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화. 목숨을 맡다 (1)
“백잔과 서라벌의 종자들이 고구려와 발해를 입에 담다니 부끄러운지 알아라!”
그제야 알았다.
이들에겐 조선이, 지난 왕조인 고려가 고구려와 발해의 후계자가 아니라 백제와 신라의 후계자였다는 것을.
당황하는 광해군에게 투삼구가 말했다.
“대 초원의 아들들은 맹세를 지킨다. 조상과 신에게 맹세한 이상 죽음으로 그 맹세가 깨어질 때까지 지킬 것이다. 믿고 말고는 그대의 뜻이다.”
그 말 뒤로 입을 다문 투삼구를 광해군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래서야 누가 누굴 설득해야 하는 것인지.
동질성을 내세우려다 오히려 차이만 벌려놓은 꼴이 되었다.
결국 광해군은 그대로 투삼구를 돌려보냈다.
아무래도 고구려와 발해의 이름을 통해 동질성을 내세워 여진을 품으려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보였다.
그렇다고 당장의 방법과 계획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광해군은 그 즉시 제장들을 불러들였다.
자신의 계획과 투삼구의 제의에 대해 논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광해군의 이야기를 들은 북위별시위의 장수들은 모두 반대했다.
권률은 물론이고 이순신까지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하나, 믿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저들이 조상과 신에게 한 맹세는 반드시 지킨다고 말한 이가 바로 별장이었습니다.”
“그건....”
선뜻 답을 잇지 못하는 이순신에게 광해군이 말했다.
“어차피 저들을 우리 쪽으로 당기지 못하면 내가 세운 계획은 성공할 수 없어요.”
“그렇다 해도 너무 성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저들은 겨우 벼 한 섬에 돌아선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을 믿기엔...”
“맞습니다. 겨우 벼 한 섬. 하지만 그게 저들에겐 목숨보다 귀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눈뜨고 가족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가장의 마음을 광해군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대충이나마 짐작은 한다.
그런 상황이라면 못할 것이 과연 무엇일까.
더구나 나라가 없는 야인 여진에겐 부족이 모든 것이고, 그들의 전부다.
그런 부족을 위해서 돌아선 것이다.
조선이라는 큰 틀에 여진족이라는 대상을 끼워 맞춰 두고 충(忠)을 생각하는 조선 장수들과는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걸 이해시키려 애를 썼지만 제장들은 여전히 광해군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광해군은 조선군 장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맞추며 물었다.
“저들을 믿지 못한다면 날 믿으세요. 내가 세운 계획을 믿어 달라는 말입니다. 안되겠습니까?”
순간적으로 내려앉은 침묵.
하긴 지금의 이 일은 모두가 광해군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라 보아도 무방했다.
여진의 준동도 미리 예측했고, 그 대비를 미리 시작한 것도 광해군이었으니까.
그걸 여기 모인 모든 장수들도 안다.
그로인해 한참 동안 이어진 그 침묵을 이순신이 깨어냈다.
“군을 믿습니다. 그러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믿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보이는 이순신을 따라 결국 제장들 모두가 고개를 숙였다.
곧바로 막사를 나선 광해군이 투삼구가 묶여 있는 기둥으로 향했다.
다수의 포로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광해군이 투삼구에게 물었다.
“내가 받아들인다면 진정 날 위해 싸울 겁니까?”
“그대가 내 부족을 먹여 살린다면.”
“곡식은 약속대로 줄 겁니다.”
“그렇다면 나와 내 부족의 전사들은 우리의 조상과 신께 맹세코 그대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투삼구의 말에 광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죠.”
광해군의 눈짓을 받은 태평이 다가와 투삼구를 묶고 있던 밧줄을 끊었다.
“함께 할 이들을 풀어주세요.”
광해군의 명을 받은 태평이 투삼구와 돌아다니며 그의 부족과 또 그와 함께 뜻을 모은 이들을 풀어주었다.
그렇게 광해군을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이들은 전체 포로의 이 할이 채 되지 않았다.
