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근접병기 활-73화 (73/172)

◈ 73화. 크고 우람하며 단단한 벽.

“이 미친놈이 지금 뭐라는 거지…?”

바로 KO를 당할 수준의 디스였기에 그녀는 적잖게 당황한 듯 보였다. 허가연은 황당한 얼굴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 또한 이렇게 화끈한 인사를 나눌 줄은 몰랐기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더 위험한 점은 궁수가 알기로 허가연은 자신에 대한 모욕을 쉽게 넘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녀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국적이?”

“국적은 알아서 뭐하셈?”

“국.적.은?”

“…프랑스”

“아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중지로 안경을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Ce crétin….”

유창한 프랑스어로 시작된 그녀의 쌍욕에 그는 적잖게 당황한 듯 깜짝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는 때때로 자신의 소중한 곳을 가리며 몸을 파르르 떨었다.

무슨 말인지 궁수는 알 수 없었으나 그의 반응은 적어도 일반적인 쌍욕을 들은 사람의 반응은 아니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나자 래퍼 뺨을 좌우로 후려갈길 수준의 욕만대장경 프랑스 버전의 낭독이 끝났다.

“무섭다. 한국인 무섭다 아흐흐흑 엄마 보고 싶다….”

그는 구석에서 다리를 끌어안고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내가 저럴 줄 알았지.”

입담에 한해서는 궁수도 그녀를 건들지 못한다.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것은 해봐야 법사 정도?

무슨 말을 하든 그 특유의 ‘느헤헿!’으로 넘겨버리니 말이다.

궁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아직도 질질 짜고 있는 베로니카에게 다가갔다.

“그러게 깝칠 사람한테 깝쳐야지, 자신도 없으면서 괜히 처맞고 왔어.”

“무섭셈! 설마 한국 여자는 다 이렇게 무서운 거셈!?”

“네가 먼저 선빵 날려놓고 그러냐.”

“그래도! 그래도!”

“어휴, 일어나기나 해.”

궁수는 적당히 그를 다독여 준 후 다시 멤버들 앞으로 데려갔다.

훨씬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베로니카는 힐끔힐끔 허가연의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앞에 섰다.

“새로운 동료입니다.”

“잉? 내가 왜 니 동료셈?”

“그래, 난 저딴 놈 받아줄 생각 없어.”

“아하하하 언제부터 내가 네 허락 받고 행동했지?”

“그건…. 없네.”

이전이면 몰라도 지금 길드의 주축은 단연 궁수였다.

법사도 있지만 법사야 워낙에 궁수를 따르니 사실상 지금 실질적 길드의 대표는 궁수나 다름없었다.

“뭐 너무 그러지 마, 능력 하나는 확실하니까, 내가 언제 부족한 사람 데려온 적 있어?”

“흐음…. 능력이 뭔데?”

고수혁에 나법사까지, 나법사는 조금 하자가 있긴 하였지만 능력 하나만큼은 단연 원탑이나 다름없었다.

“벽을 세울 수 있어.”

“뭐? 벽?”

“어, 벽 그냥 벽.”

잠시 본부 내부에 찬바람이 불었다.

허가연이야 헌터 관련된 일은 행정을 제외하고는 딱히 건들지 않았으나 셈은 조금 관심이 있는 듯 보였다.

“흐음, 벽이라니, 내가 아는 그 벽 말인가?”

“그렇죠.”

“뭐 형태 변환은?”

“안되죠, 그냥 벽!”

“흐으으음….”

미묘한 능력에 다들 고개를 갸우뚱하며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궁수가 그를 데려온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일반적인 벽이라면 다른 헌터들도 충분히 쌓을 수 있다.

마법을 쓴다던지 혹은 셈의 요새화처럼 스킬을 쓴다던지 말이다.

그러나 그의 벽은 남달랐다.

먼저 크기.

