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검사가 뭐하는 사람들이냐고?
조필웅은 토스트를 입에 문 채 한가롭게 펜을 돌리며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행히 토스트집의 사장님은 금방 회복해 며칠 전 가게를 다시 열었다.
‘그래도 사건 처리하는 건 귀찮은 걸.’
토스트집 사장님의 사건과 PC방 살인사건으로 조필웅은 확실히 느낀 바가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 존재였다.
그러고 보니 이규필 부장을 찾아가 좀 더 중요한 사건을 맡고 싶다고 호소한지가 벌써 몇 주가 지났다. 그 후 그로부터는 가타부타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조필웅은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빠른 시일 내에 이규필 눈 안에 들어야 하는데.’
이규필이 장래 대성할 것이라는 건 알고 있더라도 그와 연을 맺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다.
또, 어영부영 지내다가 갑자기 은전차사가 자신을 돌려보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필웅이 다시 한 번 그를 찾아가 봐야 하나 생각하는 찰나, 사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여어, 조필웅이!”
이규필 부장이었다. 조필웅은 소스라치게 놀라 먹던 토스트를 책상 위에 던져놓고는 기립했다.
“부장님, 오셨습니까!”
“야, 군기 든 척하지 말고 앉아.”
이규필은 들고 있던 이쑤시개를 휴지통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그리고는 조필웅 앞의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어때, 요새 잘 지내?”
“걱정해 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실적 좋다는 얘기가 있어.”
“자랑할 정도는 못 됩니다.”
이규필은 가볍게 웃으며 다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조검, 검사가 뭐 하는 사람들이냐?”
이규필은 책상 위에 놓인 다리를 건들거리며 떨다가 갑자기 물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필웅은 잠시 당황하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범죄자들이 적절한 형벌을 받도록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그런데 너무 거기에 매몰되다 보면 꼭 주화입마에 빠지는 사람들이 생겨요.”
“주화입마라고 하시면…?”
이규필은 눈을 감고 상념에 잠긴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옛날에 내 선배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 어떤 범죄자라도 그 사람 손에 걸리면 그냥 작살이었지. 그 선배도 검사는 범죄자들 잡아 처넣는 게 곧 인생의 목표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어.”
조필웅은 잠잠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자기 마누라가 동네 슈퍼에서 잡다한 생필품을 꾸준히 훔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야.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 아무튼 그걸 알고 큰 충격에 빠진 선배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자기 마누라를 기소해 버렸어.”
“자기 마누라를요?”
“응. 상습이니까. 심지어 단순 절도가 아니라 상습 절도로.”
조필웅은 자기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래서요?”
“당연히 마누라는 울고불고 매달렸지. 그렇지만 선배는 자신이 그토록 원리원칙을 부르짖었는데 공사 구분을 못하면 면이 안 선다고 생각했는지 정말 모르는 사람 대하듯 끝까지 가버린 거야.”
이규필은 잠시 말을 끊고 쓴웃음을 지었다.
“결과는 유죄였지. 심지어 징역형을 받았어. 선배의 마누라는 징역 6개월을 받았고 교도소에서 자살했지.”
이규필은 충격적인 결말을 정말 담담한 말투로 들려주었다.
필웅은 그 얘기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 검사의 향후 행적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
“그러면 그 검사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그 선배? 글쎄? 듣기로는 마누라가 죽고 완전 넋 나간 사람처럼 출근도 안하고 술만 퍼마시다가 파면당하고 어디 벽지로 들어가 죽었다나.”
조필웅은 문득 이규필이 이런 이야기를 왜 자신에게 하는지 궁금해졌다.
“저, 그런데 부장님, 말씀의 취지는…….”
이규필은 그제서야 스스로의 이야기에서 빠져나온 듯 씩 웃으며 말했다.
“뭐든 지나치게 신념화되면 안 된다는 거야. 신념도 좋지만 신념에만 매몰되면 그게 광기가 되고 집착이 되어 버리는 거지. 사람은 로보트가 아니잖냐.”
필웅은 곰곰이 생각해봤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얘기를 해주는 거지? 어깨에 힘 좀 빼라는 건가?’
필웅이 혼자서 생각에 빠져 있는 순간 이규필은 필웅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범죄자들, 다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다. 너무 다 괴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어. 그럼 난 이만 가볼까?”
이규필은 빙글빙글 웃으며 책상에서 다리를 내리고는 일어섰다.
필웅은 차도 대접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급하게 말했다.
“부장님, 차라도 한 잔…….”
“너 커피도 못 타잖아. 안 먹어 임마.”
