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녀를 위해 연기하라-88화 (89/121)

88. 개화

“이거 무슨 상황인가요?”

일부러 자리에 앉지 않고 물었다.

방창익 얘는, 쌈박질한 애들 화해시키는 선배 노릇 뭐 그런 거 하고 싶은 건가.

하··· 왜 안 해도 되는 짓을 해서 욕을 먹으려고 하지.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꽉 찼다.

잘 지내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잘 지낼 수 있지.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면, 혹은 진짜로 알고 보니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지 않나.

대본리딩에서 분위기 곱창나서 배우들끼리 서먹서먹한 상태다. 카메라 앞에 서서 감정을 나눠야 하는 배우들이 그런 상태인데 제대로 된 연기가 나올 수 있겠나. 현실에서의 감정의 잔재는 어떤 식으로든지 카메라 안에서 티가 나게 돼 있다.

그게 나도 예외는 아니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받아주는 사람이 티를 내면 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이렇게 촬영장 분위가 좋지 않을 때 필요한 게 배우로서의 카리스마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있겠지. 예기성 선생님 같은 경우에서는 경력이나 나이에서 나오는 경험일 것이고, 이정건 선배 같은 경우에는 성실함 그 자체가 카리스마가 되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은 소화할 수 없는 그 부지런함은 누가 봐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실력까지 갖추었으니 주변에서 따라가게 되는 것 아니겠나.

자연스럽게 그 사람을 따를 수밖에 없게끔 하는 사람 특유의 분위기나 무게감. [응답하라 119] 촬영장에서는 그런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카리스마를 보여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 중에서, 내가 휘두를 수 있는 무기는 압도적인 실력밖에 없고. 그런 실력을 보여주면서 최대한 주변과 거리를 두는 중이었다.

데뷔 2년 차도 하는데 너희는 이것밖에 안되냐?

꼰대 짓 하려면 실력부터 쌓고 와라.

이런 걸 현장에서 보여주면서 분위기를 잡아나가는 중이었다.

그런데 지금 다 같이 화해하고 하하호호 하자고?

작품에 도움 안 되는 짓이다.

“일단 앉아요 지우씨. 다 구웠는데 먹으면서 이야기합시다.”

‘꼬로로로록’

내가 앉을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에 로드매니저인 김수호의 배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방창익이 일어나 김수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에헤이, 이지우 씨. 일단 앉아봐요. 잠시면 됩니다. 매니저 분도 오늘 온종일 힘드셨겠구만. 우리가 무슨 철천지원수도 아니고 캐스팅 돼서 이 드라마에 온 거 아닙니까. 지우 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잠시만 앉았다가 가요.”

“하아···”

“이 친구도 이 친구지만, 나도 할 말이 좀 있어요.”

방창익이 같이 온 배우를 보고 말했다.

일단 못 이기는 척 앉았다.

이대로 돌아서 나간다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내가 앉은 이유는 다름 아닌 이정건 때문이다.

이정건 선배와 두 작품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주도적으로 촬영장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 이건 전생의 나도 못 따라가던 부분이다.

겉으로는 밝고 서글서글한데, 뒤에서는 누구보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하는 모습을 주변 사람이 다 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알 수 있지 않겠나. 거기에 촬영장에서 수없이 리테이크 하면서 작품의 질을 올리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는 모습까지.

거기에 더해 그정도 커리어와 실력을 갖추고도 아직 촬영장에 가장 먼저 도착한다. 그러곤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스태프건 배우건 먼저 다가가서 자기 사람으로 만든다.

어렵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스태프들 한테 ‘커피 한잔할래요?’ ‘애 잘 커요? 씨월드에서 봤어요 애기 너무 예쁘더라’ 딱 이 정도. 말 몇 마디로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또 자기 사람을 잘 챙긴다.

저런 식으로 다가오는 탑배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무명시절에 스태프들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한 그의 생존법이라고 말하지만, 지금까지 이어가는 거 보면 그의 인성이 맞다.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작년 백룡영화상. 박정태의 꼬장을 막아주면서 처음 봤다. 딱히 안면도 없던 나를 위해서 먼저 나서서 박정태를 막아주지 않았던가. 그 당시 나와 이정건은 같은 작품을 한다는 인연밖에 없었는데도 말이다.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이정건의 사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렇게 이정건과 경쟁을 하는 사이임에도 그가 생각나는 걸 보니.

