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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발 아래 은빛 눈-67화 (67/231)

67화

다급하게 릴리의 팔을 붙잡았지만 너무 늦었다. 흉물스레 일어난 것에 보드라운 손길이 스쳤다.

“흐읏.”

자신도 모르게 낸 소리에 놀라 카르낙은 제 입술을 사리물었다. 부끄러웠다. 릴리의 손이 거기에 닿는 것이. 그래서 자신의 상태를 그녀가 아는 것이 못 견디게 부끄러웠고 야릇한 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더더욱 부끄러웠다.

그러나 몸은 그렇지가 않았다. 몸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손길에 반응했다. 붙잡아 놓고도 감히 그 팔을 밀어내길 거부했다. 오히려 가뭄 끝에 만난 단비처럼 열렬하게 환호했다. 그렇게 행위를 제어하고픈, 수치와 도리를 지키려는 이성이 원초적인 본능에 완전히 잠식당했다.

릴리는 제 손에 닿는 단단한 것에 놀라 입을 벌렸다. 분명 로리아나가 사내들은 이것을 만져 주면 좋아한다고 했다. 보드랍게 쓰다듬다가 쥐고 위아래로 흔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고 할 수만 있다면 입 안에 넣는 순간 더 기뻐한다고.

사내들의 성기란 평소엔 유연했다가도 번식 욕구가 느껴지면 딱딱해진다고 들었다. 그래서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그 단단함에 놀랐다. 성인 남자의 것을 본 적은 없지만 아주 어린 아이들의 것은 본 적이 있다.

통통하고 하얗고 귀여웠다. 하긴 아이들은 뭐든 귀엽지 않나. 손가락도, 발가락도, 조막만 한 입술과 코도, 작은 머리통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귀엽지. 그러나 그것 말고는 딱히 떠올릴 만한 것이 없어서 막연히 그것이 어떻게 단단해지는지 골몰해 보고는 했다.

하지만 그 어떤 상상에서도 이렇게 우뚝 위로 솟구쳐 있지는 않았다. 그의 것은 그의 배꼽 아래에 거의 달라붙어 있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6시 방향이 아니라 완전 12시 방향이었다. 표피가 단단하고 뜨거웠다. 손끝에 무언가 미끈하고 끈적한 것이 묻었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막연히 알 것 같았다.

제 팔뚝을 잡은 그의 악력은 강했지만 그뿐이었다. 밀어내거나 제지하지는 않았다. 릴리는 빤히 카르낙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얼굴도 저처럼 터질 듯 붉고 뜨거웠다. 참아 내려 사리문 촉촉한 입술처럼 그의 라벤더색 눈동자도 촉촉하고 투명하여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볼 거라 기대도 하지 않았던 연약하고 무방비한 표정이 그녀의 속을 헤집어 본능을 자극했다. 보듬어 주고 싶고, 안아 주고 싶고, 무엇이든 해 주고 싶은 감정을 건드렸다. 그래. 무엇이든 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릴리는 손으로 그의 것을 감싸 쥐었다. 카르낙의 미간이 꿈틀했고 움찔 몸을 떨었다. 릴리는 천천히 손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의 얇고 보드라운 표피는 부드럽고 매끄럽게 움직였다.

“아, 릴리….”

카르낙이 미간을 찌푸린 채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눈이 절로 꽉 감겼다. 눈가가 제멋대로 움찔거렸다. 저의 것을 감은 손이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카르낙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믿을 수 없는 것은 황홀한 제 감각이었다.

흡사 사지에 뛰어들 때의 흥분과 같았다. 피가 솟구치는 느낌. 모든 감각이 오직 생존만을 위해 움직일 때처럼 그의 육신은 오로지 하나를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누군가가 제 멱살을 잡고 끌고 가고 있는데 그것이 까마득히 아래로 떨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아찔하게 위로 솟구치는 것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릴리….”

카르낙이 릴리의 팔뚝을 쥔 손에 힘을 주며 한 번 더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흥분과 떨림이 동반된 다급한 목소리는 반쯤 쉬어 헐떡거렸다.

“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할 수 있어요.”

릴리가 달래듯 속삭였다. 칼은 간신히 눈꺼풀을 들고 릴리의 얼굴을 보았다. 속절없이 정신이 흐릿해지는 저와 다르게 릴리의 눈은 또렷하고 투명하며 더할 나위 없이 반짝거렸다. 흥분되고 신이 난 듯한 낯빛이었다. 누구는 흥이 나고 누구는 곤죽이 되어 가는 불공평한 행위였다.