수로는 2천.
포로로 잡힌 이들의 수가 1만3천.
그들 중 부상이 심해 별도로 치료를 받고 있는 이들이 2천이었으니 기둥에 묶인 채 과정을 지켜보았던 이들은 모두 1만1천이었다.
그러니 전향의 뜻을 밝힌 2천을 빼도 9천이 남는다.
광해군이 기대했던 수에서는 한참이 모자랐지만 그는 두 번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머지 포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과 신에게 광해군을 위해 싸우겠다는 맹세를 했다.
직후 그렇게 전향한 여진전사 2천 중 1천 명이 곡식을 실고 자신들의 부족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떠나는 이들에게 광해군은 못을 박았다.
<니탕개가 아니라 당신들의 가족이 기다리는 부족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것을 또 다시 자신들의 조상과 신에게 맹세한 이들에게 광해군은 통 크게 1인당 말 3필씩을 내어주었다.
2필에 벼 한 섬을 나누어 실고, 나머지 한 필에 올라 탄 전향 여진족 전사들은 곧바로 북위별시위의 숙영지를 떠났다.
그렇게 다량의 말을 내어주었음에도 북위별시위의 숙영지에는 아직도 5천 마리가 넘는 노획마가 남아있었다.
솔직히 그 말들도 부담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아까워 눈에 띄는 건 모조리 잡긴 했는데 이것들이 먹기도 무지하게 먹었던 것이다.
벼를 찧어 쌀을 내고 남은 벼 껍데기를 섞여 먹이긴 했지만 말 먹이도 부족한 실정이었다.
그러니 곡식을 실고 돌아가는 여진 전사들에게 3필씩 주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싸우기 위해 남은 이들에게 휴식을 취하라 명하자 우습게도 그들은 광해군의 막사 주변에 머물렀다.
그걸 의아하게 바라보는 광해군에게 통역을 맡았던 토병이 전한 말에 의하면 이러했다.
여진족 전사들이 조상과 그들의 신에게 광해군의 이름을 고해바치고, 그가 자신들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한 광해군을 위해 싸우겠노라 맹세를 했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의 생사여탈권은 이제 광해군에게 종속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광해군에게 달라붙었다는 의미였다.
또 하나, 저들이 자신들의 조상들과 신에게 한 맹세 속에는 다른 의미가 더 있었지만 이때는 그 말을 전한 토병도, 광해군도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이것이 훗날 광해군의 발목을 잡았지만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여하간 그렇게 자신의 막사 주변에 힘없이 앉아있는 전향 여진 전사들을 일별한 광해군이 투삼구에게 물었다.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요?”
광해군의 물음에 투삼구가 붉어진 얼굴로 답했다.
“바, 밥을... 다오.”
무기나 말을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갔다.
그 탓에 당황하는 광해군에게 투삼구가 어렵게 말을 이었다.
“너무 많이 굶었다. 우리들 중 사흘 이상을 굶은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 말은 니탕개의 무리와 함께 있을 때도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하긴 식량이 부족해 약탈을 나선 무리였으니까.
광해군의 지시에 조선군들이 점심을 위해 만들어둔 주먹밥을 가져와 전향한 여진전사들에게 주었다.
그걸 게눈 감추 듯 먹어치우는 이들을 광해군이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오후, 번호 호정이를 비롯한 전사 6천이 북위별시위의 숙영지를 찾아왔다.
그들은 도착과 거의 동시에 광해군을 위해 싸우겠다며 조상과 신에게 맹세를 했다.
다급해보였고, 절박해보였다.
그들의 사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광해군은 그들의 협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3천의 전사들은 곡식을 가지고 다시 돌아갔다.
사실 돌아간 이들은 전사라 부르기엔 다소 어린 사내들이었다. 아마도 곡식을 가지고 돌아가기 위해 데려온 이들 같았다.
그렇게 어린 사내를 동원할 정도로 호정이 족장으로 있는 부족의 거의 모든 장정들이 전사로 나섰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참전하는 전사들의 수만큼 곡식을 주기로 한 광해군의 정책 때문인듯 싶었다.
