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51화 (151/196)

인연을 살리는 비즈니스

“이재민 사장님! 이재은 프로의 행위 계약 위반 아닙니까?”

O2 푸드 광고 팀 조팀장이 격앙된 목소리로 따져 물었다.

반면 상대방인 이재민 사장은 여유만만을 넘어, 비웃음기 마저 비치고 있었다.

“계약 위반? 당신 지금 말 다했소?”

“우리 법무 팀은 사장님과 이 프로의 행위가 계약 위반이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웃기고 자빠졌네.”

“이지은 프로와 저희 회사는 독점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모자 뒷면, 상의 양쪽 어깨, 우측 가슴 등 52라는 숫자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계약 위반이라는 겁니다.”

이지은 프로는 2004년 KLPGA의 최고 스타였다.

상금왕. 다승왕. 최저타상. 우수상까지 무려 4관왕의 기염을 토했다.

2005년 LPGA에 진출했고 3개 대회 모두 Top10에 들었다.

문제는 2005년 6월 이지은 프로가, LPGA 메이저 대회인 챔피언십에 참석하며 불거졌다.

모자 중앙과 상의 왼쪽은 여전히 O2의 차지였지만, 노출개수와 크기는 52가 압도한 것이다.

“이보쇼. 조팀장님! 모자 중앙과 왼쪽 가슴은 철썩 같이 O2만 노출시키고 있는데, 왜 계약위반이요? 계약서 잘 봐 바요. 모자중앙. 왼쪽 가슴 상단에 대해 독점권한을 준 거니까.”

“그... 그야 그렇지만 독점권은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게 우리 입장입니다.”

“나를 무식하고 주먹이 앞서는 촌놈이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이렇게 나오면 재미없소. 법이든 뭐든 맘대로 하쇼. 그리고 당신 보스께 전하쇼. 이따위로 까불면 계약연장은 국물도 없을 거라고 말이요.”

다혈질로 두 번째 가는 사람이라면 서운할 사람이 이재민 사장이다.

오히려 이재민 사장이 강대강으로 붙어 버리자, 광고팀장이 오히려 위축돼 버렸다.

국내 최고의 골프 스타가 된 이지은.

그녀에 대한 스폰서십이 무기력하게 종료된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것이다.

게다가 법정에 간다 해도, 이재민이 이길 확률이 훨씬 높았다.

“바쁘니까 할 말 끝났으면 가 보슈. 우리 딸내미 시합 봐야 하니까!”

혹 떼러 갔다가 혹 붙이는 기분이란 이런 걸까?

O2 푸드 광고팀장은 빈손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재민 사장과 우리 회사 관계가 찰떡궁합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 된 거지?’

삼오어묵과 세븐브릿지 골프장의 스왑딜을 성사시킨 O2그룹.

윤재의 제안으로 메인 스폰을 맡게 된 덕에 말 그대로 대박이 터졌었다.

윤재의 예언대로 이지은 프로가 KLPGA 최고의 스타가 됐던 것.

거기까지는 좋았다.

균열의 시작은 역시나 오진탁이었다.

Anything But Kim yun jae!

오진탁은 부사장 승진 후 사사건건 푸드의 정책에 딴지를 걸었다.

O2 푸드가 이재민 사장에게서 인수한 삼오어묵도 마찬가지였다.

마트나 백화점 등 대형매장 납품과 대리점을 통한 유통이 장기인 O2푸드.

냉동이나 냉장 포장제품은 O2와 궁합이 잘 맞았다.

문제는 삼오어묵의 수제 어묵이었다.

“삼오어묵 가져오기 위해, 피 같은 골프장을 내줬는데. 뭐? 수제 어묵? 제발 돈 안 되는 짓 좀 하지 맙시다.”

오진탁은 영업본부와 어묵공장을 순회하며, 딴지를 걸었다.

효율을 생각하는 오진탁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구석도 있긴 했다.

“부사장님.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지만, 이재민 사장과 고용보장을 약속했습니다. 수제 어묵 숙련자 20명을 해고하면, 약속위반이 됩니다.”

“어허. 이런 답답한 사람을 봤나. 푸드 산하 다른 사업장으로 발령을 내버려요. 숙련공들 어차피 다 현지인 아줌마들 아닙니까? 애 키워야 하고, 남편들도 있고... 남자라면 모를까. 여자들은 발령 내면 100% 그만 둘 겁니다.”

소름끼칠 정도로 냉정한 얘기였다.

“하지만....”

“어허! 공장장님! 장사 한 두 번 합니까? 그 양반들 자르면 앉아서 수익성 10억 개선됩니다. 수제어묵 파트에서 적자보는 것까지 고려하면 15억은 개선될 것이오.”

버티지 못한 공장장은 결국 수제 어묵 숙련노동자들을 전보 발령 냈다.

결국 20명의 아줌마들은 회사를 그만두고 말았다.