이규필은 호탕하게 껄껄 웃으며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오늘 필웅은 이규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냥 노는 것만 좋아하는 검사인 줄 알았는데 나름 소신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런 이규필이 필웅은 더 궁금해졌고,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졌다.
* * *
“자아, 마시자!”
이규필이 잔을 들어 건배를 외쳤다.
“감사합니다, 부장님!”
검사들이 공손히 두 손으로 잔을 들고 그의 잔보다 살짝 아래쪽을 부딪히며 복창했다.
“야, 오늘 안 먹는 놈들은 집에 못 들어간다? 물론 먹어도 두 발로는 못 들어가겠지만.”
이규필이 농을 치자 주위에 있던 검사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필웅은 고개를 돌려 폭탄주를 마시며 흘끗 정시연을 바라보았다.
‘쟤는 도대체 여기 왜 와 있는거야?’
오늘은 필웅이 소속된 형사부의 회식 자리였다. 시연은 공판부 소속이다. 따라서 이 회식에 딱히 올 이유가 없었음에도 부득불 따라나온 것이었다.
“나 없으면 누가 너 챙겨주냐?”
“헐.”
그 말을 듣자 부임일 첫 날 술에 떡이 되어 필웅의 등에 업혀 가던 시연의 기억이 잠시 필웅의 뇌리를 스쳤다.
필웅은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규필 부장이 흔쾌히 허락하기도 했고 굳이 구구절절 따라와서는 안 되는 이유를 나열하는 것도 부자연스러워 보여서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빤히 시연을 바라보던 필웅은 두리번거리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적당히 마셔라.’
시연은 소리를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말했다.
‘너나 조심해.’
필웅은 시연을 가르킨 후 두손을 모아 잠드는 시늉을 했다. 너나 술먹고 뻗지 말라는 의미였다. 시연은 그런 필웅에게 살짝 눈을 흘겼다.
“조검, 왜이렇게 안 마셔?”
이규필이 필웅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필웅의 컵에 소주를 콸콸 부었다.
“자, 마셔!”
조필웅은 잠시 고민하다가 분연히 일어나 말했다.
“부장님께 충성하는 마음으로, 원샷하겠습니다!”
“오오!”
“크, 남자다 남자!”
“마셔라!”
일련의 환호성을 들으며 필웅은 눈을 질끈 감고 유리잔 가득 담긴 소주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오?”
“야, 천천히 마셔라.”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유리잔 속의 소주는 마치 수채구멍에 물 빨려들어가듯 필웅의 입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야~ 천천히 마시라니까!”
그 모습을 보자 하나둘 걱정된다는 말투로 그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필웅은 아랑곳하지 않고 꿀꺽꿀꺽 술을 들이킬 뿐이었다.
시연도 필웅에게 그만하라는 눈치를 줬지만 필웅은 여전히 개의치 않았다.
잔이 바닥을 드러내자 조필웅은 잔을 거꾸로 들어 머리에 탈탈 터는 제스처를 취했다.
“우와아아아!”
필웅에게 모두 일제히 함성을 보냈다.
“이 자식, 굉장한데?”
“아니 원래 이렇게 술을 잘 마셨어?”
조필웅은 가볍게 웃고는 입을 쓱 닦았다.
“이 놈, 난 놈이네”
이규필이 옆에서 그의 등을 두드리며 칭찬을 했다.
‘됐어! 부장님 눈에 들었어!’
필웅은 만족스러웠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필웅은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맹렬하게 테이블에 머리를 박으면서 필웅이 쓰러졌다.
“검사님?”
누군가가 필웅을 흔들었다.
“검사님? 어째 여기서 주무십니까?”
필웅은 간신히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숙직실이었다.
주 계장이 걱정스레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감님이란 호칭이 왠지 나이들어 보인다고 생각한 필웅은, 며칠 전 주 계장에게 앞으로는 그냥 검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당부해 둔 터였다.
“계장님?”
“아이구, 술을 얼마나 드신 겁니까. 꿀물이라도 타 드려요?”
“아니, 괜찮아요. 지금 몇 십니까?”
“9시입니다. 오늘 점심까지 무전취식 사건 정리해서 공판부에 넘겨야 되는데요.”
“알았어요. 아 머리야……. 아메리카노 마시고 싶은데.”
“아메, 뭐요?”
아직 스타벅스 같은 카페 프랜차이즈가 대중화된 시기는 아니었고, 아메리카노 같은 커피가 흔한 시절도 아니었다.
