜선들을 바라보며 조선 수군 병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
이날 요시토시의 선봉 함대에서 살아 돌아온 배의 수는 30척을 넘지 못했다.
고니시 유키나가에게는 다행히 그 안에 사위인 요시토시의 배가 끼어있었다.
전방이 아닌 후방에 있었던 덕이었다.
지휘관으로서는 실격의 행보였지만 딸에게 남편의 전사 소식을 전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고니시 유키나가가 안도했다.
함대를 물린 고니시 유키나가는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대마도로 돌아가자니 면이 서지 않았고, 다시 조선군에게 달려들자니 이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장이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다.
“조선군의 화포를 견뎌낼 방법을 찾지 않고서는 다시 전투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주군.”
“그러니 답답한 것이다. 도저히 그 강력한 화력을 뚫어낼 도리가 없으니.”
“방패를 부르십시오.”
“방패?”
“쓰고 버려도 아깝지 않을 방패면 되옵니다.”
“그럴 방패가 어디 있단 말인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등당고호)라는 방패면 어떠하겠습니까? 주군.”
“도도 다카토라?”
수군으로 잔뼈가 굵은 다이묘(大名, 대명, 영주)로 과거 큐슈(九州, 구주) 정벌전의 일환으로 벌어진 해전에서 고니시 유키나가가 패한 이후 그를 수군장수로는 쓸모없는 이로 취급해왔다.
“예. 사사건건 주군에게 수군 장수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헛소리나 해대는 작자이니 이참에 제 능력을 증명해 보이라 밀어 넣으시지요.”
하긴 이대로 패배의 소식을 가지고 가면 누구보다 앞장서 고니시 유키나가를 비난하고 나설 자였다.
“그가 나서겠나?”
“태합 전하께오서 주군께 선봉을 맡기셨을 때 질투로 크게 성을 내었던 잡니다. 공을 양보하겠노라 말씀하시면 그는 분명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설 것입니다.”
어디 그 뿐일까, 대마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빌어먹을 가토 기요마사(加籐淸正, 가등청정)도 자신이 선봉을 서는 것에 못마땅해 했었다.
자신이 실패한 것을 안다면 태합께 고해 선봉을 빼앗아 갈게 분명했다.
그런 치욕은 당할 수 없었다.
“조선의 부산포에 상륙거점을 만드는 것은 내게 태합 전하가 맡기신 임무, 그에게 모두 전가할 수는 없다.”
“선공을 주고 뒤를 떠받치면 될 일입니다.
“그들을 제물로 삼자는 소리냐?”
“조선군의 화포를 막을 방패로 삼으십시오. 주군.”
부장의 말에 잠시 고심하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소식을 전하라. 도도 다카토라에게 나, 고니시 유키나가가 도움을 청했다고.”
자신이 더 뛰어난 수군 장수임에도 항상 고니시 유키나가에 비해 중용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도도 다카토라의 성격상 소식을 들으면 두말없이 달려올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고니시 유키나가의 연락선이 다수의 다이묘들이 병력을 집중시킨 채 대기하고 있는 후쿠오카(福岡, 복강) 인근의 가라쓰(唐津, 당진) 포구로 향했다.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도 그곳에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고니시 유키나가의 전갈을 받은 도도 다카토라는 대소(大笑)를 터트렸다.
실력에 비해 높게 다뤄지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줄 기회가 드디어 그의 손에 잡혔기 때문이었다.
곧바로 휘하의 병사들을 소집해 출동준비에 들어갔다.
자신들을 실어 나를 함대인 도도 다카토라의 출전을 4군의 주장(主將)인 모리 요시나리(森吉成, 삼길성)가 극렬하게 반대했지만 도도 다카토라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가 4군을 실어 나를 함대이긴 했지만 모리 휘하의 수하 장수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도 다카토라에게는 4군과 8군의 수송이 맡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가 가라쓰 포구를 떠났다.
고니시 유키나가로부터 도도 다카토라가 전갈을 받은 지 이틀 후.
3백 척의 크고 작은 전선으로 구성된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가 연락선의 인도를 받아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가 머물러 있는 해역으로 진출했다.