“사이다라도 한잔해요. 미안 한데 우리는 소주 한잔할게요.”

어색하게 술병을 들어 잔을 채우는 방창익. 옆의 배우는 불편한 듯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이름이 김환동이라고 했던가.

방창익이 채워놨던 소주를 입에 털어놓고 민망한 듯 말했다.

“지우 씨, 일단 갑자기 이렇게 불러냈는데 말도 없이 이 친구랑 같이 와서 미안해요. 원래는 이 친구랑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내가 그때 이지우 씨한테는 제대로 사과를 못한 것 같더라고. 이 친구 사과도 시킬 겸, 나도 같이 지우 씨한테 사과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이거 뭐지? 했었다. 솔직하게 사과부터 하는 모습이 의외였다.

만약 너도 잘못했고, 얘도 잘못했으니까 서로 사과하고 좋게좋게 넘어가자.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더 안 들어 볼 생각으로 앉은 자리다.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해야 주고받는 거니까. 일방적인 이해를 강요한다면 참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방창익의 첫마디를 듣고 보니 내가 이 사람에 대해 좀 오해하고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변명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이전 작품이 대본리딩 전날에 끝났는데 진짜 바빴어요. 하루하루가 쪽대본은 기본이고, 촬영장 눈 내린다고 갑자기 세트촬영으로 바뀌어서 계속 지연됐거든요. 그래서 대본리딩인거 뻔히 아는데도 준비를 제대로 못 했어요.”

“이해합니다. 최근 눈이 많이 왔었죠.”

“네, 눈이 많이 왔었죠. 근데 이게 내가 열심히 안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더라고. 눈이 온다는 이유를 들면서 그냥 열심히 안 한 거더라고. 대본리딩날에 이지우 씨를 보는데 참··· 그렇더라고요. 내가 20대 때 저렇게 열심히 한 적 있었나? 저 정도로 준비해서 현장 나온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 하참··· 그런 생각이 드니까 너무 부끄러웠어요. 나보다 대사도 두 배는 많은데 그걸 다 준비한 지우 씨 보고 내가 참 대충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고요.”

다시 소주를 자신의 잔에 붓고 쭉 마시면서 말을 이었다.

“크으. 물론 처음에는 나도 좀 그랬지. 사람인데. 나 보라고 일부러 저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 꼭 저런 식으로 무안을 줘야 되나 싶기도 하고.”

“방창익 선배를 보고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 알아요. 분위기가 좀 그랬지. 그런데 뭐 우리가 월급쟁이인가. 짬순으로, 경력순으로 줄 세워서 꼰대 짓 하게. 이 바닥이 원래 인기가 전부 아닙니까. 줄 세우려면 인기로 줄 세워야지. 인기 많으면 형님이고 누님이지. 실력이 아니라 인기. 그런데 요새 후배들 보면 그게 따로인 줄 알더라고. 실력이 없어도 인기만 많으면 된다고 생각하더라고.”

“풉.”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저 소리가 진짜 꼰대같은 소리가 맞는데, 나도 꼰대라서 그런가 어느정도 공감이 갔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인기든, 실력이든 자영업자들이나 마찬가지인데 줄을 왜 세우나. 잘못된 관행이다.

“웃기죠? 나도 그래. 근데 실력이 있어야 인기가 따라오는 거잖아. 사실 나는 이지우 씨가 처음에는 그냥 인기만 많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미안 한데 내가 이지우 씨 작품을 하나도 못 봤거든. 진짜 최근에는 바빠서 다른 걸 볼 틈이 없었어요. 실력 없이 인기 있는 사람들도 1년은 해먹으니까. 이지우 씨도 그런 부류 사람인 줄 알았지. 그런데 대본리딩에서 아닌걸 보여준 거지. 대본리딩날 충격받아서 퇴근하고 이지우 씨 작품 다 찾아봤어요.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지. 아씨··· 다시 생각해도 쪽팔리네. 이지우 씨 내가 한 7~8살 많긴 한데 형님이라도 불러도 될까요?”

“아뇨.”

“어우 다행이다. 진짜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으면 뻘쭘할 뻔했네.”

방창익의 말을 계속 듣고보니 이 사람한테도 이정건과 예기성이 보인다.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화법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돌아보면서 상대를 본다. 그리고 편하게 해준다.