기껏해야 3미터쯤 되는 헌터들과 달리 그는 10미터가 넘는 거대한 벽을 두 개나 소환하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다.

그리고 두 번째 강도.

지어진 집을 완전히 부숴버리고도 금 하나 간 것 없이 멀쩡한 벽은 전투에서 사용하기에 충분했다.

궁수는 베로니카를 옆에 세우고 그의 능력에 대해 설명했다.

헌터들은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며 종국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납득했다.

이 파티의 주력 멤버는 원거리 딜러인 궁수와 법사이다 보니 지형지물을 마음대로 다를 수 있다면 제법 큰 이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뭐 백번 듣는 거보다 한번 보는 게 낫다죠, 무기 챙겨서 다들 나와봐요.”

“어디 가는 거셈?”

“요 앞 훈련장.”

“훈련장?”

훈련장이라기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터나 다름없었지만 말이다.

프로틴 프로의 부지인 땅이니 아무렇게나 사용해도 별 상관은 없었다.

“벽은 얼마나 크게 세울 수 있어?”

“잘 모르겠셈.”

“흠 그럼 최대한 크게 세워볼래?”

“알았셈!”

그는 양손을 싹싹 비비며 몸을 풀더니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 양손을 땅에 붙였다.

마치 연금술을 하는듯한 광경에 동료들은 숨을 죽이고 이를 바라보았다.

“으음?”

한동안 반응이 없자 궁수는 당황하여 그를 바라보았으나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동시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쿠쿠쿠쿵!

“어어어어?!”

프로틴 프로의 부지는 절대 작지 않다. 300평은 가뿐히 넘어갈 정도로 큰 토지인데.

“개쩐다!”

그 토지를 정확히 양분할 거대한 벽이 세워졌다. 높이도 얼마나 높은지 고개를 뒤로 젖히고 봐야 할 수준이었다.

“호오! 이 정도라니!”

“봐요! 개쩐다니까!”

베로니카는 후다닥 벽 너머에서 궁수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도 만족스러운 듯 콧잔등을 검지로 스윽 비비며 벽을 바라보았다.

“두께는 2미터쯤 되셈!”

“2미터나?”

“그렇셈!”

거대하게 세워진 벽에 궁수는 툭툭 벽을 두드리며 베로니카에게 물었다.

“마력은 얼마나 남았어?”

“마력? 한참 남았셈!”

“퍼센트로 어느정도”

“으으음 85%?”

“85%라….”

이 정도로 거대한 벽을 세우는데 든 마력이 고작 15%라니.

역시 데려오길 잘했다며 궁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궁수! 궁수!”

“왜.”

뒤에서는 나법사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본 사자마냥 눈을 빛내며 궁수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저거! 펑펑? 쾅쾅!?”

마치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의 눈빛이랄까?

폭파광 본능을 가진 법사의 입장에서는 지금 저 벽보다 탐나는 것이 따로 없을 것이다.

멤버들과 함께 뒤로 빠진 궁수는 발리스타에 커다란 쇠뇌를 장전했다.

“첫발은 내가 간다!”

[꺄하하 이건 못참지.]

[ㄹㅇ 처음 눈오면 발자국 바로 새겨줘야지.]

[헤으으응! 그렇게 격렬하면 부숴저버려어어엇!]

ㄴ 강제 퇴장당한 유저입니다.

ㄴ 개소리야 여기 잘 있는데.

ㄴ 데헿 이걸 안 속네.

방송까지 킨 궁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발사했다.

붉은 빛을 머금은 화살은 그대로 벽을 향해 날아갔다.

뉴클리어 까진 아니지만 그 나름대로 강력한 위력을 담은 익스플로전 애로우였다.

콰아아앙!

살벌한 파공음을 내며 날아간 화살은 그대로 벽에 박힘과 동시에 화려한 폭발을 일으켰다.

“아아! 새치기! 새치기!”