카르낙은 그녀의 턱을 당겨 입술을 부딪쳤다. 벌어진 틈새로 말캉한 혀가 닿았다. 릴리가 ‘응’ 하고 웅얼거리듯 신음하였다. 그러자 카르낙은 두 손으로 그녀의 양 뺨을 쥐고 그녀의 입술을 열어 제 혀를 밀어 넣었다.

다소 거칠고 공격적인 행위에 릴리는 제 턱을 붙잡은 카르낙의 손등을 움켜쥐고 미간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카르낙의 양물을 쥔 손에도 같이 힘이 들어갔다.

‘으흑!’ 하고 울더니 카르낙은 중심을 잃고 저도 모르게 릴리를 침대에 밀어 눕혔다. 릴리가 자신의 커다란 몸에 눌리기 직전, 카르낙은 간신히 두 손을 뻗어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카르낙은 거기가 릴리의 가슴팍이라는 것도 모른 채 머리를 떨구었다. 무아지경의 상태로 따듯한 피부와 가슴골이 코끝에 닿자 코끝과 입술을 그곳에 비빌 뿐이었다.

릴리는 놓칠 뻔한 양물을 간신히 다시 쥐었다. 손끝으로 더듬어 다시 기둥을 쥐었을 때 그의 것은 방금 전보다 부피를 더 키운 상태였다. 게다가 그곳에 심장이라도 있는 듯, 둥, 둥, 맥박이 릴리의 손을 울렸다.

그것이 꼭 위험 신호처럼 느껴졌다. 괜찮은 걸까, 이러다 뭐가 잘못되는 거 아닐까, 덜컥 겁이 나 계속해도 될지 주저하는데 제 뜻과는 별개로 릴리는 계속해서 그의 표피를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그녀의 손을 두고 표피가 움직이고 있었다.

카르낙의 허리가 앞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가슴팍이 카르낙의 헐떡이는 숨결로 뜨거웠다. 그의 숨소리는 더 다급하고 거칠게 커졌다. 릴리는 그를 진정시키고 싶어 한 손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까맣고 보드라운 머릿결을 따라 매만졌지만 진정은커녕 그의 더운 열기와 고인 땀에 오히려 제 숨소리도 가빠지고 말았다.

그는 흡사 전력 질주하는 종마 같았다. 그것이 아니라면 아주 무거운 쇳덩어리를 가마에서 끄집어내는 대장장이… 혹은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죽자 사자 검을 휘두르는 전사…. 몹시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몸짓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첫날밤이고 이곳은 침대 위이며 그가 달려들어 끝을 보려는 것이 릴리, 혹은 릴리의 손에 잡힌 자신의 신체 일부라는 것이었다.

“아, 흐읏, 아, 아!”

점점 더 다급해지는 신음이 고통스러운 듯 느껴졌다. 마치 덫에 걸린 짐승이 몸부림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릴리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숨만 헐떡였다. 양물을 잡은 손을 빼내려 하자 카르낙이 재빨리 그것을 저지했다.

‘안 돼’라는 말을 할 여유도 없었다. 다만 제 양물을 쥔 그녀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더 힘껏 죔으로써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히 했다. 헐떡이느라 마른 입술을 물었다 놓으며 그는 손에 잡히는 대로 시트 깃을 구겨 쥐었다.

“리, 릴리… 나… 아, 더, 더는….”

그는 한 음절 한 음절을 더듬거리며 내뱉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단어조차 이루지 못한 채 신음과 섞여 흩어졌다. 안 돼. 더는 안 될 것 같아…. 그는 눈을 질끈 감고 주문이라도 외우는 듯 속삭였다. 멈추지 마. 멈추지 마. 멈추지 마. 턱이 꿈틀거리고 입가에 경련이 일었다.

“아, 아, 으, 으흐읏!”

그러다 마침내 그는 비명을 내지르며 조급하게 움직이던 허릿짓을 멈추었다. 부르르르, 몸이 떨리더니 잠시 후 뜨거운 무언가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뻐끔뻐끔 그것을 뱉어 낼 때마다 카르낙의 허리가 불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힘을 주어 온몸으로 그것을 밀어내는 듯한 동작이었다. 릴리는 카르낙의 양물이 터질 듯 부풀었다가 울컥울컥, 제 손등 위로 씨물을 뱉어 내는 감각이 낯설어 넋을 잃었다. 미지근하고 점성을 띤 액체가 느리게 흘러내리는 느낌이 기묘했다.

