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힐러임 아무튼 힐러임.
“부하들의 대가는 네놈들의 목으로 받겠다!”
“지가 무능한 걸 부하탓을 하네.”
“위가 멍청하면 고생하는 건 아래니까요. 쯧.”
공무원인 만큼 이를 뼈저리게 느끼는 이은우가 혀를 찼다.
“닥쳐라!”
궁수와 은우의 무자비한 팩트에 얼굴이 붉게 물든 알브헤임은 우악스럽게 달려들었다.
쿠웅!
“하!”
그러나 놈의 공격은 셈의 방패에 간단히 막히고 말았다.
셈의 팔 근육에 불끈 힘이 들어갔다. 햇빛을 받은 그의 머리가 빛났다.
“넌 못 지나간다!”
더 이상 힐과 법사를 노리는 병사들도 없겠다.
셈은 그의 모든 공격을 받아내며 철저하게 멤버들을 수비하기 시작했다.
“크흐으윽! 비켜라! 비키란 말이다!”
“우하하하하! 요정왕이 아니라 나비왕이었군!”
알브헤임은 현란하게 움직이고 하고 꾸준히 셈의 방패를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셈의 방패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견고했다.
마치 거대한 성벽을 때리는 듯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긴장감이라고는 사라져버린 전투였으나 그들 중 방심한 헌터는 단 한명도 없었다.
“빨리 끝내겠습니다.”
“그래요.”
순식간에 궁수의 옆을 떠난 이은우가 셈을 뛰어넘으며 기습을 감행했다.
소리 없는 기습이었으나 그는 별 힘을 들이지 않고 날개로 은우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같잖은 수를 쓰는구나!”
“너야말로.”
“흐으으읍!”
셈의 방패를 발판 삼아 뛰어오른 알브헤임은 공중에서 날개를 이용해 은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각을 노린 공격에 은우의 반응이 아주 조금 늦어지고 말았다.
0.1초.
그러나 최상위 헌터의 싸움에서 0.1초란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시간이었다.
“제길!”
“죽어라!”
당장에 목숨이 위험해질 상황, 셈이 곧바로 달려 나가고는 있었으나 거대한 대방패 탓에 속도는 터무니없이 느렸다.
그러나 은우의 뒤에는 궁수가 있었다.
쐐애애애액!
후방에서 날아온 화살이 알브헤임의 손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치잇!”
결국 헤임은 궁수의 견제에 어쩔 수 없이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철벽같은 탱커에 적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저격 가능한 궁수, 한술 더 떠서 미치광이 마법사에 초고속 검사까지.
천운이 돕지 않는 한 알브헤임이 이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ㅋㅋㅋㅋㅋㅋ어캐 이길건데ㅋㅋㅋㅋㅋ]
[알브헤임 : 살려줘.]
ㄴ 안돼 죽어 ㅋㅋㅋㅋㅋ
ㄴ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
ㄴ ??? : 대장전으로 하자!
ㄴ 어림없지 ㅋㅋㅋㅋㅋㅋㅋ
알브헤임도 이를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부정하며 더욱 날카롭게 기세를 갖추었다.
‘이대로 죽을 수 없다.’
먼저 간 부하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대로 쓰러질 순 없었다.
최소한 한 명이라도 데려가야 그의 분이 풀릴 것만 같았다.
그는 공중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잠시 궁수 일행을 바라보았다.
‘마법사? 힐러?’
힐러치고 꽤 몸집이 있긴 하였으나 적어도 저 정신 나간 마법사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쐐애애액!
“이런!”
생각도 잠시 어딜 한눈을 파냐는 듯 궁수의 화살이 미간을 노리고 날아왔다.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화살을 피한 그는 곧바로 이 기회를 역이용하여 셈을 향해 돌격했다.
“와라!”
“흐아아아아압!”
마치 진심을 다한 일격처럼 보이는 공격에 셈 또한 대방패에 몸을 밀착시키고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하였다.
그러나 알브헤임은 셈에게 부딪히기 직전 억지로 몸을 틀어 방향을 바꾸었다.
“뭣!?”
“적어도 한 놈은 데려간다!”
그는 곧바로 등 뒤의 힐에게 돌격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기습에 힐은.
“허.”
어이가 없었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헤비급 복싱 세계 챔피언.
헌터계의 ‘아쉬움.’
A급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그 이름.
