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뜯어내기 (2)
답은 하나다.
자신의 땅을 소작하는 소작농들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물론 공짜는 아니다.
비싼 기구인 만큼 빌려주는 대가도 어마어마하다.
그럼 안 빌려 쓰면 되지 않느냐고?
그걸 안 쓰면 소출이 줄어든다.
그렇게 줄어든 소출로는 높은 소작료를 내고나면 먹고살 곡식을 마련할 방도가 없다.
그러니 철제농기구를 빌려 소출을 늘리고, 그렇게 늘어난 소출에서 농기구 대여료를 포함한 소작료를 내고 남는 것으로 삶을 연명한다.
그럼 되었지 뭐가 문제냐고?
소출이 철제 농기구의 사용만으로 는다면 문제없다.
하지만 그 철제농기구를 사용하는 이의 노력도 배가되어야 한다.
단위시간당 들어가는 노동력을 기준으로 삼으면 목재 농기구보다 철재 농기구의 효율이 훨씬 높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소출의 절대량이 늘지 않는다.
소출의 절대량이 늘자면 노동력이 더 많이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늘어난 일의 강도와 양에 비해 가져가는 소출의 양은 제한적이다.
물론 철재농기구를 쓰지 않았을 때 보다야 많은 건 사실이지만 소작농은 골병든다.
그렇게 소작농의 고통을 기반으로 철제농기구를 빌려준 대지주의 배는 더 불리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금부도사의 표정이 굳었다.
그런 그에게 광해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럼 왜 그렇게 비쌀까요? 싸게 공급하면 되지 않을까요? 수십 배가 아니라 열배만, 아니 다섯 배만 남기고 팔아도 가격은 어마어마하게 떨어질 텐데 말이죠.”
답이 아니라 물음을 던졌지만 금부도사는 그 물음의 답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격을 내린다고 대지주들의 소득이 늘지 않는다.
오히려 줄어들면 줄어들었지.
내다파는 농기구에서 벌어들이는 소득도 줄고, 철제농기구를 빌려주고 받는 소작료도 줄어드는 일을 그들이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비로소 장사를 천시하는 사대부집안에서 굳이 대장장이를 사노비로 삼아 철제농기구의 값을 농단(壟斷)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탓에 더 굳어진 표정의 금부도사를 바라보며 광해가 싱긋 웃었다.
“생각해 봤는데요. 저들을 활용해서 조금 저렴한 철제농기구들을 내다팔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철제농기구의 전체적인 가격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소작농의 고통도 줄어들고, 잘하면 자작농들도 철제농기구를 살 기회를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면 항상 부족한 곡식들의 수확이 늘어날······.
생각이 그에 이르자 눈이 커진 금부도사에게 광해가 물었다.
“돌려······, 줄까요?”
광해의 물음에 잠시 멈칫 거렸던 금부도사의 고개는 좌우로 저어지고 있었다.
그런 금부도사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은 광해가 말했다.
“그럼 또 가죠. 뜯으러.”
그렇게 휘적휘적 앞서 걸어가는 광해를 잠시 바라보던 금부도사가 황급히 따랐다.
“같이 가시죠.”
그렇게 따라붙는 금부도사의 음성에선 직전의 걱정이나 불안감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
하인들을 시켜 문가에 소금을 뿌리고 있던 최목중은 다시 돌아온 광해와 그 뒤에 버티고선 금부도사의 모습에 완전히 얼어버렸다.
그런 최목중에게 광해가 작게 웃었다.
“소금으로 환영씩이나······.”
웃고 있지만 최목중은 분명히 보았다.
옆으로 쫙 찢어진 광해의 눈을.
뿐인가, 뒤에 버티고 선 금부도사의 고리눈은 금방이라도 잡아먹으러 달려들 것 같은 사나운 들짐승의 그것처럼 노랗게 번들거리고 있었다.
“히끅.”
간신히 멈추었던 최목중의 딸꾹질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다시 사랑채로 안내된 광해에게 불안한 표정의 최목중이 물었다.
“어, 어찌 다시······?”
“그게 내가 깜빡 했지 뭐에요.”
“무, 무엇을 말씀이신지······?”
