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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기사로 살아가기-91화 (9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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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에 주위가 환해지며 강렬한 섬광이 일었다.

끄에에에-엑!

몸을 뒤흔드는 전류에 만티코어가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녀석은 고개를 흔들며 재빨리 정신을 수습했다. 이윽고 벨로크의 검이 닿기 전, 땅을 박차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새끼. 빠른데다가 튼튼하기까지 하네. 목표를 잃은 대검이 애꿎은 흙먼지를 일으키자, 벨로크는 쯧 혀를 찼다. 이에 맞춰 뒤편에서 카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만티코어의 손톱은 바위도 수프처럼 갈라버려. 가죽 역시 마찬가지야. 보통 이상으로 튼튼하고 질기지. 쇠뇌의 화살을 막아내는 것은 물론 주문에 대한 내성까지 겸비하고 있을 정도니까.”

확실히 장창을 막아낸 것만 봐도 보통 녀석은 아니었지. 벨로크가 말했다.

“저 괴물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얘기로군.”

카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티코어가 왜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괴물이라고 불리겠어? 그만큼 까다롭고 위험하기 때문이야. 녀석이 나타나는 순간. 한 지방이 초토화되고 영주들이 현상금을 내 거는 게 괜히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란 거지. 더군다나··· 덩치로 봐서 사람을 많이 먹은 녀석이야. 보통의 만티코어보다 배는 강할 것이 분명해.”

이야기책에서나 나올법한 괴물의 등장에 카라가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속에 공포심은 없었다. 그냥 고운 얼굴에 귀찮음만 잔뜩 묻어날 뿐이었다. 그녀는 벨로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태양을 가리고 있는 괴물의 등 위에는 로브 쓴 여인이 추욱 늘어져 간헐적으로 꿈틀거렸다. 상식을 벗어난 악귀가 아닌, 인간의 나약한 육신은 그의 벼락을 견뎌내지 못한 것이다.

저거 아무래도 곧 죽을 것 같은데. 힘 조절을 할 걸 그랬군. 물어볼 게 많았는데 말이야. 벨로크가 그렇게 생각할 때. 만티코어의 생각은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녀석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등을 들썩거렸다. 이윽고 타고 있던 여인을 휙 떨군 후에 한입에 꿀꺽 집어 삼켜버렸다.

노인네의 입가가 우물거리고 뿌드득 뼈 부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눈에는 비쩍 마른 쥐포처럼 되어있던 만티코어의 거죽이 다시금 촉촉해지고 생기를 되찾아가는 것이 보였다. 염병, 밥 먹고 회복이냐?

선인장 가시라고 이름 붙여진 작은 마을의 지배자. 악귀를 조련하는 것에 타고난 능력이 있던 마법사가 확실하게 죽었다. 아델은 하늘에서 뚜둑 떨어지는 피를 피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잡아먹은 겁니까···?”

“주인을 무는 개새끼라. 이거 여러모로 신박한데.”

벨로크의 농에 카라가 피식 웃었다.

“악귀를 길들인다는 건 대단한 위험을 수반하는 일이야. 녀석들의 증오심이나 분노는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주인이 힘을 잃거나 약해지면 바로 저 꼴이 나는 거지.”

카라는 마법사의 죽음이 못내 아쉬운지 입맛을 다셨다. 괴물을 길들일 수 있는 비약이나 주문은 언제나 흥미의 대상이었으니까. 기사이자 전사인 벨로크는 이에 관심 없었다. 다만 앞으로의 싸움이 어떻게 될지는 예상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녀석의 먹이가 지천에 널려있다. 회복 역시 무한으로 해낼 것이다.

한 방에 못 죽이면 까다롭겠는데. 그가 검을 치켜올리고, 아델 역시 도끼를 꼬나쥐었을 때였다. 날개를 펄럭거리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던 만티코어가 느닷없이 괴성을 내질렀다.

끄에에에-엑!

사자 울음소리도 인간의 목소리도 아닌, 괴상한 쇠 긁는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전투를 앞선 포효인가? 일행이 몸을 긴장시킬 때. 또 다른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태양빛의 아래로 역겨운 인간 거죽 하나가 추가되었다. 벨로크가 헛웃음을 지었다.

“한 마리가 더 있었군. 암컷이냐?”

카라는 네가 몬스터 학자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냐고 물어보려다가 입을 닫았다. 새롭게 나타난 녀석의 얼굴이 노파를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갈색눈이 만티코어 두 마리를 진하게 주시했다.