한창 크고 있는 애들과 남편을 두고, 강원도나 인천으로 이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이재민이 어묵사업에 환멸을 느꼈다지만, 삼오어묵은 이재민 사장까지 3대에 걸쳐 진행돼 왔던 가족 사업.

O2 푸드와 오진탁이 약속을 헌신짝처럼 팽개치는 모습에, 이재민을 빡 돌게 만들었던 것이다.

2004년 12월에 일어난 오진탁의 만행이었다.

그리고 그 때.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윤재가 이재민을 찾아 왔던 것이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직후였다.

◈          ◈          ◈

“신혼여행 잘 다녀왔어?”

“네. 덕분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하네. 내가 결혼식을 수도 없이 갔지만, 혜진양처럼 예쁜 신부는 처음 봤네.”

“하하하. 사장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재혼하시는 거 어때요?”

“망측하기는.... 그나저나 꼭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결혼식 전부터 구상해 온 사업이 있었다.

이재민과 이지은과 함께라면 폭발력이 있는 비즈니스였다.

“회사 짤리고 소프트웨어 회사 차렸습니다. 어느새 직원들이 70명을 넘겼네요.”

“이야! 자네 완전 출세했네. 그런데 무슨 사업을 하자는 건가?”

“52 Golf 라는 스크린 골프 사업을 할까 합니다.”

“스크린 골프? 이미 사업을 시작한 회사가 있지 않은가?”

“뭐든 경쟁이 돼야 더 발전하는 법이죠.”

윤재는 스크린 골프 사업의 개념과 원리에 대해 설명해 줬다.

아직 한 번도 스크린 골프를 해보지 않은 이재민.

골프에 미친 사람이라 그는 쉽게 이해했다.

“다 좋은데 왜 52 Golf 인가?”

“하하하. 18홀을 52타로 치자는 의미에서 52 골프입니다.”

“그럼 20언더인데 그게 말이 돼?”

“스크린 골프니까요.”

게임이나 마찬가지인 스크린 골프.

현실에서는 희박하지만, 게임에선ㄴ 불가능한 스코어는 아니다.

윤재는 전국 스크린 대회 등, 사업의 확장성에 대해 다시 설명해 줬다.

“직장인들이나 친구들 모임에서 즐기는 레포츠로 각광을 받을 겁니다. 저희 내부적으로 거의 반년을 준비했습니다. 2005년이면 개발이 끝나고, 2005년 3분기에는 사업화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좋으면 자네 혼자 하면 되지, 왜 나와 손을 잡으려 하는가?”

“하하하. 사장님도 사장님이지만, 이지은 프로 때문이죠.”

52 골프의 메인 모델로 이지은 프로를 염두에 뒀다.

이미 몸값이 올라버린 이지은.

하지만 이 프로의 아버지와 손을 잡는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이재민이 골프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52 골프의 오프라인 사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었다.

“큰 돈 필요 없어요. 론스타 펀드 등 투자를 희망하는 곳이 많습니다.”

자금조달 계획까지 제법 근사하게 준비해 온 윤재.

달콤한 제안에 이재민이 흔들렸다.

하지만 이재민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었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그는 현재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저 딸의 우승상금을 확인하고, 골프로 소일하며 사는 것도 낙이었던 것이다.

52 골프 얘기로 공전하던 중, 우연히 삼오어묵에 대한 얘기가 흘러 나왔다.

“그러니까 대기업 놈들을 믿을 수 없다는 거야. 고용 보장 한다더니, 우리 기능장들을 사실상 해고시킨 거나 다름없어. 안 그런가?”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게 뭔가? 오진탁과 공장장 그 놈이 개자식이지.”

유명 일식집이나 대형 백화점 일부 푸드 코너에 납품됐던 삼오어묵의 수제어묵.

윤재의 생각에 숙련 노동자들은 삼오어묵의 큰 자산이었다.

하지만 분노에 눈이 멀고, 효율만 따지는 오진탁의 눈에는 숙련공들이 비용 덩어리로 보였던 것이다.

“물론 내가 경영을 소홀히 했지만, 엄연히 삼오어묵은 우리 할아버지 때부터 해왔던 일이란 말일세. 그 아주머니들과는 내가 총각시절부터 같이 일했었다고. 그런데 그따위로 무참하게 자를 줄이야.”

이재민이 울분을 토했다.

윤재는 이재민의 비분강개를 지켜보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도 떼고, 돈도 벌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사장님! 제가 만두사업 시작한 것 모르시죠?”

“응? 만두? 요즘 누가 만두 먹는다고?”

당시 이재민도 쓰레기 만두의 후폭풍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쓰레기 만두 사건은 오래도록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또한 이재민이 윤재를 얼마나 걱정하고 아끼는지도 알 수 있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만두는 히트 상품이 될 거니까!”

“뭐.. 자네가 그렇다면야...”

“제가 만두 사업에 이어 어묵 사업을 해보겠습니다.”

“응? 아까는 소프트웨어인가 뭔가 한다고 안 했나?”

