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화. 칼집을 벗어난 칼
당황한 선조의 외침이 다시 터져 나왔다.
“밖에 아무도 없느냐! 당장 이놈을 끌어내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여전히 밖에선 아무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대전에 배치되어있던 내금위의 별감들은 모두가 하위 무관들이다.
그들은 처음부터 상복을 입고, 칼집을 버린 채 칼만 든 금부도사의 방문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 차렸다.
상선과 내관들은 금부도사와 함께 온 의금부 군관들에 의해 모두 제압된 상태였다.
칼을 목에 댄 채 노려보는 의금부 군관들의 모습에 감히 입을 여는 이들조차 없었다.
눈앞에서 그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대전별감들은 무거운 눈길로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별감들과의 일전을 각오하고 있었던 의금부 군관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의 고함에도 아무도 들어서지 않자 이상 상황이 발생했음을 선조도 눈치 챘다.
“네놈이, 네놈이 어찌······.”
선조의 원망어린 음성에도 금부도사는 그저 바짝 엎드려 칼을 올려 받친 자세 그대로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그런 그를 한참 노려보던 선조가 옥좌에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이러는 걸 보니 정녕 잘 못 된 일이었던 모양이로구나.”
씁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음성을 토한 채 달무리가 들어선 편전 밖을 바라보았다.
문으로 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선위(禪位)를 하면 되겠더냐?”
한참 만에 나온 선조의 음성에 움찔 금부도사가 반응을 보였으나 그뿐 그의 자세도, 올려 받친 칼도 그대로였다.
“상관치 않을 것이다. 태조 선대왕처럼 상왕으로 물러나 분당을 조성하지도 않을 것이고, 태종 선대왕처럼 일일이 국사에 개입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선조의 거듭된 말에도 칼을 들어 받친 채 엎드린 금부도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한가지였다.
“하아······.”
선조의 깊은 한숨이 대전에 내려앉았다.
옥좌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려온 선조가 한참을 망설이다 금부도사가 들어 받친 칼을 움켜잡았다.
하지만 그걸 휘둘러 금부도사를 죽이지도, 스스로 자결하지도 못했다.
또 다시 한참을 망설이던 선조가 칼을 바닥에 버리고 밖을 향해 외쳤다.
“상선은······, 상선은······, 상선은 비상(砒霜)을 가져오라.”
밖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따르라.”
엎드려 있던 금부도사의 말라갈라진 음성이 나오고서야 문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부들부들 떠는 상선이 비상이 담긴 약사발을 들고 선조 앞에 섰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선조가 그릇을 들어 마셨다.
상선이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털썩 옥좌에 주저앉은 선조가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답답하구나. 문을 열어라.”
미미하게 끄덕여지는 금부도사의 고갯짓에 상선을 따라 들어왔던 의금부 군관이 문을 열었다.
휘영청 밝은 달이 내려다보는 대전 옥좌에 입가로 피를 흘리는 선조가 축 늘어져 있었다.
밖을 내다보는 그의 눈엔 이미 생기가 빠져나가고 없었다.
대전 처마 끝에 상선이 올라 용포를 펄럭이며 외쳤다.
“상위복(上位復), 상위복, 상위복.”
펄럭이며 던져진 용포가 하늘로 치솟았다.
*****
열린 성문으로 들어서는 철산 예비군의 선두에 서서 들어서는 광해군을 오위도총부의 장수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부복하여 맞았다.
궐로 향하는 길목에 백성들이 달려 나와 부복하여 광해군의 귀환을 맞았다.
대전은 참혹했다.
옥좌에 앉아 죽은 선조의 시신 아래에 칼로 자결하여 죽은 금부도사의 시신이 상복을 입은 채 주저앉아있었다.
그건 마치 지키던 주인을 마지막까지 따라가는 충복의 모습이었다.
가장 먼저, 죽은 주인을 위해 상복을 입은 그의 시신을 추려 가족에게 보내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대전을 지키던 별감들도 모두 자신의 칼로 자결했다.
지켜야 할 이를 지키지 않은 죄를 그들은 그렇게 치렀다.
금부도사를 따라 나섰던 의금부의 군관들도 모두 자결했다.
그들은 선조의 죽음을 확인한 금부도사의 자결 직후, 모두 그 뒤를 따랐다는 상선의 증언이 있었다.
칼을 맞대고 총을 쏘지는 않았으나 피가 흥건한 대전을 바라보는 광해군의 마음이 아득했다.
