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화 경찰이면 막 때려도 돼?
“야.”
“…….”
“야.”
“…….”
“야!!”
마침내 김 계장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슬리퍼를 집어 던질 듯 손에 쥐었다.
슬리퍼를 집어 드는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원래부터 손에 들려 있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장경은 팔을 들어 방어하는 동작을 취하면서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아, 또 왜 그래요!”
“너 빨리 안 나가? 내가 아까 손님 온다고 했어 안 했어?”
“아니, 내가 범인 잡으려고 형사 됐지, 손님 접대하려고 형사 됐습니까?”
“그럼 내가 나갈까? 응? 내가 나가?”
김 계장이 슬리퍼를 던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슬리퍼를 손에 든 그대로 장경에게 다가왔다.
장경은 잠시 후 슬리퍼로 무자비 구타가 시작될 것이라는 점을 감지했다.
“갑니다, 가요. 에에이, 진짜!”
“어어? 너 인상 안 펴? 좀 있으면 치겠다?”
“알면 그만 좀 괴롭히십쇼.”
“이 미친놈이?”
김 계장이 기어코 슬리퍼를 든 손을 한껏 들어올리자 장경은 재빨리 사무실에서 도망쳐 나왔다.
김 계장은 지난 번 장경을 비호해 준 일로 시말서를 쓰게 된 모양이었다. 앞으로 승진 길이 막힐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장경은 그런 그에게 미안한 감정이 있기는 했기에 일단 시킨 일은 하긴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에이, 그치만 경찰서에 뭔 놈의 손님이야. 여기가 뭔 다방인가?”
장경은 혼잣말로 투덜거리며 손님이 와 있다고 한 경찰서 정문으로 향했다.
일선 형사의 생활을 취재하기 위해 신문사에서 기자가 와 있다고 했다.
“형사 생활에 취재할 게 뭐가 있다고.”
장경은 거칠게 뒷머리를 긁었다.
입구에 나와 보니 아무도 없었다. 아직 기자가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 늦어? 오늘 아주 걸리기만 해 봐라.’
장경은 괜스레 짜증을 느끼며 두리번거렸다.
그 때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가까이 다가왔다.
“저, 혹시 강력계 분이신가요~?”
장경은 무심히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나서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흡!”
형사 생활, 아니 그의 생애를 통틀어 만나 본 적이 없는 미녀였다.
물론, 그의 이러한 감상은 그가 남중과 남고를 나와서 평소 여자를 접할 일이 별로 없었다는 현실적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했다.
그러나 장경이 침착을 되찾은 다음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을 때도 장경은 동일한 감정이 들었다.
“예쁘다.”
“예?”
‘아차!’
장경은 자기도 모르게 속마음을 말로 꺼내 버리고는 당황했다.
“아뇨, 화단에 봄 꽃이 참 예쁘지 않습니까?”
장경은 어색하게 경찰서 입구의 화단을 가리켰다.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시들시들한 개나리와 잡초만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장경의 말을 들은 그녀는 얼떨떨하게 화단을 한 번 돌아보고는 역시 어색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 그러네요~ 아 참, 저는 민주일보 서다혜 기자라고 합니다. 강력계 찾아왔는데요~”
“아, 예. 강력계 박장경입니다.”
“오~ 강력계 분이실 줄 알았어요! 뭔가 강력계 형사라면 가지고 있는 거친 느낌? 그런 게 느껴져서요~”
다혜가 밝게 웃으며 손뼉을 쳤다.
장경은 쑥스럽게 웃으며 괜히 며칠째 입은 가죽 점퍼의 매무새를 바로잡았다.
“예? 허허, 그렇습니까?”
“네! 특히 이 가죽 점퍼! 마치 형사님이랑 한 몸인 것 같은 느낌?”
다혜가 새삼 경탄스럽다는 듯이 장경의 낡아빠진 가죽 점퍼를 가리키며 말했다.
장경은 헛기침을 했다.
“커험! 흠. 그, 그 정도는 아님다. 참, 오늘 오신 이유가…….”
“네! 제가 요새 형사사건에 관심이 생겨서요~ 형사님들은 어떻게 일하시는지 취재해 보려구요!”
장경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얼마 전 사건을 하나 처리하기는 했지만 사실 형사의 하루 하루가 항상 그렇게 드라마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옆에서 눈을 빛내고 있는 이 기자한테도 딱히 말해줄 만한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왠지 장경은 다혜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은 저만 잘 따라 다니십쇼! 일선 형사의 삶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네, 잘 부탁드릴게요!”