나만힐.
만약 힐러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S급을 달고 전장을 호령하고 있었을 남자.
그것이 나만힐이었다.
알브헤임이 만전의 상태였다면 몰라도 그는 쌓여온 대미지와 방금 전 억지로 방향을 돌린 탓에 너무나도 불완전했다.
알브헤임은 ‘힐러인데 이 정도면 죽겠지’라는 안일한 마음으로 그에게 달려든 것이다.
서슬 퍼런 칼날을 들이미는 그의 검을 힐은 가볍게 손날로 후려쳤다.
“뭣?!”
힐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상황 판단과 높은 전투 센스에 알브헤임의 눈이 휘둥그레 바뀌었다.
검 끝이 흔들린 그는 자세를 다잡을 틈도 없이 안면에 힐의 주먹이 꽂혔다.
아니, 정확히는 ‘박혔다.’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마치 대못을 박아버리듯 그의 안면은 힐의 주먹으로 와락 구겨지고 말았다.
[이 집은 힐러도 힐러 아니라고 ㅋㅋㅋㅋㅋㅋ]
[그와 중에 펀치 예술이네 ㅋㅋㅋㅋㅋ]
[파티에 약한 사람이 없음ㅋㅋㅋㅋㅋㅋㅋㅋ]
ㄴ ‘약’ 한 사람은 많음ㅋㅋㅋㅋㅋ
ㄴ 많은게 아니라 약한 놈들뿐 임.
ㄴ 세계 최초 약쟁이 파티 ㅋㅋㅋㅋㅋㅋㅋ
ㄴ 최악에 최약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피가 터져 나오며 알브헤임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크하아아악!”
그의 입에서는 시뻘건 피가 주르륵 흘렀으나 힐의 공격은 이제 막 시작한 참이었다.
“나도 어지간히 얕보였군.”
그는 ‘힐러’였기에 그동안 뒤로 빠져 멤버들을 서포팅했을 뿐이다.
날개 덕분에 그는 힐의 주먹을 맞고도 뒤로 날아가거나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더욱 큰 피해를 낳고 말았다.
놈이 패닉에 빠져있는 사이 힐은 각종 버프를 자신에게 꽂아 넣었다.
우우우웅!
그의 주먹에 푸른 마력이 씌워졌다.
“후으으읍!”
레프트 라이트 레프트.
세 번의 잽으로 먼저 적의 인중을 가격했다.
“궁수!”
“알겠어요!”
그의 오른발이 틀어지며 그 회전이 허벅지 허리 그리고 어깨를 타고 올라왔다.
뻐어어어억!
조금의 흔들림조차 없는 완벽한 클린 히트였다.
“끄아아아아악!”
힐의 매운 주먹맛에 알브헤임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우연히 그곳에서는 궁수가 거대한 화살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관통하는 바람을 지닌 채로 말이다.
빈사에 이른 그가 이 상황에서 반응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콰득!
“크허어어억!”
요정왕의 최후는 퍽 심심했다.
궁수의 화살에 가슴을 관통당한 그는 별다른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죽고 말았다.
[다시는 힐러를 얕보지 마라.]
[아주 힐만 하면 다 힐러냐고 ㅋㅋㅋㅋㅋㅋ]
[에라이 나도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거리 딜러 줘패는 힐러가 있다?]
[이름부터 나만힐인데 뭘 ㅋㅋㅋㅋ]
쓰러진 요정왕을 바라보며 궁수는.
“이거 비싸려나?”
놈의 날개를 펄럭이며 가격을 가늠하고 있었다.
***
“후우, 일단 한건 해결했네!”
요정왕을 쓰러트리고 게이트 바깥으로 나온 궁수는 만족스러운 듯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흐음….”
게이트 밖을 나서자 은우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골치 아픈 듯 한숨을 쉬었다.
“왜 그래요?”
“이 섬은 어떻게 해야 할지 참….”
“아아….”
확실히 눈앞의 게이트는 처리했으나 이 섬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멀쩡했다.
유심히 고민한 궁수는 무릎을 딱 치며 은우에게 말했다.
“지워버리죠!”
“안돼요.”
다른 헌터라면 몰라도 궁수라면 정말로 이 섬을 지워버릴 것만 같았다.
자연 생성된 섬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섬이다. 기현상으로 빗어진 섬이 정상적일 리 없었다.
