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쇼트 & 빅 엿
“악! 세상에! 누가 좀 살려 주세요.”
불길이 치솟기 시작한 베엠베 옆에 도착할 때 까지, 오하루의 다급한 고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제발 도와주세요. 안전벨트가 풀리지 않습니다.”
백미러로 사람이 다가오는 걸 발견한, 오하루가 운전석 문을 열고 도움을 청했다.
아무리 누르고 당겨도 안전벨트의 버클이 빠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얼마나 몸부림을 쳤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잠깐 실례 하겠습니다.”
씨름선수를 능가하는 힘과 악력을 갖게 딘 윤재가, 온 힘을 짜냈지만 버클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쿵. 탁탁!”
불길 때문에 엔진룸의 부품들이 타들어 가는 소리가 들렸고, 전면 유리창 너머에는 불길이 뱀처럼 꿈틀 거렸다.
당황하면 할수록 사람들의 머리는 굳어지기 마련.
하지만 윤재의 경우에는 난관에 부딪칠수록 머리 회전이 빨라지는 스타일이다.
운전석 머리 받침대를 빼내고, 의자를 최대한 뒤로 젖힌 다음, 어깨벨트를 느슨하게 만든다.
윤재가 뒷좌석으로 이동해 허리벨트 밑으로 오하루의 몸을 빼내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이 방법은 불가능 해! 그렇다면 힘으로 안 된다면, 치아로 끊어 내는 수밖에!’
1안과 2안에 대한 비교와 결론이 약 0.5초 사이에 끝났다.
윤재는 먼저 어깨벨트를 두 손으로 잡고, 이빨로 벨트를 찢기 시작했다.
폴리에스테르가 마치 비닐 찢어지듯 잘려나갔다.
7년 전 스위스 상페호수에서 윤재는 마멋 가족을 구해준 적이 있다.
그 뒤로 윤재의 치아는 마치 세라믹처럼 단단하고,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바 있다.
“다 됐습니다. 어서 내려요.”
허리 벨트까지 찢고 나자, 오하루는 비로소 베엠베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엔진룸의 불길이 좌석까지 번지기 직전, 소화기를 구한 사람들이 자동차로 달려와 소화액을 뿜어대기 시작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목숨을 건지게 됐네요. 앗! 당신은.... 김윤재씨?”
경황이 없었는지 그 때까지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누군지도 몰랐던 오하루.
비로소 윤재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전생에 인연이 보통이 아닌가 보네요. 이렇게 자꾸 도움을 받게 되다니. 자칫 큰 일 날 뻔 했는데, 윤재씨에게 빚을 졌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심각한 부상을 입거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오하루.
오진탁과 윤재의 불편한 관계를 알고 있었지만, 비즈니스와 별개로 생명의 은인이 된 윤재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였다.
“펜타 시스터즈 누님들을 위한 공연을 기획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해 주세요.”
윤재가 뒤 돌아 섰을 때, 남창진과 신장식이 얼빠진 눈으로 윤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2008년 7월.
미국 독립기념일을 주간에 윤재는 뉴욕에 도착했다.
자유의 여신상이 훤히 보이는, 파이낸셜 디스트릭트에서 윤재는 데이비드 리를 만났다.
“이 동네에서 자유의 여신상이 가장 잘 보이는 식당이 바로 이곳이네.”
“왜 식당 이름을 더 뷰(The view)라고 했는지 알겠군요.”
“크하핫! 뷰만 좋지 맛인 꽝이야. 맛은 분당 52 피자의 마르게리타가 최고지! 나폴리 보다 분당 피자가 더 맛이 좋다니까!”
“공짜로 먹어서 그랬을 겁니다.”
“크하핫! 내 다시는 공짜 피자 먹는 일 없을 거네. 이번에 자네 덕분에 2조원을 넘게 벌었지 않은가! 크하하하핫!”
본래 미국 부동산 버블이 문제였던 서브 프라임 모기시 사태는, 2006년부터 2009년이 정점이었다고 볼 수 있다.
집값 폭락.
주식 폭락.
메이저 투자은행들과 금융기관들의 천문학적인 손실.
대부분의 시장 참가자들이 허드슨 강을 찾을 때에도, 돈을 버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빅 쇼트로 유명세를 탄 마이클 버리와 그 친구들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윤재 자네 덕분에 나는 훗날 월가의 역사에 회자될 걸세! 마이클 버리 보다 내가 더 큰 돈을 벌었으니 말이야.”
모기지 사태 당시 마이클 버리가 벌었다고 알려진 돈은 약 1조원.
윤재 덕분에 론스타는 2조원을 넘게 벌었으니, 자신이 역사의 승리자라는 얘기였다.
“그나저나 존 폴 존슨 그 사람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겁니까? 아메리칸 타임도 아니고, 시간 관념이 이리 없어서 되겠어요?”
모기지 사태가 낳은 또 다른 깜작 스타 존 폴 존슨.
그는 2006년부터 주택관련 파생상품 거래로, 투자자들에게 수십조를 벌어준 사람이다.
윤재는 데이비드 리를 설득해, 존 폴 존스의 그리핀 펀드에 투자해 왔던 것이다.