장경은 조금 어깨를 으쓱이며 자신의 차 키를 꺼냈다.
* * *
장경은 역 앞의 성인오락실에 차를 댔다.
불법 영업 중인 도박장을 단속하는 모습을 다혜에게 보여줄 셈이었다.
장경은 일부러 거칠게 문을 쾅 열고 들어섰다.
“아, 어떤 새끼가 이렇게 문을 세게 여닫아?”
안쪽에서 대머리에 한 쪽 귀에만 피어싱을 한 험악한 사내가 소리를 질렀다. 장경이 준비한 대사를 치기도 전에 험악하게 다가온 사내는 이내 장경을 보고는 말을 걸었다.
“어? 형님 아니요? 아니, 그냥 한 게임 하고 싶다 싶으시면 부르시면 되지 뭐 이리 시끄럽게 들어온다요.”
다혜가 장경의 뒤에서 신기하다는 듯 오락실과 사내를 번갈아 기웃거렸다.
장경은 부산스럽게 집게손가락을 입 앞에 갖다 대며 소리를 죽여 말했다.
‘조용히 해, 임마!’
하지만 사내는 별로 눈치가 있는 타입은 아니었다.
사내는 장경이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있더니, 뒤늦게 뒤에 선 다혜를 발견했다.
“하이고야~ 뒤에 아가씨는 누굽니까? 형님 이거?”
사내는 우렁차게 말하며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장경은 짜증이 나다 못해 기절할 지경이었다.
“아니, 후. 너희 이거 불법 도박 영업 아니야? 허가 받았어?”
사내가 불쾌하다는 듯 대답했다.
“매일 같이 놀러 오시던 분이 갑자기 뭔 소립니까? 저번에 음료수 서비스 안 줬다고 이러는 거죠?”
사내가 투덜거리더니 옆의 냉장고에서 맥콜과 암바사 캔을 몇 개 꺼내 장경에게 안겨주었다.
“자, 자. 이거 드릴테니 화 푸시고! 오락이라도 하시면서 데이트 하십쇼~”
사내는 장경이 뭐라 대꾸할 틈도 없이 휘적휘적 가게 안에 딸린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장경은 벙쪄서 손에 들린 음료수만 내려다보았다.
다혜는 흥미진진하다는 표정으로 수첩에 뭔가를 열심히 끄적였다.
장경은 쓴 입맛을 다시며 다시 차를 몰았다.
다혜가 암바사를 꼴깍꼴깍 마시더니 캬아 소리를 내고는 물었다.
“이번엔 어딜 가나요?”
“시장 순찰 돌 겁니다.”
“시장 순찰이요?”
“예, 요새 깡패 새끼들이 돌아다니면서 상인들 돈 갈취한다는 얘기가 있어서요.”
실제로 최근 시장 상인들로부터 인근 깡패들이 찾아와 소위 자릿세를 요구한다는 신고를 여러 차례 받은 터였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강력계 형사의 모습을 보여주지!’
장경은 다짐하여 시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는 다혜와 함께 시장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장경으로서는 반갑게도(?) 시장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와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실랑이를 하는 공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돈이 왜 없는데!”
“이놈아, 이 돈은 안 된다!”
“에이, 안 되는 게 어딨어! 빨리 갖고 와!”
장경은 자신이 나설 때라는 것을 직감했다.
“당신! 뭐 하는 거야!”
건장한 남자가 그를 삐딱하게 돌아보았다.
“넌 또 뭐야?”
“경찰이다, 이 새끼야!”
장경은 외치며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남자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장경은 재빨리 그의 두 팔을 뒤로 돌려 잡았다.
“아니, 이게 뭐 하는 짓이여!”
갑자기 아주머니가 질겁을 하더니 가판대에서 뛰쳐나와서는 장경의 등짝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아야! 아야! 아니, 뭐 하시는 거에요 아주머니! 저 경찰이라니까요!”
“경찰이면? 경찰이면 우리 집 애 막 때려도 돼?”
“예?”
“당신이 잡고 있는 거, 우리 아들이라고!”
장경은 어안이 벙벙해져 교차해 잡고 있던 남자의 팔을 놓았다.
남자는 신음소리를 내며 비척비척 아주머니에게 걸어갔다.