그리하여 고심 끝에 내린 판단은 이러했다.
“일단은 조금 더 돌아다녀보죠?”
“예,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애초에 처음부터 임무는 섬의 탐사였다.
원래의 임무를 완료하기 위해 일행은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마침 해도 어둑어둑하니 저물어갔기에 본의 아니게 야영을 해야만 했다.
간단한 식사를 마친 후 인벤토리에서 꺼내 텐트를 설치하였다.
혹시나 모를 경우를 대비하여 은우를 불침번으로 세워놓고 다른 멤버들은 먼저 잠들었다.
은우는 마침 정리할 자료들도 있었기에 선뜻 그 일을 받아들였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지고 은우 혼자 모닥불을 쬐며 정보를 정리하고 있었다.
“흐으음, 아직까지는 정보가 너무 적은걸….”
인벤토리에서 꺼낸 노트북에 자료를 정리하며 은우는 한숨을 푹 쉬었다.
부산 앞바다에 섬이 하나 뚝 생겼다.
섬은 나무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그 섬에는 요정들이 출현하는 게이트가 있었다.
“하, 셜록홈즈가 와도 이건 안돼.”
결국에는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별 수확도 없는 노동에 은우는 허탈함을 느꼈다.
“끄으으으응!”
스트레칭을 하면서 피로를 쫓아내던 은우의 눈에 무언가 붉은 빛이 들어왔다.
“빛…?”
마력을 일으켰으나 주변에 감지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붉은빛만이 아른아른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뭐지…?”
은우는 혹여나 적일까 검을 들고 찬찬히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위험한 적이라면 동료들을 깨우겠으나 딱히 감지가 되는 것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지친 동료들이 체력을 회복하는 것이 먼저였다.
마치 빨려 들어가듯 은우는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은우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
“궁수! 나궁수! 빨리 일어나!”
“아으…. 왜….”
꼭두새벽부터 호들갑을 떠는 셈 탓에 궁수는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우가 사라졌어!”
“…뭐요?”
아침 댓바람부터 은우가 실종되었다는 말에 궁수의 잠이 확 달아났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정말로 은우의 모습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 화장실이라도 간 거 아니에요?”
“여기 화장실이 어딨어! 갔더라도 30분이 넘도록 오질 않았네!”
“뭐 변비라던가….”
“….”
“왜 그렇게 봐요. 일어나면 되잖아요 일어나면.”
셈의 따가운 눈초리를 버티지 못한 궁수는 결국 침구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다른 멤버들도 마침 일어난 듯 전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휴대폰 연락도 안받아요?”
“응, 전부 안받아.”
“신호는 가죠?”
“신호는 간다만….”
그 뒤로 한 시간을 더 기다렸으나 은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은우를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일행은 은우를 찾기 위해 발을 옮겼다.
셈은 주변을 살펴보며 은우의 흔적을 찾았다. 해쳐진 풀숲과 발자국, 베인 나무들의 흔적 등등.
노련한 사냥꾼처럼 셈은 단서를 얻어가며 은우의 뒤를 추적했다.
“셈은 어떻게 저런 걸 다 알고 있는 거지.”
“괜히 베테랑이 아니지.”
셈을 따라 숲을 들어가니 분위기가 반전됐다.
푸르른 나무는 어디가고 보랏빛 어둠이 가라앉은 숲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분위기가 확 달라지네요.”
“쯧, 어디까지 간 거야.”
“핏자국…?”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 나무에서는 진득한 핏자국이 잔뜩 묻어있었다.
“적어도 사람의 피는 아닌 것 같네요.”
“흐음, 나도 그래보이는군.”
사람의 피라고 하기에는 점도가 지나치게 높아 보였다. 새빨간 피는 마치 젤리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일단 더 들어가 보죠.”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어둠이 내려앉은 숲은 고요 그 자체였다.
벌레소리, 새소리조차도 들려오지 않는 이곳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무슨 던전 같은 느낌이군….”
“아직까지 걸리는 건 없어요.”
주변에서는 종종 핏자국과 뭔가에 긁힌 듯한 자국만이 가득할 뿐 별다른 정보는 얻지 못했다.
그렇게 하염없이 숲을 탐사하기도 잠시.
“어?”
“뭐야?!”
수풀 안에서 익숙한 누군가가 깜짝 놀란 얼굴로 궁수 일행을 맞닥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