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69화 (169/196)

오하루와의 조우

2007년 6월 형제 카드에서 [ 슈퍼 콘서트 ] 1회를 개최했다.

매년 형제 카드가 문화 마케팅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콘서트였다.

1회 슈퍼 콘서트의 주인공인 다름 아닌 에밀리에 캠벨.

특이한 것은 형제카드와 O2 엔터가 손을 잡고 콘서트를 추진한다는 점이었다.

에밀리는 2007년 4번째 정규 앨범 [Affection]을 출시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앨범은 출시 3개월 만에, 영국과 미국 차트를 휩쓸고 있었다.

에밀리 캠벨의 한국 공연소식에 팝 음악 애호가들은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요즘처럼 MP3가 대세인 상황에서, 4집까지 모두 1,000 만장 넘는 판매고를 올렸어. 정말 놀라운 가수야!”

“4집은 이 추세면 단독 앨범으로 1,000만장 뚫을 기세라던데?”

“MTV어워드. 그래미. 브릿어워드 등 상이란 상은 모두 휩쓸고 있어!”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됐잖아. 노벨 평화상은 아깝게 빌 게이트에게 내줬지만!”

예매시작 90분 만에 2만장에 달하는 표가 모두 매진될 정도로 뜨거운 인기였다.

에밀리의 내한 공연은 어디까지나 형제카드가 주관사.

그런데 의외로 주목받은 회사가 있었는데, 바로 윤재와 52 Corp였다.

공연소식이 화재를 일으키며,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였다.

“52 소프트 대표 김윤재 사장이 에밀리 캠벨과 완전 절친이라던데! 사실인가요?”

“정말?”

“그 여자가 원래 한국에서 판소리와 국악을 공부하면서 목이 트였다던데?”

“진짜? 어쩐지 목소리에서 허스키함과 한(恨)이 느껴진다 했더니!”

“오랜 무명생활을 하고 있던 에밀리를 한국 국악계에 소개시켜준 사람이 김윤재 사장이래!”

작년 52 카페 상장 축하쇼에 깜작 등장했던 에밀리의 얘기.

그녀가 여기저기서 인터뷰 하면서 언급했던 윤재와의 관계 등이 소환됐다.

윤재가 얘기했던 홍보효과가 공고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신은 불공평 해! 김윤재 그 사람은 재벌수준으로 돈 벌었지. 에밀리 캠벨 같은 명사와 절친이지.... 진심 부럽다. 부러워!”

“진짜 대단한 사람이네. 나도 다시 태어나면 김윤재 사장처럼 살아보고 싶다.”

에밀리 캠벨의 공연을 앞두고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었다.

◈          ◈          ◈

6월7일 공연을 이틀 앞두고 에밀리 캠벨이 한국을 찾아왔다.

연예 방송 출연 등 공식적인 일정을 소화한 에밀리는 윤재와 혜진의 집에 놀러왔다.

아직 윤재가 퇴근하기 전이었다.

“강산이가 이렇게 많이 컸어?”

“응. 이제 혼자 앉거나 일어서게 됐어!”

“야! 신기하다. 정말!”

“에밀리 너도 빨리 올리버랑 결혼해! 모르긴 몰라도 애 낳으면 엄청 예쁠 거야!”

원판 불편의 법칙이라고 했다.

윤재의 아들 강산이가 아빠와 엄마를 닮아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게 생겼듯이, 에밀리와 올리버의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했다.

“3집 투어 모두 마치면 결혼할 생각이야!”

“정말? 에밀리 너무 축하한다.”

“나도 윤재와 혜진이처럼 멋진 가정을 이루고 싶어.”

“그럼~ 당연하지. 잠깐 윤재오빠 도착했네. 에밀리? 어때 오늘 숙소에 가지 말고, 우리 집에서 자고 가. 나랑 얘기도 하고 말이야. 어때?”

“정말? 그래도 돼?”

“그럼!”

2명의 여자들이 수다를 떨고, 윤재의 아들 강산이와 신나게 놀고 있을 때 윤재가 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에밀리 3집 앨범 너무 좋더라! 완전 대박 나겠던데?”

에밀리의 신작에 대한 얘기를 먼저 주고받았다.

“올리버는 요즘 어때?”

“나는 올리버가 이렇게 일중독일 줄 몰랐어. 전에 놈팽이 같던 모습은 이제 상상도 안 된다니까!”

