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베로니카 두두둥장.
“하아…. 죄송합니다 헌터님.”
“팀장 놈 나오셈! 나 존나 화났셈!”
“쯧 뭡니까.”
이미 몇 번 전적이 있는 듯 은우의 표정은 일체의 당황도 없었다. 그는 혀를 차며 사내에게 다가갔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후반.
흰색 티에 츄리닝 바지에 손에 낀 흰색의 장갑은 그에게서 공사장 인부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수염은 무성하고 머리는 덥수룩했으나 흔들리는 그의 금발과 푸른색 청안으로 이루어진 그의 비범한 외모는 고작 수염 따위로 가릴 수 없었다.
‘한국인은 아닌 거 같은데.’
외국에서나 볼법한 그의 외모에 궁수는 차분하게 이를 바라보았다.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가 재밌기도 했기에 제법 좋은 볼거리였다.
“왜 돈이 안 들어오는 거셈! 지금 나 한국말 잘 못한다고 무시하셈?”
“하아…. 저희는 분명 요구하신 임금을 드렸습니다.”
“통장에 돈이 안 들어왔는데 무슨 개소리셈!”
‘팝콘각이네.’
불구경보다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이라고 궁수는 차분히 자리에 앉아 이를 관람했다.
“돈! 내 돈 주셈! 좆빠지게 일했는데 좆만 빠졌셈!”
“빠진 거 인증하면 드리겠습니다.”
“뭐셈!? 나 성추행하는 거셈!?”
“꼬우면 자르던가.”
“히이이익! 코리아! 무서운 거세의 나라!”
임금 문제인 것 같은데 어느 쪽이 맞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 이은우가 실수한 것 같지는 않았다.
원래부터 실수를 할 인간도 아니거니와 일반 기업도 아니고 정부에서 임금 가지고 장난을 칠 리 없었다.
갈수록 커져가는 목소리에 주변의 시선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익숙한 듯 이를 바라보던 직원들도 힐끗 시선을 주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거즘 30분을 더 싸우고 나서야 궁수가 싸움을 말리기 위해 양측 사이에 끼어들었다.
“워워 진정해요 진정, 오케이?”
“닌 또 뭐셈? 꺼지셈!”
“아하하하하!”
궁수의 회색빛 마력이 짙어지며 궁수의 근육이 불끈 모습을 드러내었다.
궁수는 싱긋 살인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회원님 뒤질래요?”
“아하하 아닙니다. 대화로 풀어야죠.”
“그렇죠? 저희는 지성인이니까요.”
순식간에 태도를 바꾼 그는 깨갱 꼬리를 내리고 자리에 앉았다. 반대편에는 궁수와 은우가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궁수는 대화에 들어가기 전 먼저 그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죠?”
“이름 베로니카셈!”
“베로니카 셈이요?”
“베!로!니!카!”
“흐음.”
‘베로니카라?’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들 하지 않는가. 물론 적은 아니지만 궁수는 베로니카에게 제법 흥미가 돌았다.
“타국에서 오신 것 같은데, 국적이 어디죠?”
“국적, 프랑스!”
“프랑스에서 사시지 왜 굳이 여기까지 오셨을까.”
“사기당해서 빚만 줜나 게 생기고 한국으로 빤스런 한거셈!”
“아….”
‘뭐야 이 잘생긴 병신은.’
일순간 법사가 생각나 피식 웃은 궁수는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워낙에 주변에 또라이가 많다보니 이 정도는 크게 미친놈이라 느껴지지도 않았다.
“말투는 왜 그럽니까?”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기괴한 말투에 궁수는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퍽 재밌었다.
“친구가 한국 정보의 정점이라면서 알려준 거셈!”
“커뮤니티라니…. 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말을 배워왔기에 그의 한국어는 완전히 개판이 된 상태였다.
“하필 배워도 그런 곳에서….”
“나님 머리 쥰내 좋아서 한 달 만에 한국어 마스터 한 거셈!”
“머리가 좋다라….”
“훈민정음 줜내 멋진 글자!”
“아이고….”
나법사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생각을 바뀌었다. 최소 동급에서 혹은 그 이상으로 말이다.
사담은 여기까지 하고 궁수는 턱을 괴고 진중한 대화에 들어갔다.
