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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제 광해 새로운 이름을 달다-57화 (57/325)

제57화. 유폐(幽閉)되다

무기 생산단지로 확대 개편되었던 장원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장원을 점령하려는 오위도총부의 병력과 장원을 지키려는 수비대 사이에 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가형 소총으로 무장한 5백 장원 수비대가 좌위에 속하는 별시위 3천을 격파했다.

절반이 죽고 다수가 부상을 입은 별시위가 물러났다.

장원 수비대는 광해군이 직접 자신들에게 와서 명령을 내리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공표했다.

장원에 근무하던 모든 일꾼들이 그런 수비대를 도왔다.

장원의 방어는 더 단단해졌고, 오위도총부의 병력은 추가로 장원을 도발하지 못하고 대치한 채 머물렀다.

그 소식이 궐에 도달한 직후, 선조가 자신의 전각에 갇혀있던 광해군을 대전으로 불렀다.

“어찌하려느냐?”

“소자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사옵니다.”

“모두가 너로부터 비롯된 일이라 말한다.”

“그 모두가 누구누구이옵니까?”

이전처럼 고분고분하지 않은 광해군의 반문에 선조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네가 드디어 본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소자, 그저 억울할 뿐입니다. 최선을 다해 조선을 위해 노력해고, 아바마마의 광영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였나이다.”

“사람들이 네가 왕위를 탐내고, 군력을 키우며, 모반을 준비한다 말한다.”

“단 한 번도 왕좌를 넘본 적이 없고, 아바마마의 치세를 위하지 않은 적이 없나이다.”

“거짓으로 일관할 일이 아니다!”

차가운 선조의 일갈에 광해군이 읍소했다.

여기서 선조를 설득하지 못하면 상황이 파국으로 치달을 거란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소자의 말을 믿어주소서.”

“모든 이들이 너를 그리 말하는데 어찌 믿을까!”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이들의 말을 믿으시고 소자의 말을 믿지 않으신단 말씀이옵니까?”

“너의 음흉함이 깊고, 드러내지 않으니 고는 몰랐으나 많은 신료들이 너를 대역죄인이라 말한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으시는 것이옵니까? 다른 신하들의 말도 들어보소서.”

“네 돈에 매수되고, 네 달콤한 혀에 속아 사리분간을 하지 못하는 대신들이 태반이라 들었다.”

선조의 말을 들어서는 철산단지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나누는 이들은 아닌 모양인데 도무지 누가 나서서 이런 일을 꾸민 것인지 좀처럼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선주가 중용 하여 칼로 쓰는 최목중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는 철산의 사업에 대규모 노비를 투자한 이였다.

그것이 광해군의 생각을 흐렸다.

도무지 누가 주동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선조의 주위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자책이 일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왕위였다. 그러니 사전에 관심을 둘 이유도, 여유도 없었던 것이다.

하긴 광해군으로서는 조선을 개혁하고 발전시키는 일을 추진하는 것에만도 시간이 모자라고 힘에 붙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것을 몰라주는 선조에게 울분을 담아 광해군이 물었다.

“소자를 정말 믿지 못하시는 것이옵니까?”

“믿지 말라 말하는 대신들의 우려가 깊고, 크다.”

“그들의 말이 아니라 아바마마의 생각을 여쭙는 것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도 그리 생각하시는 것이옵니까?”

물음에 답이 없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일은 누가 획책한 일이 아니다.

하긴 선조라는 왕이 누군가의 말에 휘둘려 일을 벌이는 인사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면 이것은······.

왕이, 선조가 원해서 벌어진 일이다.

주동자가 선조라는 뜻이다.

‘하아······.’

속으로 깊은 한숨이 내려앉았다.

그런 광해군에게 선조가 답 없이 물었다.

“네 죄를 인정하겠느냐?”

직전의 차가움과 달리 은근히 물어오는 음성에 음험함이 깊었다.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으로라도 ‘그렇다’ 말하면 그대로 목을 타고 칼을 들이밀 것 같은 느낌이 강했다.

광해군은 기껏 여기서 죽을 생각은 없었다.