올리버의 안부에 대한 얘기까지 이어졌다.

이번 슈퍼 콘서트 얘기로 주제가 넘어갔을 때, 에밀리는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윤재! 예전에 내 앨범 프로듀싱 해준 여자 생각나?”

“응. 오카루라는 일본 여자 말하는 거지?”

“윤재는 기억력이 정말 좋다니까!”

영국에서 에밀리의 1집,2집과 2.5집을 프로듀싱해준 동양인 여자.

에밀리, 올리버 모두 오카루에 대해 극찬한 바 있다.

“나도 감쪽같이 속았는데, 오카루가 사실은 윤재가 다녔다는 O2 컴퍼니의 상속녀였어! 한국이름 오하루. 너도 알 거야!”

“정말이야?”

제법 놀라운 얘기였다.

그렇다면 오하루는 왜 영국까지 날아가, 일본여자 행세를 하며 살았을까?

“응. 재벌 3세의 후광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내고 싶어서, 일본여자라고 속이고 활동했다는 거야.”

“어머! 재벌 3세 답지 않은 처신이다. 오하루 그 여자 괜찮은 여자네.”

묵묵히 듣고만 있던 혜진이 반응했다.

에밀리의 대성공에 기여한 2명의 한국 사람인 윤재와 오하루.

오진탁과의 악연만 없었다면, 더없이 좋은 사이가 될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다.

오진탁과의 일전을 준비하고 있는 윤재에게, 오하루는 적이 될지 동지가 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에밀리의 앨범 프로듀싱.

회사 복귀후 보여주고 있는 괜찮은 평가.

만약 동지가 된다면 천군만마가 되겠지만, 적이 된다면 꽤 강적이 되는 것이다.

“내일 오하루 언니 만나기로 했는데, 윤재 어떻게 할래? 같이 만날까?”

“나는 콜!”

슈퍼스타 에밀리의 내한공연 덕분에, 윤재는 뜻하지 않게 오재준의 딸이자 오진탁의 여동생을 만나게 됐다.

◈          ◈          ◈

“당신이 그 유명한 김윤재 사장님이군요!”

6월8일 금요일.

윤재는 올림픽 공원에서 에밀리와 함께 오하루 실장을 만났다.

곧 있으면 40살이 되는 오하루.

아직까지는 젊고 싱싱한 매력이 있었고, 무엇보다 몸도 마음도 건강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하루의 인사에서 윤재에 대한 적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뵙게 돼 영광입니다. 제 친구 에밀리를 도와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서 김사장님에 대한 찬사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오빠와 연루된 일에 대해서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당사자인 오진탁이 아닌 오씨 일가의 두 번째 사과였다.

오하루의 사과에는 오재준 회장의 사과보다 훨씬 더 진정성이 느껴졌다.

같은 여자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영국에서 오빠의 등쌀을 피해 살아야 했던 일.

에밀리라는 천재적 가수를 만난 일 등 과거의 얘기가 오갔다.

“전 세계의 버스커들과 함께 노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는 정말 신선했습니다. 음반 작업을 하면서, 그 때처럼 행복했던 적이 있나 싶더군요.”

오하루는 윤재와도 자신이 제법 인연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윤재 덕에 에밀리가 가수로 각성했고, 다시 부르기 앨범 같은 경우 앨범 컨셉 자체를 윤재가 잡아줬었다.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오재준 회장의 건강문제로 옮겨갔다.

“회장님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최악은 면했지만, 정상적인 활동은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오재준 회장은 한남동에서 경기도 양평의 별장으로 이동해, 요양과 재활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정상적인 판단을 내릴 자신이 없어서, 그룹 일은 일부러 피하고 있어요.”

상속. 그룹 경영 등!

불확실한 상태에서 오판을 내리는 걸 피하기 위해, 오재준은 재활과 치료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했다.

“태우건설 인수 소식을 들었을 때, 아버지의 얼굴이 생생이 기억나네요.”

오재준은 뇌출혈 이후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자가운동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눈빛으로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 태우건설 인수 소식에 꽤나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오진탁의 호언장담과 달리, 오재준은 태우건설 인수를 찬성하지 않았던 것이다.

“실례되지 않는다면 회장님께 저희 52 소프트에서 개발하고 있는, 재활프로그램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예? 재활프로그램이요?”

