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사로 개과천선-5화 (5/151)

5화 누구 닮은거 같은데?

필웅은 점심이나 먹을까 하고 시연의 사무실에 찾아갔다. 하지만 시연은 자리에 없었다.

“검사님 요새 수사 사건을 하나 맡으셔서 정신 없으세요.”

“정 검사가요? 공판검사가 재판에만 들어가면 되지 수사는 왜요?”

“공판 준비하려다 보니 수사 미진한 것들이 좀 보여서 아예 직접 수사지휘하시려나 봐요.

사건 초동 수사하신 검사님이 가벼운 사고로 입원하셔서 제대로 수사 완결이 안 된 것 같아요.”

시연의 담당계장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음. 그럼 오늘은 혼자 먹어야겠네.’

필웅은 그녀의 사무실을 나왔다.

필웅이 혼자서 가볍게 점심을 해결하고 사무실로 들어오자 한 젊은 아가씨가 주 계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검사님 오셨어요?”

주 계장이 먼저 필웅을 발견하고 일어서며 인사했다.

필웅은 가볍게 인사를 받고 물었다.

“이쪽 분은 누구세요?”

“아, 이번에 법원출입기자가 된 민주일보 서다혜 기자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제 사무실에는 왜?”

“안녕하세요! 검사님들께도 한 번 인사드리고 싶어서 왔더니 대변인실에서 검사님한테 안내받으라고 하더라구요!”

서 기자는 씩씩하게 말하며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필웅은 얼떨결에 그녀의 손을 잡고 몇 번 흔든 후 말했다.

“저한테, 안내요?”

“네! 다른 검사님들은 바쁘셔서 먼저 협조 요청해 뒀다고 하시던데요?”

필웅이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대변인실에서 비슷한 내용의 공문을 본 것도 같았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대충 읽고 휴지통에 버리긴 했지만.

“아, 예. 그렇군요. 혹시 보고 싶으신 데라도?”

서다혜는 빙글빙글 웃으며 장난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음, 그럼 청사 내부에 산책할 만한 데가 있을까요?”

“산책이요?”

“네에~ 저도 방금 밥을 먹고 왔더니 너무 배불러서요. 한 바퀴 돌고 건물 안도 보여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하시죠”

필웅은 다혜를 이끌고 청사 뒤쪽의 산책로로 향했다.

“와아, 생각보다 꽃이 많네요.”

“네. 검사장님이 꽃을 좋아하셔서.”

“아하, 검사님은 꽃 안 좋아하세요?”

“안 좋아하는 건 아닌데 딱히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구나~”

다혜는 하나둘 피기 시작한 개나리의 꽃향기를 맡아 보기도 하고 떨어진 꽃잎을 주워 보기도 하면서 걸어갔다.

필웅은 묵묵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다혜의 머리는 시연보다도 짧은 단발이었다. 서글서글한 눈매였지만 눈빛에는 왠지 모를 장난기가 가득했다. 약간 광대뼈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갸름한 얼굴 덕분에 전반적으로 귀여운 인상이었다.

“검사님은 무슨 사건 주로 하세요?”

“저는 이것 저것 다 합니다.”

“흐으으응~ 최근에 기억에 남는 사건은 없었어요?”

“글쎄요? 뭐 죄다 잡범들 뿐이라.”

“살인사건 같은 건 안하세요?”

“할 때도 있기는 한데 살인사건은 보통 강력부에서 합니다.”

“아, 언뜻 듣기는 했는데 각 부서별로 무슨 사건을 주로 하시는 거에요?”

필웅은 조금 귀찮았지만 이것도 일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며 인내심 있게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조직폭력배나 살인사건 같은 것들은 주로 강력부에서 수사합니다. 조사부에서는 금융이나 조세 관련 사건 같은 화이트컬러 범죄를 주로 다루구요. 제가 속한 형사부에서는 그 외의 절도, 폭행, 교통사고 같은 다양한 사건을 다룹니다.

여기까지가 수사부서고 수사부서에서 사건을 수사한 자료들을 공판부서에 넘기면 공판부에서 그 자료들로 실제 재판을 진행합니다.”