릴리는 그것을 제 눈으로 보고 싶었지만 카르낙이 저를 짓누르고 있어 불가능했다. 그는 신음과 함께 경련하며 정액을 배출 후 물먹은 솜처럼 릴리의 위에 가라앉아 있었다. 호흡을 고르며 안정을 찾는 것 같더니 이내 미동이 없었다. 릴리는 그가 잠이 든 게 아니면 기절한 것은 아닐까 불안하여 좌우로 눈을 굴렸다. 심장이 뛰고 호흡을 하는 것은 보니 분명 죽은 것은 아니었다.

“칼…?”

릴리가 조심스레 그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사지를 늘어뜨린 채 이렇다 할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포개 쥔 그의 것이 빠른 속도로 부피를 줄이고 있었다. 젖은 손을 그의 바지에서 어떻게 빼내야 하나 슬슬 그것도 걱정이었다. 게다가 늘어진 그의 몸이 꽤 무겁기도 해서 릴리는 몸을 뒤틀며 그를 흔들었다.

“칼.”

“…….”

그러자 카르낙이 웅얼웅얼, 무어라 중얼거렸다. 꼭 잠꼬대처럼 들려 릴리는 힐끗 제 목덜미에 코를 묻고 있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희미하게 그의 턱이 보였다.

“뭐라고요?”

“…물….”

“물을 가져다 달라고요?”

그가 미약하게 도리질을 했다. 끄응…. 뭐라고 하는 거지? 릴리가 미간을 좁혔다. 카르낙이 숨을 고르고 다시 중얼거렸다.

“씻을 물을… 가져와야 해.”

그러더니 몸을 일으키며 제 바지 안에 있는 릴리의 손을 빼냈다. 혹여 젖은 손을 그녀가 그냥 갈무리해 갈까 단단히 잡고 침대 아래를 더듬어 벗어 던진 블리오를 집었다. 카르낙은 블리오 자락으로 릴리의 손을 닦아 냈다.

순간 이게 무슨 짓인가 싶어 급격하게 자괴감이 몰려왔다. 부부가 된 첫날부터 이런 추태를 보여도 되는 건가, 남편으로서는 물론 사내로서도 모자란 놈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었다.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저 혼자 열 내다가 참지 못하고 결국 저 혼자 끝내 버렸다. 그 일련의 과정이 분명하게 떠올랐으나 몇몇 군데는 듬성듬성 토막 났다. 그곳엔 장면이 없었다. 무아지경 속에서 느껴지던 강렬한 감각만이 존재했다. 카르낙이 꼼꼼히 닦은 손을 놓자 릴리가 몸을 일으켰다.

“그럼 제가 밖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러나 추슬러 올릴 슈미즈 자락이 없었다. 카르낙이 흥분에 못 이겨 찢어발긴 옷자락은 넝마가 되어 흘러내릴 뿐이었다. 어쩐지 무안해져 릴리는 훤히 드러난 제 가슴을 손으로 가렸다.

“내가 가져올 테니 넌 여기 있어.”

“하지만… 무척 지쳐 보이시는데요.”

“지친 거 아니야. 비슷하긴 하지만… 달라.”

그래, 달라. 온몸에 힘이 풀리고 나른하긴 하지만 지친 것과는 달랐다. 정확하게 설명하긴 어려우나 하여튼 달랐다.

“그럼 좋으셨나요?”

릴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카르낙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릴리가 정확히 무엇을 묻는 건지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두뇌가 돌아가는 속도는 평소보다 현저히 느렸다.

“로리아나가 알려 주길 이렇게 하면 사내들은 기뻐한다고….”

“누구? 로리아나?”

카르낙이 되묻자 릴리는 당황하였다. 저도 모르게 로리아나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만 것이다.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어 버린 후였다. 이쯤 되면 그냥 실토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 알고 싶어서…. 제가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루이스에게 노련한 창부를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릴리는 낯빛을 붉히며 속사포처럼 말을 쏟았다. 카르낙은 잠시 눈을 껌뻑이며 그녀의 말을 되새김질했다. 그러더니 이내 릴리와 같은 빛으로 얼굴이 붉어졌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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