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시기가 좋다
유수영 작가와 류창진 PD는 몇 번의 회의 끝에, [악의 기록]을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았다.
류창진 PD는 [악의 기록]을 이전에 봤었다. 그것도 TNN 기자에게 온 시사회 초청장에 꼽사리 껴서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봤었다. 캐스팅 건으로 이지우와 연락이 도저히 안되서 얼굴보고 이야기 하고자 찾아간 것이다.
헌데, 그마저도 이지우가 시사회장에서 불참하는 바람에 실패.
유수영 작가가 아직 [악의 기록]을 보지 않았기에, 배역과 이지우를 다시 한번 매칭 해볼 요량으로 같이 온 것이다.
"힝··· 괜히 봤어. 나도 누아르나 써볼까요. 누와르 쓰면 이지우 씨가 출연해 줄까요? [폭력의 사슬]이나, [악의 기록]같은 드라마?"
"그냥 하던 거 하세요."
"저도 그냥 해본 소리였어요. 이지우 씨만 캐스팅되면 다른 배우들은 좀 여유롭게 캐스팅할 수 있는데."
"그러게요. 제가 봐도 주인공 여섯 명 중에 이지우 씨가 캐스팅되면 다른 캐릭터는 큰 부담이 없겠는데. 하···"
답이 없는 대화 끝에 나온 결론이 돌고 돌아 이지우였다.
유쾌하고 철이 없는 신입 소방관의 모습.
비슷한 나이대의 배우 중 이지우 정도의 무게감이나 존재감을 표현할만한 배우가 없었다.
생명을 다루는 소방관으로서 고뇌나 고민을 깊이 있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저승 카페]에서의 '강림차사'와 같은 유쾌하고 밝은 모습도 필요했다.
두 상반된 모습의 낙차효과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선 보통의 연기력으론 힘들다는 두 사람의 판단이었다.
"청운 쪽에선 연락 없죠?"
"네··· 작가님. 혹시 현주 양은 연락 안 되나요?"
"연락해봤죠··· 현주도 지우 씨 다른 작품 한다고 바쁘다고만 하네요."
"이상하네요. 제가 다 알아봤는데 지금 이지우 씨 들어간 작품이 없는데···"
류창친 PD는 이미 이지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었다. 아는 PD들과, 방송사 작가들 그리고 굵직한 제작사 모두. 헌데 그 어디에서도 이지우를 캐스팅했다는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거기에다 이지우의 개인 휴대전화에 몇번 전화나 문자를 보내봤으나, 돌아오는 연락은 없었다.
"이지우 씨 캐스팅 안 되면 다른 사람 알아볼까요?"
"언제는 이지우 아니면 안 된다고 해놓고는."
"안 되죠··· 안 되는데 어쩔 수 있나요. 지금 몸도 딱 예쁘게 만들어졌고, UDT출신 구급대원 배역에 딱인데. 괜히 이지우 씨 영화 보고 배우 보는 눈만 높아진 기분이에요."
"좀 기다려 봐요. 아직 시간은 넉넉하니까요."
애써 류창진 PD가 유수영 작가를 위로해보지만.
"어휴··· 시간이 넉넉하면 뭐해요. 시간 지나면 이지우 씨가 출연해 준대요? 악의 기록 500만 명 넘었다잖아요. 그런 사람이 뭐하러 우리 드라마 오겠어요. 종편채널 드라마를."
"아니 지금 우리 회사 무시하는 겁니까?"
"네···"
"잘했습니다. 무시하셔도 됩니다. 사실 저도 회사 괜히 옮긴 거 같아요. 휴···"
최근 류창진 PD도 회사를 옮긴 것에 대해서 후회가 들었다.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기대하고 왔건만, 드라마국 자체가 체계가 없어 드라마 제작 자체가 가능할까 싶었기 때문이다.
쓸만한 레퍼런스가 없는 게 아니라 아예 레퍼런스가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거기에 더해 류창진 PD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이지우를 캐스팅하기가 좀 민망했다. 종편 드라마 주연급.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캐스팅이 됐다면 딱히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이지우가 찍은 마지막 드라마가 공중파 드라마라고는 해도 조연이었으니까.
최근 작품에서 영화 단독 주연을 맡았으나, 이수한 감독과 친분으로 얻었다는 루머도 있었고, 드라마판과 영화판은 원래 따로 돌아가니 한번 찔러나 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지우의 몸값이 너무 뛰어버렸다.
단독 주연으로 한 [악의 기록]이 역대 청불 영화 기록을 모조리 갈아치우면서 흥행 중이니까.