이유를 알지 못해 불안하게 흔들리는 최목중의 눈을 바라보며 광해가 말했다.
“대장장이와 숯쟁이는 한 세트, 아니 한 조(組)라는 걸 말이에요.”
잘못나간 말을 얼른 수정한 덕인지 최목중은 물론이고, 금부도사도 그것을 이상하게 보진 않는 눈치였다.
그걸 확인한 광해가 최목중에게 말을 이었다.
“아마 최 진사는 이미 줄 마음이었을 텐데 내가 서두르느라 빠트린 거라 생각하는데······. 맞죠?”
아니다.
결단코. 천지신명께 맹세코!
숯쟁이들이라도 남아서 얼마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지만······.
슬쩍 곁에 앉아 그 무서운 고리눈으로 연신 아래위를 훑어보고 있는 금부도사를 확인한 최목중의 고개가 바짝 숙여졌다.
“히끅. 아, 암요. 그렇지 않아도 보내, 히끅. 드리려고 지금 준비 중이었, 히끅. 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그럼 기다리죠.”
얼른 내놓으라는 소리다.
준거라고는 좁쌀 한 톨도 없지만 최목중은 애써 기뿐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막 돌아서려는 최목중에게 광해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 참. 가족들 있을까요? 새로 짝 지워 주고, 애들 낳게 하고 그거 참 귀찮은 일인데. 금부도사는 알죠? 내가 귀찮은 거 정말 싫어한다는 거.”
뜬금없는 광해의 물음에도 금부도사는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답했다.
“암요. 싫어하시죠. 어떤 시러베아들 같은 놈이 군 마마를 귀찮게 하면 제 이 두 손으로 뼈다귀를······.”
그 우악스럽게 큰 손으로 무언가를 부러트리는 시늉을 해 보이는 금부도사의 모습에 최목중이 황급히 말했다.
“히끅. 드, 드려야죠. 암요. 그렇지 않 히끅. 않아도 지금 짐 싸는, 맞습니다. 히끅 짐 싸는 중이었습니다.”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최목중에게 광해가 물었다.
“대장장이의 가족도 마찬가지로······?”
“히끅. 그, 그럼요. 다, 당연합죠. 히끅.”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최목중에게 광해가 빙긋이 웃어보였다.
“그럼 바쁘겠네요. 얼른 가보세요. 기다릴게요.”
“예? 아! 예. 히끅.”
딸꾹질을 남긴 최목중이 서둘러 방을 나갔다.
그렇게 둘만 남은 광해와 금부도사의 눈이 마주치고.
피식.
두 사람의 입가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대장장이 여섯, 숯쟁이 다섯, 그리고 그들의 가족 스물여덟.
도합 서른아홉의 노비를 줄줄이 달고 멀어져가는 광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최목중이 뒤에 서 있던 집사에게 말했다.
“회중의 사람들에게 전해. 아무래도 임금이 안거 같다고. 아니고서야 저 사냥개가 궁 밖으로 나와 노비나 후리고 다닐 리 없을 테니까.”
“예. 대감마님.”
고개를 숙여 보인 집사가 곧바로 떠나갔다.
그는 시중의 철제농기구를 독점해 가격을 조종해온 철회(鐵會)의 사람들에게 이일을 알릴 터였다.
그러니 저들이 도착한 회중 사람들은 놀라지 않고 미리 대비했다가 들어받칠 것이다.
그것이 조금이라도 임금의 눈에 덜 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이거 참. 이제 어디서 돈을 긁어야 하나······.”
돌아서는 최목중의 머리는 새로운 돈벌이 수단을 찾기 위해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글을 읽는 선비는 돈과 재물을 멀리해야 한다고.
다 개소리다.
돈이 최고다.
돈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
삼대가 출사를 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대궐처럼 큰 집에서 떵떵거리고 사는 것도 돈 때문이고.
겨우 진사에 불과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 조정의 신료들이 매일 자신의 집 문턱이 닳게 다녀가는 것도 다 돈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돈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공자 왈, 맹자 왈 그게 전부인 줄 아는 바보들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말이다.