쟤네는 정말 저런 얼굴로 바닥을 뒹굴며 교미를 하는 것일까? 인간과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면 인간과 비슷한 심미안을 가진 것이 아닌가? 물건이 서기는 할까? 카라는 잠깐 쓸데없는 고민을 하는 자신에게 화들짝 놀랐다. 요 몇 달간 괴물 같은 전사랑 같이 다녀서 그런가. 위기 감각이 보통 사람보다 현격히 낮아졌기 때문이다.

-사도께서 노하셨다!

-도··· 도망쳐!

그래, 저게 일반적인 반응이지. 주민들의 아우성을 지켜보던 카라는 입술을 조금 핥으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벨로크가 없었다면 그녀와 아델은 이곳에서 뼈를 묻을 것이다. 이 여유로움은 전적으로 그가 있기에 생겨나는 것이기도 했다.

병신. 넌 마법사 아니, 동료로서 실격이야. 카라의 입가에 슬쩍 비웃음이 피었다. 도움이 되지는 못할망정. 언제까지 의지할 셈인데? 카라는 한쪽 손에는 세검을 다른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다. 이윽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와 아델이 한 마리. 벨로크 네가 한 마리. 이렇게 상대하자.”

“늘 그렇게 해왔지 않았나?”

카라는 고개를 저었다. 저 멀리서 설렁설렁 날갯짓하던 녀석들의 기세가 바뀌었다. 발톱은 당장에 찔러올 것처럼 튀어나와 있었으며 입가의 송곳니는 으르렁거렸다. 이제 곧 올 것이다. 카라가 말했다.

“네가 한 녀석을 먼저 끝장내도 절대로 도와주지 마. 우리끼리 어떻게든 해볼게.”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벨로크님. 부탁드립니다.”

아델은 본래 자존심이 높은 전사였기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벨로크 역시 결의에 찬 듯한 카라의 눈동자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의 생각이 그렇다면 존중해줘야 한다. 두 사람은 동료니까. 자신의 수족대로 움직이는 인형들이 아니니까.

그는 발걸음을 슬쩍 움직이며 한쪽 팔을 뒤로 젖혔다. 이윽고 들고 있던 파형무늬 장창을 재빠르게 던졌다. 뻗어 나가는 섬광에 나란히 일행을 덮쳐오던 두 괴물이 화들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그 사이로 카라의 주문이 작렬했다.

“모든 것을 꿰뚫는 빛이여!”

지팡이 끝에서 요사스러운 보랏빛 광선이 쏘아졌다. 노파의 얼굴을 한 만티코어가 뱃가죽에 이를 얻어맞고는 지면으로 휙 떨어졌다. 회반죽 담장과 판잣집이 요란스레 무너지며 풀썩 먼지를 흩날렸다. 카라와 아델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버둥거리는 녀석이 일어나기 전. 재빨리 지면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크르르르!

이를 보고 있던 수컷이 재빨리 몸을 틀어서 암컷을 도우려 했다. 그런 녀석의 날갯죽지에 퍽 창날이 박혔다.

끄에에엑!

“어디를 가려고. 너는 나랑 놀아야지.”

고통스러워하는 만티코어를 보며 벨로크가 내면의 힘을 끌어올렸다. 피뢰침 역할을 자처하는 장창이 부르르 떨렸고, 다시금 벼락이 쳤다. 노릿한 고기 타는 냄새와 함께 노인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짝꿍에 대한 걱정보다 눈앞에 있는 인간을 찢어 죽이고 싶다는 악귀의 증오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이다.

녀석은 날개를 휙 접으며 창을 털어내고는 꼬리를 휘둘렀다. 검지 손가락만 한 가시가 투두두두 쏟아졌다. 끝에 시꺼먼 것이 묻어있는 거로 봐서 맞으면 좋은 꼴은 못 볼 것 같았다.

뭐, 독화살이냐? 벨로크는 늘 그랬듯이 검면을 앞으로 내밀며 거대한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의 발이 깊은 고랑을 만들어내고 대검이 철 두들기는 소리를 내는 동안. 또 다른 굉음이 울렸다.

“으아아악! 꺼져! 이 괴물 새···”

으직. 슬쩍 검을 내린 벨로크가 앞을 바라봤다. 반파된 집에서 튀어나온 만티코어가 시뻘건 입가를 우물거리고 있었다. 복슬복슬한 녀석의 갈기에는 내장이나 뼛조각 같은 희생자의 잔해가 아직 들러붙어 있었다. 놈은 그렇게 인간을 잡아먹고 몸을 회복했다. 뻥 뚫렸던 날갯죽지에 살이 차오르고 거뭇하던 거죽에 광택이 도는 것이다.