“꺄하하하! 먼저 날리면 끝이지 인마!”

“이이이익!”

먼지가 걷히며 서서히 벽의 모습이 드러났다.

“자~ 어디보자 어디….”

“헐.”

“미친.”

“저걸 버텨…?”

[아아 이것이 K - 만리장성 이라는 것이다.]

[“훗. 간지럽군”]

ㄴ 간지러운데 왜 훗임.

ㄴ “꺄르륵, 간지럽군.”

ㄴ 간지럽 ‘군’은 어디 부대냐?

ㄴ 아재요 제발…

구멍이 뚫렸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벽에는 어떤 구멍도 뚫리지 않았다.

궁수의 쇠뇌가 박혀 커다란 금이 생기긴 하였으나 벽은 굳건히 이를 버티고 있었다.

“어림도 없는 거셈!”

“크흠…. 좀, 좀 튼튼하네.”

당황한 일행들을 뒤로하고 이번에는 나법사가 성큼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에는 내 차례!”

“처보셈! 얼마든 처보셈!”

궁수의 공격을 버텨내자 의기양양해진 베로니카는 가슴을 펼치고 우쭐대기 시작했다.

법사는 입맛을 다시며 헌터들 앞에 섰다.

“얼마든 때려 보는 거셈!”

“깬다! 부순다! 펑펑으로!”

마치 법사가 두 명 있는 듯한 광경이었으나 그런 것 따위 어찌되든 좋았다.

“ᚺᚻᛊᛋᛉᚹᛗᛞᛞᛟᛜᛝ”

법사에게서 흘러나오는 마력은 주변을 저릿하게 울리고 있었다.

오른손을 왼손 위로 뻗은 법사의 몸이 점점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전류가 흐르듯 저릿한 푸른 마력이 스파크를 튀기며 하늘 위로 떠올랐다.

[와….]

[엄마 저는 커서 법사가 될래요!엄마 저는 커서 법사가 될래요!엄마 저는 커서 법사가 될래요!]

[포브스 선정 입만 다물면 개쩌는 헌터 1위]

[법사좌 축지법 쓰신다아!]

ㄴ 니 눈엔 저게 축지법으로 보이냐.

ㄴ ?너 축지법 본 적 있음?

ㄴ 그럼 넌 모솔이면서 왜 야동 봄.

ㄴ 갑자기 왜 때리냐?

“호오, 또 처음 보는 마법이군.”

“그러게요, 이번에는 또 뭘까요.”

“흐음, 땅이 개판 나겠어.”

“괜찮아요, 뭐 내 땅인가.”

“야 여기 내 땅이거든!?”

“뭐가 네 땅이야 회사 땅이지.”

순간 당황한 허가연이 빼액 소리쳤으나 이미 캐스팅을 마친 법사를 막을 방법은 없었다.

법사의 등 뒤로 초록빛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각종 형이상학적인 표기가 그려진 마법진은 당장에라도 대마법을 뱉을 듯 흉흉한 기를 내뿜고 있었다.

법사의 마력을 잡아먹어 그 크기를 키운 마법진이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오오.”

다른 헌터가 보았다면 기겁할 정도의 스케일이었으나 다른 헌터들은 마치 평소에도 본 것처럼 편안하게 관람을 즐겼다.

“뭣…?! 저게 뭐셈!?”

베로니카를 제외하곤 말이다.

위로 뻗은 법사의 오른팔이 서서히 내려오며 벽을 향했다.

그의 손가락이 정확히 벽을 향한 순간.

“어? 이거 좀 위험한데….”

콰아아아아앙!

법사의 마법진에서 만들어진 토네이도가 벽을 향해 쏘아졌다.

추가로 법사의 왼손에 모아진 주홍의 불꽃이 섞어 들어가며 토네이도가 불꽃과 함께 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뚫어버릴 듯 날아간 강렬한 토네이도가 거대한 벽과 격돌했다.