“그래서 베로니카씨 말은 지금 임금이 제대로 지불되지 않았다는 겁니까?”
“맞말이셈!”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야가다!”
“네?”
“남자의 꿈! 건물을 내 손으로 짓는다는 쾌감! 그것은 노가다인거셈!”
“아아….”
말끝마다 셈을 붙이는 그는 무엇이 그리도 억울한지 연신 불평을 내뱉고 있었다.
보다 못한 이은우는 책상을 뒤적이며 서류를 몇 장 꺼내왔다.
“비전투원이긴 하지만 이 분도 헌터입니다.”
“헌터라고요?”
“예, 다만 그 능력이 워낙에 한정적이라 비전투원으로 분류됐을 뿐입니다.”
은우는 골 아픈 듯 서류를 뒤적이며 그에게 준 임금 자료를 찾고 있었다.
“능력이 뭔데요.”
“벽을 만듭니다.”
“네? 벽?”
“예, 벽이요, 벽. 형태 변환은 불가능하고 그냥 벽이 전붑니다.”
“아아아….”
하긴 그러면 전투가 힘들 수도 있지.
은우는 한숨을 푹 쉬며 관련 자료를 꺼내들었다.
“여기 저희가 베로니카씨에게 입금한 자료입니다. 한번 직접 살펴보시죠.”
그는 처음 자료를 받아본 듯 눈을 부릅뜨고 자료를 살펴보았다.
서류에는 그의 간단한 인적사항부터 능력에 대한 것까지 여러 가지 일들이 적혀있었다.
10분쯤 지났을까?
종이는 한 장이었지만 모두 한국어였기 때문에 읽는데 제법 시간이 걸린 듯했다.
“보셨으면 알겠지만 저희는 거기 기재하신 계좌에 입금을…. 저기요?”
서류를 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 잘못된 듯 베로니카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이거 내 계좌 아니셈.”
“예? 본인이 직접 작성하신 계좌 아닙니까?”
“아니셈, 그때 나 한국어 잘 못해서 박반장이 대신 써줬셈.”
“아.”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박반장이라는 사람이 어리숙한 베로니카를 이용해먹기 위해 자신의 계좌를 적어버린 것이다.
“박반장이 개새끼네요 뭐.”
“아…. 그렇게 된 거군요.”
“거 어떻게 계좌 확인도 안해요?”
“박반장의 계좌와는 다른 계좌였거든요.”
“어휴 돈도 제대로 안 줘놓고 빽빽거린거에요?”
“…할 말이 없습니다.”
벌떡!
“으잉? 어디가게요?”
“박반장.”
“네?”
그는 적잖게 분노한 듯 서류를 움켜쥐고 성큼성큼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저거 저대로 보낼 거에요? 사고 칠 것 같은데.”
“크흠….”
이은우는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요.”
“나궁수! 너로 정했다!”
이제는 부끄럽지도 않은 듯 그는 당당하게 궁수를 시켰다.
궁수는 어이없어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름이 아니라 저 남자의 능력에 흥미가 돌았기 때문이다.
벽을 만든다는 것은 지형을 자기 맘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지형지물을 줄곧 이용하는 궁수에게 있어서는 꽤나 도움이 될 남자였다.
“잉? 생각보다 순순히 가네요?”
은우도 ‘네가 뭔 일이냐?’라는 눈빛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궁수는 싱긋 웃으며 은우에게 말했다.
“쟤 내가 써도 되죠?”
“네? 예…. 뭐 딱히 소속된 곳도 없습니다만.”
“오케이~ 간다!”
궁수는 후다닥 놈을 따라 달려 나갔다.
이미 서울 시내의 인파에 섞여 찾기 힘들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저 멀리서 금발의 머리가 열심히 뛰어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타앗!
가볍게 몇 번 발을 구르자 궁수는 어느새 베로니카의 옆에 도달해 있었다.
“어디가?”
“박반장 그 새끼 조지러 가는 거셈.”
“어떻게 조지게? 뭐 죽이기라도 하게?”
“그건 아니지만…. 아무튼 조저버릴 거셈.”
“흐음, 그래.”
‘냄새가 나, 아주 짙은 또라이의 냄새가!’