대본리딩 날 왜 그렇게 많은 배우가 그의 주변에 많이 몰려있었는지 알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왜 준비가 안 돼 있는 방창익을 비난하기보다 그를 걱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전생에 가장 못 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얌마, 너도 사과해. 내가 너한테 그러지 말라고 했지. 잘하는 사람 보면 옆에 붙어서 뭐라도 하나 배우려고 해야지. 어! 몇 년 먼저 데뷔했다고 꼰대 짓이나 하고. 이지우 씨 요새 화제성 좋잖아. 우리 같이 애매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잘 묻어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라고 인마.”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웃기게 말하는 방창익.

그렇게 그날의 일을 우스운 옛날 일로 만들어 버렸다.

나도 그냥 웃어버렸다. 동호회나 학교가 아니지 않나. 쓸데없는 감정싸움으로 작품을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한참 말이 없던 김환동이라는 배우가 입을 열었다.

“미안합니다. 지우 씨. 저도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네요. 아니 모른다고 하면 너무 무책임하고. 질투 때문입니다. 후··· 말하고 나니 후련하네요. 저보다 늦게 데뷔했는데 잘 나가는 후배를 보니까 조급함에서 오는 열등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막상 현장에서 보니까···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많이 배웠습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그때 급 운운했던 거.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급 나누는 걸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데 대본리딩장에서 솔직히··· 어수선하고 준비 안 된 모습을 보고 좀 화가 났었습니다. 그런 의미로 급을 말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날 감정이 앞서 실수했던 부분이다.

내 의도가 어떻든 간에 듣는 사람 처지에서는 다르게 받아 드릴 수 있으니까.

내가 말하고자 했던 의미는 준비 안 된사람들의 수준을 비꼬고자 한 것이었지, 연예인들의 출연료를 나누는 그런 급을 말한 건 아니었다.

“아뇨, 사실 뭐 솔직하게 우리끼리 까고 말하면 틀린 말도 아닌데요 뭘. 벌써 커피 광고도 찍으시고 영화도 주연으로 700만 찍으시고. 급이 다르긴 하죠.”

“791만입니다. 정확하게 791만 8000명.”

“네?”

“거이 800만이라고요. 청불영화 최초.”

“푸흡!”

옆에서 방창익이 참지 못하고 웃었고, 서로 사과하느라 어색해진 분위기가 한결 풀어졌다.

“근데 진짜 그런 의미는 아니었어요. 급이라는 게 있나요. 두 분 다 앞으로 저보다 훨씬 잘 되실 수도 있고, 저도 앞으로 자빠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맥컬리 컬킨(나 홀로 집에 주인공)은 8살에 세계적인 배우가 됐지만, 이후에 이렇다 한 작품이 없고, 모건 프리먼은 30년 동안 무명 생활을 겪은 다음 대배우가 되지 않았습니까.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저는 제 시간을 일찍 만난 것뿐이고요.”

스스로 말하면서 약간 놀랐다.

머릿속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이 말하면서 정리되는 느낌이랄까.

사실 나의 시간을 일찍 만난 게 아니라, 나의 시간을 다시 만난 것뿐이다.

다시 사는 2회차 인생인데 잘 하는 건 당연하지. 신의 장난처럼 얻은 기회. 그걸로 유세 떨면서 다른 배우들 기죽일 거라고 죽기 살기로 대본을 끼고 살았나 하는 현타도 좀 왔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사람들을 데려갈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실력은 실력대로 보여주고,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주변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다.

그래, 연기 하자. 배우가 연기를 해야지. 왜 기싸움을 하고 앉았냐.

그런 기싸움에 에너지를 낭비할 바에, 현주나 어머니에게 더 신경 써야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좀 더 편해진 술자리.

서로 간에 찌질함을 인정하고 솔직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니 그러면 지우 씨는 [악의 기록] 끝나고 왜 전혀 활동 안 했던 거예요?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씹어대던데.”

“전혀 활동을 안 했던 건 아니고, 아동극하고 있었어요. 아동극이다 보니까 [악의 기록]에서 오는 연쇄살인마 이미지 때문에 작품에 피해가 갈 것 같아서 비공개로 진행했던 거구요.”

“앵? 아동극? 연극도 해요?”

