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58화 (58/325)

제58화. 제물포 해전

놀라 일어선 광해군에게 조필의 말이 쏟아졌다.

“빌어먹을 전라우수사가 영길리의 상인에게 모조리 팔아먹었답니다.”

“그걸 한성의 조당에선 그냥 두고 보았답니까?”

“역당의 무리가 만든 것을 그냥 둘 수 없다고······. 감히 그것을 반대하는 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합니다.”

“미친!”

광해군의 입에서 이번 일이 벌어진 뒤 처음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건 그냥 야포와 폭발탄이 외국으로 반출된다는 의미 이상의 일이었다.

그걸 확보한 이들은 반드시 그것을 분해하고, 분석하여 비슷한 무기를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영길리가 바보도 아니고 큰돈을 들여 단순히 한번 쓰고 버릴 분량만 뜯어나갈 이유가 없다.

그러니 그들은 야포와 폭발탄을 가져다 복제해 낼 생각을 먹은 것이다.

하긴 전 세계에서 오로지 영길리 만이 조선의 야포와 폭발탄의 위력을 제대로 겪어 알고 있었으니까.

“그것들을 산 영길리의 상선들은 어디에 있답니까?”

“현재는 제물포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상인들의 말에 의하면 며칠 내로 제물포를 떠나 천진항에 들어왔다가 수일 내로 홍콩을 거쳐 영길리로 향할 것이라 합니다.”

그 말은 아직 그들이 조선 땅에 있다는 의미였다.

“정걸 장군에게 급전을 띄워 그 상선들을 반드시 격침시키라고 전하세요. 그들이 무사히 조선의 해역을 빠져나가게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그간의 무기력한 모습과 달리 안광을 빛내는 광해군의 명에 조필이 황급히 달려 나갔다.

다행히 조필은 철산 단지는 물론이고 단동 포구에 개설된 상단 지부를 연결하는 전서구 망을 갖춰두고 있었다.

그 전서구망을 통해 광해군의 지시가 단동의 정걸에게 전해졌다.

정걸은 전서구를 통해 광해군의 명을 받은 즉시 함대를 출동시켜 서해 전역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직접 10척의 장갑귀선을 지휘해 제물포쪽으로 접근했다.

마침 제물포 포구를 출발한 영길리의 무장상선 5척이 그런 정걸의 탐망선에 걸렸다.

곧바로 연통을 받은 정걸의 장갑귀선 10척이 빠른 속도로 접근했다.

영길리의 무장상선단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검은색의 함선들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돛을 내려 상부 개판 안으로 수납한 채, 노를 저어 다가오는 장갑귀선의 모습을 발견한 영길리 무장상선의 갑판이 소란스러워졌다.

처음 보는 배의 형태에 영길리 선원들이 귀신들린 배라며 호들갑을 떨어댔던 것이다.

선원들의 소란에 뛰어나온 선장들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외형상으로는 괴물과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넋 놓고 있을 역량이라면 거친 바다에서 선장을 맡진 못했을 터였다.

정신을 차린 선장들이 호통을 쳐 선원들의 소란을 가라앉혔다.

“적의 간계에 놀아나지 마라! 정신 차리란 말이다! 갑판장들은 선원들을 모두 제 위치로 보내라!”

선장의 호통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갑판장들이 호각을 불고 고함을 쳐 선원들을 움직였다.

그 속에서 영길리 무장상선의 선장들이 명령을 내렸다.

“야포를, 야포를 꺼내 갑판으로 올려라!”

선장의 명령에 선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내 선창에 싣고 있던 야포의 일부가 끌어올려지고 포장을 벗겨 발포준비를 갖추느라 분주했다.

한데 그렇게 갑판으로 끌어올려진 야포의 발포준비를 갖추는 영길리 선원들의 움직임이 꽤나 능숙했다.

사실 그것은 전라우수영의 수군들에게 발포 절차와 방법까지 배운 까닭이었다.

그렇게 영길리 무장상선의 갑판이 분주한 동안 양측의 거리가 좁혀졌다.

서로간의 거리는 1천보.

선수부에 두문의 야포를 설치한 무장상선 선두함의 선장이 발포를 명령했다.

전라우수영의 군관에게 교육받을 때를 상기하면 이쯤부터 무조건 관통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선장의 명령에 포수들이 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이내.

꽈광.

두발 중 한발은 빗나갔고, 한발은 정통으로 맨 선두에 서 있던 정걸의 대장선에 맞았다.

하지만.

