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외전 - 반의 어떤 학생>
우리 반에는 이상한 사람이 세명있다.
학기 첫날부터 불량한 애들한테 찍힌 불쌍한 오타쿠이지만 묘하게 여자애들에게 둘러쌓여있는 유상혁.
중학교때부터 명성이 자자한, 여학생 최대파벌의 탑이자, 날고긴다는 일진들을 모두 굴복시킨 '여왕'.
얼음처럼 무표정한 얼굴에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소녀. 이수연.
그중 이수연이라는 소녀는 소위 '이슈 메이커'가 아닐 수 없다. 매일매일 공부만하는 학생들로선 그런 이슈에 민감하고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기 마련이다. 그중 '이수연'에 대한 정보는 진짜인지 아닌지 고민해봐야할 정도로 이상한 것도 섞여있다.
누가 말하길. 최소 6미터는 넘어보이는 다리위에서 뛰어내려 나무를 한바퀴 돌고 묘기를 한 뒤에 달려가더라- 라던지.
여태 전국1등을 늘 하고있다던지.
명신고의 사대천왕과 붙어 한방에 작살을 냈다던지.
어린 아이를 안고 승합차를 뛰어넘었다는 괴소문까지- 여러가지로 평범한 학생이라고 보기엔 무리인 소문이 많다. 사실 처음 이반에 왔을때까지만 해도 얼굴만 놓고보면 미인인 여왕이라던지, 정말 태어나서 이렇게 예쁜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외모를 지닌 이수연을 처음보았을때까지만 해도 저런 기이한 소녀인지 몰랐다.
첫날 '오타쿠가 취향'발언은 그녀의 냉랭한 태도에 단숨에 뭍혀버렸고. 남과 일절 말을 하지 않는 그 모습에 친해지려고 마음먹었던 여자애들도 단숨에 떨어져나갔다. 그런주제에 이상하게 기이한 목격담이 많다는게 문제지만.
사실, 본인에 대해서 소개하자면 나는 이 반에 조용히 기생하고 있는 숨덕이다. 유상혁처럼 학기초부터 들키지도 않았고, 이수연처럼 기이한 커밍아웃을 한적도 없다. 사실 숨덕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에에 애니메이션 그런걸 누가봐? 퉷퉷하고 비난하는 어조를 일삼았기에 유상혁에게 다가갈 수도, 이수연에게 말을 걸어볼 수도 없었다.
어쨌거나 '이수연'이라는 소녀는 스스로 오타쿠라고 발언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기에 이미 학생들 사이에선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을 미리 막기위해 한 발언이 아닐까-하는 평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교실에서 그녀는 늘 가만히 앉아있거나 필기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이 전부이기에 전혀 오타쿠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또 이상한 것이 짝꿍이라고 할 수 있는 유상혁과는 간혹 대화를 한다거나 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진짜 오타쿠를 좋아하는건가? 오타쿠인건가?'하는 의혹은 남아있었다. 물론 그 대화내용을 엿듣거나 물어볼 수 있는 간큰 학생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떤 학생은 한번 이수연에게 말을한번 걸어보려 했지만 냉랭한 눈빛과 마치 '다가오지마!'라고 소리치는 느낌의 보호막이 있는 것같아서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고고한 공주님이라고 해야하나.
'무섭다'라는 느낌보단 '어흑 뭔가 대단해보여서 말을 붙일수가 없다!'라는 느낌이다. 본인이 다가오지 말라는 식의 어필을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그때문에 인기가 생겨서 이미 학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때부터 팬클럽이 생겼을정도.
흔히 만화에서 나오는 '친위대'같은 걸까나... 그 친위대의 대장이라고 자칭하는 녀석이 2학년에 유명한 청이 선배의 사촌동생인 것은 또 유머다. 사촌누나가 그렇게나 예쁜 금발 미녀인데 사촌동생 본인은 흑발이 어울리는 미소녀를 쫓다니... 이것이 가진자들의 마음이란 걸까.
비밀이지만 나도 가입중이다. 비록 2학기 시작하고 나서지만.
내가 가입하게 된 것은 그런 뜬 소문의 이수연의 이미지보단, 내가 직접본 그녀가 팬이 될만큼 귀여웠기 때문이다. 아마 언제였더라, 학원에 갔다가 집에가는 도중 친구와 함께 카페에 들어갔는데 바로 그녀가 있었다.
바로 이수연.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지만 나도 남자인지라 들키지 않게 그녀의 뒷자리에 앉게 됐는데, 힐끗 보니 인상을 찡그리고 몹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 곤란해. 이래서야 어떤게 그때 먹었던 단 커피인지 모르겠어."
혼잣말하는 버릇이 있는걸까. 아니 그보다 '단 커피'라니. 그거야 보통 생각하면 라떼정뉴가 당연하잖아. 카페에서 파는 단 커피라면 그정도니까. 물론 정확히 커피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 ...블랙커피라는걸까. 자판기 커피에서 본적이 있는데."
