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화
다음날. 방학이다보니 잘 들리지 않았던 부실에 들어오니 자신을 제외한 윤아와, 청이 선배, 그리고 상혁이와 지윤이가 있었다. 곱슬이로선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게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모양이다.
상혁이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당연히 나올줄 알았는데. 차마 그것까진 할 수 없었던건가. 도리어 곱슬이의 입장으로선 지윤이가 나와있는게 의외다. 이녀석 아직 중딩인 주제에 고등학생 부실에 뻔질나게 드나들고 있었다.
" 뭘 그렇게 보는거에요. 그렇게 노려봐야 하나도 안무섭다구요."
흥, 하고 코웃음 치며 말하는 지윤이지만 곱슬이의 입장에선 그저 골치아픈 녀석이 있구나-하는 정도의 감상이었다. 거기다 지금은 그냥 바라본건데 노려본다고 하다니. 그렇게나 자신의 눈매가 매서운 것일까.
그래도 옛날에 상혁이는 자신보고 눈이 예쁘다고 했는데 저런 소리를 들을 때면 매번 슬퍼진다. 살이 빠져서 예뻐진 것은 환영할만 했지만 정작 예전의 유일한 장점이던 눈이 매섭게 변해서야...
" 어머나, 여자애가 한명 늘었네?"
순간, 자신의 뒷편에서 들려온 이질적인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자, 이건 또 처음보는 어여뿐 여성이 자신을 고양이처럼 웃으며 보고 있었다. 아니 이 여자는 또 누구지?
" 상화 언니. 갑자기 그러면 곱슬이가 당황하잖아요!"
그렇게 말한 것은 윤아였다. 눈을 치켜뜨며 매섭게 말하는 모습이 동생을 훈계하는 언니와 같은 모습이다. 그나저나 상화 언니라니? 곱슬이는 어디선가 들어본듯한 이름에 곰곰히 생각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그런 곱슬이의 생각을 눈치 챈듯 그 의문에 답변해준 것은 언제나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던 청이였다.
" 상혁이의 누나인 상화 언니라고 해. 윤아네가 이사를 가게 되서, 윤아의 부모님 대신 상혁이와 윤아의 보호자가 되기 위해 미국에서 날아오셨지."
아,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곱슬이는 엊그제 받았던 윤아의 문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아가 상혁이의 집에 남게되는 대신, 윤아의 부모님 대신 보호자가 되기로 한 것이 상혁이의 누나인 상화라는 사람이었다. 더불어 간혹 곱슬이가 회심의 도시락을 들고올때면 이상하게 상혁이가 엄청난 도시락을 가지고 왔었는데 그때마다 언급된 것이 상화라는 사람이었다.
'....이런 말하기는 뭐하지만 전혀 상혁이와 안닮았는데.'
상혁이를 좋아하는 곱슬이지만 아닌건 아닌거다. 상혁이는 좋게말해봐야 적당히 준수한 수준의 평범한 남자애고, 상화는 누가보나 눈에띄는 미소녀다. 거기다 분위기도 무척 소소한 분위기를 풍기는 상혁이와 달리 누가보나 활발하고 태양같은 분위기를 가진 여성이었다. 머리스타일 또한 활기차보이는 포니테일인지라 여러모로 상혁이와는 전혀 딴판이었다.
" -나도 알아 안닮은거."
곱슬이가 상화와 상혁이를 무심코 비교하며 본 시선을 알차렸는지 상혁이가 투덜거렸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곱슬이는 앗차 실수! 라고 속으로 좌절한 뒤, 급히 상혁이를 향해 입을 열었다.
" 아니아니아니. 도리어 나는 뭔가 분위기가 닮은 것같아서..."
" 과연 빨간 해파리군요. 변명도 딱 그 수준을 나타내고 있네요. 누가봐도 이 구더기와 저 언니는 조금도 닮지 않았다구요."
" 너, 너무 직접적으로 나를 디스하는거 아니냐. 어쨌거나 저 사람은 내 누나라고."
" 누나한테 저 사람이라니!"
" 그런 것보단 동생이 구더기라고 불린 것을 뭐라고 해야하는거 아닌가..."