“소자, 아바마마께 반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나이다.”

흔들림 없는 광해군의 답에 선조의 음성이 높아졌다.

“네놈이 정녕!”

그날 분노한 선조의 명으로 광해군의 군호가 떨어지고 전각에 유폐되었다.

왕명을 거역한 군력을 지닌 대역 죄인에게 사약을 내려 죄를 다스리라는 훈구 대신들의 주장이 연일 조당을 떨어 울렸다.

참람한 대역죄를 벌인 광해군을 사사(賜死)하라는 지방의 훈구파 유생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죽음이 코앞이었다.

광해군 전각의 환관 알지가 구슬피 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금군의 감시가 철통같아 도처로 손을 뻗고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광해만이 아니라 알지와 궁녀들마저 전각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그 상황에서 옥사는 점점 더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조는 광해군이 이뤄놓은 개혁을 모조리 분쇄하여 원래대로 돌려놓을 심산인듯 싶었다.

광해는 그 말미를 어쩌면 자신의 죽음으로 장식하려 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절감이 광해의 전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

*****

광해군이 유폐된 날로부터 보름 후인 선조23년 11월.

명나라 황제의 사신이 육로를 이용한다는 그간의 관례를 깨고 배편으로 제물포에 도착했다.

관례에 따라 성문 밖까지 마중 나가 사신을 맞은 선조에게 명 황제의 칙서가 전해졌다.

<조선의 왕자 광해군은 지체 없이 황도로 와 짐의 제매(弟妹)와 혼례를 치르라.>

선조가 당황했다.

광해군이 모반사건에 연루되어 유폐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들 수도 없다.

그전에 이미 황실과 혼담이 오고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신들을 모화관으로 보내고 선조가 최목중을 비롯한 훈구파의 거두들을 불러 사태를 논의했으나 뾰족한 수가 없었다.

교지까지 내려온 황명을 조선이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광해군은 그것이 명에 남아있는 조필이 벌인 일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갖은 핑계로 선조가 광해군의 신병 인도 시일을 뒤로 늦췄지만 명은 연일 사신을 보내 서둘러 입조하여 혼례를 올리라는 독촉을 보내왔다.

결국 황제의 독촉을 견디지 못한 선조가 광해를 명으로 보냈다.

12월 말, 광해군이 명나라 사신과 함께 제물포를 통해 조선을 떠났다.

군호는 복원된 상태였다.

*****

광해군이 궁을 떠난 날에도 조선엔 칼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이순신이 파직되어 한성으로 압송되었다.

대역죄인의 돈을 사사로이 받았다는 죄목이었다.

전라우수영의 판옥전선을 늘리는 과정에서 광해군이 철물전을 통해 지원한 돈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사사로이 쓴 것이 없다는 항변을 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최목중이 관장하는 국문장에 끌려나온 이순신이 고문에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경상도 병마절도사의 자리에 있던 권률이 파직되어 내쳐졌다.

북위별시위 별장으로 재직시 철물전으로부터 여흥을 받았다는 죄목이었다.

단지 철물전 철산 지부에서 열었던 작은 잔치에서 광해군이 내린 술잔을 받은 것뿐이었지만 권률은 아무 항변 없이 그 조치를 받아들였다.

지금은 항변을 한다한들 먹힐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당에 피바람이 불어 닥친 시기 한성엔 철회라는 조직이 조금씩 몰수된 철물전의 사업장을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체로 훈구 세력의 자손들로 초기엔 사림에 뒷돈을 대며 나름의 영역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동인과 서인으로 대변되는 사람이 철물전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그 소용이 다해 버렸다.

그렇게 사림에 버림을 받았던 이들이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조당에 피바람이 불던 순간부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하나둘씩 몰수되었던 철물전의 사업장들을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

피바람이 부는 가운데 선조24년이 밝았다.

왕실의 위엄을 크게 세운다며 선조가 시작한 경복궁의 중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작년 말에 완료되었어야 했지만 경인옥사가 터진 이유로 완공직전에 마무리가 덜 된 채 지지부진했다.

