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97화 (98/121)

97. 나 광고 좋아하는데

[응답하라 119] 초반에는 6명의 주인공 캐릭터에 집중하고 이들의 관계를 조명한다.

드라마의 초반, 말벌집 제거, 취객 대응과 같은 시트콤 같았던 에피소드가 지나가고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인 구조대 에피소드가 진행되었다.

초반 5화가 밝고 웃겼다면, 중반 5화는 진중한 가운데 한 번씩 빵빵 터지는 웃음이 있었다.

유수영 작가는 힐링물의 원조 격 드라마 작가답게, 드라마의 톤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었다.

[응답하라 119] 10화.

구조대 선임 김 반장(방창익)이 신입 대원인 최지호(이지우)를 나무란다. 어제의 화재 사고현장. 이지우가 명령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현장으로 진입하여 구조 요청자를 구해냈기 때문이다.

“야이 새끼야 니가 그렇게 잘났어? 겁대가리 없이 어딜 나대, 나대긴. 진입로 개척이 먼저인 거 몰라? 소방학교에서 안 가르쳐주디? 기본도 안된 새끼야.”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다른 선배들 다 있는데 니가 거길 왜 들어가느냐고. 개념 없는 새끼야.”

김 반장은 손가락으로 툭툭, 최지호의 가슴을 찌르면서 말했다.

평소에 까칠하고 주변에 관심이 없던 김 반장이었다.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최지호와 김 반장의 마찰을 누적시킨다. 그리고 최지호 입장에서 김 반장이 평소와 달리 유별나게 관심을 보이니 짜증이 날 수밖에.

듣다 못 한 최지호가 욱하는 마음을 결국 참지 못하고 질러버린다.

“구했잖습니까.”

“뭐 이새끼야?”

“그래도 그 아이 살렸잖습니까! 그러면 된 것 아닙니까? 우리 일 원래 위험한 거 아니냐고요. 그런 거 다 따지면서 어떻게 사람 구합니까!”

“아니 그런데 이 새끼가.”

두 소방관의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기 직전.

두 사람의 소리를 듣고 찾아온 다른 구조대원들에 의해서 막힌다.

‘씨익씨익' 거리며 노려보는 두 사람 싸움의 흥분이 진정될 틈도 없이 스피커가 울린다.

‘위이이잉. 구조대, 구급대 출동. 가스누출 사고. 위이잉’

스피커를 통해서 울리는 출동 사이렌 소리.

방금 소란이 거짓말 이였던 것처럼 모든 대원이 구조차량이 주차된 차고로 일제히 뛰어간다.

그리고 차량에 탑승.

탑승과 동시에 장비를 착용하는 대원들.

“대장님 무슨 가스에요?”

“공단에 질소가스 누출된 거 같은데. 현장 가봐야 알 것 같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착한 현장.

거대한 질소 탱크 꼭대기에 사람이 기절해서 떨어질 듯 말듯 매달려 있는 상황.

탱크의 높이가 족히 15미터는 되어 보였고,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탱크 옆에 붙어있는 사다리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올라가는 건 올라간다 치더라도, 환자를 구조해서 저 사다리를 타고 내려와야 했다.

곧이어 구급대가 들것을 들고 도착했고, 먼저 도착했던 구조대장은 인부들에게 사고 경위와 주변 조사를 끝마친 뒤 구조대와 합류했다.

구조대장이 내려오자마자 최지호가 먼저 나섰다.

“대장님, 제가 올라가겠습니다.”

피식 웃는 구조대장. 사람 구하는 맛을 알아버린 의욕만 앞선 석 달이 된 신입대원. 의지는 가상하나 지금 나설 때는 아니었다.

구조대장은 조금 전까지 김 반장과 최지호 사이의 험악했던 분위기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 구하는 일에 사사로운 개인감정을 섞어서는 안 된다. 의욕만 보고 구조요청자를 신입에게 맡길 수도 없었고.

“김 반장. 올라가.”

로프를 한가득 매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김 반장.