아니 절대 아니지. 아니 그보다 블랙커피라면 이름만 들어도 보통은 쓰다는 것을 알잖아! 속으로 이렇게 외쳐봐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이수연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 옆에 서있는 웨이트리스가 곤란해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다.
" 그럼 이걸로 주세요."
한참을 고민하던 이수연이 시킨 것은 결국 블랙커피였다. 얼마지나지 않아 커피가 나오자 코로 슬쩍 향을 맡아본 이수연은 잠시 아리송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지만 한모금 마시고 천천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녀가 어떤 감상을 받았는지는 찡그려진 그 표정에서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정말 저런맛인지 몰랐던건가. 보통 애니나 만화에서도 블랙은 쓴커피라고 나오잖아. 그걸 무시하고 넘겼거나 전혀 관심이 없던건가. 다행히 뒤이어진 '이정도로 쓸줄이야.' 라던지 '뭐가 마시면 어른의 느낌이야.'라는 것으로보아 단 커피를 찾아 주문을 한 것은 아니고 뭔가 실험정신에서 주문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오타쿠라는 말이 사실이라면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보았던 주인공들의 의견에 따라 골라본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흔히 일본만화에서보면 블랙커피=어른의 느낌이라는 공식으로 캐릭터들이 언급하니까.
다만 생각이상으로 썼던 모양인지, 그녀는 조금씩 홀짝거리다가 결국 다 마시지 못하고 계산하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런 광경을 조용히 지켜본 나와 친구는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비밀로 하기로 했다.
그도 그럴것이 단지 '소문으로만 듣던 이수연'이 아니라 실제로 본 이수연의 레어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얼음으로 무장한 고고한 소녀지만 저런 귀여운 모습이 있었을줄이야. 이게 그거지, 갭모에. 현실에서 2D에서나 나오던 그런 심쿵을 느낄줄을 몰랐다.
특히 뭔가 부끄러운 듯이 얼굴을 붉힐 때가 귀여웠다고.
나는 물론 친구까지 함께 은밀히 학교에서 활동하는 이수연 친위대에 속한 것은 한점 후회도 없다. 가입하고 알았지만 이 단체는 아무래도 이수연에게 고백하거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학생을 몰래 몰래 손을 써서 이수연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을 방해한 뒤 해당 남학생을 친위대에 강제로 가입시킨다던가. 어쩌면 이곳은 무서운 곳일지도 모른다.
덕분에 아무래 냉랭하다지만 이수연에게 고백이 한번도 없었던 것은 이런 연유가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덤으로 이수연 친위대 말고도 '여왕'을 지지하는 파나, 유서가 깊은 '심청'선배를 지지하는 쪽하고 마찰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팬클럽들끼리도 보이지 않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같았다. 그 사이에서 마이너한 '윤아'라는 소녀를 지지하는 녀석들도 있지만... 이 살벌한 세력들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특히 여왕을 지지하는 녀석들은 일진이 많아서 특히 무섭다. 단순히 좋아한다기보단 그건 충성이었어. 심지어 다른 학교에도 다수 분포한 모양이다.
삼국시대로 치면 심청 선배는 고구려, 이수연은 신라, 여왕은 백제의 느낌이다. 아, 윤아라는 여학생을 지지하는 녀석들은 가야 정도 되려나.
아무튼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갔지만 내가 그런 친위대에 가입할정도로 이수연에게 팬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학여행때는 밤에 뭔가 유약한 듯한 느낌이었던지라 그때 특히 많은 남학생들이 가입했다는 소문이 있다.
언제나 냉정하고 철두철미했던 이수연이지만 그때만큼은 보호욕구를 자극했다고 한다나.
내가 기억하는 이수연은 아직 거기까지이지만 곧 방학도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는 만큼 새로운 면면들을 볼 수 있으면 좋지않을까 생각한다.
개학까지 남은 일주일이 이렇게 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인걸.
덤으로, 단 커피를 바란다면 꼭 라떼종류를 시키기를 바란다.
============================ 작품 후기 ============================
전에 쓰려던 짧은 외전입니다. 곱슬이 편은 다음편부터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같네요.
사실 요즘 한동안 하지 않았던 몬헌4를 하고 있는데 재밌군요. 어려워서 스토리만 깨고 그만했었는데... 하지만 이제 곧 드군이 열리고... 그리고 마영전도 최근에 다시 시작했습니다. 아리샤 키우려고 했는데 뭔가 귀찮아서 그냥 하던 이비를 하려고 들어가니 복귀자 템이라고 5강 소소를 주네요. 무기가 없는 불쌍한 제 이비가 조금 활력을 찾은 기분입니다.
아 캐릭닉은 유적소녀 에요. 피오나 상향되면 키우던 피오나도 할지 모르겠습니다. 롤은 친구가 하자고 하지 않으면 않할것같고. 그럼 다음편은 빠른시일내에(되도록 내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