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화
“칼.”
밀어붙이는 힘에 못 이겨 거뭇한 나무 기둥을 두 손으로 짚은 채 릴리는 다리를 버둥거렸다. 귓가에 흥분한 카르낙의 뜨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기다려요, 잠깐….”
뽀얗게 드러난 엉덩이 사이로 뜨거운 공기가 고였다 훅 지나갔다. 제 볼기를 붙잡고 카르낙은 분주히 부풀어 오른 앞섶을 풀고 있었다. 목덜미에 붙어 있던 그의 입술이 종국에는 붉어진 귓바퀴를 핥아 댔다.
“기다려요!”
간신히 그를 뒤로 밀치고 릴리는 몸을 돌렸다. 헐떡이며 숨을 고르는데 카르낙은 괘념치 않고 다시 몸을 붙여 왔다. 아래로 떨어진 드레스 자락을 그가 다시 들쳐 올렸다. 저돌적인 모양새에 말문이 막혔다.
턱을 붙잡고 입술을 붙여 오려는 것을 파니릴리는 고개를 저어 거부했다. 그러자 카르낙은 그녀의 입술 대신 동맥이 펄떡이는 곳에 입술을 붙이고 분주히 손을 놀렸다. 릴리는 그의 가슴팍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요새….”
헐떡이며 운을 뗐다가 카르낙이 입 안으로 혀를 집어넣는 바람에 막혔다. 릴리가 그의 가슴팍을 팡팡 두드렸다. 카르낙은 블리오 자락을 그녀의 어깨에서 끌어내려 한쪽 젖가슴이 드러나도록 했다. 릴리가 펄쩍 뛰며 비명을 질렀다.
“그만!”
완강히 거부하는 모양새에 카르낙은 짜증이 나 미간을 구겼다.
“왜!”
제법 신경질적으로 되묻자 릴리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몇 번이고 뻐끔거리더니 물었다.
“요새 왜 이렇게 틈만 나면 하려고 들어요?”
“…요새?”
카르낙은 그 지점에 의문을 품었다.
“언제는 안 그랬나?”
“…물론….”
물론 그는 틈만 나면 하려고 들었지. 그럴 환경과 여건이 되지 않았던 때가 많았던 것뿐. 캘던에 돌아온 후 몸과 마음이 편해서일까. 아니면 이제 몸을 섞는 데 방해가 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여겨져서일까.
틈만 나면 하려는 것을 넘어서서 가끔은 몸을 섞으려고 제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었다. 어디든 길목에서 기다렸다가 눈에 띄면 잡아채 가려는 사람처럼 항상 벼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힘들어요.”
이런저런 말을 보탤까 하다가 릴리는 담백하게 고백했다.
“해야 할 일들이 있는데, 자꾸 이러면 진이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게… 칼!”
하소연을 하는 와중에도 그는 바지런히 릴리의 드레스 자락을 들추고 제 부푼 성기를 비벼 댔다.
“내 말 듣고 있어요?!”
“걱정 마, 릴리. 성까지 공주님처럼 모시고 가 줄게.”
“내 말은 그 뜻이 아니라, 사내와 달리 여자는 그렇게 말끔하게….”
말도 끝마치지 못하고 릴리는 ‘헉’ 소리를 냈다. 카르낙의 페니스가 매끄럽게 밀부 사이를 헤집고 들어온 탓이었다. 어쩜 이렇게 저항감도 없이 수월한지. 힘들다는 하소연이 꼭, 어린애들 하는 투정처럼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기가 막혔다.
쿵, 쿵, 사타구니끼리 부딪힐수록 점점 다리에 힘이 풀려 아래로 무너졌다. 또 엉망으로 흐트러지겠거니, 그런 생각을 하자 앓는 듯한 신음이 절로 났다.
드레스자락은 멋대로 구겨지고 머리카락에는 마른 풀잎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겠지. 블리오 앞섶은 다 늘어나고, 공들여 꽉 조여 놓은 코르셋도 느슨하게 풀어져 있을 게 뻔했다. 그런 난잡한 꼴로 백주 대낮에 성을 가로질러 가야 한다니.
어쩐지 부아가 치밀었다. 매번 저 혼자 곤죽이 되어 시름시름 앓는 것도 그랬고 흐트러진 꼴을 언제나 혼자 분주히 수습해야 하는 것도 그랬다. 재미가 붙은 게 분명해. 되는 대로 아무 데서나 하려는 거. 캘던성을 떠나 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했던 잠자리가 이제는 아주 습관이 된 것이 분명하다. 파니릴리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릴리는 바닥에 제 뒤통수가 닿기 전에 몸을 굴려 카르낙의 위에 올라탔다. 난감한 얼굴로 거북해하던 아내가 갑작스레 저돌적으로 나오자 뭐가 그리 좋은지 그의 낯빛이 환해졌다. 릴리는 그의 더블릿 단추를 풀고 짧은 슈미즈 자락을 들추었다.
