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직 상무가 너무 잘함-112화 (112/196)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갖고 있다.

회의가 끝나고 조팀장은 윤재를 불렀다.

“고생했다. 역시 네가 있어야 회의에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다.”

“하하하. 아닙니다.”

“그건 그렇고....”

‘오케이’라고 하면 좋은 일, ‘그런데 말이야’ 또는 ‘그건 그렇고’는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다.

“호두과자 법인카드로 살 거면 미리 얘기라도 해주지 그랬냐? 어쨌든 내가 팀장인데...”

“죄송합니다. 팀장님! 그런데 그거 법인카드로 산 것 아닙니다. 제 돈으로 샀습니다.”

“앗 그래? 미안하다. 내가 식언을 했구나. 그런데 왜 법카로 샀다고 그랬니?”

조영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별 것 아닌 일로 팀장으로서 위신만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제가 개인 돈으로 간식 사왔다고 하면, 다른 팀원들이 부담감 가질까 봐 법카로 샀다고 했습니다.”

“그. 그랬니? 앞으로는 미리 언질만 해주면 법인카드 사용해도 돼!”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너 돈 많나 보다. 앞으로는 회사 일에 개인 돈 쓰지 마!”

이 말은 조영우의 진심이었다.

10원이라도 회사 일에 개인돈을 쓰는 것을 조영우는 반대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조팀장의 마음을 모르는 윤재가 아니다.

“하하하. 돈 조금 있습니다. 대충 350억 정도?”

“크하하하. 그래 좋겠다. 나도 집에 가면 대충 5,000억 정도 있어!”

“하하하. 부럽네요. 팀장님!”

“크하하하. 알았다~ 일 봐라!”

제법 쿵짝이 잘 맞는 사이였다.

차이가 있다면 윤재의 350억은 팩트였고, 조영우의 5천억은 조크라는 정도.

‘무서운 놈이다. 저 어린 나이에 처신이 조조 찜 쪄 먹을 수준이야! 눙치는 실력도 괜찮고..... 시간이 문제지 임원은 하고도 남을 놈이다.’

일이면 일. 인간관계면 인간관계. 처신이면 처신.

못하는 게 없는 윤재를 보며, 조영우는 새삼 윤재의 포텐셜을 다시 생각했다.

◈          ◈          ◈

하얀국물 라면은 청주 연구소에서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틈 나는 대로 마케팅 본부와 제품명, 광고 컨셉 등에 대한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최근 윤재와 지원팀이 열을 올리는 일은, 페레레 제휴에 대한 CEO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었다.

류전무에 대한 최종 리허설까지 대략 일주일이 남아 있었다.

제휴사업팀을 중심으로 부문 실무자와 팀장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였다.

회의 시작까지 아직 30분 정도 남은 상태.

“김대리님! 황성호씨랑 동기 맞죠?”

“신대리님이 성호는 어떻게 알아요?”

“그 분 유명하시잖아요. 국회의원 아들이자, 부동산 재벌의 상속남.... 근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고, 저 얼마 전에 황성호씨 봤어요. 과천에서.”

“과천?”

신미나의 뉘앙스는 황성호에게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저희 집이 과천주공이잖아요. 제가 봤을 때 황성호씨 과천 경마장 드나드는 것 같았어요. 뭐랄까? 폐인 같은 모습?”

2002년 1년 동안 황태준은 정치입문 이래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쌀 직불금에서 시작된 황태준의 추문은, 아들의 해외 스포츠 도박 소식에 이어 악재들이 줄줄이 터지며, 그를 회기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작년 말 회사를 그만 둔 황성호는, 아버지와의 불화 속에 도박장만 전전하는 것 같았다.

‘주식. 선물옵션. 경마장.... 코스를 밟고 있구나! 다음은 카지노 가는 일만 남았나?’

회귀 이후 윤재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이 목적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그 중에서도 황성호가 가장 철저하게 몰락한 인물.