단순히 흥행 정도가 아니었다. 리메이크 판권에 벌써 여러 해외 제작사가 경쟁을 하는 중이고, 일본 중국 태국에 배급계약까지 끝났다고 하니, 가히 신드롬에 가깝다.
그리고 영화 흥행의 중심. 누가 뭐래도 단연코 이지우였다.
그동안 이지우가 보여줬던 연기와 궤를 달리하는 파격적인 연기. 우스개 소리로 이정건을 보러 영화관 갔다가 이지우에게 반해서 돌아온다고 할 정도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한숨만 내쉬면 먹다 남은 팝콘을 으적으적 씹었다.
그대 류창진 PD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류창진은 다급하게 휴대폰을 열었다.
"어? 네! 채 실장님. 어쩐 일이세요."
"네? 지우 씨가 극본 관심을 가진다고요? 미팅 한 번 하자고요? 네네!"
옆에서 유수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류창진을 바라봤다.
류창진이 전화를 끊고 유수영에게 말했다.
"지우 씨가 [응답하라 119] 건으로 미팅 한번 하자고 하는데요?"
"네? 정말이요?"
***
[응답하라 119]
전생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다.
일반 시청자의 측면에서 봤던 [응답하라 119]는 말 그대로 재미있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드라마.
하지만 지금 다시 이 대본을 봤을 때의 느낌은 시기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드라마도 말이다.
소방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 이런 유의 드라마는 공중파 드라마에서 방영되기 힘들다. 공중파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기승전 사랑 이야기.
사랑이야기가 나쁘다는게 아니다. 어떻게 나쁘다고 할 수 있겠나.
다만 메디컬 드라마에서도 연애하고, 군대 드라마에서도 연애하고, 수사 범죄 추리극에서도 연애하고 막장 드라마에서도 연애하고···
일반 가정에서 리모컨에 대한 권리를 가진 게 대부분이 중장년층의 여성이고, 이런 주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소재가 연애라는 것은 나도 안다.
그게 나쁘다기보다 그게 전부라서 문제다. 스킨만 다르게 씌운 사랑이야기. 어느 채널을 틀어도 비슷한 사랑이야기의 변주.
향후 종편 드라마는 바로 이 부분을 철저하게 파고들었고, 성공한다.
철저히 장르 중심의 드라마.
범죄 액션 스릴러로 시즌 2편과 스핀오프 영화까지 만들어졌던 [무법자 도시].
수사물와 타임트립을 섞어 만든 [신호]
회사원 드라마. 현실감 넘치는 소재와 연출로 직장인들의 공감을 일으켰던 [완생].
좀 더 넓게 생각해서 미래의 OTT(넷플릭스, 와챠 티빙 등) 서비스까지 본다면, 사극에 좀비물을 합친 [왕국], 데스게임 유의 [문어 게임]까지 장르적 재미를 담은 드라마가 대세가 된다.
이런 시대가 요구하는 흐름과 지상파 3사가 잡고있는 비좁은 시장에 맞춰 종편드라마가 가야 하는 방향을 [응답하라 119]가 보여준다.
그 결과 연애라는 키워드를 줄이고, 철저하게 장르적 재미에 집중한 종편드라마들은 지상파 3사의 틈을 뚫고 드라마 시장에서 안착하게 된다.
소방서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드라마는 재난이나 재해에 맞서는 숭고한 인간의 모습이라던가, 심각한 방화 범죄를 다룬다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캐릭터에 집중한다. 소방서의 구조대원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화재현장에서 후배를 잃은 트라우마를 간직한 고참대원.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소방대원이 된 대원. 구하지 못한 요구조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대원 등.
밝고 경쾌한 톤의 드라마 분위기와 상반되는 묵직한 주제로 균형을 맞춘 명작이었다.
과거 [저승 카페]처럼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일상과도 일맥상통한다. '힐링'과 '일상'을 재미.
회사의 시청각 자료실에서, 4화까지 나온 [응답하라 119]의 각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3번 정도 읽었다.
역시 이건 내가 하는 게 맞다.
그리고 내가 하면 다를 것이라 확신이 들었다.
"지우 씨? 류 PD님 오셨어요."
"미팅 회의실에서 하죠? 갈게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해주세요."
일부러 류 PD를 회사로 불렀다. 내가 뭐 꽁해 있는 스타일은 아닌데, 이전에 [저승 카페]에서 내가 직접 찾아가서 배역 협상을 하지 않았나.
그때의 복수를 하고자 했던 건 아니었다. 디만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저승 카페] 이후로 1년이 안 지났는데, 그때와 나는 위치가 다르니까. 그런데 마냥 신인배우 취급하면 곤란했다.