그러자 카르낙은 기꺼이 제 윗옷을 모두 벗어 던졌다. 얇은 천 뭉치가 풀밭 위를 아무렇게나 뒹굴었다. 카르낙은 상체를 일으켜 제 아내의 허리를 꼭 끌어안아 제 가슴팍에 밀착시키고 도톰한 입술을 빨며 몸을 움직였다. 자세를 바꾸려 하자 릴리가 도리질하며 그의 가슴팍을 밀쳤다.
“싫어요!”
“…….”
“이렇게 해요.”
“좋아.”
카르낙은 아쉬운 대로 대답하며 드레스 앞자락을 끌어당겼다. 네크라인 밖으로 탐스러운 젖가슴을 모두 꺼내 놓으려 손을 집어넣으니 릴리가 그의 손을 붙잡아 야무지게 바닥에 붙였다.
“…….”
뭔가 조금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전혀 못 만지게 하는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들긴 했는데 릴 리가 허리를 움직이는 바람에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호로록 날아가 버렸다. 릴리는 승마를 할 때처럼 리드미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그녀가 제 것을 풀었다 조이기를 반복할 때마다 눈앞이 하얗게 바랬다가 까맣게 녹았다. 칼은 엉덩이를 들썩이며 신음했다. 불가항력적이었다.
“리… 릴리.”
카르낙이 신음하며 그녀를 불렀다. 토막토막 말이 끊겼다.
“키… 키스….”
단단한 복부가 멋대로 부풀었다 꺼졌다. 눈앞이 핑 돌았다.
“키스해 줘, 릴리.”
카르낙이 헐떡이며 애걸했다. 그러자 릴리가 몸을 숙여 입술을 내주었다. 카르낙은 두 손으로 그녀의 뺨을 붙잡고 게걸스럽게 그것을 핥아 댔다. 도망가지 못하게 꽉 붙잡고 입술을 빨며 그는 강하게 허리를 쳐올렸다. 비명 같은 릴리의 신음이 입 안에서 뭉개졌다. 카르낙은 입술을 떼어 내고 다급하게 말했다.
“…핥고 싶어.”
네 아래를 핥고 싶어. 네 치맛자락을 들치고 그 안에 들어가고 싶어. 네가 내 입술을 깔고 앉아 주었으면 좋겠어. 그러나 릴리는 고개를 저어 거부했다.
“왜?”
카르낙이 허리를 짓쳐 올리며 물었다. 원망스러운 기색이 가득했다.
“그냥, 그냥 해요. 그냥….”
그럴 시간 없어! 릴리는 제 입술을 앙다물며 고집을 부렸다.
“그냥….”
카르낙은 추삽질에 속도를 붙였다. 그의 몸 위에서 릴리는 하릴없이 흔들렸다. 파정의 순간이 잡힐 듯 가까웠다. 릴리가 고함치며 재촉했다. 말 엉덩이를 채찍으로 후리듯.
“해요! 그냥!”
아. 젠장.
흑, 하는 소리와 함께 카르낙이 추삽질을 뚝 멈추었다. 파르르 잘은 떨림 후 간헐적으로 허리를 퉁기며 카르낙은 아래로 낙하했다. 조용한 가운데 씩씩거리는 사내의 숨소리만 가득했다. 왠지 부아가 치밀었다.
파니릴리. 이 빌어먹을 고집쟁이. 이러니 내가 꽁무니나 쫓아다니지. 정말이지 억울해.
***
살롱에는 왕비와 차를 마시기 위해 세일린이 대기하고 있었다. 릴리를 맞이하는 그녀의 얼굴은 한결 편안하고 단정해 보였다. 카르낙은 아내를 그곳까지 바래다주고 곧 연회장으로 가 핀을 만났다. 명목상은 이재민과 함께 떠날 근위대원들에 대한 보고였으나 실상은 달랐다. 카르낙은 핀에게 그보다 더 은밀하고 중요한 것을 명령했다.
“이틀 후야. 오르티스에게 그라타로 향하는 배편을 구해 놓으라 이미 이야기해 두었다.”
“…카르낙.”
핀이 굳은 얼굴로 신음했다.
“꼭 이렇게 해야겠어?”
카르낙이 그에게 명한 것은 파니릴리를 데리고 엘버그 땅을 떠나라는 것이었다. 에이가, 세일린, 리쿠스, 그 외에 파니릴리가 아끼고 그녀에게 필요한 모든 수족을 데리고.
“넌 어차피 용병이었어, 핀. 네 대원들도 마찬가지잖아. 릴리를 그라타에 내려 주고 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도 좋아. 전부 다. 평생 먹고살 수 있을 만큼의 금전을….”
“그들은 네 대원들이기도 해. 모두 네가 있기 때문에 이곳에 머무는 거야.”