“아, 그러면 검사님은 재판에는 안 들어가세요?”

“원래는 안 들어가지만 가끔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렇구나~”

서다혜는 경쾌하게 대답하면서 어느샌가 수첩을 꺼내 끄적끄적 적기 시작했다.

“살인사건을 다루는지는 왜 물어보신 겁니까?”

“흠~ 글쎄요~?”

다혜는 한 편으로는 수첩에 뭔가를 적어 가면서 건성으로 대답했다.

“저기 앉아서 얘기 좀 하실까요?”

다혜가 눈 앞의 벤치를 가리키면서 제안했다.

필웅은 별말 없이 다혜의 옆에 앉았다.

“그럼 최근에는 살인사건 같은 건 수사한 적이 없으시다는 거죠?”

다혜가 재차 물었다. 필웅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대답했다.

“뭔가 있군요. 저한테서 뭔가 정보를 얻어 가실 생각이신 겁니까?”

“헤에~ 들켰네요!”

다혜는 쉽게 수긍하고는 수첩을 덮어 자켓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넣었다.

“자료가 필요하시면 대변인실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참고해 주세요. 개인적으로 사건에 대한 정보를 유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건 알아요. 보도하려고 물어본 게 아니에요.”

벤치에 앉아 발을 까닥거리던 다혜는 갑자기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냥 궁금했어요. 살인사건이라는 걸 검사님들은 어떻게 취급하시는지.”

“어떻게 취급하다뇨?”

다혜는 머리를 옆으로 쓸어올리고는 말을 이었다.

“일반인들한테 살인사건은 큰 사건이잖아요. 하지만 검사님들은 매일 접하는 게 이런 저런 범죄들이고, 살인사건도 그 중 하나일 뿐이라서 딱히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닌가 싶어서요.”

“저희들에게 모든 사건은 다 중요합니다.”

“그런 검찰 윤리규정에 나올 것 같은 말 하지 마시구요.”

“정말입니다. 그런데 왜 살인사건에 그렇게 집착하시는 겁니까?”

다혜는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히 얘기를 꺼냈네요. 다른 이야기하죠.”

필웅은 뭔가 찜찜한 기분이었으나 서다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수그리고 있던 다혜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필웅을 돌아보고 말했다. 표정은 다시 밝아진 듯했다.

“이제 들어갈까요? 청사 내부도 보여주세요!”

청사 내부를 돌던 그들은 시연과 마주쳤다.

“뭐해? 이 분은 누구셔?”

시연이 경계의 눈빛으로 서다혜를 바라보았다.

필웅은 그런 그녀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서다혜를 소개했다.

“민주일보 서다혜 기자님이시래. 이번에 새로 법원출입기자 되셔서 청사 내부 안내해 드리고 있었어.”

“정시연 검사에요. 법원출입기자가 언제부터 검찰청 출입기자가 됐죠?”

다혜가 인사성 밝게 꾸벅 인사를 하고는 명함을 건네며 멋쩍게 말했다.

“원래는 검찰청에 자주 올 일은 없을 것 같은데요, 오늘은 첫 날이고 해서 인사라도 드리러 왔습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명함을 받는 시연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그럼 저는 먼저.”

시연은 이내 자리를 떴다.

“많이 바쁘신가봐요.”

“요새 좀 바쁜 것 같더라구요. 원래 까칠한 애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다혜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검사님, 오늘 감사했어요! 다음에 또 뵐 일 있으면 좋겠네요.”

다혜는 다시 손을 내밀어 필웅과 악수했다.

떠나는 다혜의 뒷모습을 보며 필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나. 이런 일은 추가수당이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잠시 후. 필웅은 시연의 사무실에 와 있었다. 시연이 손이 부족하다기에 도와주러 온 참이었다.

시연이 정리를 부탁한 몇 가지 증거들을 뒤적이는 필웅을 시연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왜?”

“아까 낮에 그 기자, 아는 사람이야?”

“아니? 오늘 처음 봤는데.”

“그래? 사이 좋아 보이길래.”

“도대체 어디가?”