“여기가 교통지옥이네. 서울은 비교도 못해!”
“지하철 뒀다 어디에 쓰려고 그러는지. 쯧!”
“이 사람아! 우리에게 떼 돈 벌어준 친군데, 너무 박하게 굴지 마. 그 사람이 벤틀리 놔두고 지하철 타겠나?”
“말은 바로 하시죠? 존 폴 존슨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에 번 거 아닌가요?”
“자네는 디폴트지! 항상 자네에게 고마운 마음 갖고 있어. 정말이야.”
메이저 투자은행은 아니지만, 존 폴 존슨은 그리핀 헤지펀드의 수석 매니저였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터질 것을 예측한 소수파 중의 한명이었다.
“이번에도 자네 권유 듣지 않았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 했네. 모기지의 붕괴에 베팅하길 잘했고, 존 폴 존슨에게 간접투자한 건 더더욱 잘 한 일이야.”
“벌써 2년이 넘었군요.”
약 2년 동안 론스타가 3조원을 투자했고, 윤재 역시 있는 현금을 탈탈 털어 5,000억을 투자했다.
누적 수익률은 7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이번에 패트릭에게 멋지게 광 팔게 됐어. 다시 한 번 고맙네.”
론스타 펀드의 보스인 패트릭 윙!
이번 딜의 성공으로 데이비드는 자신이 패트릭의 후계자 자리에 한 발 다가섰다 자평했다.
“저도 꽤 많은 돈을 벌었으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요. 그리고 제게 약속한 수수료 잘 챙겨주세요.”
“당연하지. 우리는 약속을 칼 같이 지킨다구.”
윤재는 이번 딜에 대한 성공보수로 3.5%의 수수료를 요구했다.
덕분에 론스타가 윤재에게 지급할 수수료만 700억을 훌쩍 넘기게 됐다.
40대 중반의 비대한 남자 존 폴 존슨가 드디어 식당에 모습을 드러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교통 체증 때문에.... 그래도 제가 늦은 덕에 허드슨 강. 자유의 여신상. 배터리 공원 잘 구경 하셨죠?”
“그만하면 늦은 것에 대한 변명으로 나쁘지 않네.”
“그쵸? 데이빗? 게다가 제가 올린 수익률은 더 나쁘지 않죠.”
존은 론스타와 윤재를 포함해 수많은 투자자에게 모기지 하락 베팅 상품을 팔았다.
그가 윤재같은 투자자에게서 받을 수수료와, 자기 돈으로 번 수입을 합치면 4조가 넘는다는 게 정설이었다.
“이게 바로 미스터 김이 요청한 답례품입니다.”
존 폴 존슨이 작은 상자를 하나 내밀었다.
2년에 걸친 투자를 청산한다고 했을 때, 존은 수천억의 수수료를 안겨준 윤재와 데이비드에게 선물을 약속했다.
그리핀 펀드의 관행이라고 했다.
“용케 구하셨군요?”
“세상에 돈이면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그거 구하느라 크게 한 장 썼습니다.”
롤렉스 데이토나 폴 뉴먼 다이얼.
크게 한 장은 미국 돈으로 100만 불을 뜻하는 것 같았다.
2년 동안 존 폴 존스를 미국에서 4번, 한국에서 1번 만났다.
특이한 것은 만날 때 마다 손목에 찬 시계가 바뀐다는 것이었다.
하나같이 초고가의 시계들이었다.
“미스터 김은 시계를 차지 않는 것 같던데, 롤렉스를 원한 이유가 있나요?”
“제 지인에게 선물할 생각입니다.”
윤재는 폴 뉴먼 모델을 차태영 외국환은행장에 선물할 생각이었다.
차태영는 롤렉스의 광팬이지만, 차고 다니는 시계는 딱 하나였다.
차태영 은행장이 좋아할 모습을 생각하니, 덩달이 기분이 좋아졌다.
어제까지 청산을 위한 서류작업을 모두 끝냈다.
약속한 선물도 받았으니 존과는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존! 부탁이 하나 더 있소.”
“말 만 하세요. 미스터 김! 저는 미스터 김과 인연이 계속 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시계만 비싼 것 차고 다니지 말고, 시간관념을 갖고 살아요.”
“예?”
“그리고 좀 걸어요. 교통체증에 벤틀리만 타고 다니니까, 살이 그렇게 찌는 것 아니요?”
존 폴 존스의 얼굴이 후끈 달아 올라 있었다.
◈ ◈ ◈
존 폴 존스와 점심을 마치고, 윤재는 데이비드 리와 페리를 탔다.
리버티 섬까지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였다.
“으하하핫! 존 폴 존스 똥 씹은 얼굴 가관이더군. 자네 말이 맞아. 롤렉스 차고 벤틀리 타면 뭐 할 건가? 차는 시속 20km로 달리고, 지각은 밥 먹듯이 하는데.”
데이비드가 배꼽을 잡고 키득 거렸다.
떼돈을 벌어주긴 했지만, 약속 때 마다 늦는 존이 못마땅 하기는 데이비드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외국환 은행. 오진탁을 희롱한 일. 원유 상품 ETF. 모기지 하락 베팅 등.