한 사람이라도 많은 전사가 참여해야 더 많은 곡식을 가져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그로 인해 북위별시위에 합세한 여진 전사들의 수는 4천으로 늘었다.
그들에다 조선군 기마 5백을 합쳐 회령구원군이 결성되었다.
그렇게 구성된 회령구원군이 곧바로 북위별시위의 숙영지를 떠났다.
예상외였던 건, 그런 구원군에 광해군이 포함되었다는 점이었다.
전향해온 여진족 전사들이 한사코 광해군과 떨어지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토병들에 말에 의하면 그들이 맹세한 이는 광해군이지 조선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저들을 부리자면 광해군의 존재는 필수라는 것이었다.
이순신과 제장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국 광해군이 회령구원군을 이끌고 출발했다.
그렇게 출병한 회령구원군 중 5백의 조선군 기마대와 투삼구의 여진 기마병 중 1천의 뒤에는 1천의 가형 소총명과 5백 승자총통병을 뒤에 태우고 있었다.
이로써 북위별시위에 남겨진 가형 소총병은 한명도 없었고, 승자총통병만 5백이 남겨졌다.
말을 달려가면서 광해군은 여진족 기마병의 뒤에 앉아있는 가형 소총병과 승자총통병들의 표정에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전만해도 적이었던 이의 말에, 그것도 등을 맞대고 앉아있으려니 불안하긴 할 터였다.
더구나 둘씩이나 태우고 뒤뚱거리며 달려가는 과하마(果下馬)의 모습은 위풍당당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일인당 2필씩 끌고 달린 덕에 광해군의 회령구원군은 니탕개가 회령을 마주한 두만강에 도달하기 직전에 그 뒤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전투는 접촉과 동시에 이루어졌다.
전술은 다를 것이 없었다.
니탕개의 여진족 전사들의 화살이 닿지 않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달리며 총을 쏘는 것이다.
이걸 위해 광해군은 전향한 여진족 전사들에게 행군 내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잔소리를 해댔었다.
기존에 여진족 전사들이 하던 대로 괴성이나 지르며 적진으로 돌진했다간 모조리 골로 갈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작전엔 사거리 문제로 5백의 승차총통병은 참여하지 못했다.
그들은 전향한 번호 호정이 부족의 전사들과 함께 후방 길목에 매복하고 가형 소총병을 태운 기마대만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앞으로 나선 1천 가형 소총병을 태운 조선군 기마 5백과 투삼구를 비롯한 전향한 여진족 기마 5백이 니탕개의 여진족 전사들과 평형으로 달리며 연속해서 총을 쐈다.
거리는 5백보.
가형 소총의 사거리에는 여유가 있지만 저들의 화살은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가형 소총병의 일제 사격 한방에 1천명 남짓한 여진족 전사들이 한꺼번에 죽어나갔다.
분노한 니탕개의 군대 중 일부가 달려왔지만 승마총병을 태운 조선군과 전향 여진족 전사들은 곧바로 도주하며 총을 쏘아댔다.
지속적인 피해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쫓아왔던 니탕개의 여진족 전사들을 인근 숲에서 숨어 기다리던 승자총통병이 일제히 겨누어 쏘았다.
타다다다탕.
일부가 무너지고 혼란으로 뒤엉킨 니탕개 전사들을 승자총통병들과 함께 숨어있던 호정이의 전향 여진 전사들이 덮쳤다.
2천을 훌쩍 넘겼던 추적대를 전멸시킨 회령구원군이 다시금 니탕개의 본군에 접근해왔다.
이번에도 가형 소총병을 태운 기마들뿐이었다.
뒤에 3천5백에 달하는 전향 여진 전사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니탕개는 또 다시 추적대를 내보냈다.
니탕개의 눈에는 단지 일천 남짓한 조선군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쫓아나간 추적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멀쩡한 모습의 조선군 기마대가 따라붙으며 총을 쏘아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