공사의 감독을 맡은 관리들 중 상당수가 끌려가 국문을 받는 까닭에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한 탓이다.

그런 연유로 이번에도 정조하례는 창덕궁의 인정전에서 열렸다.

하지만 최근 몇 년과 달리 지극히 간단하게 진행되었다.

뒤에 열린 연회는 훈구파의 거두들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최목중 같은 철회의 사람들만이 선조의 부름을 받았다.

연회가 끝난 후, 선조가 최목중과 독대했다.

“네가 말한 계책대로 하여 광해군을 주저앉혔다. 하나 그 아이가 명으로 빠져나갔으니 위험부담은 남았다. 어찌 하여야 하겠느냐?”

선조의 물음에 최목중이 몸을 바짝 낮췄다.

‘내 계책대로 따랐다고?’

최목중은 속으로 고개를 수십 번도 더 가로저었다.

자신의 뜻과 다르면 결코 선조는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신의 뜻과 다른 말을 입에 담는 최목중을 그냥두지 않았을 것이다.

선조는 그런 왕이다.

자신의 손바닥위에 말들을 올려놓고, 그 말들끼리 치고받게 만들어 자신에게 이로운 이득을 취하는 군왕.

그런 그가 묻고 있었다.

앞으로 어찌 하느냐고?

당연히 선조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부터 살펴야 했다.

그래야 적당히 원하는 답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엎드린 채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을 정리한 최목중이 답을 했다.

“오히려 잘 된 일이옵니다. 조선에 남아 대항을 택했다면 더 골치 아픈 일이 되었겠으나 광해군이 조선을 벗어났으니 돌아오지 못하게 막으시면 그만이옵니다.”

“돌아오지 못하게 막으면 그만이다?”

선조의 음성에서 비릿함을 느꼈다.

제법이라는 느낌일까?

일단 선조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에 최목중은 속으로 안도하며 답을 이었다.

“데려갈 때는 황명으로 가능했지만 조선으로 돌아올 때는 전하의 허락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옵니다.”

한마디로 귀환을 허락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면 그 아이를 따르는 이들은 어찌하고?”

여기가 중요하다.

진짜 선조가 원하는 것을 거론했을 테니까.

“함부로 움직일 수 없도록 조이셔야 하옵니다.”

“어찌 말이더냐?”

“근본 없는 이들이 얼마나 되오리까? 부모가 있는 자, 부모를 잡으시고, 자식이 있는 자 그 자식을 잡으시옵소서.”

“인질을 삼으라는 소리더냐?”

“전하의 은덕을 내리시라 주청 드리는 것이옵니다.”

은덕이라 포장하였으나 인질로 삼으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리하기만 하면 되겠더냐?”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심이 사라지면 오래 버티지 못하는 것이 상리(常理)이옵니다. 기다리시면 결국 그들이 달려올 곳은 전하의 품 밖에는 없을 것이옵니다.”

최목중의 답에 선조의 입가로 만족한 미소가 깃들었다.

*****

선조24년 1월 중순이 되어서야 광해군이 자금성에 들어섰다.

그 사이에도 광해군은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호위를 명분으로 따라나선 조선군의 눈초리가 사나왔기 때문이다.

겨우 자금성에 들어서면서 그 감시의 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무리 감시가 중요해도 황제가 머무는 자금성 안까지 따라 들어올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정작 광해군은 만력제를 만나지 못했다.

하긴 명나라의 일에도 태정(怠政)을 이유로 조정에 코빼기도 보이는 않는 그가 명나라도 아니고 조선의 일에 관심을 가질리 없었다.

대신 광해군을 맞은 것은 병부상서로 자리를 옮긴 석성이었다.

사정을 들은 석성이 자금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조선군의 눈을 피해 광해군을 조필의 상단으로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군 마마.”

“오랜만입니다. 조 행수.”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보다 유배를 떠난 김 대행수가 걱정입니다.”

“사람을 써 뒤를 봐주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소서. 오히려 대행수께선 군 마마의 안위를 크게 걱정하고 계십니다.”