자신의 함대 맨 선두의 아타케부네에 올라탄 도도 다카토라에게 고니시 유키나가는 투구를 벗고 머리를 조아리는 비굴함을 보여야 했다.
도움을 청한 다이묘로써는 어쩔 수 없는 굴욕이었다.
그런 고니시 유키나가를 자신의 대장선 선루에서 거만하게 내려다보던 도도 다카토라가 자신의 함대에 전진 명령을 내렸다.
“가자. 가서 수군이란 어찌 싸워야 하는지 저 못난 고니시 유키나가와 그 얼빠진 수하놈들에게 보여주자꾸나. 으하하하”
도도 다카토라의 음성이 고스란히 고니시 유키나가의 함대에 들려왔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의 시선으로 부산포 앞바다로 나아가는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가 보였다.
“저들을 3천보 앞에 두고 따르라.”
고니시 유키나가의 명에 그의 함대가 일정한 이격을 두고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
일대의 바다를 주시하던 조선 탐망선들은 수평선 너머로 모습을 보이는 대규모 함대를 발견했다.
곧바로 여전히 부산포 앞바다에 대기 중이던 조선 수군에 소식이 전해졌다.
탐망선의 보고를 받은 조선 수군은 다시 전진배치를 택했다.
외해와 근해를 가르는 분기점 안쪽에 자리 잡은 조선 수군을 향해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가 천천히 다가왔다.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는 50척의 아타케부네와 1백 척의 세키부네, 그리고 150척의 작은 배들로 이루어져있었다.
덩치가 큰 아타케부네들을 선두에 세운 채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는 넓게 벌여 온 바다를 메우듯 전진해 왔다.
산개하여 포격전은 회피하고, 조선 수군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를 이용해 각각의 함선으로 달려들어 도선전투를 벌일 목적이었다.
그런 왜군 함대를 바라보는 조선 수군 지휘부가 난감한 표정이었다.
함포사격으로 다루기에 가장 난해한 진형이었기 때문이다.
“아예 흩어져 각각의 함선으로 밀고 들어올 심산인 모양입니다.”
부장의 말에 이순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흩어졌다면 우리도 흩어져 부수면 될 일. 장갑귀선들에게 알리게. 돌격전을 펴라고.”
이순신의 명에 부장이 서둘러 깃발을 올렸다.
그것을 확인한 장갑귀선 130척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타케부네에 실린 화포는 3문 정도다.
석화시(石火矢, 블랑기포)나 대조총으로 불리는 큰 구경의 총을 실었다.
사거리는 석화시가 1백보에서 2백보 정도, 대조총이 5백보 정도였으나 실제 선박에 타격을 줄 정도가 되려면 그보다 훨씬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 왜선들을 상대로 장갑귀선들은 3열 종대로 전진해 나갔다.
좌와 우열이 비스듬히 사선으로 벌여 나아갔고, 가운데는 중앙을 향해 직선으로 움직였다.
마치 전진해 오는 왜 함대를 그 세 줄기로 파고들어 다섯 동강으로 잘라내는 듯한 모양새였다.
다가오는 장갑귀선을 보면서도 왜선들을 그대로 흩어져 들어왔다.
아직 조총이나 석화시의 사거리가 아니었기 때문에 왜선들은 선수부에 조총병들이 빼곡히 들어서 발사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양측 선두간의 거리는 1천보.
콰광!
느닷없는 굉음과 함께 3열종대로 다가오던 조선군 장갑귀선 선두함들에서 야포가 발사되었다.
6발의 포탄은 각기 다른 선박 3척에 모두 명중했다.
그중 4발은 선체 안으로 뚫고 들어갔고, 2발은 상갑판에 떨어졌다.
왜군 함대의 선두에 서 있던 도도 다카토라의 대장선 상갑판에도 1발이 떨어지고 선체에도 1발이 뚫고 들어갔다.
왜병들이 상갑판에 떨어진 길쭉하고, 시커먼 포탄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몰려들었다.
하긴 그들이 아는 조선군의 포탄은 터지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발끝으로 툭툭 건드려보는 왜병까지 있을 지경이었다.
그러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