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릴리는 천이 찢겨 나가는 소리에 놀라 머리를 들었다. 그의 손에 가볍게 찢겨 나간 천 쪼가리는 분명 자신의 것이었다. 봉긋한 젖무덤이 날것 그대로 드러났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카르낙의 찌르는 듯한 시선이 버거웠다.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릴리는 멈칫멈칫 두 손으로 제 가슴을 감쌌다. 그러나 카르낙은 곧바로 그 장애물을 없애 버렸다. 그녀의 두 손목을 잡아 벌리고 시트 위에 내리눌렀다. 젖가슴은 다시 완전히 개방되었다.
릴리는 무방비하고 나약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저 시선을 받는 것뿐인데도 유륜이 찌르르 울리고 유두가 예민하게 일어섰다. 카르낙이 훤히 드러난 제 가슴을 본다고 생각하니 부끄러워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돌렸다.
카르낙은 릴리의 부끄러움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눈앞에 드러난 것이 너무 아름다워 시선과 정신을 모두 빼앗겼다. 하얗고 봉긋한 것은 그가 본 것 중 가장 완벽한 곡선을 이루었다. 동그랗고 탐스러운 가슴 위에 유륜과 유두는 분홍색 염료를 톡 떨어트려 번진 듯 예뻤다.
어쩜 이렇게 완벽할 수 있지? 저의 몸과는 완전히 달랐다. 목선, 그 아래의 쇄골… 봉긋한 젖가슴 아래 배꼽까지 길게 나 있는 선은 모두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그것은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단단하고 투박한 사내들의 몸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모든 여인의 몸은 이렇게 아름다운가? 그래서 핀도 그토록 여색에 빠져 있는 것일까. 모든 사내는 이런 몸을 품을까. 부드럽고 폭신하고 달콤해 보이는 이런 몸을 만지고 품고 핥는가.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하여 그는 침을 삼켰다. 넋이 나간 채 그는 시트 위로 짓누르던 릴리의 손목을 놓고 아주 천천히 오른손을 그녀의 편편한 배 위에 올렸다. 머릿속이 멍한 가운데에서도 손길만은 조심스러웠다.
그는 손끝으로 릴리의 배꼽에서부터 명치까지 이어져 있는 긴 선을 따라 올라갔다. 보드랍고 매끄러운 가운데 단단함도 느껴졌다. 명치에서부터 오목하게 파여 갈비뼈가 앙상히 드러났다. 그 위에 놓인 매끄러운 두 덩이의 살결. 카르낙은 그 위로 손끝을 옮겼다. 젖가슴 아랫부분에서부터 타고 올라가 스치듯 유두를 만졌다.
“흣.”
릴리는 황급하게 제 손등으로 입을 가렸다. 자신의 신음 소리에 스스로가 놀란 것 같았다.
“아픈가?”
카르낙이 묻자 릴리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간지럽고 찌르는 듯 아픈 느낌이 났지만 고통은 아니었다. 고통이라면 이토록 황홀할 리가 없었다. 카르낙의 손끝이 한 번 더 유두를 지그시 스쳤다. 릴리는 손등을 문 채 다시 앓는 소리를 냈다. 카르낙은 그 소리가 더 듣고 싶었다.
물기에 젖어 반쯤 감긴 눈꺼풀이 미세하게 닫혔다 들리는 것을 보는 것도 좋았다. 카르낙은 마른 입술을 혀로 한 번 쓸고 다시 손끝을 유두에 가져갔다. 이번엔 유두를 집고 원을 그리듯 빙글빙글 돌렸다. 릴리가 어깨를 움츠리며 바르르 떨었다. 카르낙이 또 물었다.
“아파?”
릴리는 고개를 저었다. 저렸다. 찌르르, 하고 저리고 자꾸만 몸이 뒤틀렸다. 참고 싶은데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좋은가?”
“…….”
릴리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열이 몰려 얼굴이 붉어졌다. 꼭 터질 것처럼 보이겠지. 진정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좋은가?”