끼끼끼

괴물은 혓바닥으로 앞발을 핥으며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다시금 날아오르려고 했다. 그 순간. 녀석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았던 탓이다. 이윽고 화끈한 고통이 어깻죽지에서 다시금 느껴졌다. 노인의 눈동자가 비죽 돌아갔다. 거대한 망치처럼 보이는 쇠붙이가 바닥에 턱 하니 박혀있었다. 그 뒤에는 자신의 육편이 지면을 나뒹굴고 있었다.

“땅으로 내려온 게 네 명을 재촉한 거다.”

크아아아-악!

귓가로 들려오는 서슬 퍼런 음성에 만티코어는 본능적으로 앞발을 휘둘렀다. 벨로크는 검을 방패처럼 받치며 이를 막아냈다. 손톱과 쇠가 부딪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무슨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저 발의 고랑이 좀 더 깊어졌고, 흑갑주 아래의 힘줄이 좀 더 솟아났을 뿐이었다. 벨로크는 그렇게 짧은 호흡과 함께 검을 밀쳐 올렸다. 그러자, 굉장한 일이 일어났다. 몸길이 10미터가 넘는 괴물이벌러덩 넘어간 것이다.

만티코어가 눈을 크게 떴고 창문과 문틈 사이로 전투를 지켜보던 촌부들 역시 입을 떡 벌렸다. 벨로크는 관심 없었다. 그저 받쳤던 검을 양손으로 잡고 하늘 높이 치켜올렸다. 지금부터 너를 내려찍어서 반으로 갈라버리겠다. 무척이나 직관적이며 단호한 의지가 담긴 행동의 표본이었다.

으르으아악!

거대한 음영에 길쭉한 그림자가 더해졌다. 노인네의 얼굴이 볼썽사납게 일그러졌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아직 생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었다. 놈은 가랑이 사이로 꼬리를 내밀고는 분수처럼 가시를 발사했다. 지근거리에서 터트린 폭탄만큼이나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벨로크의 몸이 흐릿하게 움직였다.

아까 전처럼. 인간보다 수 배는 날카로운 괴물의 감각을 속인 기묘한 몸짓이었다. 그로서는 단순히 땅을 박찼을 뿐이었지만 괴물은 이를 몰랐다. 그냥 고개를 두리번거렸고, 아차 하는 순간. 머리가 쪼개졌다.

“모기 같은 새끼가 귀찮게 하기는.”

벨로크는 검에 묻은 피를 휙 털고는 등에 멨다. 그러고는 어딘가에 박혀있던 장창마저 불러들였다. 그는 창을 어깨 위에 턱 하니 기대고는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겼다. 요란하게도 싸웠는지. 마을은 거진 반파가 된 상태였다.

집도 불타고 사람들도 많이 죽어있었다. 하지만 카라와 아델은 멀쩡했다. 오히려 궁지에 몰린 것은 암컷 만티코어였다. 꼬리는 어디 갔는지 이미 잘려 나가 있었고, 몸 곳곳에 뚫린 구멍에서는 수돗물처럼 피를 콸콸 흘려댔다. 곧 있으면 과다출혈로 죽을 것처럼 보였다.

“아델! 계속 가까이 붙어! 놈이 날아오를 틈을 줘서는 안 돼!”

“알고 있다! 넌 빨리 다음 주문이나 준비하도록 해라!”

아델은 그 말을 내뱉으며 재빨리 달려들었다. 사자의 발톱이 날아들었지만, 그녀에게는 방패가 있었다. 헬레나 여신의 문양이 떠오르고 유리벽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한쪽 손으로 보호막을 만들고 있던 아델이 팔을 털었다. 그러고는 양손으로 도끼를 잡은 채, 다리를 쩍 벌렸다.

“뒈져!”

안정된 자세만큼이나 아델의 손아귀에 들어간 힘이 가공할 위력을 뿜어냈다. 벼락처럼 떨어진 도끼가 기어이 놈의 가죽을 뚫고 피륙에 상처를 입힌 것이다. 놈이 끄어어 소리를 지를 때. 그녀가 입술을 중얼거리며 기도문을 외웠다. 성력의 불꽃이 뻥 폭발했고 놈의 살점이 터져나갔다.

괴물의 비명소리가 더 커졌다. 놈은 흔들리는 시야를 다 잡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윽고 그 큰 입을 벌리며 아델에게 달려들었다. 통째로 잡아먹을 생각인 것 같았다.