경험이 많고 기술 면에서 월등한 김 반장이 나서는 게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최지호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김 반장이 최지호의 어깨를 툭 하고 밀면서 지나갔다.

그리고 최지호는 김 반장이 구조 요청자를 구해내는 모습을 구하는 모습을 허탈하게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환자 이송까지 끝내고 복귀한 소방서. 오전조와 오후조의 교대시간.

장비 인계를 끝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있던 최지호에게 구조대장이 다가왔다.

“어이 막내. 끝나고 뭐하냐.”

“네? 뭐 없습니다.”

“같이 밥이나 먹자.”

주간조 근무를 끝내고, 구조대장과 일대일로 하게 된 저녁 식사.

허름한 순댓국 집에서 소주 한 병을 두고 마주 앉았다.

“어이 막내.”

“넵!”

“아씨··· 살살 말해라. 밥풀 튀잖아. 군대 물이 덜 빠졌네. 그냥 편하게 해.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네···”

“군 생활 몇 년 했다 그랬지?”

“4년 했습니다.”

“UDU?”

“UDT입니다.”

“너 25살이라고 안 했느냐? 진짜 빠르네.”

고개를 끄덕이는 구조대장. 구조대 특성상 각종 특수부대 전역자들이 많이 지원하고, 실제로 구성원 대부분이 군 간부 출신이었다. 김 반장도 특전사 출신이었고.

“김 반장이 좀 그렇지? 까칠하고.”

“아닙니다.”

“아닌데 그렇게 개겼어?”

“아···닙니다.”

입맛이 없는 듯 순댓국이 담겨있는 뚝배기를 휘휘 젓는 구조대장.

“니가 잘못한 거야 인마. 김 반장이 표현이 좀 그래서 그렇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니가 열심히 하는건 알겠는데, 살살해. 구조할때만 빡세게 하고.”

“네··· 알겠습니다.”

불만이 한가득 올라온 최지호의 표정. 하지만 입만 오물거릴 뿐 말을 잇지 못한다.

“쩝··· 김 반장 다른 곳에서 온 거 들었지?”

“네.”

“김 반장 전에 있던 곳에서 들어온 지 1년도 안 된 신입 대원이 현장에서 순직했어. 김 반장이랑 같이 출동했는데... 이후에 PTSD가 심해서 우리 서로 옮긴 거야. 신입이랑 같이 생활했던 환경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했나 보더라고.”

플래시 백으로 김 반장이 퉁명스럽게 ‘자신이 하겠다’ 혹은 ‘비켜’하며 가장 먼저 현장에 투입하던 모습이 교차한다.

“김 반장이 정이 많아··· 까칠하게 굴어도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지 말고.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 더 주세요.”

뭔가 생각하는 최지호의 표정이 클로즈업된다.

***

“어서 와, 국민소방관.”

청운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장인호 사장이 반갑게 나를 맞이했다.

'국민소방관'

민망하다. 한편으로는 만족감이 들었다.

국민 여동생, 국민 배우, 국민 MC··· 또 뭐 있나···

아무튼. 전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사람 혹은 물건에 앞에 붙여주는 칭호 ‘국민’.

드디어 나를 부르는 별명에 ‘국민’이라는 단어가 붙은 것이다.

계획대로 되고 있다.

내가 연예인 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먹고,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하기로 결심했을 때 부터 세웠던 계획이 있다.

첫 번째가 화제성과 인지도를 끌어 올리는 일이었다.

내가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내가 누군지 알아야지 평가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폭력의 사슬].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 하는, 화제가 될 만한 독립영화 영화에 출연을 했다.

[민주를 기다리며]. 민감한 정치적 이슈를 건드려 일부러 어그로를 끌었다.

두 영화를 바탕으로 끌어올린 인지도. 그 덕분에 단숨에 공중파 드라마인 [저승 카페]에 조연으로 캐스팅됐다.

그리고 이어서 탑 클래스 남자배우들만 한다는 원톱액션 영화인 [악의 기록]까지.