카르낙이 한 번 더 물었다. 그는 진실로 알고 싶었다. 제 몸에 릴리의 손길이 스쳤을 때처럼 그녀도 같은 황홀함을 느끼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릴리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르낙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카르낙은 제 손가락 사이에 유두를 끼우고 젖가슴을 힘껏 쥐었다. ‘아흑’ 하고 릴리가 열을 내며 몸을 뒤틀었다. 그 모양새가 기뻐 카르낙의 입에서도 감탄의 신음이 흘렀다. 릴리의 예쁜 미간이 구겨지는 것이 보기 좋았다. 인상을 찌푸리는 것마저도 예뻤다.
“나도 네가 만지면 좋아, 릴리.”
네가 처음 내 손을 잡았을 때도, 네가 내 어깨에 팔을 둘렀을 때도, 네 보드랍고 작은 손이 내 머리카락을 훑고 가슴팍을 만질 때도 좋았다. 꼭 그 손끝이 마법이라도 부린 양, 달콤하고 홧홧한 무엇인가를 발라 놓은 듯 황홀하여 달뜨고 설레어 괴로웠다.
카르낙은 몸을 숙여 제 손가락 사이에 끼운 유두를 혀로 핥았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핥고 싶었고, 핥으면 그녀를 더 기분 좋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읏!”
릴리가 비명처럼 신음을 내뱉었다. 유두에 카르낙의 축축하고 보드라운 혀가 닿는 순간 눈앞이 하얗게 바랬다가 핑그르르 돌았다. 바늘에 걸린 고기처럼 순식간에 카르낙에게 끌려 속절없이 위로 솟구쳤다.
아찔하여 저도 모르게 비명이 났다. 그것이 신호가 된 듯 카르낙은 릴리의 가슴을 한 움큼 베어 물었다. 그러면서 나머지 가슴 위에도 손을 올려 주무르고 유두 끝을 손가락 사이에 끼워 매만졌다.
그가 혀로 유두를 굴리고 빨아 당길 때마다 릴리는 몸을 떨며 뒤틀었다. 손등을 물고 입을 틀어막았는데도 새어 나가는 신음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의 입 속으로 온몸이 다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아찔하고 저리고 지끈지끈하여 무서웠다.
“자, 잠시만… 폐….”
릴리가 그의 옷깃을 쥐며 상체를 살짝 들었다. 카르낙은 릴리의 가슴을 빠느라 정신이 없었다.
“잠시… 폐… 아… 으….”
시트를 쥐었던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지만 단단하고 무거운 몸이 쇳덩이 같아 밀리지가 않았다.
“아… 폐, 칼!”
릴리가 단말마처럼 그의 이름을 부르자 카르낙은 간신히 그녀의 젖가슴에서 입술을 떼어 냈다. 실컷 빨리다가 뽁, 하는 소리를 내며 유두가 입 안에서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의 한 손은 여전히 릴리의 젖가슴을 쥔 채였다.
“저… 저도….”
릴리는 숨을 고르고 마른 입술을 한 번 축이고는 다시 입을 뗐다.
“폐하도 옷을….”
카르낙은 잠시 멀뚱거리다가 곧 아, 하고 몸을 일으켰다.
“미안.”
그러더니 제 블리오를 끌어 올려 훌렁 벗어 던졌다. 카르낙의 검은 머리카락이 블리오에서 빠져나와 아래로 쏟아졌다. 크고 두껍고 단단한 몸에 드리운 고혹적인 장막 같았다. 릴리는 그의 그을린 상반신을 훑어보았다.
단단한 구릿빛 피부 위에 진주를 갈아서 발라 놓은 듯 윤기가 흘렀다. 그의 몸은 모두 근육이었다. 지방도 없이 얇은 살가죽이 그 위를 그저 덮어 놓은 것만 같았다. 근육에 따라 그의 몸은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어깨. 가슴. 그 아래 뚜렷하게 갈라지고 나누어진 복부, 홀쭉하게 파인 배꼽 아래 편편한 피부 위에는 몇 가닥의 핏줄이 툭 불거져 있었다. 그의 손등이 그런 것처럼, 그의 팔뚝이 그런 것처럼. 사내의 몸은 이런 것이구나. 이토록 다른 것이구나.