문제는 어딜 가나 못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신사업 부문에도 못난이 듀오가 있었는데, 전략팀 신재영 팀장과 하진호 대리가 그 주인공이었다.

전생에서 O2 라는 새 사명을 윤재에게서 빼앗아 갔던 사람.

회귀 후 나비효과로 옆 팀의 팀장과 팀원으로 다시 만났건만, 신재영은 여전히 못난 사람이었다.

혼자 못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부하 직원도 못나게 만드는 형편없는 인물.

신사업 부문은 CEO 보고를 위한 준비작업을 분담키로 했다.

곧 있으면 회의시작인데, 회의실 밖에서 신재영과 하진호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유리파티션과 블라인드 때문에, 그들의 대화가 들릴 가능성은 제로.

하지만 윤재는 달랐다.

마치 옆에 앉아 있는 것처럼 그들의 얘기가 들렸다.

“황성호씨는 머리도 산발에다 수염도 안 깍았는지 딱 거지꼴이었다니까요. 세상에 멀쩡하던 사람이 어쩌다가!”

눈앞에서 떠드는 신미나의 얘기와, 신재영-하진호의 얘기가 머릿속에서 따로 정리되는 중이었다.

“하대리?”

“네. 팀장님!”

“자네 생각에 윤재 그 자식이 너무 나댄다고 생각하지 않나?”

“....”

“왜? 너는 나랑 한 배를 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거야?”

“아닙니다. 팀장님!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진호가 무슨 잘못이 있는가?

유도하는 신재영 그 작자가 나쁜 놈이지.

신재영은 지난 부문 회의에서 윤재가 얼마나 나댔는지에 대해, 한참 동안 설명했다.

같은 현상을 두고 어떻게 그렇게 해석하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하대리! 그래서 말인데....”

“네. 팀장님!”

“저번 노래방은 우리가 실패했잖니?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아야겠지? 그래야 내가 계속 한 배를 타고 갈 것 아니냐?”

“.....”

신재영 팀장의 눈에서 인광이 빛났다.

마치 3~4일은 굶은 하이에나의 눈깔 같았다.

“다음주 월요일에 전무님께 페레레 제휴 건에 대한 리허설이 열린다. 설욕무대로 삼아 보는 것 어때?”

“어떻게 하면 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전무님 모신 자리에서 윤재가 망신당하게 만들면 되지!”

신재영은 자신의 생각한 그림을 설명해 줬고, 하진호는 중간 중간 “네!”라고 대답했다.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쳐맞기 전까지는.

마이크 타이슨이 그랬다고 했던가?

윤재는 신재영과 하진호의 얘기를 들으며, 타이슨 형님이 했다는 명언을 생각했다.

◈          ◈          ◈

3월2일 일요일 밤 9시. 본사 28층 회의실.

“윤재대리님! 다 된 것 같은데 퇴근 하실까요?”

“그래요. 김대리님! 진짜 파김치가 될 것 같아요. 검토까지 모두 끝났으니 우리 들어가요!”

전략팀 하진호. 제휴사업팀 정지민.

류전무 리허설을 앞두고 일주일 가까이 야근에, 주말 특근까지.

과장이 아니라 진짜 3년 묵은 파김치 모양이 돼 있었다.

“그러시죠. 내일 10시 보고니까, 오늘은 푹 쉬시고 내일 8:30에 만나시죠.”

“네. 고생들 하셨습니다.”

윤재와 실무자들은 본사 1층으로 내려와 택시에 올라탔다.

야근을 하든 술을 먹든 동료들이 모두 퇴근하는 걸 지켜본 뒤에, 집으로 가는 것이 윤재의 루틴.

하대리와 지민씨가 택시타고 멀어진 다음, 윤재도 인근 주차장으로 향했다.

하진호 대리를 태우고 집으로 향하는 중인 택시안.

“기사님! 죄송한데요. 사무실에 깜박 잊고 놔두고 온 게 있어서 다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요금에 5000원 더 드릴게요.”