“둘이 산책도 하고 그러더라?”

필웅은 살짝 당황했다.

“산책은 무슨. 그냥 청사 구경시켜 준거야.”

“걔 되게 신나 보이던데? 막 꽃도 따고.”

“서 기자가 신난 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필웅이 애써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정시연은 또다시 뭐라 하려다가 잠시 생각에 빠졌다.

‘하긴 저 혼자 신나 보이긴 했지?’

그 때 시연은 문득 며칠 전 필웅이 술김에 한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저, 근데, 내가 누구를 닮았어?”

필웅은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했다.

“아, 아니? 무슨 소리야?”

“너 저번에 회식했을 때 생각 안 나지?”

“그 때 좀 취해서…….”

정시연은 오늘 확실히 물어봐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뭐, 네, 네, 네 짜증나는 첫사랑이라도 닮았냐?”

‘아, 왜 말은 더듬고 난리야!’

시연은 어딘가로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용기를 내 물었지만 정작 입 밖으로 나온 말은 뭔가 주눅든 듯했고 말까지 더듬어서 더 우스워 보였다.

필웅은 그 말을 듣고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다가 팔짱을 꼈다. 시연은 바보스럽지만 왠지 떨리는 기분이었다.

“그건 확실히 아니야.”

잠시 후 필웅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시연은 화를 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조금 당황스러웠다.

시연이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필웅은 사건 파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살인사건이네?”

정시연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그거? 내가 요새 그거 수사지휘하느라 정신이 없어. 그래도 좀 파 보니 증거가 워낙에 확실해서 유죄 선고받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아. 근데 재판장이 3C라 좀 불안하긴 해.”

“3C?”

“아, 넌 수사라 잘 모르겠구나. 3C라고 엄청 꼬장꼬장한 판사 있어. 공판 들어갈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필웅은 사건 파일을 보다가 무언가 눈에 띄는 것을 발견하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사건 파일에 첩해둔 증거들과 경찰의 신문조서를 살펴보았다.

무언가 핑 하고 조필웅의 머릿속에서 연결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영전은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 정확한 재판 결과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한때 사회적인 공분을 샀던 사건이라는 것을 들었던 바 있었다.

이 사건은 순간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한 한 청년이 저지른 살인 사건이었다.

동생과 함께 PC방에 간 청년은 자신의 음식그릇을 치우지 않는 직원에게 괜히 시비를 건다. 청년은 자신을 무시하는 거냐고 따졌고 직원은 애써 상황을 피하려 한다.

직원에게 계속 사과를 요구하던 청년은 그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피해망상에 젖었다.

집으로 돌아가 식칼을 가져온 그는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직원을 무참히 찔렀다. 잔인한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그는 집에 돌아와 태연히 옷을 갈아입고 밥을 먹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목격한 PC방 손님들의 신고로 그는 곧바로 집에서 체포됐다.

훗날 ‘PC방 살인사건’으로 알려질 사건은 명백한 증거와 증인이 있어 어렵지 않은 사건으로 보였다.

‘하지만 사건이 그렇게 쉽게 해결되진 않았었지.’

나영전의 기억 속 사건의 사실관계도 사건 파일에 끼워진 증거, 신문조서들의 내용과 일치했다.

하지만 명백한 사실관계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그리 쉽게 풀리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시연이 대뜸 물었다.

필웅은 비로소 상념에서 깨어나 사건 파일을 추스렸다.

분명 이 사건이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되지는 않았던 듯한데 어떤 결과였는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응? 아, 아냐.”

꺼내 놓은 증거들을 사건 파일에 다시 정리해 넣으면서 필웅이 대답했다. 그 때 툭 하고 사건 파일 사이에서 종이가 한 장 떨어졌다. 피해자의 인적사항인 모양이었다.

조필웅은 종이를 집어 들며 피해자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누구 닮았는데?’

조필웅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인적사항을 읽어 나가다 눈이 번쩍 띄였다.

피해자의 이름은 ‘서다운’, 나이 20세의 남성이었다.

그리고 가족 인적사항에 적혀진 누나의 이름은 ‘서다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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