파티원 전원이 또라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 궁수에게 새로운 또라이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물론 능력이 있는 또라이에 한해서 말이다. 궁수는 차분히 그를 따라가며 물었다.
“근데 너 거기 어딘진 알아?”
“아는 거셈.”
“여기서 가까워?”
“1시간 정도 달리면 가능하셈.”
‘유산소는 이미 다 했는데.’
궁수는 뛰어가던 그의 어깨를 잡았다. 베로니카는 또 뭐냐는 듯 몹시 띠꺼운 눈으로 궁수를 바라보았다.
“뭐셈.”
“편하게 가자고.”
궁수는 손짓을 하여 지나가던 택시 한 대를 잡았다. 차 뒷문을 연 궁수는 자신의 옆자리를 탁탁 두드렸다.
“타.”
“뭐하는 거셈…?”
“한 시간 동안 뛰면 지쳐서 조질 수 있겠어? 빨리 타기나 해.”
“…알았셈, 네 말이 맞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궁수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곧바로 박반장의 주소를 말하니 채 30분도 되지 않아 그의 집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 맞아?”
외부에 황토색 페인트가 칠해진 집이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었으나 그래도 나름대로 사람 사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였다.
“맞셈, 저번에 한번 왔셈.”
“호오.”
“내 돈 꿀꺽하고 이런 곳에서 사는 거셈, 아주 천하의 쒸이빨 새끼가 따로 없는 거셈.”
그는 거의 토종 한국인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걸쭉한 쌍욕을 뱉으며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궁수는 이제 뒤로 멀찍이 떨어져 그가 어떤 미친짓을 보여주는지 구경했다.
“후우….”
양손을 비비며 그는 숨을 쉬더니 그대로 땅에 양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쿠콰콰콰쾅!
“오오오.”
집 앞마당에서 높이만 1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흙벽이 하나 세워졌다.
꽃이나 작은 나무로 꾸며져 있던 정원이 순식간에 개판이 되고 말았다.
끼이이익!
“야 이 미친새끼야!”
“쟤가 박반장인가 보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흑벽에 집 안에 있던 박반장이 헐레벌떡 놀라 밖으로 뛰쳐나왔다.
흰색 난닝구에 반바지, 슬리퍼를 질질 끌고나오는 그는 전형적인 배 나온 아저씨였다.
머리도 서서히 벗겨지기 시작하는 것이 이것이 k - 아재다! 라고 보여주는 듯했다.
“또라이 새끼가 지금 뭐하는 거야!”
그는 깜짝 놀라 베로니카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얘들 엄마 오기 전까지 이거 원래대로 돌려놔!”
그러나 베로니카는 오히려 그의 손목을 꽈악 잡더니.
“내 돈 내노셈!”
뻐억!
“크헤에엑!?”
그대로 박반장의 머리통에 자신의 머리를 들이박았다.
베로니카는 어지간한 돌머리인 듯 혼이 빠져나간 박반장과는 달리 멀쩡해 보였다.
“내!”
퍽!
“돈!”
퍽!
“내놓으셈!”
뻐어어억!
거의 세 번을 더 박치기 하고 나서야 베로니카는 그를 풀어주었다.
멱살을 쥔 그의 손이 스르륵 풀리며 이내 주저앉고 말았다.
“흐으윽 아이고 두야….”
휘청휘청 거리던 그는 이내 이마를 짚고 일어섰다.
“돈 내놓으셈!”
시종일관 돈을 내놓으라는 베로니카에게 그는 표정을 와락 구기고 소리쳤다.
“줄 돈 없어! 너 이거 폭행으로 고소할 거니까 벌금이나 준비해!”
“뭐? 돈 없셈?”
“그래! 너 같은 놈한테 줄 돈은 한 푼도 없다 이놈아!”
적반하장, 방귀뀐 놈이 성낸다는 말처럼 그는 뭐가 잘났다고 가슴을 피고 소리치고 있었다.
“뭐! 한 번 더 치게? 처 봐라! 아이고 동네사람들! 이 놈이 나 죽이네!”
그의 외침에 서서히 주변 동네 사람들의 시선이 끌렸다.
그러나 베로니카가 보통 미친놈도 아니고 고작 여기서 끝낼 리가 없었다.