털썩 주저앉은 광해군의 눈물이 바닥에 점점이 떨어져 내렸다.
서기1591년, 선조24년 3월 25일 선조가 붕어(崩御)하고, 광해군이 한성을 장악했다.
*****
스며든 혈향과 핏자국이 선명한 대전에서 조회가 열렸다.
며칠간 나오지 않던 대신들이 모조리 참석한 조회에는 그동안 몇몇 자리를 차지했던 훈구파 대신들의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들은 광해군의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그들을 대역죄로 다스려야 한다는 대소신료들의 음성이 대전을 가득 채웠다.
그런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광해군이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대들은 무얼 했나?”
멈칫.
떠들어대던 대신들의 소리가 점점 잦아들더니 이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군의 물음이 다시 던져졌다.
“이번 일을 해결하려던 이들이 피를 흘려 저곳에 자신의 혼을 심을 때 그대들은, 그간 잘 먹고 떵떵거리며 살던 그대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말이다.”
여전히 선명히 남은 핏자국을 바라보며 던진, 그간 해오던 존대가 사라진 광해군의 음성은 낮고 조용했다.
“전하를 설득하여 피만큼은 보지 않게 해 달라던 내 서신을 받은 그대는, 또 그대는 무엇을 했나?”
광해군의 시선을 받은 이산해와 성혼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위기에 나서지 않고, 종사의 존폐에 앞에서조차 죽음을 불사하지 않는 그대들에게 나라의 경영을 계속 맡겨도 되겠는지 난 결정하지 못했다.”
그 말만을 남겨두고 대전을 떠나는 광해군의 옷엔 여전히 대전에서 옮겨 뭍은 피가 선명했다.
그런 광해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대소신료들이 불안으로 술렁거렸다.
자신의 전각으로 돌아온 광해군을 그간 의금부 옥사에 갇혀있다 풀려난 이항복이 찾아왔다.
그는 단지 광해군과 가까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잡혀 들어가 있었다.
물론 금부도사가 벌인 일은 아니었다.
의금부의 옥사라 하나 국문을 위해 최목중이 부린 금군들에게 잡혀온 이들로 가득했으니까.
그나마 그가 그동안 국문을 받지 않았던 것은 최목중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이들을 먼저 취조하기에 바빴기 때문이었다.
“괜찮으십니까?”
광해군의 물음에 이항복이 바짝 몸을 낮추었다.
“말씀을 낮추시옵소서. 그간 뜻이 어디에 있으셨던지 이제는 그리 하셔야 하옵니다.”
이항복의 말뜻을 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변화가 일어났으니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광해군에게 이항복이 말을 이었다.
“괜찮으냐는 말은 오히려 소신이 여쭈어야 할 말이 아닌가 하옵니다. 괜찮으시옵니까?”
이항복의 물음에 맥없이 웃은 광해군이 답했다.
“별로······.”
진짜로 충격이 컸다.
선조와는 어떻게든 결판을 낼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의 죽음을 상정하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부도사와 의금부의 군관들, 그리고 많은 내금위의 대전별감들까지.
이런 결말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마음을 바로세우소서.”
이항복의 말에 광해군은 그저 쓰게 웃었다.
그걸 어찌 모를까, 한데 그게 쉽지 않았다.
자신의 친부도 아니고 그저 이 몸의 생물학적 아버지일 뿐인데······. 선조의 죽음이 던져준 충격이 예상외로 컸다.
그 혼란으로 좀처럼 마음을 바로세우지 못했다.
그런 광해군의 귀로 함께 명에까지 갔다가 돌아온 알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중전마마 드시옵니다.”
문이 열리고 상복을 입은 의인왕후가 들어섰다.
광해군이 벌떡 일어서 그녀를 맞았다.
선조를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과 다를 게 없었다.
그렇게 죽은 선조의 정부인인 의인왕후의 앞이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의인왕후는 그녀가 죽은 후에 받게 되는 시호이니 지금은 그녀를 그저 중전, 또는 중궁 마마로 부를 뿐이다.
본래의 역사대로라면 올해 장성왕후라는 존호를 받게 되겠지만 이젠 그도 어렵게 되었다.
그런 중전이 문 앞에 들어서서 광해군을 바라보며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광해군이 3살 때 죽은 생모 공빈 김씨를 대신해 여러모로 광해군을 돌봐준 것이 많았던 중전이었다.
물론 도래인이 되어버린 이후엔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런 광해군에게 중전이 말했다.
“왕위는 중요하여 단 하루, 한시도 비워둘 수 없는 것입니다.”
