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85 >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는 단 1패만 기록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 1패는 리그 1위인 레알 마드리드에 얻은 것이었고, 그것을 제외하면 바르셀로나는 무패의 성적으로 이어나가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번 경기에서 꼭 저 녀석들에게 1패를 안겨줘!”
“미구엘! 오늘 부탁해!”
“화이팅!”
“오늘 이기고 승점 차이도 바짝 쫓아가자!”
오늘 경기를 위해서 누 캄프에 도착한 바르셀로나의 선수단은 그들을 사랑하는 홈팬들이 내뱉는 응원을 들으며 경기장으로 들어섰다.
곧이어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을 태운 버스도 누 캄프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선수들이 내리기 무섭게 바르셀로나의 팬들은 거대한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
“오늘 이곳이 너희의 무덤이 될 거야!”
“목 씻고 기다려!”
“미구엘이 너희를 짓밟을 거야!”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박규태를 본 순간 그들의 야유는 더욱 거대해졌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몇몇 팬들은 반짝이는 눈을 하며 박규태에게 달려갔다.
정확히는 ‘아이들’이었다.
“김치팍! 김치맨 인형에 사인해줘요!”
“김치를 많이 먹으면 퍽처럼 될 수 있나요?”
“바르셀로나의 김치팍이 되고 싶어요!”
야유와 욕설을 내뱉던 바르셀로나의 팬들도 아이들에게 친절한 박규태를 보고는 조용히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칫! 운 좋은 녀석!”
“아이들이 널 살린 거야!”
가볍게 사인을 해주는 박규태는 그런 바르셀로나팬들의 반응에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인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팬이에요! 김치팍!”
“그래, 이름이 뭐니?”
“스테파니요!”
“자! 여기 사인!”
“감사합니다! 히히히! 저 김치팍이랑 김치맨을 너무 좋아해서 아빠한테 김치 사달라고 졸랐어요!”
“하하하! 그래, 고맙구나.”
박규태는 매운맛에 혼이 날 아이의 아버지를 위한 짧은 기도를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팍! 오늘 경기 져줘요! 네? 부탁할게요!”
“음……. 그건 무리겠는데……? 아무튼 김치 많이 먹고 튼튼하게 자랐으면 좋겠구나.”
그 말을 남기고 경기장으로 향하는 박규태는 방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까지 저런 말을 하는 것을 보니까. 오늘 바르셀로나가 아주 독하게 나오겠는데……. 이번 누 캄프 원정은 다른 경기보다 더 힘들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즐거울 것 같았다.
‘이긴다면 말이지…….’
박규태가 환하게 웃었다. 오늘따라 누 캄프에서 외치는 ‘주-모우!’가 기다려졌다.
* * *
와아아아아아아아!
수만 명의 관중이 큰 함성을 외쳤다. 누 캄프에서 펼쳐질 경기를 기대하는 팬들의 함성은 두 팀의 선수들이 필드에 입장하자 더욱 거대해졌다.
‘엘 클라시코’라는 세계 최고의 더비를 앞둔 덕분에 필드에 입장한 선수들의 표정도 사뭇 달랐다. 바르셀로나는 이번만큼은 절대 패배를 기록해서는 안 됐다.
‘이번 경기에서 이기지 못하면 사실상 리그 우승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이 없다.’
솔직히 다른 경기에서 져서 리그 1위를 놓치더라도 이번 ‘엘 클라시코’만은 이겨야 했다.
그만큼 오늘 경기는 중요했다.
거기다 원정이 아닌 홈 경기였다.
그들의 자부심인 누 캄프에서 펼쳐지는 경기였다. 절대 패배가 허용되지 않는 장소였다.
-열기가 대단합니다!
-이게 ‘엘 클라시코’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 시즌의 리그 1위를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일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이번 경기에서 패배하는 쪽이 누가 되었든 기세가 한풀 꺾일 것은 분명하니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경기가 시작될 준비가 끝났습니다! 주심이 휘슬을 불면서……! 전반전이 시작됩니다!
바르셀로나는 오늘 경기가 누 캄프에서 펼쳐진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집요한 압박, 빠른 속도의 공격 전환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티키타카의 향연.
레알 마드리드가 생각했던 것보다 바르셀로나의 공격은 오밀조밀했다.