내가 진짜 신인도 아니고 내 가치를 모르진 않으니까.
보던 대본을 정리하고 회의실로 가니, 이미 류창진 PD와 유수영 작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우 씨, 오랜만이에요."
"지우 씨, 왜 이리 전화가 안 돼요? 엄청나게 연락했는데. 잘 지냈죠?"
"네, 잘 지냈습니다. 우리 초면도 아니고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유 작가와 류 PD가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류창진 PD의 연락을 씹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악의 기록] 촬영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바빠서 연락을 못했고, 아동극쯤에는 일부러 받지 않았다.
그때가 딱 [악의 기록] 개봉 준비할 때였거든.
드라마에 출연 계약을 하더라도 [악의 기록]이 개봉 이후에 하면 좀 더 주도권을 쥐고 계약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판단이었다.
전생에 [악의 기록]이 약 500만 명 정도 되는 성적을 냈는데, 나와 이정건이 추가된 [악의 기록]인데 그보다는 훨씬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고, 그 생각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22일만에 전생의 기록을 갈아치웠으니까.
"[응답하라 119] 읽어 봤어요? 어때요 괜찮죠?"
"어휴 당연하죠. 누구가 쓴 작품인데요. 여전히 좋던데요. 이런 대본 주셔서 정말 영광이에요."
유수영 작가를 살짝 바라보며 말했다.
"하하, 그러면 어떻게 계약서 만들어 올까요?"
내 말에 얼굴이 확 피는 류창진 PD.
"그전에요 피디님. 제가 이 작품 하는 거 다른 건 걱정 안 되는데 딱 하나 걱정되는 게 있어요."
"뭔데요?"
"대본만 좋아요."
"네?"
인상이 확 구겨지는 류창진 PD.
[응답하라 119] 흥행 이후 유류상종 콤비는 [응답하라 112], [응답하라 111] 등 경찰과 국정원의 일상을 담은 드라마까지 대 히트시킨다.
종편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유연한 편성.
모든 응답하라 시리즈 중,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하는 작품은 [응일]이다. 하지만 가장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받는 작품은 아이러니하게도 [응구]다.
TNN의 최초의 드라마 [응구]. 그만큼 제작 여건이 부실하다. 그게 화면 넘어서까지 보일 정도니 말 다 했지.
전생에 [응구]를 시청하면서 보았던 허술한 세트, 배우들의 발연기, 소품의 고증 등. 문외한인 내가 봐도 완성도에 문제가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드라마를 각본의 힘만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그만큼 유수영의 능력이 있다는 이야기고.
"사실 이 각본으로 KBC나 SBC에서 제작한다고 했으면, 큰 고민 안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TNN이잖아요. 드라마 제작 역량이 얼마나 되는지 솔직하게 감이 없네요."
"그··· 렇죠."
"피디님. 그렇죠가 아니라, 아니라고 하셔야죠. 할 수 있다고 해주셔야죠. 저 이 작품 하고 싶어요. 하고 싶어서 이런 말 드리는 거라고요."
어쩐지 내가 류 PD를 혼내는 모양새인데. 나도 이러는게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류 PD가 절대 연출적 역량이 딸리는 사람이 아니다. 이미 [저승 카페]로 증명되었으니까.
작품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다면, 외부적인 문제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갈팡질팡하는 상부, 드라마를 잘 모르는 CP, 거기에 모기업의 영향까지.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TNN이 드라마 판에 자리 잡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3년 뒤 [응구]보다 대본의 수준 자체가 떨어지는 [응일]이 전작의 흥행을 등에 업고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나는 그 꼴을 볼 생각이 없다.
그러기 위해서 류창진 PD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여기까지 불러와서 기를 죽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지우 씨가 뭘 걱정하는지 알고 있는데, 제가 회사를 충분히 설득해서-"
"어떻게요?"
"아무래도 처음 드라마를 찍는 우리 회사에 대해서 걱정 많은 거 저도 이해합니다.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고요. 하지만 드라마는 결국 각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를 믿고···"
"그런 뜬구름 잡는 이야기보다요. 저를 이용하세요. 네? 내 입으로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저 요즘 화제성 좋잖아요. 책임 CP한테 가서, 류 PD님이 한마디 하니까 이지우가 계약서 서명했다고 유세도 좀 떠시고요. 그리고 저 지금 SBC, KBC에서 온 대본 다 까고 TNN들어가는 거에요. 이 정도면 PPL많이 땡길 수 있지 않나?"