데이비드 리는 윤재의 분석과 정보력을 전적으로 신뢰하게 됐다.
윤재를 거의 영혼의 동반자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데이비드와 론스타를 요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 동안 내 덕에 번 돈보다 몇 배 넘는 돈을 허공에 날리게 될 거야.’
외국환은행. 극동건설. 스타타워.
단물만 쪽쪽 빨아 먹는 것으로 부족해, 세금까지 알뜰하게 회피했던 론스타.
종국에는 ISD 소송으로 한국에 빅 엿을 먹인 작자들이 론스타였다.
윤재와 친한 척 하는 이유도 모두 돈과 이용해 먹을 만한 가치 때문이었다.
“파트너! 우리 슬슬 다음 사냥감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지요.”
“와우! 윤재 자네 웬일이야? 항상 심드렁하더니, 오늘은 제법 적극적인데?”
‘당연하지. 이 멍청한 놈아. 이제부터 너를 요리할 생각이니까!’
윤재는 마치 천기라도 누설하는 무당처럼 은밀한 표정으로, 주위를 잔뜩 경계하면서 밀담을 시장했다.
“데이비드 하이폰 써 봤어요?”
“스티브 홉스가 만들었다는 스마트 폰 말인가? 나는 전통산업 종사자라. 왜 하나 사주게?”
진짜 공짜라면 염산도 마실 인간이었다.
“길게 봐도 2년 내 세상은 스마트폰 시대로 급속히 재편될 겁니다.”
“에이. 말도 안 돼. 어느 미친 사람이 1,000달러 가까이 주고 핸드폰을 사나. 노키아는 70달러면 살 수 있는데 말이야. 이거 보게! 내가 이 폰을 무려 5년을 썼어. 튼튼하고 전화 잘 되고! 이게 70달러도 안 하는데, 1천 달러짜리 스마트 폰?”
데이비드 리는 싸고 튼튼하다는 이유로 노키아 폰을 애용했다.
“노키아가 스마트 폰 시장에서도 최강자라는 건 아시죠?”
“그랬었나?”
“마켓이 작아서 그렇지, 시장점유율이 40%에 육박합니다.”
“혹시 오늘의 투자처가 모바일 폰 시장인가?”
“하하하. 역시 데이빗의 동물적 감각과 촉은 따라올 사람이 없어요.”
데이비드는 슬슬 긁어주면 좋아라 환장하는 스타일.
이미 반쯤은 넘어온 상태라, 꼬시기에 딱 좋은 상황이었다.
“당장 서두를 투자는 아니지만, 자금 조달 등 미리 계획을 세워야 할 겁니다. 10조 딜이 될 거니까요.”
“시..십조? 뭘 살 생각이기에 10조나 필요한가?”
“노키아를 사는 겁니다.”
“흥! 노키아?”
데이비드가 노키아라는 말에 김빠진 콧김을 내뿜었다.
“이 사람아! 팔아야 사지? 노키아를 미쳤다고 팔겠나? 그리고 어느 미친놈이 세계 1위의 핸드폰 제조사를 10조에 팔아? 자네 지금 노키아 몸값이 100조도 넘는다는 걸 모르고 하는 소린가? 자유의 여신상 보고 뇌가 완전 자유를 찾은 거 아냐?”
“하하하. 이왕 뇌가 풀렸으니 그냥 들어나 보세요. 2~3년 내 스마트폰 세상이 도래하면 노키아는 급속도로 붕괴할 겁니다.”
“아니 스마트폰 왕자라며?”
“아 글쎄 일단 들어 보라니까요. 노키아에 위기가 찾아오면 그 때는 제 예견이 맞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그 때 검토해도 충분합니다.”
“?”
나중에 두고 보자는 사람 무섭지 않은 법.
하지만 윤재는 달랐다.
항상 돌이켜 보면 윤재의 예견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세계 최고의 핸드폰 제조사. 스마트 폰의 강자이자, OS 심비안을 갖고 있는 회사. 그 회사를 10조에 산다고 생각해 보세요. 배당만 갖고도 매년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 될 겁니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펀드에게 안정적인 수익처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정말? 노키아가 몰락한다고?”
“예.”
“정말 노키아를 10조라는 헐값에 살 수 있다고?”
“예.”
2008년에 노키아가 망할 거라고 예측한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다.
세계 최고의 핸드폰 제조사였으니까.
50억 명 중 유일한 예측인 만큼, 향후 적중하면 데이비드와 론스타는 다시 경악하게 될 것이다.
“만약 인수한다 치자. 경영은 누가 하나?”
경영자가 궁금하다는 걸로 봐서, 데이비드의 태도가 변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부분도 생각해 뒀으니 걱정 말고 자금조달이나 신경 쓰세요.”
“정말이지?”
“2~3년 안에 꿀꺽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얘기는 2~3년 안에 데이비드가 론스타의 돈 10조를 날린다는 얘기였다.
이제 데이비드의 물음표는 모두 사라졌다.
세계 최고의 핸드폰 제조사를 10조라는 껌 값에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데이비드 리가 입을 헤벌쭉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