하진호가 갑자기 택시를 돌렸다.

신재영 팀장과 작당했던 모의를 실천할 생각인 것이다.

동료들이 모두 사라질 때 까지 집에 가지 않는 윤재의 루틴.

그걸 알고 있는 하진호는 일종의 위장 퇴근을 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것이다.

‘내가 김윤재 당신한테 특별한 악감정이 있는 건 아닌데, 어떻게 하겠나? 자리는 제한돼 있고, 라인은 정해져 있는 것을! 너무 원망 말라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난 것도 당신의 실력이니까!’

하진호 대리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는지, 되지도 않는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1시간 정도 보고서에 장난질을 한 뒤에 퇴근했다.

◈          ◈          ◈

이튿날 새벽 5시!

아무도 출근하지 않은 시간에 윤재는 사무실에 나왔다.

그리고 네트워크 드라이브를 통해 하진호 대리의 PC에 접속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네트워크 드라이브를 통해, 전사 네트웤이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하지만 윤재는 MS 스페셜리스트 자격 보유자이자, IT 쪽에 나름 식견이 있는 전문가.

그룹 IT계열사의 프로그래머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실력과 이해도가 아주 높았다.

‘내가 이런 장난질을 해 놨을지 알았지! 하하. 이 정도면 귀여운 수준이네. 황성호 레벨은 안 되는 친굴세.’

하진호 대리가 자신의 보고서에 심어놓은 장난질을 확인한 뒤, 곧바로 사무실에서 나와 사무실 근처 찜질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샤워를 한 뒤 찜질방 수면실에서 1시간 30분 정도 개운하게 잠을 잤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이런 일을 겪으면, 분해서 잠이 안 올지 모른다.

하지만 윤재가 어떤 사람인가?

강철 멘탈 보유자는 코까지 골며 숙면을 취했다.

◈          ◈          ◈

“안녕하세요? 어제 늦게까지 일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오전 8시 30분이 되자 윤재는 마치 처음 출근하는 사람처럼 사무실로 나갔다.

“매일 1등으로 출근하던 네가 웬일이니? 감기라도 걸린 거야?”

조영우가 윤재의 루틴이 깨진 것을 걱정했다.

“죄송합니다. 지난주 무리해서인지... 콜록. 콜록.”

조혜진 남친 아니랄까봐?

윤재가 아카데미 주연상 찜 쪄 먹는 연기를 했다.

“윤재대리. 네 몸은 너 하나의 몸이 아니야. 지원팀과 회사의 몸이라고. 몸 관리 잘 하는 것도 실력이다. 실력!”

조크를 다큐로 받는, 조영우 팀장이 귀엽게 보였다.

“나는 팀장님들과 전무님 모시고 9시 50분까지 들어갈 테니까, 윤재대리 너는 어서 들어가서 준비해라. 니가 첫 번째 발표자잖아?”

“알겠습니다.”

윤재는 자신의 노트북을 챙겨 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9시 1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역시 아카데미 급 연기를 하는 윤재.

헐레벌떡 회의실로 들어가자, 하진호의 입 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멍청한 놈! 내가 뭘 했는지도 모르고. 아주 무사태평이네!’

윤재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프레젠테이션을 어떻게 진행할지 복기를 했다.

‘어쭈! 여유도 부리고... 크흐흐. 오히려 잘 됐다!’

9시 45분이 되자 팀장들이 속속 회의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실무자들이 류전무에게 인사를 하는 사이, 윤재는 네트웤 드라이브를 통해 하진호의 PC에 접속했다.

그리고 하진호가 장난질한 자신의 보고서를 원상복구 시켰다.

뿐만 아니라 철저한 되빠구 정신으로, 하진호의 보고 부분에 그가 계획한 장난질을 입혀 놨다.

10시가 되자 윤재는 회의실 정면으로 나갔다.

“하대리님! 장표 좀 띄워 주십시오.”

“아? 네! 알겠습니다.”

하진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최종본을 클릭했다.