필웅은 새삼 와이파이와 커피가 흘러 넘치는 2020년의 한국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필웅은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숙직실을 나와 사무실로 향했다.
어제 입은 옷 그대로인 걸 보니 집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이었다.
사무실에 간신히 자리를 잡고 앉자, 시연이 폭풍같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아, 노크 좀 해!”
시연은 어이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는 안쪽에서 문을 세 번 두들겼다.
이번에는 필웅이 그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뭐하러 왔어?”
“야, 너 어제 일 기억 안나?”
필웅은 불안감이 스쳤다. 그러고보니 어제 1차에서 유리잔의 소주를 원샷한 이후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내가 어제 뭐 했어?”
시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어제 그의 행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실로 가관이었다. 갑자기 머리를 테이블에 박더니 일어서서는 이규필 부장을 끌어안고 울다가 다른 동료 검사들에게 일 좀 적당히 하라고 잔소리를 하다가 마침내는 이규필 부장의 손을 잡아끌며 무슨 나이트를 가자고 했다는 것이었다.
“무슨 나이트?”
“몰라. 썬샤인 호텔에 뭐? 보스? 그런 이름이었는데. 아무튼 네가 하도 진상을 부리니까 유 검사님이 너 들어다 업고 숙직실에다 재운 거야.”
유 검사라면 그보다 세 기수 정도 높은 선배 검사였다.
필웅은 손바닥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창피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나영전은 술이 세진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술을 잘 마시는 축에 속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몸은 필웅의 몸이어서 알코올의 해독 능력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조필웅은 조필웅의 저질스러운 알코올 해독능력에 절망했다. 필웅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연에게 물었다.
“내가 너한테는 무슨 짓 안 했어?”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쏘아보던 시연이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무, 무슨 짓이라니?”
“그렇잖아. 그렇게 폭풍같이 진상을 떨고 있을 때 너한테는 뭐 실수 안 했냐고.”
“그런거 없으니 걱정마~”
“다행이네.”
필웅은 어질어질한 머리를 잡고 블랙커피라도 없나 하고 사무실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 시연은 굳은 듯 그의 사무실 한가운데에 가만히 서 있었다.
“뭐해? 커피 줘?”
넋이 나간 듯 있었던 시연은 필웅의 말에 깜짝 놀랐다.
“응? 아, 아니! 됐어!”
“내가 너한테는 실수 안한 거 맞지?”
“아니라니까! 난 이제 재판 들어간다!”
시연은 황급히 올 때와 마찬가지로 사무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필웅은 어안이 벙벙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 *
어제 밤. 술이 떡이 된 필웅은 이제 동료 검사를 하나씩 붙잡고 넋두리를 하고 있었다. 시연은 보다 못해 그의 목덜미를 잡고 술집 한 구석으로 그를 끌고 갔다.
“아, 아야야! 뭐하는 거여!”
“뭐하는 거긴, 너 술도 못 먹으면서 갑자기 왜이리 객기를 부려?”
“아닌뒈에? 나 술 엄청 잘 마시는뒈?”
“으이그~ 남자들이란 진짜!”
시연은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쏘아붙혔다.
“야.”
술취한 목소리로 필웅이 시연을 불렀다.
“왜!”
“내가, 미안하다고.”
시연은 짜증스럽게 대답하다가 무심코 비틀거리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
“내가, 아주 가끔 틱틱대는거 안다고.”
필웅이 꼬이는 발음으로 간신히 한 단어 한 단어씩 눌러 말했다.
“근데 너 보면 자꾸 그 년… 아니 네가 그 년인가? 아무튼 그 여자가 생각난다고. 짜증난다고오!”
필웅이 갑자기 소리를 치자 시연은 흠칫 놀랐다.
“그 년이 누군데?”
“뭐? 그 년… 그 년이, 이 년…….”
시연은 어이가 없어하면서도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그를 붙잡고 정신차리라며 흔들었다.
“정검, 뭐해? 아무래도 내가 얘 데려다줘야 되겠어. 정검은 먼저 들어가.”
어느새 유 검사가 다가와 쓰러지려는 필웅을 잽싸게 부축하며 말했다.
“어, 선배님?”
“괜찮으니까 들어가봐.”
유 검사는 귀찮다는 듯 손짓하며 필웅을 부축해 사라졌다.
시연은 얼떨떨해하며 혼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래도 미안한 건 알긴 아나보네.’
그녀는 취기 때문인지 왠지 들뜬 기분으로 생각했다. 시연은 그렇게 혼자 조금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가 문득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근데 그 년은 또 뭐야?’
점점 필웅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느끼는 시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