시끌벅쩍한 분위기다. 그 분위기속에서 이러저리 말다툼을 하는 상혁과 상화. 그것을 애매하게 웃으며 지켜보는 윤아. 그런 것따위는 관심도 없다는 듯한 지윤과 언제나 처럼 생글생글 웃으며 지켜보는 청이. 곱슬이는 그러한 부실의 분위기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성가신게 늘어버렸다- 라는 감상으로.
" 그래서, 뭐 때문에 다들 이렇게 몰려온거야?"
조금 분위기가 진정이 되자, 곱슬이는 윤아를 향해 직접적으로 물었다. 개학이 얼마남지 않았다지만 어쨌듯 아직 방학인 상황이다. 아무리 굉장한 출석률을 자랑하는 인당부라지만 방학때까지 전부 나오는 경우는 좀처럼 없다. 더군다나 한명만 빼곤 짠 것처럼 모두 나오지 않았는가.
" 제가 나와달라고 부탁했어요. 당신에겐 연락하지 않았는데 기이하게도 학교에 나왔네요."
하지만 그 말에 답한 것은 지윤이였다. 언제나처럼 톡 쏘아붙이는 말투를 한체 곱슬이를 진심으로 기이한 무언가를 보는듯한 시선을 보내는지라 곱슬이는 이 성가신 계집애를 어떻게 해야하나 한참 고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언니에 대해 뭔가 아는게 없는지 꼬치꼬치 물었던 주제에 이제는 아닌척하긴. 아무래도 자신에게 더이상 캐낼 정보가 없다고 생각했으니 부르지 않은 거겠지. 더불어 자신이 언니에 대해 물어본 것을 남들에게 말할까봐 부르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 아무래도 수연이 때문이야. 지윤이 말로는...."
거기까지 말하던 윤아는 천천히 상혁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더불어 그 옆에 앉아있는 상화를 바라본 뒤에 작게 한숨을 쉬었다.
" ...때놓고 왔어야 했는데 따라오는 바람에..."
아무래도 수연이에 관한 이야기는 상혁이가 모르는 곳에서 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기야 이런 것은 상혁이가 들어서 성가시기만 할뿐이겠지. 지윤이도 분명 상혁이를 부르지 않았을테니 분명 윤아가 아침에 부실에 간다고 하자 따라온 것이 분명했다.
더불어 저 상혁이의 누나인 상화또한 같이 따라 온 것이고.
" -그래서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고 지금 이상황인 거야. 곱슬아."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그 뒤에 감춰진 곤란한 마음을 들어낸 청이의 말에 곱슬이는 대체로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윤이가 모두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들으려 했지만 상혁이의 등장으로 모두 무산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잠깐 나가라던지 말하기엔 옆에 상화도 있고 '왜 나는 나가야되는데?'라는 식으로 말하면 대답이 궁색하기에 냅둔 것이겠지. 즉, 지윤이의 의도는 말짱 꽝이 되어버린 것이다.
" 그나저나 수연이가 오지 않네. 거의 매일 나와줬었는데."
유일하게 현재 사정을 알지 못하는 상혁이 신경쓰인다는 듯이 이야기하자 지윤이는 진심으로 눈에 살기까지 맺혔다. 지금 누구때문에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는데... 라는 모습이랄까.
" 수연이? 그애도 여자애지? 정말, 우리 상혁이는 누나가 못본 사이에 엄청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구나. 청이나 윤아까진 알았지만, 이 학교짱같은 여자애하고 검은 생머리 로리타까지 함께에다 수연이라는 여자애까지! 하나같이 보기 힘든 미소녀들이라니... 내 동생이지만 정말 의외로 대단하네."
그러게요. 곱슬이는 진심으로 그 말에 공감했다. 윤아야 상혁이와 만났던 옛날에 이름으로 들었기에 알고는 있었지만 무슨 주변에 이렇게 여자애들이 몰려들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살이 빠지고 예뻐지니 나름 자신감도 있었는데 이 멤버중에선 특별히 튀지도 않았다. 애초에 금발의 청이나, 흑발의 수연이가 워낙 빛이나도록 예쁘다보니...