그 때라도 문서 수정시간이 오전 9시 52분이라는 것을 눈치 채야 했다.

하지만 하진호는 이미 승리에 취해 있었다.

“전무님! 팀장님들 안녕하십니까? 신사업 지원팀 김윤재 대리입니다.”

참석자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언제나 재미와 유익함을 선사하는 윤재의 프레젠테이션.

사람들의 눈동자에 기대감이 스쳐 지나갔다.

“오늘 제가 보고할 내용은 페레레 그룹과의 제휴와, 신사업 부문의 중장기 전략의 상관관계입니다. 나머지 내용은 하진호 대리가, 종합보고는 임나영 팀장께서 발표하시겠습니다.”

윤재는 평소처럼 차분하면서도 진지한 자세로 리모컨을 눌렀다.

표정과 동작에 자신감과 여유가 흘러 넘쳤다.

‘보고 자세나 발음, 목소리 톤, 외모 등 참 좋단 말이야. 저만한 프레젠터가 흔하지는 않지.’

‘언제 들어도 좋은 목소리다. 멋있는 친구야!’

류전무와 팀장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동안 수도 없이 들은 내용이었지만, 확실히 윤재의 손을 거치지 보고서의 퀄리티가 대폭 개선돼 있었다.

“이쯤에서 첫 번째 해외 제휴업체인 페레레 그룹의 메인 홈페이지를 확인해 보시고, 페레레 그룹의 최근 10년 실적과 성장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윤재는 그렇게 말을 하며, PPT보고서의 링크 버튼을 눌렀다.

링크 버튼에는 [ 페레레 HomePage ] 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크흐흐흐.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윤재대리 너한테는 미안하다만...크흐흐흐. 왜이리 웃기냐? 미치겠네.’

하진호가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신재영도 웃음을 참고 있었다.

“보시는 것처럼, 취급하는 제품은 초콜렛, 과자류 등을 포함해 약 50여가지의 제품을 갖고 있습니다. 2002년 회계 기준 매출액은 약 15조이며, 최근 10년 페레레는 연평균 8%씩 꾸준하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페레레의 성장성이 놀랍긴 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렇게 윤재의 보고가 스무드하게 넘어가 버렸다.

‘뭐야? 씨발? 왜 아무것도 안 나와? 분명이 내가 어제 밤에 링크 걸어놨는데?’

하진호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쳐 지나갔다.

윤재는 여유 있는 표정으로 하대리를 바라봤다.

‘하대리? 많이 놀라셨죠? 그 버튼 클릭하면 뭔가 나와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와서 당황하셨죠?’

윤재는 하진호에게 살짝 미소를 보여줬다.

그리고 강약조절을 해 가며 자신의 보고사항을 완벽하게 마무리했다.

‘뭐야? 쟤가 설마 다 알고 있었던 거 아냐? 그럴 리가 없는데? 아침에도 늦게 왔고.... 확인할 시간이 없었을 텐데?’

조금 썰렁한 회의실에서 하진호 대리 혼자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          ◈          ◈

“윤대 대리 발표가 너무 좋아서, 생각보다 너무 일찍 끝났다. 시간 애매하니까, 바로 하대리 발표까지 듣고 Q&A 시간은 몰아서 진행하자. 오케이?”

30분 정도 예상했던 윤재의 보고가 20분 만에 끝난 것이다.

조영우 팀장의 얘기에 보고는 바로 속행됐다.

어디 아픈 사람처럼 땀을 비오듯 흘리는 하진호가 회의실 앞으로 나왔다.

“신사업 전략팀 하..하진호 입니다.”

“와아아. 짝짝짝!”

윤재 때 그랬던 것처럼 의례적인 박수가 흘러나왔다.

“야! 하대리. 전무님 계신다고 그렇게 떨면 어떻게 하니? 사내놈이 간댕이가 그것 밖에 안돼서 큰일 하겠어?”

쩔쩔매고 있는 하진호를 보며 신재영 팀장이 역정을 냈다.