대중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들을 거의 대부분 사용한 것이다.

[악의 기록]의 성공으로 내 첫번째 계획이 끝났다.

그리고, 다음 스텝. 내가 전생에 실패했던 일이다.

바로 이미지 메이킹.

끌어올린 인지도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

그게 바로 [응답하라 119]를 선택한 이유였다.

일단 소재부터가 소방서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흥행하기만 하면 긍정적인 이미지를 먹고 들어간다.

생명을 구한다는 임무의 숭고함.

수많은 소방공무원들의 헌신적인 활약과 희생.

국민의 절반이 대통령을 욕하는 우리나라에서 소방공무원들은 대한민국에서 존경받는 유일한 공무원이나 다름없다.

소방관의 별명이 또 공무원계의 아이돌 아니겠나.

“지우야, 바쁜 거 아는데, 일단 광고 들어온 것 중에서 빠르게 확인해줘야 하는 게 몇 개 있어서 말이야. 못하는 건 못하더라도, 우리가 빨리 답을 해줘야 그쪽에서도 다른 사람을 뽑을 거 아니냐.”

장인호 사장의 말에, 함께 자리에 있던 이동수 실장이 두툼한 서류 뭉치를 꺼냈다.

“우어··· 많네요.”

“이것도 추린 겁니다. 대부업 광고나 변비약 같은 지우 씨 이미지에 안 맞는 광고 다 빼고 그중에서 급하게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 것만 모은 게 이 정도입니다.”

커피, 맥주, 치킨, 라면, 화장품, 휴대폰··· 거기에다가 신뢰의 이미지가 중요한 은행 광고까지 있었다.

“회사 차원에서는 지우 씨가 광고 많이 찍으면 좋겠지만, 우리 하루 이틀 할 거 아니잖아요. 이제부터는 제대로 이미지 관리를 해줘야 하는 시기고요. 그래서 저희 생각은 커피 광고 하나랑 은행 광고까지 두 개만 빠르게 찍는 게 어떨까 합니다.”

이동수는 서류 뭉치에서 두 개의 서류를 뽑아서 내게 주고, 남은 서류를 다시 챙겼다.

“어? 이거 근데, 예전에 했던 커피랑 다른 커피네요.”

“네. 정확하게는 같은 회사 신제품이에요. 신제품 런칭하는데 전속 모델로 쓰고 싶다고 오퍼가 들어왔습니다.”

“아··· 렉심 레드 모카···”

“크··· 옛날 생각나네요. 커피차 불러서 진짜 지우 씨랑 같이 커피 어마어마하게 뽑았는데. 그게 벌써 1년 전이네. 역시 커피 하면 이지우죠. 하하”

이동수 실장이 내 로드매니저로 일을 할 때, 나는 커피 뽑고 이동수 실장은 커피를 나르고 했었다.

잠시 옛날생각을 하던 이동수가 다시 서류의 한 부분을 집으며 말했다.

“계약기간은 1년이고요. 그리고 예기성 선생님과 커피 광고 찍었을 때 매출이 많이 올랐나 보더라고요. 커피 회사에서는 안전한 모델을 쓰고 싶겠죠.”

내가 생각해도 무리 없는 전략이다. 이미 소비된 나의 ‘바리스타’의 이미지를 다시 사용하는 것에는 크게 거부감이 없다. 어차피 조연이었던 배역. 내가 다시 커피 광고가 나와도 지겹다는 인상은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커피 광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은행 광고가 들어온 건 진짜 의외다.

일단 은행광고 자체를 잘 하지 않는다. 한다고 해도 모델은 보통 오랜 시간 연예계에 활동하면서 잡음이 없고 이미지가 좋은 연예인을 쓴다.

은행만큼 신뢰의 이미지가 중요한 회사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수 씨 생각에는 일단 급하게 해야 하는 광고는 커피 광고와 은행광고 이 2개다?”

