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80화 (180/196)

최후의 보루

타이거 우즈를 초청 이벤트가 모두 끝난 경북 상주 세븐 브릿지 골프장.

이재민 사장은 오랜만에 딸과 라운드를 즐겼다.

부녀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부녀의 곁에는 이지은의 캐디이자 그녀와 미래를 약속한 박남수 프로도 함께 라운드를 즐기고 있었다.

“우승 안 해도 되니까 부담 갖지 말고 잘 해서 꼭 우승해라!”

“아빠! 그게 뭔 말이야?”

“하하핫! 말 해놓고 보니 좀 그렇긴 하네.”

누가 보기에도 즐거운 라운드였다.

“아빠! 꿈만 같아요. 제가 타이거 우드와 자선 경기를 하고, 그가 우리 골프장에 찾아오고! 생각할수록 윤재 오빠가 고마울 따름이에요.”

“정말 놀라운 녀석이야. 말도 안 된다 싶은 일들을 척척해내 버리니.”

세븐 브릿지 골프장 스왑. 52 Golf 창업. 이지은의 슬럼프 탈출. 이지은의 남편이 될 박남수 연결. 한국 최초로 타이거 우드를 초청한 것 까지.

돌아보면 기적 같은 일들의 연속이었다.

이지은과 박남수는 지난 5년의 세월을 생각하는지 말이 없었다.

“김윤재 사장 아이디어 듣고 있으면, 저세상 사람의 생각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타이거 우드 초청행사가 끝나고, 윤재는 52 골프의 사업 성공을 위한 비책을 쏟아낸 바 있다.

이재민은 지금도 윤재의 얘기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사장님! 우리 스크린 골프는 온라인으로 연결돼, 서울과 상주에 있는 친구들이 네트워크 플레이를 즐기게 될 겁니다. 2009년 서비스가 목표입니다.”

“사장님! 52 골프의 회원사인 전국의 CC에서 동창 최강자전을 개최하는 겁니다. 골프 방송과 협약 맺어 녹화 중계도 하는 거죠. 스크린 골프도 최강 친구모임을 찾아라 같은 이벤트나, 도전 52타 대회 같은 걸 개최할 수 있을 겁니다.”

“사장님! 52 스크린 골프와 온라인 골프 마켓을 결합시킬 생각입니다. 국내 최고의 골프 채, 의류, 악세사리, 용품 쇼핑몰을 만드는 거에요.”

“사장님! 지금은 부킹하려면 골프장 홈페이지에 개별 가입해야 하잖아요. 앞으로는 하나의 사이트에서 전국의 모든 골프장을 예약하게 될 겁니다. 이 모든 걸 2009년 말까지 해내겠습니다.”

다시 생각해도 저세상 아이디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이 윤재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는 게 아닐까 걱정됐다.

“내 머리는 DOS도 안되는데, 김윤재는 윈도우 비스타 수준이니....”

“예? 아버님? 뭐라구요?”

“아. 아닐세. 혼잣말 했네.”

처음에는 박남수를 듣보잡 취급하며 미워했던 이재민.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했다.

박남수에 대한 이지은의 사랑을 확인한 이재민은 결국, 그를 사위로 인정하게 됐다.

놀라운 변화 중 하나였다.

“아버님! 그런데 진짜 52 골프가 수조원의 가치를 갖게 될까요?”

“이번 건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나서 돌아보면 항상 윤재가 맞았거든.”

“아무리 그래도 믿기지 않습니다. 스크린 골프 회사가 센서 회사로 거듭나게 될 거라니!”

“김윤재 사장이 누군가? 커피 회사를 디즈니 같은 회사로 만들어 버린 사람 아닌가?”

각종 프로모션과 신규 사업에 대한 구상을 이재민에게 들려줬던 윤재.

마지막으로 센서사업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것으로 설파를 끝맺음 했었다.

“골프사업도 최고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52 골프는 센서사업의 강자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가속도 센서. 레이저 센서. 초음파 센서에 있어서 초일류의 회사로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이미 군산에 공장 부지를 매입하고 있어요.”

태화정밀의 김민기와 52 골프의 이재민의 공통점이었다.

함께 사업을 하고 있지만 투자는 주로 윤재가 부담한다는 점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지분율은 하락 하지만, 지분가치는 오히려 급상승 한다는 부분도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윤재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는 것 역시 두 사람의 공통점이었다.

◈          ◈          ◈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격랑 속에 O2그룹은 연일 떡락에 떡락을 거듭했다.

덩달아 오진탁 사장의 진상 짓도, 빈도와 강도가 동시에 증가하고 있었다.

태우건설 재무적 투자자에 대한 바이아웃 금액은 3만 2천원.

옵션금액의 절반도 안 되는 15,000원 언저리의 주가가 몇 달째 이어졌다.