아델은 도낏자루를 꾸욱 쥔 채, 뒷부분은 겨드랑이에 끼웠다. 이윽고 그것을 창처럼 들이밀었다. 이빨과 쇠붙이가 불꽃을 타다당 일으켰다. 그녀의 두 발이 바닥을 깊숙이 파고드는 만큼.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주륵 흘러내렸다. 까딱 잘못하면 산 채로 잡아먹힐 지경이니까. 아델이 힘겹게 소리쳤다.

“카...라. 아,직 멀었···”

“다 됐어. 늦어서 미안.”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카라는 한쪽 손에 들린 세검을 만티코어의 입가에 찔러넣었다. 그러고는 지팡이를 안으로 밀어 넣으며 외워두었던 주문을 방출했다. 만티코어의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시뻘건 화염구가 작렬하며 뱃속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끄르르륵

부르르 떨면서 경련하는 괴물을 뒤로한 채, 아델이 카라를 감싸며 바닥을 굴렀다.

“엎드려!”

괴물의 배가 뻥 터졌다. 피와 살점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뭔 영화 속 주인공이냐? 왜 이렇게 화려해? 한층 더 엉망이 된 거리를 벨로크가 멀뚱한 표정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꺄아악 거리고 있는 카라와 그녀의 머리를 감싸 쥐며 욕설을 내뱉고 있는 아델을 일으켰다. 이명이 들리는지 두 사람은 인상을 와락 찌푸리고 있었다. 아델이 말했다.

“끝나셨습니까?”

“물론. 이쪽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모양이군.”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내부에 쏘아 재끼는 게 최선이었어. 아무리 괴물이라도 내장이나 심장을 단련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카라는 헛웃음을 지으며 다리를 비틀거렸다. 아직 전투의 여파가 남아있는 듯했다. 벨로크가 그녀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부축하고는 말했다.

“뭔가를 캐내고 싶어도 주모자인 마녀가 죽었으니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군. 그냥 떠나야겠는데.”

“음··· 확실히 그렇군요. 짐을 챙기겠습니다.”

아델이 그 말을 내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개고생을 해가며 괴물들을 죽였는데.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이건 선행에 가까웠다. 결과적으로 따지면 그들을 해치려했던 도적들의 우환거리를 그들이 없애준 셈이었으니까. 그 순간. 그녀의 마음이 울렁거렸다.

불경한 생각 같은 것 하지 말라고. 교단원이라면 원수를 사랑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여신이 속삭이는 듯했다. 물론, 아델은 가슴을 쿵 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시발. 엿 같은 헬레나여. 나한테 그딴 개 같은 논리를 지껄이지 마십시오. 나는 성기사이기 이전에 벨로크님의 기사니까 말이오.”

얘는 또 왜 이래? 벨로크가 어리둥절해 있을 때. 그의 품에 안겨있던 카라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벨로크. 너 혹시 만티코어를 어떻게 잡았어?”

“검으로 머리를 쪼겠다.”

“녀석의 가죽은? 심장이나 내장 같은 것은 멀쩡해?”

“단칼에 죽였으니 그렇겠지?”

카라의 눈동자 빛이 훨씬 더 커졌다. 이를 여러 번 봐왔던 벨로크는 이것이 마법사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했을 때란 걸 잘 알았다. 역시나 카라의 입에서 튀어나온 대답은 그가 생각하던 것과 똑같았다.

“만티코어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은 언제나 최상급의 품질을 자랑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야. 게다가 녀석의 심장이나 장기에는 기이한 힘이 깃들어있어. 마법사에게 있어서 최고의 연구재료라고 할 수 있지.”

카라가 잔뜩 흥분하며 말하자 벨로크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니까···

“나보고 그걸 해체해 달라고?”

카라는 양손을 공손히 모으며 고개를 숙였다.

“부탁할게! 물론, 나도 한 손 거들 거야!”

“벨로크님께서 하실만한 일은 아닙니다. 저한테 맡기십시오.”

평소 같았으면 그딴 소리 하지 말라며 일침을 날렸을 아델이 순순히 카라를 두둔했다. 웬일이야? 벨로크는 그들의 관계가 조금씩 바뀌어 간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이 현상이 마냥 기쁘기도 하면서 일말의 불안감 역시 느껴졌다.

내가 집으로 돌아가면 이들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은 그의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게끔 했다. 전장을 치르고 전리품을 획득하는 것만큼 기사에게 있어 중요한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집 안에 숨어있던 마을 사람들이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일행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 새끼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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