완벽한 보고를 끝낸 윤재와 너무 비교되는 자신의 부하 때문에 짜증이 난 모양이었다.

“신사업 부문의 중기 전략은 첫 번째, 매년 1개 이상의 신상품을 시장에 출시하는 것이며......”

말도 더듬거렸고, 무엇보다도 발표에 자신이 없다는 게 여과 없이 전달됐다.

보고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불편할 지경이 됐다.

“야! 하대리! 너 달달 외울 정도로 연습하라고 했지? 연습할 때는 줄곧 잘 하더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신재영 팀장이 다들 있는 자리에서 자신의 팀원을 대놓고 까버렸다.

류전무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명색이 CEO 보고를 앞둔 최종 리허설.

신팀장이 류전무의 눈치를 보더니, 무대로 달려 나갔다.

“너 임마. 비켜봐! 자식이 리허설 때는 곧잘 하더니...”

신재영이 하진호의 리모컨을 빼앗았다.

“전무님! 죄송합니다. 어차피 금요일 회장님 보고 팀장들이 해야 하니까, 하대리 대신 제가 발표 이어 하겠습니다.”

신재영은 레이저라도 나올 것 같은 눈으로, 하대리를 째려 본 후 발표를 재개했다.

S대 출신의 인재답게, 매끄러운 실력이었다.

‘괜히 걱정했나? 특이한 건 없네!’

꾹꾹이를 담당한 하진호 대리는 보고서를 넘기며,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10분 지날 때까지, 하이퍼 링크도 넘나들었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었다.

‘그래! 내가 저장을 안했거나, 네트웤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거야. 윤재 저 자식 골탕 먹이는 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

하진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간신히 여유를 되찾은 하진호가, 장표를 한 장 넘겼다.

“회사의 신사업 장기 전략을 보시기 전에, 세계 최고의 식품 회사 중 한곳인 하인즈의 신사업 장기 전략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대리? 상단에 하인즈 장기전략 눌러줘!”

하진호가 고개를 끄덕인 뒤, 화면 상단의 하인즈 장기 전략을 클릭했다.

“하응! 으음~ 하응~ 씁! 우~ ”

갑자기 에로틱한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포르노 물이 화면에 올라왔다.

“푸흡!”

한 겨울에도 냉커피를 마시는 조영우.

그가 얼음과 커피를 동시에 뿜었다.

경악하기는 모두 마찬가지.

류중정 전무의 얼굴이 형편 없이 구겨졌고, 임나영 팀장과 정지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게 뭐야? 야! 하대리! 너 정신 안 차릴래? 빨리 안 꺼?”

“네? 아. 알겠습니다.”

하진호 대리는 깜작 놀라, 팝업창 우측 상단의 X표를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대부분의 19금 포르노 사이트가 그렇듯, X를 눌렀더니 팝업창 수십개가 더 열리는 것이었다.

“어머! 뭐야? 세상에.... 모니터를 끄시든지, PC를 끄든지 하세요. 정말 뭐야? 아침부터.”

임나영 팀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죄. 죄송합니다...”

하진호는 자신의 노트북의 전원 버튼을 10초 이상 눌러, PC를 강제 종료시켰다.

10초라는 시간이 그에겐 10시간 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내가 김윤재 보고서에 링크시켜 놓은 게, 내 보고서에서 열리냐고? 이런 씨발. 진짜 좆 됐다!’

하진호는 세상을 잃은 표정이 돼 있었다.

신재영도 마찬가지...

“죄송하게 됐습니다. 잠시 쉬었다 오후에 다시 속개하시죠. 죄송합니다.”

전원 강제로 쉬는 시간에 들어갔다.

류전무가 혀를 끌끌 차며 회의실을 나갔다.

조영우 팀장이 회의실을 나가며 하진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호야! 너무 낙담마라. 하지만 ‘하응~ 쓰’ 와 ‘하인즈’는 너무 다르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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