그는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뭐! 때려봐! 때려…. 어?”
박반장을 지나친 그는 그의 집을 바라보았다.
“자, 잠깐 너 설마!”
“내! 돈! 내놓으세에에엠!”
콰아아앙!
“안돼애애애앳!”
그의 집에, 아니 더 이상 집이 아닌가?
황토색으로 칠해진 박반장의 집에 거대한 벽이 솟아나며 이내 집이 두 쪽으로 쩍 갈라지고 말았다.
“우오오오오!”
“끄아아아악! 물어내! 물어내라고 이 미친새끼야!”
“내 돈부터 물어내셈!”
“이 씨발놈아! 넌 콩밥 먹을 줄 알아!”
“푸하하하하하!”
뒤에서 구경하던 궁수가 박장대소하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너는 또 뭐야!”
“하아 배 아파 죽겠네.”
눈물이 고일 정도로 웃은 궁수는 눈을 비비며 그에게 말했다.
“이 집 얼마에요.”
“뭐?”
“얼마냐고요.”
그는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다시 큰소리치며 말했다.
“이십억이다!”
“아하~ 이십억이요?”
물론 개소리다.
20억은커녕 8억도 힘들 것 같았지만 궁수는 토 달지 않고 주변의 은행에 들어갔다.
그리고 10분쯤 지나자 다시 궁수가 그 앞으로 다가갔다.
“이십억이라 했죠? 현찰로 드리겠습니다.”
“뭐? 현찰?”
“왜요? 싫으신가요?”
“크흠…. 뭐 그 정도 성의를 보인다면야….”
그는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헛기침을 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의 탐욕스러운 표정에 궁수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럼 바로 드리면 돼죠?”
“흠, 그래 여기다 두라고.”
“예.”
궁수는 인벤토리에 있는 수많은 동전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10원과 100원짜리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동전이 파도처럼 거리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건 또 뭐야!”
“뭐긴요~ 현찰이죠?”
“도, 돈이다!”
“그럼 이만!”
거의 5분 동안 동전을 쏟아낸 궁수는 후다닥 베로니카를 데리고 도망쳤다.
“뭐셈!? 저거 진짜 20억이셈?!”
“응? 아닌데?”
“엥? 그럼 뭐셈?”
“천 만원 쯤 될 걸?”
“으잉?”
처음부터 궁수는 20억은커녕 제값을 줄 마음도 없었다.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궁수는 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짧은 통화음이 지나고 은우가 전화를 받았다.
“잘 해결 하셨나요?”
“거 일은 벌려놨으니 수습하세요~”
“네? 뭐요? 헌터님 그게 무슨….”
뚝.
택시는 어느새 협회가 아닌 궁수의 길드 본부, 프로틴 프로에 도착해 있었다.
“여긴 또 어디셈?”
“내 직장.”
“직장? 너 뭐하는 놈이셈?”
“헐, 나 몰라?”
“설마 연예인 병 걸린 거셈? 존나 재수없셈!”
“쩝, 따라오기나 해.”
궁수는 베로니카를 데리고 본부로 들어갔다. 내부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길드를 살피며 일하고 있었다.
“야 허가연!”
“왜, 나 바빠.”
“여기, 신입이다.”
“뭐? 신입?”
허가연은 신입이란 말에 관심이 돌았는지 뒤를 돌아보았다.
“잉? 쟤가 신입이라고?”
“어, 내가 방금 보고 왔는데 능력은 확실해.”
“흐음…?”
허가연은 눈을 치켜뜨고 그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하지만 또라이 베로니카, 그에게 분위기를 읽는 능력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초면에 자신의 몸을 요리조리 살피는 그녀가 불쾌했는지 그는 표정을 구기고 말했다.
“존나 토나오니까 개빻은 와꾸 좀 치우셈.”
“뭐?”
“뭐는 뭐셈 수윙수가 돈까스 망치로 4시간동안 정성스럽게 빻은 것 같은 님 얼굴 치우라 이거셈.”
워낙에 파격적인 그의 말투에 일순간 본부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
생각보다 더 또라이인 그의 태도에 감동받은 궁수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100점…. 100점이요.”
허가연과 그의 화끈한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