바이아웃 옵션 행사에 대한 부담과 경기침체까지 겹쳐, O2 그룹 계열사의 주가는 연일 신저가를 갱신하고 있었다.

이 와중에 유독 선방하고 있는 계열사가 있었는데, 바로 오하루가 경영에 참가한 O2 엔터였다.

“오하루 상무가 아들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것을!”

“암. 여장부지. 여장부!”

그룹 계열사 직원들은 사석에서 오하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케이블 TV는 완전히 장악했어. 채널 돌리면 다 O2 엔터가 서비스하는 영화만 나오더라구!”

“재벌가 따님답지 않게 소탈한 성격이잖아. 그래서 사람들 취향에 맞는 작품이 나오는 모양이야.”

“음악방송은 어떻고? CD크기보다 작은 머리에서 어떻게 그런 강단이 나오는지. 회사에 대한 지분을 담보로, 차입한 돈으로 회사를 키우고 있잖아. 여장부는 여장부야.”

“과장님은 오상무님보다 머리가 두 배는 큰데, 왜 아이디어가 안 나오나요?”

“야! 내 대갈통 가지고 놀리지 말라고 했지?”

O2 엔터는 물론이고, 다른 계열사에서도 이런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귀국 3년 만에 케이블. 영화제작. 방송 콘텐츠 까지 영토를 넓힌 O2 엔터.

손대는 것마다 대박행진이었다.

뭐니 해도 2008년 O2 엔터의 대박상품은, 뮤직Q 채널에서 방송하고 있는 ‘트로트의 민족!’ 이었다.

전국적인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제 트로트의 민족 봤어. 펜타 시스터즈 그 아줌마들은 어떻게 그렇게 노래를 잘 하냐? 진짜 듣고 있는데 속이 뻥 뚤리더라.”

“가뜩이나 경기도 안 좋고 짜증나는 일만 있는데, 요즘 트로트의 민족 보는 재미로 산다니까.”

“나는 펜타 시스터즈 멤버들 중에 정다솜 그 여자가 제일 맘에 들던데. 박씨는 누가 맘에 들어?”

“정다솜은 너무 촌스럽게 생기지 않았나? 나는 섹시한 최향미가 좋던데? 목소리도 허스키 하고, 원숙미가 있지 않아?”

“조씨! 그렇게 안 봤는데 취향이 영 요상스럽구먼? 그 아줌마가 뭐가 좋다고?”

“트로트는 남자가 제 멋이지. 설민국 그 친구가 진짜지! 나머지는 상대도 안 된다니까!”

사람들이 2명 이상 모이면, 트로트의 민족에 대한 얘기가 반드시 나온다고 회자될 정도였다.

O2 계열사를 넘어 트로트의 민족은 국민 음악 프로그램이 돼 가는 중이었다.

1997년 IMF 당시 박세리와 박찬호가 국민들에게 위안을 줬다면,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에는 O2 엔터의 국민 예능 ‘트로트의 민족!’이 국민 힐링을 담당하고 있었다.

모두 오하루의 작품이었다.

◈          ◈          ◈

2008년 6월 28일 토요일.

윤재는 장식, 창진과 함께 올림픽 공원 체조 경기장을 찾았다.

국민적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의 민족’ 8강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윤재야! 친분관계를 떠나 객관적으로 봐도 펜타 누님들이 제일 잘 하지 않냐?”

“맞아. 어차피 우승은 펜타 시스터즈야. 네티즌들이 어우펜이라고 부르더라고!”

진도에서부터 인연을 쌓아 온 5명의 국악누님들.

그녀들은 소공례 할머님이 돌아가신 뒤, 윤재의 권유로 트로트를 시작했다.

무명시절 끝에 오하루의 기획인 ‘트로트의 민족’을 만나, 국민 트로트 누님으로 거듭나 있었다.

누님들은 8강전 공연에 윤재 일행을 초대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거지.”

“형! 어우펜이라니까. 해보나 마나야.”

O2 엔터의 뮤직Q 채널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8강전.

아줌마 부대를 끌고 다니는 설민국.

트로트 신동이라 불리는 이기호 등 쟁쟁한 경쟁자들에 이어, 펜타 시스터즈가 7번째 팀으로 무대에 올랐다.

“오하루 그 여자가 머리가 참 좋아. 지인 찬스 같은 꼭지를 중간 중간 넣어 주니까, 프로그램의 재미가 산단 말이야.”

8강전은 지인 찬스를 쓸 수 있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유명가수와 듀엣으로 노래를 불렀고, 그만큼 화제성이 높아질 수 있었다.

“누님들은 지인 찬스로 누굴 기용했을까?”

“멤버가 5명인데, 지인 찬스까지 쓰는 건 너무한 거 아니냐?”

“조용히 해요. 누나들 이제 곧 노래합니다.”

조명이 무대를 비추는 가운데, 국민 트로트 누님들로 재탄생한 펜타 시스터즈 누님들이 무대에 올라왔다.