“······.”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는 광해군에게 중전이 말을 이었다.
“왕위에 올라 국정을 살피시오소서, 전하.”
그 말과 함께 엎드린 중전의 뒤로 이항복과 알지, 그리고 궁인들이 모두 엎드렸다.
며칠간, 즉위식과 그에 수반되는 여러 상황들이 진행되며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와중에 선조의 장례를 9일간에 치르겠다는 광해군의, 아니 왕이 된 광해의 폭탄선언이 나왔다.
뿐만 아니라 향후 궐에서 치러지는 모든 왕실의 장례는 9일을 넘지 못한다고 왕명으로 못을 박았다.
광해가 왕이 되어 내린 첫 공식 왕명이었다.
사림이 들썩였으나 과거처럼 지부 상소(持斧上疏)와 같은 극단적인 저항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난리 통에 자신들의 호신에만 전념한 사림을 광해가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림이 몸을 사리는 가운데 선조의 장례가 9일 만에 끝났다.
실제 역사에서처럼 구리에 안장하고 목릉이라 칭하였다.
동인, 서인 가리지 않고 처단을 천명한 훈구파 대신들에 대해 금부도사를 맡은 이항복의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에 따라 참형에 처하거나 유배를 보냈다.
군(君)시절 보낸 왕의 서신을 받고도 움직이지 않았던 이산해와 성혼이 끌려 나가 국문을 받고 참수되었다.
동인과 서인, 온 사림이 몸을 낮추었다.
명분이 광해군의 손에 있었다.
그것이 약화되기 전에 광해군은 과감한 정책을 밀어붙였다.
참수되거나 유배를 보낸 이들은 물론이고 연관된 모든 훈구파 일족에게서 재산과 노비를 몰수했다.
그들에겐 10칸 이하의 기와집과 호구지책에 쓰일 약간의 토지만이 허락되었다.
사림은 물론이고, 조선팔도 모든 이들에게 노비를 나라에 바치라는 노비희사령이 반포되었다.
말글대로 기쁘게 노비를 들어 받친다는 이 명령에 반발이 터져 나왔다.
의금부와 사헌부의 관리들이 들이닥쳐 반발한 이들의 가문을 샅샅이 뒤져 그 죄목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그 집안 모든 조상에 대해 삭탈관직이 취해졌다.
뿐만 아니라 해당집안 출신으로 현직에 있던 관리들도 삭탈관직에 파직 처분이 내려졌다.
살아남은 이들은 모든 재산을 빼앗긴 채 길거리로 나앉았다.
과한 처사라 반발한 이들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왕이 된 광해의 행보에 거침이 없었다.
전라도 전주에서 종친들이 연류 된 반란이 일어났다.
전주 감영의 일부 군대가 따르고 주위에서 몇몇 사림이 합류하여 군세가 수천에 이르렀다.
광해의 명에 중무장한 철산 예비군 기동군단이 출동해 이틀 만에 진압하였다.
그 일에 연관된 이들의 9족을 멸하고, 온 재산을 나라로 몰수하였다.
광해가 공공연히 조당에 모인 신료들에게 숨도 크게 쉬지 말라고 명하였다.
대소신료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였고, 말을 하지 못했다.
전국의 야공별당과 철산학당이 다시 문을 열고, 철고은행이 영업을 재개했다.
몰수되었던 철고은행의 은을 찾았으나 사라진 최목중의 모습과 함께 대부분을 찾지 못했다.
부족한 분량의 은이 철산배후단지의 철물전 금고에서 옮겨져 충당되었다.
다시 통화가 제 역할을 하기 시작했고, 잠시 침체되었던 시장이 활기를 되찾았다.
은제작소의 문을 열었으나 사치품을 대량으로 제작하는 과거방식 대신 최고급 제품을 소량 생산하는 체제로 바꾸었다.
그것에 왕이 직접 휘호를 내려 은가(銀家)라 칭했다.
조선 최초의 상표(메이커)가 생긴 날이었다.
부상을 치료한 김억수가 다시 철물전의 대행수로 복귀했다.
조선과 명의 교류가 다시 시작되었다.
잠시 중단되었던 왜와의 교역도 광해의 명으로 다시 재개되었다.
좋은 철을 보내 그들을 무장시킬 수 있다는 이항복의 반대가 있었지만 광해는 자신을 믿으라며 교역재개를 강행했다.
조선의 급격한 변화에 부산포에 머물던 왜의 사신은 교역재개만을 손에 들고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