“하하하. 요즘 제가 재벌로 불립니다. 문어발 경영 한다고.”

“푸후훗! 재밌네. 역시 재밌는 친구야. 자네의 그런 패기가 부럽군.”

만두에서 어묵까지.

이러다 윤재의 또 다른 주특기가 생길 것 같았다.

O2가 버린걸 가져다 재활용하는 것 말이다.

“사장님께서 도와주시면 제가 어묵 숙련공 아주머니들을 전원 채용하겠습니다.”

“진짜? 진짜로 자네가 아지매들 다시 채용하겠다고?”

“네. 대신 조건이 있어요.”

“가만 보면 자네는 항상 조건이 까다로워!”

이재민은 예전 골프장과 삼오어묵의 스왑 딜 시절을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유쾌한 기억이었다.

“아주머니들 채용할 테니까, 저랑 52 골프 같이 하시죠.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리게 될 겁니다.”

이재민이 다시 머리를 굴렸다.

이미 윤재의 일처리 방식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이재민.

매력적인 사업모델과, 자금조달 계획까지 마련해 놓은 상태.

이지은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면, 추가 수익도 올릴 수 있었다.

“오프라인에서는 세븐 브릿지 골프장만 가지셨지만, 온라인에서는 전국 팔도의 골프장을 모두 가질 수 있어요.”

“음....”

“52 골프를 코스닥에 상장시키면, 사장님 투자 수익이 엄청 업그레이드 될 겁니다.”

잠시 고민하던 이재민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남는 장사였다.

“좋네. 한번 해보세!”

“하하하.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겁니다.”

“꼭 돈 때문만은 아냐. 삼오어묵 기능장들 꼭 채용해 주게. 그것 때문에 자네랑 손 잡기로 한 것이니까.”

“알겠습니다. 그 역시 만족하실 겁니다.”

이재민은 윤재와 악수를 하며 생각했다.

‘O2 이 썅놈의 자식들이 내친 아지매들을, 윤재 이 친구가 받겠다고 하니.... 세상 참 오묘한 것일세. 오묘한 것이야.’

그렇게 52 골프 프로젝트와, 어묵사업 프로젝트가 동시에 시작된 것이었다.

◈          ◈          ◈

이재민 사장을 찾아갔던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난 2005년 6월.

52 소프트가 스크린 골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도 벌써 1년이 흘렀다.

강남구 역삼동에 52 Golf Zone 1호점을 오픈 시켰다.

“야! 생각보다 정확도가 높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야. 나는 오락인줄 알았는데, 실전 골프와 비슷한 것 같아.”

“필드 나가려면 최소 20만원 깨지는데, 18홀에 2만원이면 완전 거저 아니냐?”

“이거 우리 모임 때 하면 딱 좋겠어!”

오픈 기념 이벤트로 무료 체험기회가 열렸다.

스포츠 신문 기자나 테크 매거진 등을 초대한 기자간담회도 진행됐다.

“이재민 대표님! 52 스크린 골프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52 골프는 압도적인 소프트 파워와, 센서 기술로 스크린 골프에 실제 골프 못지않은 경험을 제공할 겁니다. 이를 통해 누구나 쉽고 저렴한 비용으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삼오어묵을 경영해 봤기 때문에, 이재민은 기자 간담회를 멋지게 소화했다.

“경쟁사와 비교했을 때, 52 골프만의 차별화된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소프트 경쟁력과, 하드웨어 경쟁력의 조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52 Golf는 현재 상주 세븐 브릿지 CC를 포함해, 전국 12개의 골프장과 제휴를 맺었습니다. 앞으로 제휴 골프장을 계속 확대할 계획입니다.”

오프닝 행사에 참석한 윤재는, 이재민의 회견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세계적인 골프 스타가 될 이지은을 얻은 게 가장 큰 소득. 그리고 어묵사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두 번째 소득이다. 오진탁을 다시 엿 먹일 수 있다는 것은 보너스.’

기자 회견장에 참석한 테크 매거진 [리스타트]의 편집장 변동혁.

그가 윤재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윤재 역시 손을 흔들어 보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사장님 판 키우시는 재주에 놀랄 따름입니다. 그런데 스크린 골프는 조금 의외이긴 하군요?”

“편집장님 보시기에 무슨 문제라도?”

“푸드 테크와 스크린 골프는 매치가 안 돼서요.”

“하하하. 52 골프는 레저 목적이 아니에요. 저는 스크린 골프 사업을 센서사업이라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센서요?”

“네. 동작인식. 스윙 자세. 볼 비산 속도와 방향 등. 스크린 골프에는 각종 센서가 필요합니다. 그걸 정교하게 발전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저희가 추진하는 테크사업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변동혁은 윤재의 생각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윤재가 구상하고 있는 미래를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려면 아직 4~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때가 되면 커피. 피자. 스크린 골프. Farm과 물류사업 등을 하나로 엮는 52 Corp의 통합서비스가 출시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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