“전부 다 개죽음을 당할 순 없어.”
카르낙은 단호했다. 이곳에 남아 있으면 결국 전부 죽고 말 것이다.
“핀, 이 땅은 가망이 없어.”
“…….”
“내가 시작한 일이야. 그러니 나와 함께 끝나야 해.”
핀은 도저히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끝을 낸다고? 어떻게? 죽음으로? 그게 어떻게 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어째서? 이 땅에 가망이 없다면 너도 여길 버리면 되잖아. 어차피 너도 엘버그가 망해 버리길 바란 것 아니었어? 어차피 이 땅을 묵사발 내고 싶어서 내키지도 않는 왕좌에 엉덩이를 비비고 앉아 있던 거잖아. 그러면 너도 떠나면 돼. 이까짓 동네 따위 망하도록 내버려 두고 후련하게 떠나면.”
“이곳이 망하든, 그라타로 떠나든 어차피 난 더 이상 왕이 아니야. 핀. 그러니 근위대는 필요 없다. 너 역시 그때가 되면 네 살길을 찾아 가야 해.”
“내 걱정 하는 척하지 마. 찝찝하게.”
핀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카르낙은 웃었다. 그가 잔에 담긴 얼음 한 덩어리를 집어 와그작 씹자 핀이 말을 이었다.
“그라타는 이곳과 다르게 피부나 머리색으로 사람을 구별하지 않는다지? 그렇다면 거기선 너도 더는 투로가 아닐 테고, 그럼 그냥 파니릴리와 같이 밭이나 일구며 살면 되잖아. 밭이나 갈며 빌어먹으면 되겠네. 너랑 딱이잖아. 그런 비루한 인생. 안 그래?”
“그래. 그렇지. 그곳에선 그렇다고 하더군.”
“그럼 됐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아마네스의 저주는 평생 날 따라다닐 거야.”
핀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마네스인지 뭐시긴지 좆 까라 그래. 어차피 그런 신 따위 믿지도 않는다.
“그건 그냥, 엘버그의 종교일 뿐이야. 미련한 투로 놈아. 그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내가 나고 자란 땅에선 해가 최고야. 우린 불을 숭상한다고. 네놈처럼 크고 그을린 사람이 최고의 신랑감이란 말이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것이 종교다. 저주는 무슨. 그냥 사람들끼리 떠드는 헛소리라는 거 너도 알잖아.”
“난 그냥 ‘사람’이 아니야.”
“…….”
“너도 알잖아. 그거.”
“…….”
알아. 알지. 네놈이 처음부터 특별했다는 건 알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네놈이 특별한 놈이란 걸 절실히 알게 되었다. 너는 죽음에서 살아 돌아왔지. 주술의 힘이라고 하더라도, 불길에서 재생했고 그 안에서 새롭게 생명을 얻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이해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 그것은 현실이었다.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믿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실존했다. 실존한다 하여도 여전히 실감 나지 않지만 말이다.
“저 여자가 원하는 것이 뭔지 난 잘 몰라.”
카르낙은 얼음 한 조각을 한 번 더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하지만 내가 사라져 저 여자를 없앨 수 있다면 난 기꺼이 사라질 거야.”
그렇게 아예 지워 버리는 거다. 이 땅을. 이 나라를. 이 전설을. 이 신앙을. 모조리. 이거였다. 결국 원하던 대로 되었다. 모든 것의 파멸. 참으로 이 투로에게 걸맞은 종말이 아닌가.
“그러니 넌, 이 땅을 떠날 준비를 해.”
“네 아내가 과연 널 두고 떠나려고 할까?”
“그래서 널 보내는 거다. 핀.”
“…….”
그러니까 무력을 써서라도, 강제로 사지를 묶어서라도, 입에 재갈을 물려서라도 반드시 파니릴리를 이 땅에서 떼어 내란 이야기였다. 우스운 일이다. 들어올 땐 제 발로 들어오게 해 놓고 나갈 땐 사지를 포박해 구출해 낸다니.
“과연 그라타에서 우리를 반겨 줄지 모르겠네. 루이스놈이 해 놓은 짓이 좀 있어서.”
분명 마을 하나를 통째로 불살라 버렸지. 그놈. 너무나 그이 더워서 그저 웃어 버리고 만 이야기였다. 그때에는 분명 두 번 다시 그라타 땅에 발을 들일 거라 예상하지 못했으리라. 카르낙이 그 말을 듣고 키득거렸다.
“평화로운 땅이라 들었다. 그 땅의 어느 사람들이건 우리가 해 왔던 것만큼 지저분하고 더럽진 않겠지.”
아아. 아무렴. 그토록 치열하고 잔인하고 비열하려고. 핀도 결국 그를 따라 웃고 말았다. 모든 것이 엉망으로 돌아간다. 그 꼴이 어처구니없어 웃음이 나올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