" ...검은 생머리 로리타라니요. 전 엄연히 중학생이에요. 이래봐야 꽃밭같은 언니에겐 들리지 않겠지만요."
이미 적당히 시달리고 있었던듯한 지윤은 질린 듯이 상화에게 말했다. 검은 생머리 로리타라... 아무래도 상혁이의 누나이다보니 서브컬쳐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말도 이해가 되는게 지윤이는 중학교 3학년생이라지만 누가봐도 초등학교 고학년 내지, 중1 이상으론 보이지 않는 외모이니 말이다. 설령 중학생이라고 보더라도. 중학생이면 충분히 로리타가 맞지.
더불어 자신도 학교짱-같은 여자애라니. 그렇게나 사나워 보이는 건가. 솔직히 좀 충격이었다.
" 그건 나도 할말 없지만. 명환이도 언제나 그런식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상혁이도 그것에 대한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반에만 들어가면 남자애들의 시선이 영따갑고 뭐라 말하고 싶은게 느껴지는데 주변에 있는 것이 수연이와 곱슬이 인지라 다가오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수연. 명실공히 학교 제일의 미소녀이자 얼음꽃과 같은 여학생. 평범한 사람이면 그 시선에 압도되어 얼어버린다-라고 하던가. 거기다 곱슬이에서는 무려 '여왕'. 이름도 말하지 않는다. 그 칭호만으로 이 학교에서 곱슬이가 어떤 위치인지 알 수 있겠지. 여자애들은 물론, 그 파벌의 두려움에 남자애들도 감히 손도 못건든다고. 심지어 그 명성은 타 학교에서도 유명해서 가끔 곱슬이에게 도전을 하러 오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보지는 못했지만 모두 묵사발을 내버려서 이제는 조금 조용해졌다고 한다. 가장 최근에 싸운게 명신 고등학교를 최근 통일한 금발의 어떤 양아치였다고 들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엄청난 속도의 정권지르기가 특기였으나 같은 정권지르기에 박살이 났다고 들었다.
명환이에게 들으니 그 일화는 명신 고등학교에서도 유명한 모양이다.
" 흐응... 아무튼 안온게 그 수연이라면 이 아이는 그... 너희들이 이야기하던 곱슬이인 모양이지?"
상혁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 상화는 자리에 앉은 곱슬이를 찬찬히 뜯어보며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곱슬이 본인이 없는 사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별명이 나왔던 모양이다. 적어도 사람 소개정도는 이름으로 해줬으면 하는데.
" 그나저나 이름이 곱슬이라니 무척특이하네? 성이 곱씨니?"
" 그럴리가 없잖아요!"
설마 저런 것을 진심으로 말하는 것일까 싶지만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말하는 것같았다. 덕분에 진지하게 답변한 곱슬이의 말에 상화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으며 왜 이름이 아닌 별명으로... 라고 중얼 거리다가 알았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
" 그렇구나! 너는 그래, 그 쿈같은 존재인거지!"
" 이해했다는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마. 뭐, 비슷하다고 나도 최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상혁아. 상화의 말은 곱슬이도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이미 수연이에게 한번들은 비유이기도 하고, 그 말에 궁금해져서 책을 빌려보기도 했었으니까. 그 쿈이라는 녀석에게 내심 곱슬이는 무척 공감을 많이했다. 너도 좋아서 쿈이 된게 아닌데...
' 아무튼 그건 그렇다쳐도 곤란하네. 이렇게 만담이나 하려고 부실에 나온 것은 아니었는데.'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부실을 보며 곱슬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자신이 부실에 나온 것은 수연이를 상태를 보고 상혁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하기 위해서였다. 윤아가 마무리를 지은만큼 자신도 뭔가 말을 해볼 생각이었고 도망칠거라 생각한 수연이의 뒷덜미를 잡아챌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래서야 수다만 떨다 끝날 것같았다.
============================ 작품 후기 ============================
곱슬이 이름을 다들 궁금해하시는군요. 여기서 나왔는지는 저도 기억나지 않지만... 어차피 이번화에서 이름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끝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고 연중된 쿈과는 다르다는 겁니다!
우선 가볍게 10kb씩 올리고 또 클라이막스에 가까울수록 용량이 늘어날 것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