그리고 공격의 전환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당연히 경기 초반에 레알 마드리드는 단단히 내려앉아서 수비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벨로아 솔랑케 감독은 단단히 준비한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보고 테크니컬 에어리어에서 큰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에르네스토 리바스 감독을 바라봤다.
‘많이 준비했군.’
레알 마드리드의 유일한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조금은 떨어지는 미드필드 장악력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당하고만 있는 레알 마드리드가 아니었다. 바르셀로나도 자신들의 약점을 공략당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뒤로 연결되는 긴 패스!
-박규태 선수가 뒤로 짤라 들어가며 기회를 잡았습니다! 박규태! 박규태! 슈우우우우웃!
-아! 아쉽습니다! 골대를 맞고 넘어가는 공!
-박규태 선수와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이 계속해서 바르셀로나의 뒷공간을 노립니다! 덕분에 줄리아노 네우만 선수가 상당히 고생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르셀로나의 철벽이라고 평가받는 줄리아노 네우만 선수이지만……. 브뤼헤에 있을 시절에는 발기술만 좋은 자동문이라고 평가를 받았던 선수였거든요?
-리버풀을 거치고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정말 많은 발전을 한 선수입니다.
팽팽한 경기.
레알 마드리드의 중원은 이번에 영입된 올시 구르마가 아니었다면 진즉 초토화가 되었을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미드필더진에게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바르셀로나의 수비진도 줄리아노 네우만과 테어 슈테겐 골키퍼가 멋진 세이브를 연이어 보여주지 않았다면, 1실점을 먼저 허용하고 전반전을 이어나갔을 뻔했다.
-말씀드리는 순간 바르셀로나가 공을 빼앗았습니다!
-좋은 위치에 공의 소유권이 넘어왔습니다! 역습을 시도하는 장면이 오히려 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이 흐트러져 있어요!
역습을 시도하는 순간.
레알 마드리드의 중앙 미드필더인 발렌틴 디아즈가 바르셀로나의 카이오 실바에게 공을 빼앗기고 말았다.
공은 모하메드 소우에게 향했다.
이번 시즌 9골과 현재 리그에서 4골을 기록하고 있는 모하메드 소우는 자신의 발에 도착한 공을 보며 이를 꽉 물었다.
인테르에서 뛰던 시절과 다르게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썩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꼭 넣는다!’
그는 이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백숏으로 방향을 한 번 전환했다.
순간적으로 상대 수비수가 미끄러졌다.
그러는 사이에 모하메드 소우는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를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이제 몇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공을 몰았다.
레알 마드리드의 크리스티안 이오리가 강한 압박을 하며 다른 선수와 협력 수비를 하려고 붙었다.
강한 몸싸움에 모하메드 소우가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가진 장점을 잘 살렸다.
큰 키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좋은 볼 컨트롤을 가지고 있는 그는 신기에 가까운 기술로 공을 지켜냈다.
‘이런…… 실수다!’
크리스티안이 쭉 미끄러지며 기겁했다.
그를 필드에 미끄러지게 만든 모하메드 소우는 거침없이 파고들어서 바로 슈팅을 가져갔다.
뻐어어어엉!
철썩!
그리고 골이 들어갔다.
레알 마드리드의 실수였다.
그리고 축구에서 실수는 곧 실점이었다.
전반전 14분,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손에 들어온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골을 넣은 모하메드 소우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울분이 쌓인 그의 분노가 표출되었다. 누 캄프가 이른 시간에 터진 선제골에 큰 환호성으로 물들었다.
이거야! 이거라고오오오오오오!
모하메드 소우우우우우우!
널 믿고 있었어!
그거라고! 인테르에서 널 데려온 이유가 이거야! 최고라고! 좋았어! 모하메드가 살아났어!
골을 넣은 모하메드 소우.
그가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났는지 관중석으로 달려가더니 펄쩍 뛰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가장 유명한 괴짜의 세리머니를 표절했다.
“소-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그 모습을 보고 원정까지 찾아온 레알 마드리드의 팬들이 야유를 보냈다.
우우우우우우우!
감히 김치팍을 모욕해?
죽여버리겠어!
망할 자식! 두고 봐! 김치팍이 복수할 거야!
세리머니의 주인공도 모하메드 소우의 도발에 묘한 눈빛을 보냈다.
“어쭈? 지금 뭐 하는 거지?”
박규태가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가 상당히 살벌했다.
자신의 세리머니를 훔친 도둑놈을 바라보던 박규태가 두 눈에 불을 피웠다.