“네. 우리가 생각하는 건 그렇습니다. 지금 지우 씨 이미지는 지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드라마 방영하기 전에 떴던 기사들이 지금 드라마 흥행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거든요.”

“하하. 기부했던 내용 말하는 거죠?”

살짝 웃었다. 내가 만든 내 가치를 모를 리가 있나.

이동수는 내가 쑥스러워 웃는 것인 줄 알고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네. 봉사활동 했던 내용도 있고, 이정건 씨랑 기부했던 내용도 있고, 직접 아동극에 출연했던 내용, 서울시와 경기도에 티켓 기부했던 내용까지 다시 화제가 되고 있어요. 그쪽으로 우리 홍보팀이 약간 양념을 치긴 했지만, 일단 화력 자체는 진짜입니다.”

그러면서 내게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이게 지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는 지우 씨 검색량이랑 연관 검색어에요. 보시면 일단 드라마가 시작된 이후로 꾸준하게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서 머물고 있어요. 함께 검색되는 키워드는, 기부, 아동극, 소방대원, 박현주, 봉사활동 등 인거 보이시죠?”

이동수가 내민 종이에는 내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온 시간대와 순위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쪽에는 함께 검색된 키워드들이 함께 적혀있었고.

“네··· 긍정적이네요.”

“긍정적인 것 뿐만아니죠. 이정건 씨랑 업치락 뒤치락 하고 있는데 초대박 난 거죠.”

확실히 자료만 봤을 때 이정건보다 내가 앞서는 시간대가 더러 있었다.

지금 당장의 인기는 몰라도, 화제성 만큼은 지지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거기에 이번에 출연했던 드라마 솔직히 대박 났잖아요. 상승세가 안 꺾이면 10%도 무난하게 찍을기센데. 드라마에서 나오는 이미지도 아주 좋아요. 열정 넘치는 소방대원,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소방관. 거기에 기존에 가지고 있는 사랑꾼 연하남 이미지까지. 이게 또 신뢰랑 연관된 거거든요. 은행 광고랑 지우 씨랑 시너지도 좋을 거라고 봅니다.”

이동수 실장이 다시 보인다. 우락부락한 외모와 다르게 분석력이 상당하다. 김주하가 후임을 제대로 키워놓고 갔네.

그때였다.

“지우야.”

여태껏 가만히 있던 장인호 사장이 무게를 잡고 내 이름을 불렀다.

“[응답하라 119] 방영하는 중에 광고 나가려면 조금 스케줄 타이트하게 잡힐 거야. 물론 바쁘고 힘들겠지. 근데 이거 광고가 조금만 잘 뽑혀 나와도 너한테도 크게 이득 보는 장사 하는 거야.”

열설적으로 나를 설득하는 이동수 실장과 장인호 사장.

아··· 이 사람들 혹시 계약서 조항에 있는 거부권 때문에 이러는 건가?

좀 떴으니까 일 안 할까 봐?

하기사 장인호 사장과, 이동수 실장이 생각하는 성공 공식을 무시하면서 활동했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회사가 추천하는 작품 혹은 티브이 쇼 중에서 내가 한 게 하나도 없었다. 그들이 생각했던 방식을 모두 뒤집고, 내가 하고 싶은대로 했다.

실제로는 미래의 지식으로 한 것이지만. 회사에서 봤을때, 내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되는 성공. 두 사람이 조심스럽게 이야기 하는 이유를 알 것같았딘.

하지만 오해다.

나 광고 좋아한다.

광고도 연기니까.

그동안 [악의 기록] 때문에 안 들어와서 못했지.

“스케줄 잡아주세요.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죠.”

표정이 확 펴지는 두 사람.

“거봐, 동수야. 지우가 얼마나 똑똑한데 이거 할거라고 말했지!”

웃으며 말하는 장인호 사장.

나는 이 두 광고 건으로, 이런 부분에서는 회사가 나보다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장인호 사장과, 이동수 실장의 판단은 정확했다.

수 많은 광고 중에서 회사가 선택한 은행과 커피 광고.

두 광고는 각각 광고계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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