“네. 그 아동극의 흥행이 저한테는 정말 중요 했거든요. 제가 그 아동극에 조금 투자하기도 했고, 투자금액을 돌려서 다시 표를 구매하는 방식으로 고아들이나 결손가정에 기부하기도 하다 보니까 꼭 흥행했으면 좋겠더라고요. 사실 여자친구의 첫 작품이기도 했고요.”

“이지우 씨 진짜 좋은 일 하시네. 나도 기사보고 이지우 씨 싸가지 없다고 엄청나게 욕했었거든요? 직업의식 없이 팬서비스 너무 안 해주니까. 내가 오해했네. 이런 걸 기사 써야 되는데, 디스패치 뭐하냐 진짜.”

“아동극 때문에 어디 말도 못하고 엄청나게 답답했겠네요. 근데 진짜 급이 다르긴 다르네. 영화가 그 정도로 흥행했는데 그거 다 포기하고 아동극이랑 기부···”

두 사람이 진짜 놀란 듯이 말했다. 그리고 방창익이 한 번 더 거들었다.

“어? 그럼 [응답하라 119] 준비할 때 나처럼 두 작품 같이 준비했다는 거네요? 와, 오늘 이지우 씨 나 진짜 부끄럽게 만드네. 환동아 술 한 잔 줘봐라. 먹고 죽어야겠다.”

이후로는 나도 자리가 편했던 것 같다.

물론 이런 술자리 한 번으로 지난 일이 없었던 일이 되지 않겠지. 좀 더 취하면 오늘 일 다 까먹을 수도 있고. 고작 두 사람이 바뀐다고 촬영장 분위기가 달라지지 않을 거다.

다만 내가 어떤식으로 촬영에 임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힘 좀 빼자. 그리고 너무 빡빡하게, 내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지 말자.

돌아가는 차 안, 운전하는 김수호에게 부탁을 했다.

“수호 씨. 커피차 좀 수배해 줘요. 간만에 촬영장에서 커피 좀 뽑게. 한 100인분? 그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고 해주세요.”

***

오늘은 집이 아니라 작업실로 들어왔다.

청운 엔터테인먼트에서 현주에게 개인 작업실을 만들어줬지만, 이게 단점이 회사 사람들이 다 퇴근하고 나면 무섭다고 한다.

큰 사무실에 현주 혼자 달랑 있는 거니까. 그래서 퇴근 시간 이후에도 글을 좀 더 쓰고 싶으면 내 화실에 와서 글을 쓴다.

마침 오늘 현주도 작업실에서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집으로 가지 않고 화실로 왔다.

[악의 기록]이 끝나고 자주 만나긴 했지만, 오늘 그 술자리를 끝내고 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내가 그동안 또 너무 대본만 끼고 살았나 싶기도 했었다.

현주가 건강하게 내 옆을 잘 지켜주고 있는 게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또 익숙해져 버리면 당연해져 버린다. 그리고 오늘 새삼 내가 또 현주를 당연하게 대하진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동극이 끝나고 원래 둘이서 좀 멀리까지 여행 가자고 한 약속도 현주의 새 작품 집필과, [응답하라 119]의 촬영 때문에 결국 못 가게 됐었다.

그때는 둘 다 바쁘니 어쩔 수 없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응답하라 119]의 촬영이 끝나고 나서 돌아오는데 유달리 후회가 되는 거였다.

따지고 보면 흥행성이나 작품성이 좀 떨어지더라도 차후에 제작 될, [응답하라 112], 이나 [응답하라 111]를 하고 좀 더 휴식기를 가지는 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무슨 좋은 일 있어?”

“좋은 일? 왜?”

“그냥 얼굴 좋아 보여서. 좋은 일 있나 했지.”

좋은 일 있지. 오늘같이 현주에게 제대로 못 해줘서 후회스러운 날에, 그 후회를 만회할 수 있게끔 니가 여전히 내 옆에 있으니까.

“좋은 일? 니가 밤늦게 내 작업실에서 혼자 있는거 정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

“어?”

내가 생각했던 반응은 이게 아닌데···

“읽어봐 초고 나왔어.”

눈을 반짝거리며 내게 내미는 두툼한 각본.

쩝··· 이건 진짜 아닌데.

현주가 내게 주는 각본을 받아들였다.

[가제 : 무엇보다 찬란한]

몇페이지를 읽고, 이후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몇 년전 꽃봉오리와 같다 생각했던 그녀의 재능.

그녀의 재능이 개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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