그렇게 전반전이 더욱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 * *
선취점이 들어간 뒤에도 바르셀로나는 자신들의 전술을 바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자신들이 준비한 것이 먹혔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되찾았다.
-아! 정말 멋진 골이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정말 오랜만에 선취점을 내준 것 같습니다!
-역시 ‘엘 클라시코’는 예측할 수 없는 재미가 있습니다! 세계 최고의 더비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습니다!
-네! 정말 흥미진진합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바르셀로나의 공격이 이어집니다!
-모하메드 소우! 오늘 정말 컨디션이 좋은 것 같습니다! 선취점을 만들 뒤에 벌써 2번이나 레알 마드리드의 심장을 철렁하게 하고 있습니다!
모하메드 소우가 날뛰었다.
덕분에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진은 다시 재정비하는 데 있어서 애를 먹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군.’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바르셀로나는 정교한 패스워크와 빠른 공격 전환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흔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어느 정도 반격을 할 수 있었다.
-발렌틴 디아즈가 버텼습니다! 올시 구르마에게 연결이 된 패스으으으으! 아! 그냥 흘러가게 놔뒀습니다! 패스를 받은 선수는 중앙으로 파고든 라두 웅구레아누입니다!
-오우우우우! 라두! 라두! 라두우우우! 아! 슈팅이 아쉽게 빗나갑니다! 홈팬들의 심장을 철렁하게 만든 라두 웅구레아누의 멋진 슈팅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뒤로 향하는 패스에 흔들리는 바르셀로나였지만, 그들은 라인을 내릴 수 없었다.
‘상대 수비와 중원에게 여지를 주면…… 더 질 좋은 패스가 최전방으로 향하게 된다. 지금도 망할 김치팍이 날뛰는데……. 지금보다 더 좋은 패스가 그에게 향하면…….’
막을 수 없다.
에르네스토 리바스 감독이 눈을 감았다.
선수들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전승을 이어나가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선취점을 만든 선수들이다.’
선수들은 그의 믿음에 보답할 것이다.
분명히 전반전을 잘 마무리해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의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다.
다시금 레알 마드리드의 역습.
순간적으로 무너진 수비를 노리고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이 깊게 쇄도하고 시작했다.
“바로 앞으로 열어줘!”
공을 잡은 올시 구르마는 누군가 외친 그 목소리를 듣고 빠르게 패스를 찔러넣었다.
빠르게 내려앉기 시작한 바르셀로나의 선수들의 숫자만큼,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도 많이 올라왔다. 패스를 찔러넣은 루트는 그의 생각보다 꽤 많았다.
뻐엉!
“나이스! 나이스!”
공을 받은 니콜라스 브라보가 물 흐르듯이 깔끔하게 공을 잡아냈다.
그리고 이어서 날카로운 스루패스로 중앙에 침투한 박규태에게 공을 연결했다.
‘정말 죽여주는 위치에 있군!’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이 박규태의 위치를 파악하는데 조금씩 늦어지고 있었다.
니콜라스 브라보는 그런 상황에서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을 흔들 최적의 패스를 찔렀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패스.
하지만 이를 꽉 물고 있던 줄리아노 네우만은 니콜라스의 패스에 반응했다.
‘쉽게 슈팅을 할 수 없을 거다!’
그동안 박규태에게 당한 것이 많은 줄리아노 네우만은 박규태가 공을 받는 순간 달려들었다.
그리고 공을 받은 박규태가 슈팅할 위치로 자신의 발을 내밀었다.
그는 확신했다.
박규태가 슈팅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라고.
툭!
‘툭?’
순간 가볍게 들려오는 패스 소리.
줄리아노 네우만은 중앙에 비어 있는 또 다른 공간으로 가볍게 패스를 찌르는 박규태와 그 공간으로 파고든 라두 웅구레아누를 보며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안 돼!”
당연히 라두 웅구레아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가볍게 발을 휘둘렀다.
뻥!
철썩!
라두 웅구레아누의 슈팅이 들어가는 순간.
선취점을 넣은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온 동점골에 누 캄프가 침묵했다.
골을 넣은 라두 웅구레아누는 빠르게 레알 마드리드의 원정 팬이 있는 위치로 달려가 펄쩍 뛰었다.
그리고 모하메드 소우와는 다르게 박규태를 향한 존중과 경외심을 담아서 소리쳤다.
“라-두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
박규태는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그리고 흐뭇하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85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