쿠콰콰콰콰쾅!

마치 단단한 돌과 드릴처럼 강렬한 격돌이 이어졌다.

“허어어….”

[저거 또 현타왔네.]

[이제 씨발 마법사나 할걸… 이럴거임]

[오우야 궁잘알ㅋㅋㅋ]

“마법사나 할걸 씨발….”

[ㅋㅋㅋㅋㅋ꼴에 한번 꼬았네.]

[씨발 마법사나 할걸, 마법사나 할걸 씨발, 할걸 마법사나 씨발, 마법사나 씨발 할걸.]

ㄴ 킹종갓왕 당신은 도대체…

A급 보스 따위는 가볍게 쓸어버릴 법사의 마법은 이내 베로니카의 벽을 완전히 뚫어버렸다.

“흐어억?! 미친 말도 안되셈!”

“휭휭 화르륵!”

철웅성 같이 버티던 베로니카의 벽에는 거대한 구멍이 하나 뚫리고 말았다.

***

어두운 집무실 속에서 한 노인이 턱수염을 쓰다듬고 있었다.

“허어…. 어찌 이리도 인재가 없는고.”

타일런트 S 슈타인.

마법에 관해선 단연 최고로 분류되는 마탑의 주인이었다.

소위 마탑주라고 불리우는 그는 인상을 팍 구기고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오는 영상은 다름 아닌 아카데미 신입생들의 마법 시연 영상이었다.

아카데미만 하더라도 최고의 수재들이 모이는 공간인데 그곳에서도 상위 10등을 다투는 천재들이 마법 시연을 벌이고 있었다.

모두 다른 국가에서 침을 흘릴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였으나 국내가 아닌 세계 최고의 마법사로 평가받는 그에게 있어서는 한참 모자란 수준이었다.

“에잉 쯔쯧…. 요즘 놈들은 순정이 없어, 뭐든 세고 쉬운 것만 좋아하고 말이야.”

한숨을 푹 쉬며 TV를 꺼버린 그는 안경을 벗고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의 나이도 100을 넘어 110을 바라보고 있었다.

꾸준한 관리와 마법의 정점을 달리는 그였기에 아직도 신체는 정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럼에도 늙은 것은 부정할 수 없었기에 슬슬 후계자를 찾고 있었다.

마법에 대해 순수하고 열정적이며 그 재능 또한 비범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인세에 다시없을 불세출의 천재를 원하는 셈이었다.

“쯔쯧 올해도 글렀군.”

한숨을 내쉬는 그의 집무실 바깥에서 누군가 노클를 하며 문을 두드렸다.

“학원장님 세이입니다.”

“들어오게.”

그의 비서인 세이.

마법적 재능은 물론 성품도 순수하여 그가 가장 아끼는 심지어는 비서로 둘 정도로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패드를 터치하며 한 영상을 틀어주었다.

“이것 좀 봐보실래요?”

“뭔가.”

“봐 보세요, 좋아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어요.”

“흐음….”

맥없는 영상이나 가져올 그녀가 아니었기에 그는 다시 안경을 쓰고 영상을 바라보았다.

“흐음? 나법사 스페셜?”

한국어를 포함하여 세계 모든 국어를 통달한 그에게 있어서 언어의 장벽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영상에서는 궁수의 방송에서 나온 법사의 마법들을 묶어 매드무비처럼 편집한 것이 나오고 있었다.

하나 하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화려하면서도 격정적인 심지어는 나법사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정신나간 수준의 마력 운용은 그를 집중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30분 가량의 긴 영상 시청이 끝났을 때 그는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학원장님?”

“이 영상에 나오는 사람 빨리 내 앞으로 데려오게.”

“네?”

“아니다, 내가 한국으로 직접 가지, 전용기를 준비하게.”

일국의 대통령의 요청에도 무시하던 그가 고작 영상 한 개에 반하여 한국행 일정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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