외부적 요인에 휘둘리지 않도록 류창진 PD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런 류창진 PD를 활용한다.
그리고 공무원계의 아이돌이라 불리는 소방관.
예전의 [응답하라 119] 주연은 발연기에도 불구하고, 국민 소방관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이미지가 말도 안 되게 좋아진다.
그 결과 광고도 어마어마하게 찍었고.
[악의 기록]으로 경직된 내 이미지를 풀어주기엔, 이보다 더 좋은 배역은 없지 않을까.
드라마는 내 이름을 이용하고, 나는 드라마의 이미지를 이용한다.
이 드라마는 참 시기가 좋다.
***
최근 이정건은 다시 신인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다.
[악의 기록]에서 함께 호흡한 다른 배우들의 연기.
수십년의 연기경력에서 나오는 독보적인 아우라. 예기성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봤을때의 충격.
그리고 데뷔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예기성 못지않은 연기를 하는 이지우.
그 두 사람이 주는 자극은 이정건을 더욱 연습으로 몰아넣었다.
끝없는 대본분석과 연습, 그리고 영화시청.
오늘은 얼마 전 DVD를 발매한 [폭력의 사슬]을 틀어놨다.
그곳에서 완벽한 연기를 하는 자신과 10년 차이 나는 후배를 봤다.
그 후배를 보며 자꾸 자신의 10년 전과 비교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내, 지금의 자신과 그 후배를 비교해 본다.
역시 자신이 더 잘한다고 선뜻 말하지 못한다.
연기에 이기고 지고 가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이 바닥은 연기력과 관계없이 이미지와 인기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안다.
그래도.
그 후배와 같이 출연했던 [저승 카페], 그리고 [악의 기록].
둘다 조연과 주연을 나눠서 했던 작품들.
어떨 땐, 이정건이 주연으로, 어떨 땐 이지우가 주연으로.
경쟁상대라기 보다 동업자에 가까웠던 관계.
좋아하는 후배.
같이 연기하면 신뢰가 가는 후배.
그런 후배와 남자로서 한번 경쟁해 보고 싶다면 웃기고 유치한 생각일까.
'띠디디띡'
자연스럽게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오는 이정건의 매니저.
제집처럼 들어와 냉장고를 정리하고 옆에 앉는다.
"정건아, 전 작가가 연락 왔더라. 내년 봄에 하는 SBC 미니 할 생각 없냐고."
"전미도 작가? 에이, 너무 스타일이 올드해서 나랑 안 맞아. [악의 기록] 개봉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무슨 벌써 차기작이야. 그리고 나 차기작은 영화 할 거야. 영화 위주로 찾아봐주라."
"그래? 일단 너 휴식기 들어가서 당분간 작품 생각 없다고 할게. 그럼."
"어어."
전미도 작가. 시청률이 40% 이상 되는 대박 드라마를 두 편이나 쓴 왕작가. 하지만 최근 트랜드에 따라가지 못해 요즘은 주춤거리는 모양새였다.
그렇기에 이정건은 별 아쉬움이 없었다. 차기작은 주연으로 영화를 하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몇 분쯤, 커다란 티브이에서 이지우가 연기하는 모습을 감상하던 매니저가 말했다.
"크··· 이지우 연기 참 잘해. 계약 언제 풀리나 몰라. 그리고 이지우 걔 벌써 새 작품 들어간다더라."
"뭐? 어떤 거?"
비스듬이 소파에 기대있던 이정건이 매니저의 말에 상체를 바로 세웠다.
"류 PD, 그 양반 TNN으로 옮긴 거 내가 전에 말해줬지?"
"어."
"류 PD랑, 유 작가 두 사람이 하는 드라마였는데 내년 봄에 방영한다 그랬던가? 제목이 [응답하라 119]? 잘 모르겠고 하여튼 소방서 배경 드라마래."
"형, 아까 그 기획서 다시 줘봐."
"뭐? 어떤 거?"
"아까 그거. 전미도 작가 신작. 내년 봄에 들어간다는 거."
"엥? 너 영화 한다며?"
"계약서 다시 보여줘? 갑은 을과 활동에 관한 이견을 보일 때 갑은 을의 의사와 선택을 적극적으로-"
"아씨, 고만해 좀. 귀에 딱지 앉겠다. 자"
매니저는 한 손으로 귀를 파는 시늉을 하며 기획서를 내민다.
"형 이거 미팅 좀 잡아봐. 그리고 응답하라 머시기 방영 스케줄 좀 알아봐 주고."
이정건은 제대로 붙어 보고 싶었다. 주연, 조연이 아닌 드라마 대 드라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