탕!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장갑귀선 선수 장갑판에 부딪친 폭발탄이 튕겨나가 바다에 빠졌다.

그걸 확인한 영길리의 무장상선의 선상이 소란스러웠다.

쏘면 뚫렸던 제물포에서의 시험사격과는 전혀 다른 결과였기 때문이다.

양측의 거리가 순식간에 5백보로 좁혀졌다.

“1번함에서 5번함은 그대로 적을 좌측에 두고 전진한다. 5번함 이후에는 적함을 충파하라 명하라.”

정걸의 명이 깃발병에 의해 선미에 설치된 봉에 깃발신호로 올라오자 휘하 함선들이 그 명에 따랐다.

즉시 5번함에서 10번함까지의 장갑귀선에 충파를 뜻하는 깃발이 올라왔다.

그것을 확인한 정걸의 대장선을 선두로 장갑귀선들이 속도를 높였다.

장갑귀선들의 선두가 자신들의 좌측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확인한 영길리의 무장 상선 5척도 모조리 좌현의 포를 장전하고 대기했다.

그런 영길리의 무장상선들을 바라보던 정걸이 깃발수에게 명을 내리고 대장선인 1번함을 따라 5번함까지 선수를 우측으로 비스듬히 돌렸다.

영길리의 무장상선들과 거리를 벌린 채 지나가겠다는 뜻이었다.

보다 긴 야포의 사거리를 활용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영길리의 무장상선들이 꺼내놓은 야포를 모조리 상갑판 좌현으로 몰아 발포준비를 갖춘다고 아우성을 쳐댔다.

양측의 거리가 제로가 되고 대장선인 1번함이 영길리의 무장상선단 선두함과 교차하기 시작했다.

“방포!”

정걸의 명과.

“파이어(Fire)!”

영길리 무장상선단 선두함 선장의 명이 동시에 떨어졌다.

양측의 수평거리는 1천보.

야포의 성능 상 쏘면 무조건 뚫고 들어가는 거리다.

무장상선이 발포한 폭발탄은 20발, 다행히 그들은 처음 보는 장갑귀선의 특성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장갑판으로 이루어진 선체 측면을 향해 발포한 것이다.

하긴 이순신이 개발한 조선 수군 교리에 따르면 야포는 적 선체의 측면을 때리게 되어있었다.

중갑판에 화약이 보관되는 경우가 많고, 불에 잘 타는 물건들도 잔뜩 모여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전라우수영의 병사들에게 배운 대로 영길리 상선의 포수들이 충실히 따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걸의 장갑귀선에서 발포한 5발의 폭발탄도 영길리 무장상선의 옆구리를 노렸다.

콰광쾅쾅쾅.

요란한 폭음이 양측에서 울린 직후

퍼버버버벅.

모조리 영길리 무장상선의 선체 측면을 뚫고 들어간 장갑귀선의 폭발탄과 달리.

탕탕투당탕탕.

요란한 금속성을 남긴 영길리 무장상선이 쏜 폭발탄들이 장갑귀선의 측면 장갑에 막혀 튕겨 나갔다.

그리고 직후.

콰광쾅쾅쾅.

영길리 무장상선의 선체를 뚫고 들어간 폭발탄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거센 화염이 하갑판 포구 밖으로 뿜어져 나오고, 이내 유폭으로 보이는 커다란 폭발이 영길리 무장상선단의 선두함을 집어삼켰다.

쾅!

무시무시한 폭음과 충격파를 동반한 채 커다란 무장상선이 반동강이 나 가라앉기 시작했다.

단편적인 승리에도 불구하고 환호성을 지를 사이도 없이 대장선의 포판에선 야포의 재장전에 정신이 없었다.

곧바로 영길리 무장상선 2번함과 교차하며 야포를 두들겨 맞았다.

이번에도 장갑귀선의 측면 장갑판이 정걸의 대장선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아직 장전이 마무리 되지 못한 정걸의 함선은 마주 포를 쏠 수 없었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장갑귀선 2번함이 그런 영길리 무장상선 2번함에 폭발탄을 퍼부었다.

5발의 폭발탄이 모조리 명중했음에도 영길리 무장상선 2번함은 화염에 휩싸이거나 유폭되지 않았다.

하지만 곧바로 교차하기 시작한 장갑귀선 3번함의 집중포격엔 결국 유폭되면서 큰 폭음과 함께 선두함과 마찬가지로 완파되어 가라앉기 시작했다.