“네. 몸이 불편한 분들을 위한 교육용 소프트웨어가 있습니다. 2년 가까이 연구했던 프로젝트에서 스핀오프한 소프트웨어입니다. 나름 성과가 있을지 모릅니다.”

미국에 있는 나란희 이사팀이 개발해, MS어워드를 수상했던 산타영어와 산타수학!

윤재의 지시로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장애인용 재활 소프트웨어로 업그레이드 시키는 작업을 진행해 왔고, 성공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사실 윤재가 오하루와 만나려 했던 이유도 바로 이것이었다.

오재준의 재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의료진이 회장님을 돕고 계시겠죠. 시험판을 오실장님께 드릴테니, 병원 재활프로그램과 함께 실행해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역시 김윤재 사장님은 세간의 평처럼 좋은 분이었군요.”

“네?”

“진탁오빠는 김사장님이 완전 꽝이라고 그랬거든요.”

‘꽝’이라고 했을리 있나?

훨씬 험악한 말들을 오진탁이 했을 게 분명한데, 순화해서 표현하는 오하루의 센스가 빛났다.

“저희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도와주신다면 꼭 해볼게요.”

“알겠습니다. 저희도 최대한 준비해 보겠습니다.”

철저히 보안에 부쳤던 오재준의 투병소식.

하지만 재벌총수의 투병은 숨긴다고 숨길 수 없었다.

윤재는 오재준의 투병소식에, 나란희 이사 팀의 성취를 즉각 떠올렸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의 재활용 소프트웨어를 만들도록 주문했던 것이다.

아들 문제로 52 소프트에 합류한 바 있는 나란희 이사.

그녀는 흔쾌히 윤재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체험 판 테스트가 한창 진행중이었다.

늦어도 이번 달 안에 정식 버전을 출시할 수 있다고 했다.

“오빠 문제로 회사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회사라기보다는 오진탁 부사장과의 문제이지요.”

“앞으로 서로 멋진 경쟁했으면 좋겠네요.”

“저도 그렇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빠가 오실장님 반만 닮았어도 좋았을텐데!”

오하루와의 첫 번째 만남이 그렇게 끝났다.

윤재는 에밀리의 숙소인 호텔로 그녀를 데려다 줬다.

전날은 윤재의 집에서 머물렀지만, 매니저와 초청사에서 모두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

세계적인 대스타가 너무 소탈해도 안 된다나?

“오하루 실장! 만나보니까 소감이 어때?”

“응. 이미 알고 있었지만 오빠와는 180도로 다른 사람이더군. 왜 오재준 회장이 총애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오재준 회장의 공백이후 O2그룹은 이런 저런 실수가 잦았다.

하지만 밖에서 볼 때는 그룹 전체가 무탈하게 보였는데, 오하루가 이끄는 O2 엔터테인먼트 덕분이었다.

오진탁 라인에서 마이너스를 만들어내면, 오하루 라인에서 플러스를 창출해 마이너스를 상쇄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윤재.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응. 뭐든지.”

“왜 오재준 회장의 재활을 돕는 거야? 혜진이와 오진탁 얘기 들으니, 내가 다 화가 나던데.”

“그냥. 쓰러져 있는 사람을 외면하고 있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싸우더라도 당당히 싸우고 싶어.”

오진탁이 보통 사람 정도만 됐다면, 윤재는 지금도 O2 푸드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을 것이었다.

오재준과의 관계가 나빴던 것도 아니고, 오진탁이 적이지 오씨 일가 전체가 윤재의 적은 아니었다.

“에밀리! 나중에 나와 오하루가 싸운다면 너는 누구 편을 들 거야?”

“뭐? 이거 완전 엄마가 좋냐, 아빠가 좋냐 인데?”

어떤 식으로든 O2 오너들과 윤재의 한판 승부는 불가피해 보였다.

모든 전쟁은 아군이 많으면 좋고, 적군이 많으면 불리한 법이다.

윤재와 오하루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는 에밀리.

그리고 그녀의 남친이자 조만간 남편이 될 올리버.

윤재는 가급적 O2 그룹 쟁탈전에서, 올리버와 페레레그룹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오진탁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 억제기에 불과하니까. 문제는 오하루 그 여자인데.....’

윤재는 에밀리를 바래다 주며, 복잡해진 경우의 수를 정리하며 앞날을 구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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