“저희 팀은 지인 찬스로 오랜 친구인 에밀리 캠벨을 선택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에밀리 캠벨 잘 아시죠?”

펜타 시스터즈의 리더를 맡고 있는, 최향미 누님의 얘기에 객석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말 에밀리 캠벨이 펜타 시스터즈 서포터로 출격한다고?”

“진짜라면 역대급 캐스팅 아니냐?”

관객들의 술렁임 속에 최향미 누님의 멘트가 이어졌다.

에밀리는 펜타 시스터즈 누님은 물론, 오하루와도 인연이 깊었다.

에밀리 캠벨의 등장에 공연장은 떠나갈 듯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에밀리 캠벨을 트로트의 민족에서 보게 될 줄이야!”

“미쳤다! 에밀리 캠벨 같은 스타가, 피처링 하자고 한국을 찾다니? 말도 안 돼!”

“그런데 에밀리 캠벨 저 여자가 어떻게 한국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르지? 완전 한국사람 같은데?”

“너는 그것도 모르니? 에밀리 캠벨이 한국에서 국악을 배웠대잖아.”

“정말? 대박!”

“빌보드 여신은 클래스가 다르긴 다르구나!”

“뭔 소리야? 펜타 누님들도 에밀리 캠벨에 전혀 꿀리지 않는데.”

펜타 시스터즈 누님들과 에밀리 캠벨의 합동 공연은 8강전을 찢어버렸다.

완벽한 광란의 도가니 자체였다.

예선전부터 8강전까지 모든 무대를 통틀어 가장 압도적인 공연이었다.

케이블인 뮤직Q 채널은 순간 시청률 41%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찍기도 했다.

8강전을 마치고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는 누님들과 에밀리.

윤재 역시 가슴이 먹먹해지는 기분이었다.

“혜진이랑 선희도 와서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게. 혜진이가 임신 6개월만 아니었어도.....”

“아마 2명 모두 TV를 보며 울고 있을 거야.”

펜타 시스터즈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4강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          ◈          ◈

“그나저나 윤재 형. 차 안 바꿔? 형님 재산이 얼마인데 그랜저야? 최소 벤츠는 타야지?”

“하하하. 나는 차는 굴러만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그게 아냐. 형! 혜진이랑 강산이, 그리고 태어날 딸내미 생각해야지.”

“그랜저면 한국 최고의 차 아니냐?”

트로트의 민족 8강전 공연 관람을 무사히 마친 윤재 일행.

에밀리와 누님들은 당일 만날 수 없어서, 다음날로 약속을 잡았다.

성북구에 살고 있는 장식이형.

서초구에 사는 창진이를 차례로 바래다주고, 분당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빡 쌘 스케줄이었다.

“지하철 타고 간다니까. 괜한 고생이냐?”

“장식이 형! 재밌잖아. 남자 셋이서 드라이브도 하고. 크크크.”

“그나저나 윤재 너는 이사한 집은 마음에 들어?”

“응. 일단 넓고 사무실도 가깝고....”

3명이서 농담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남대교를 넘어서려는데 창진이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얘기했다.

“형! 저 여자 봐! 저 여자 O2엔터 오하루 아닌가? 야밤에 웬 선글라스?”

창진이가 가리키는 곳을 봤더니, 베엠베를 탄 채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오하루가 보였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오하루가 분명했다.

“공연 끝나고 퇴근하나?”

“그런 것 같은데?”

“저 여자가 요즘 여의도 증권가에서 핫 해!”

“왜 무슨 일 있어? 창진아?”

“저 여자 때문에 O2 그룹 시가총액이 15조를 버티고 있다는 거지. O2 엔터 성장성이 없었다면, 그룹 전체가 태우건설 리스크로 붕괴하고 말았을 거야.”

윤재 입장에서도 오하루의 존재는 딜레마였다.

비밀리에 떡락중인 O2 푸드의 지분을 사들였는데, 오하루 때문에 O2 그룹의 붕괴가 조금씩 늦어지는 것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오하루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으며, 다음 신호등에 도착했을 때였다.

“뭐야? 저거 오하루 차 아냐?”

“그새 창문을 올렸네. 어라? 왜 차에서 연기가 나지?”

창진과 장식의 얘기대로였다.

오하루가 타고 있던 베엠베에서 연기가 나는가 싶더니, 엔진룸 쪽에서 발생한 불길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응? 뭐야? 갈수록 불길이 커지는데? 저 비싼 차가 왜 저러는 거야? 뭐..뭐야? 저러다 큰 일 나는 거 아냐? 오하루 저 여자는 대피 안하고 뭐하는 거지?”

“야! 윤재야 운전하다 말고 어디가?”

경적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가운데, 윤재가 쏜살같이 오하루의 차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도와주세요!”

다른 사람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지만, 청력이 고도로 발달해 있는 윤재의 귀에 오하루의 외침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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