그렇게 돌아서 안으로 들어가는 최목중의 모습은 광해 앞에서 벌벌 떨던 때와는 전혀 달랐다.
*****
이후의 전개는 광해나 금부도사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명단에 있던 이들 모두가 마치 그들의 방문을 기다리고라도 있었다는 듯이 자신들의 노비인 대장장이들과 숯쟁이, 그리고 그들의 가족까지 한 세트로 내어주었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대문 안으로 들어갈 필요조차 없었다.
싹 준비시켜서 문 밖에 줄 세운 채 광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보도 아니고 그런 일련의 상황이 어찌 이루어지는지 짐작하지 못할 리 없었다.
“그저 암묵적으로 이루어지던 일이 아닌 모양이군요.”
금부도사의 말에 광해가 작게 웃었다.
“한두 해, 한두 사람도 아니고 십여 명이 넘는 이들이 수십 년간 같은 일을 해왔다면······. 그건 우연이 아니죠.”
일곱 살, 이 어린 왕자도 아는 것을 그간 자신이 몰랐다는 것에서 금부도사는 큰 충격을 받았다.
훗날, 금부도사가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이날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바뀐 때라 말했을 정도였으니 이때의 충격이 그에겐 꽤나 컸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금부도사에게 광해가 물었다.
“이로써 다 돈 거 맞죠?”
광해의 물음에 명단을 확인한 금부도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열일곱 집. 다 돌았습니다.”
금부도사의 확인에 뒤를 돌아보니 웅성거리며 서 있는 노비들의 수가 물경 수백이다.
겨우 열일곱 집을 털어 나온 노비의 숫자가 그만큼이었다.
전부를 다 털어 낸 것도 아니다. 그저 일부만 데려나온 것이 저 정도였다.
아무리 그들이 장안에 소문난 알부자들이었다고는 해도 당금 조선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
그걸 바라보며 광해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참 많이 남았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일단 선전으로 가죠.”
궁이 아니라 김억수에게로 가자는 광해의 말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금부도사도 싫은 티를 내지 않았다.
그도 저 많은 인원을 데리고 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많은 인원들을 하루아침에 떠맡게 된 김억수의 입장은 금부도사처럼 편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김억수에게 나 행수가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보고했다.
“삼백하고 서른둘입니다요. 대행수님.”
수를 세어 오라는 명을 받고 나갔던 나석이 가져온 결과에 김억수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런 그에게 광해가 말했다.
“올 때까지만 해도 걱정 많이 했는데 얼마 안 되네요. 저 정도면 김 대행수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요. 그죠?”
눈을 똘망똘망하게 뜨고 묻는 광해에게 김억수가 애써 미소를 그렸다.
“그야······ 당연합니다만. 저들을 어디다 쓰실 요량이신지······?”
“우리 사업에 쓸 거예요.”
“말씀하셨던 쇠 사업 말씀이십니까?”
“맞아요.”
“생각보다 통이 크시군요.”
“에이, 김 대행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그러니 잘 해보자고요. 앞으론 진짜 크게 벌여볼 생각이니까.”
웃으며 말하는 광해의 이야기에 김억수는 함께 웃어줄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발을 잘못 디딘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발을 빼겠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고리눈을 사납게 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금부도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런 금부도사의 뒤에 서있을 게 분명한 사람 때문이었다.
조선 팔도에서 김억수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유일한 존재.
바로 임금이었다.
그가 뒤에 버티고 있는 이상, 김억수는 하자는 대로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함께 웃진 못해도 공손히 고개는 조아려야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군 마마.”
그렇게 바짝 몸을 낮추는 김억수는 하지만 알지 못했다.
지금 광해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전부 임금인 선조가 원해서 벌어지는 것들이 아님을.
물론 임금이 묵인하고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광해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안다.
그 오해를 위해 애써 금부도사와 동행하는 중이니까.
아니고서는 일곱 살, 어린 아이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아마 선조는 눈을 감아 달라 했던 광해의 말이 이렇게 크고, 여러 가지 사안으로 다가설지 몰랐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쯤 후회하고 있을 지도.
그러니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역사가 말하는 선조라는 임금은 충분히 위험한 왕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