선두의 선박 두 척이 모두 침몰되며 진로를 방해하자 급히 오른쪽으로 항로를 비틀어 빠져나가려는 영길리 무장상선 3번, 4번, 5번 함의 옆구리를 향해 고속으로 돌진해오던 장갑귀선들이 그대로 달려들었다.

충파다.

쾅!

장갑판으로 뒤덮인 넓고 평평한 선수에 무섭게 튀어나온 용두와 그 아래 뾰족하게 돌출된 충각돌기를 지닌 장갑귀선들이 그대로 영길리 무장상선을 들이받아 부셔버렸다.

그날 제물포 앞바다를 빠져나간 영길리의 무장상선은 단 한척도 없었다.

그들이 전라우수영에서 넘겨받은 야포와 폭발탄도 그렇게 가라앉은 무장상선들과 함께 제물포 앞바다에 수장되었다.

*****

해당사실을 광해군이 보고받은 직후, 명나라에 머물며 영길리의 대사직을 수행 중이던 벤투 자작이 조필의 상단으로 찾아왔다.

제물포 앞바다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정상적인 거래였음에도 불법적인 공격을 받았노라고 팔팔 뛰었다.

그런 벤투 자작에게 광해군이 말했다.

“난 참고 있습니다. 그 한계가 이미 넘었음에도 말입니다. 내가 왜 그 무장상선들을 격침시켰는지 자작이나 영길리가 모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더는 날 자극하지 마세요. 유럽을 항해하는 서반아의 모든 함선들이 야포를 장비하여 폭발탄을 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조필 상단의 역관을 통해 광해군의 말을 전해들은 벤투 자작은 놀란 모습으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넋이 나간 표정의 벤투 자작이 어깨를 늘어트린 채 돌아간 직후, 광해군이 조필에게 물었다.

“현재 단동에 있는 교역선을 동원해 이동 가능한 병력의 수가 어찌 됩니까?”

“소총병만을 두고 말한다면 1척당 완전무장한 이들 1백 명 정도입니다. 현재 2백 척이 대기 중이니 2만의 소총병을 한 번에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마마.”

무언가 광해군이 결심을 세우려 한다는 걸 직감한 조필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런 그에게 광해군이 그 자리에서 몇 장의 서신을 써 주었다.

철산단지의 김수와 단동의 정걸, 그리고 이산해와 성혼에게 보내는 서신이었다.

“이것들을 보내고, 즉시 유배지에서 김 대행수를 빼내오세요.”

광해군의 명에 조필이 고개를 숙였다.

“예. 마마!”

그날 밤, 광해군은 긴 고심 끝에 두 장의 서신을 추가로 썼다.

다음 날 조필을 통해 보낸 광해군의 서신은 선조와 금군의 한 하위 군관에게 가는 것이었다.

*****

<무릇 부모는 자식을 어여삐 여기고, 자식은 부모를 효로 극진해 대하여야 한다 배웠습니다. 아바마마 소자가 마지막으로 바라옵건데 자애로운 예전으로 돌아오시옵소서. 소자 아바마마의 너그러운 부름을 기다리옵니다.>

선조의 손에서 서신이 갈가리 찢겨져 휘날렸다.

“감히 왕을 겁박하였으니 결코 용서치 않을 것이다!”

선조의 선언이 조당에 전해졌다.

숨을 죽인 대신들이 바짝 엎드렸다.

하지만 그 속에서 바쁜 눈짓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산해와 성혼에게 모종의 언질을 받았던 동인과 서인들, 바로 사림이었다.

그들과 달리 최근 들어 다시 기용된 훈구파 대신들은 그저 선조의 말에 옳습니다만 외치고 있었다.

분노에 찬 선조의 선언이 있던 날, 금군 하위 군관들이 잠시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이내 그들이 흩어지고 하위군관들의 모임이 오위로, 경군으로, 지방군으로 퍼져나갔다.

그런 하위군관들에게 전해진 광해의 서신은 담담한 것이었다.

<참담하게도 내 곤궁함에 그대들의 의리를 요한다. 도와다오.>

무관심한 왕을 대신해 자신들을 대가 없이 돌봐주었던 광해군의 어려움을 하위군관들은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광해군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연판장이 정6품 이하의 군관들 사이에 돌았다.

그곳엔 금군은 물론이고, 오위도총부와 경군에 속한 거의 모든 6품 이하 군관들의 수결이 놓여 있었다.

수가 어림잡아 3백이 넘었다.

그와 같은 일이 지방군에 속한 하위군관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