단단하고 빈틈없어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만큼 강렬했다. 왜 사람들이 사내를 종마나 위험한 짐승에 비유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았다. 카르낙의 몸은 분명 그들과 닮아 있었다. 육신에 생명력이 넘쳤다. 그것에 압도될 만큼.
릴리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손을 뻗어 그의 단단한 가슴팍에 가져다 대었다. 닿는 살갗이 뜨거웠다. 땀에 전 제 손바닥보다 더 그랬다. 둥둥둥둥, 북을 치는 듯 그의 심장 고동 소리가 손바닥에서 진동했다.
아마 저의 가슴도 이렇게 뛰고 있을 테고 카르낙 역시 제 손바닥으로 그것을 느끼고 있으리라. 신비롭고 황홀한 일이었다. 귀로 듣지 않아도 서로의 심장 고동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이것은 분명 부부에게만 가능한 소통일 것이다. 둘만이 느낄 수 있는 특별함이다.
릴리가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녀도 카르낙이 했던 것처럼 그의 가슴을 핥아 보고 싶었다. 로리아나가 사내도 여인이 자신의 가슴을 빨고 유두를 지분대면 좋아한다고 했다.
단순한 생명체라 반응을 보이는 곳이 많지 않은데 젖꼭지가 그중 하나라 했다. 릴리는 침을 삼키며 손끝을 그의 유륜 위로 옮겼다. 그러자 카르낙이 ‘윽!’ 소리를 내며 번개라도 맞은 듯 몸을 움찔 떨며 릴리의 손을 잡아챘다.
아직 혀는 가져다 대 보지도 못했다. 본인이 해 놓고도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카르낙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방금 제 슈미즈를 찢어발겨 놓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연약하고 무해한 표정이었다.
“저도 폐하의 가슴을….”
가슴을 만져 보고 싶다는 말을 끝마치지도 않았는데 카르낙이 도리질을 해 댔다.
“아… 안 돼.”
안 돼. 안 된다.
“어째서요?”
왜? 아직 하지도 못했는데? 로리아나는 분명 사내들이 기분 좋아하는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라고 했는데. 하면 좋을 텐데.
“저도 폐하를 기분 좋게….”
“이미 좋아.”
카르낙이 씩씩대며 릴리의 말허리를 잘랐다.
“하지만….”
“이미 충분하다.”
그래. 이미 터질 것 같다고. 몽정의 찝찝함은 이미 겪어 보았다. 릴리 앞에서 그런 징그러운 꼴은 보이고 싶지 않다. 이미 한계치다. 그냥 다시 릴리의 가슴이나 빨고 싶었다. 그녀를 만지는 것은 괜찮았다. 흥분되지만 참을 만했다. 그러나 그녀가 자신을 만지는 것은 안 된다. 그러면 참을 수 없을 거다.
“아….”
뭔가를 알아차린 듯 릴리가 카르낙의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제 허벅지를 가둔 채 시트 위에 무릎을 대고 벌어져 있는 그의 하반신이 어떤 상태인지 육안으로 확인하기에는 어려웠다.
그의 허리가 지나치게 잘록해서인지 아니면 바지가 지나치게 크게 만들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한 사실도 아니었다. 정말 중요한 것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확인하려면 결국 손을 대는 수밖에 없었다.
릴리는 어금니를 사리물며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생각해 보니 요 근래 이토록 맹렬하고 전투적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은 로리아나가 일러 준 것을 어서 빨리 실행해 보고 싶었다.
공부한 것이 있으면 결과를 보아야 하지 않나! 릴리는 카르낙이 제 한쪽 손을 붙든 채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전광석화처럼 나머지 손을 뻗어 바지 끈을 잡아당겼다. 옷이 느슨해지자 카르낙이 허리를 굽혔다.
영문도 모른 체하는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릴리는 그가 사태를 알아차릴 새도 주지 않고 그 안으로 제 손을 밀어 넣었다. 마침내 카르낙의 입에서 ‘헉!’ 하는 단발마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