“엄마… 나, 아파…….”
“그래그래, 병원비 줄테니까 혹시 아픈 데 있나 병원 한 번 가봐라.”
“나 오락실 갔다와도 돼?”
“그래, 갔다와.”
아주머니는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 둔 돈을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장경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어, 그러니까… 저 분이 아주머니 아드님?”
“그래요!”
“그러면 왜 돈을 달라고…….”
“애가 맨날 용돈 부족하다고 해서 그거 갖고 좀 싸웠어요! 좀 싸웠기로서니 경찰 양반이 다짜고짜 팔을 꺾지를 않나, 나 참!”
아주머니는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차고는 가판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장경은 조심스럽게 다혜를 돌아보았다.
다혜는 여전히 신나게 뭔가를 수첩에 적고 있었다.
다혜는 이제 취재할 것이 있어 삼청동 쪽으로 가겠다고 하며 살포시 웃었다.
“오늘 정말 재밌었어요~”
장경은 그녀의 웃는 모습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에, 저… 태워다 드리겠슴다.”
다혜는 손사래를 치며 그럴 필요 없다고 한사코 거부했지만 장경은 어차피 가는 길이라고 하며 그녀를 차에 태웠다.
“그럼 또 신세 좀 질게요~”
다혜는 조수석에 타서 안전벨트를 맸다.
장경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어눌하게 말을 꺼냈다.
“저, 오늘 실망하셨죠? 이게 제가 하는 일이 항상 이런 것은 아닌데…….”
장경은 오락실과 시장에서의 사건들을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멋진 형사의 모습은커녕 가는 곳마다 실수 연발이니 다혜가 뭐라고 생각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뭔가를 열심히 적고 있는 걸 보니 무능한 일선 경찰에 대해 특집기사라도 준비 중일지도 몰랐다.
“실망이요?”
다혜가 깜짝 놀라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예……. 제가 가는 데마다 못 볼 꼴만 보여 드린 것 같아서…….”
“예에? 아니에요! 저는 재밌었는데요~ 형사님 덕분에 음료수도 얻어 마셨구요!”
다혜는 암바사 캔을 들어 올리며 웃어보였다.
“그래도, 뭔가 강력계 형사같은 일을 보여 드려야 되는디…….”
다혜는 장경의 모습이 귀엽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형사님 같은 분들이 평소에 열심히 해 주시니까, 오늘 같은 날도 아무런 사고 없이 잘 지나간 거 아닐까요?
오늘 정말 평화로웠잖아요~ 동네 분들도 재밌었고. 평소에 형사님들이 열심히 순찰 돌고 열심히 일해 주시지 않았으면 오늘도 뭔가 갑자기 사건사고가 터져 나오지 않았겠어요?”
장경은 놀란 눈으로 잠시 그녀를 곁눈질했다.
다혜는 정말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그, 그러면 아깐 뭘 그렇게 적고 계셨던 겁니까?”
“예? 아, 수첩이요? 그건 그냥 제 버릇같은 건데. 저는 누굴 만나서 뭘 했고 어딜 갔는지 항상 다 적어 두거든요~
오늘은 형사님이랑 여기 저기를 많이 다녀서 쓸 게 좀 많았어요.”
장경은 비로소 안도감을 느꼈다.
그녀의 말을 듣고 보니 오히려 뭔가 자신이 활약할 사건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던 스스로가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형사라는 놈이 사건이 발생하기를 기다리고 자빠져 있어?’
장경은 정신적으로 스스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 저기서 세워 주시면 되요~”
장경은 다혜의 지시에 따라 차를 잠시 세웠다.
다혜는 오늘 고마웠다고 다시 말을 건네고는 밝게 손을 흔들었다.
“기자님!”
잠시 가만히 앉아 있던 장경은, 무언가 결심한 듯 열심히 레버를 돌려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그러자 어딘가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던 다혜가 걸음을 멈추고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저 연락처 좀 주시면 안됨까!”
다혜는 뭐라고 대답했지만, 거리가 멀어 잘 들리지 않았다.
장경은 다시 외쳤다.
“뭐라구요?!”
다혜는 뭐라고 다시 외치려다가 싱긋 웃으며 자신이 내린 조수석 방향을 가리키는 손짓을 했다.
장경은 의아해하다가 조수석 의자 위를 살펴보았다.
다혜의 명함 한 장이 수줍게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