“몸은 괜찮답니까?”

“의원을 보내 살피고 있사옵니다. 좋아질 것입니다.”

“그래야지요.”

고개를 끄덕이는 광해군에게 석성이 말했다.

“조 행수의 부탁에 폐하께 교지를 얻어내 조선으로 보낸 것이긴 합니다만, 황명이 내려진 이상, 혼례는 올려야 합니다.”

명으로 오는 내내 받아들이려 애를 썼지만 광해군에겐 여전히 어려운 문제였다.

“상대가 누굽니까?”

“서안 공주십니다. 폐하와는 같은 모후의 소생이시지요. 올해로 열여덟 되셨습니다.”

“황실의 일원으로는 출가가 늦었군요.”

“폐하의 태정이 길어지는 탓에······.”

석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광해군이 물었다.

“혼례는 언제 올리면 됩니까?”

“신년 하례가 지난 후에 길일을 따로 잡아 국혼으로 올리게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광해군을 바라보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던 석성은 그냥 돌아갔다.

그가 돌아가자 광해군이 조필에게 물었다.

“조선은 어찌 되어가고 있습니까?”

“전하께오서 사람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으셨습니다.”

“그게 무슨...?”

“철산의 김수 장군의 부모는 물론이고, 정걸 장군의 자녀들과, 이순신 좌수사의 모친과 권률 장군의 가족까지······. 군 마마와 연관된 모든 이들의 보모와 자식을 모조리 인질로 잡으셨습니다.”

“흐음······.”

깊게 침음하는 광해군에게 조필이 말을 이었다.

“그로인해 모두가 쥐 죽은 듯 숨을 죽이고 있나이다.”

자신의 말에 힘없이 자리에 주저앉는 광해군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조필이 말했다.

“일단 쉬시지요. 결정은 그 다음에 오랜 숙고 끝에 내리셔도 되십니다. 이젠 안전하시니까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광해군을 두고 조필도 물러갔다.

서서히 해가 저물고, 어두워진 방안에 불도 켜지 않은 채 광해군이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어두운 방만큼 그의 머릿속이 깜깜했다. 좀처럼 무언가가 밝게 떠오르지 않았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던 광해군은 새벽닭이 울기 전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

정걸의 함대가 바다를 떠돌고 있다는 조필의 말에 광해군이 단동(丹东)에 포구를 열어 그들을 수용하라 명하였다.

광해군의 명을 받은 조필이 사람들을 부려 의주와 마주보고 있는 단동에 포구를 열었다.

그곳에 바다 위를 유랑하던 장갑귀선들로 구성된 정걸의 함대가 기항했다.

이후 광해군의 지시에 의해 조필이 제물포 포구에 묶여있던 교역선들 중 절반이 넘는 2백 척을 빼내 단동으로 보냈다.

조필의 상단이 일부 돈을 댔으니 명나라 상단의 것이라 우긴 데다 뒷돈을 받은 명나라 조정의 압력이 가해진 덕이었다.

장원은 수비대를 중심으로 여전히 버티고 있었고, 철산 배후단지도 군세를 유지한 채 조선군의 간섭을 막고 있었다.

조선의 곡식에 의지하던 이전과 달리 개간해 놓은 농지에서 거두는 감자만으로도 철산단지의 식량이 끊어질 걱정은 없었다.

광해가 조필의 상단을 통해 명나라 강남에서 나오는 대량의 곡식을 단동으로 빼내온 교역선 2백 척을 활용하여 조달하도록 하여 만일의 부족 사태에 대비하게 하였다.

그 덕에 위기상황에서도 철산단지는 나름 차분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부모가 인질로 잡힌 김수도, 자녀와 가족이 모두 선조의 손아귀에 떨어진 정걸도 입을 닫고 말이 없었다.

그런 그들에게 광해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상태에서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선조24년 2월, 씩씩거리는 조필이 광해군을 찾았다.

“마마, 전라우수영에 배치되어있던 야포와 폭발탄을 제물포에 정박한 영길리의 상선들로 모조리 실어 나른다 하옵니다.”

광해군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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