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84 >
“정신 차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테네리페의 이마놀 감독이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선수들도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어쩔 수 없는 실점이었어.”
“조금만 더 집중하자!”
테네리페의 선수단은 차분하게 다시 경기에 집중했다.
그들이 승격하고 바로 리그 10위까지 올라올 수 있던 이유가 바로 실점을 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아서였다.
“측면을 조금만 더 좁혀!”
“온다! 집중해!”
수비진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니 다른 선수들도 조금씩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선보이기 시작했다.
‘쉽지 않네…….’
‘오늘 작정하고 나왔군.’
‘먼저 1골을 넣고 시작해서 다행이야. 만약 0 대 0의 상황에서 상대가 이런 식으로 나왔다면……. 어쩌면 조금 힘든 경기가 될 수도 있었겠어.’
레알 마드리드의 선수단은 그런 테네리페의 단단한 수비에 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그들의 수비는 프리메라리가의 어느 팀보다 단단했으니까.
하지만 단 한 사람은 달랐다.
-빠릅니다! 이번에도 박규태!
-오늘 홀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이끌고 있습니다. 벌써 그의 발에서 나온 기회만 3번입니다! 이제 전반전 15분이 막 지난 타이밍인데 말이죠!
-말씀드리는 순간 박규태! 박규태! 슈우우우우우우웃! 아! 아쉽습니다! 골키퍼의 멋진 선방!
-조직적인 수비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진을 잘 막고 있는 테네리페인데……. 박규태 선수를 상대로는 쉽게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박규태 선수가 대단하다는 뜻이겠죠?
-하하하! 맞습니다!
레알 마드리드의 풀백인 다미앵 펠티에가 올린 크로스를 테네리페의 골키퍼인 루카 지단이 막아냈다.
그는 자신의 펀칭으로 나온 공을 노리고 발을 휘두른 라두 웅구레아누의 슈팅에도 반응했다.
-루카 지다아아안! 이번에도 멋진 세이브!
-라두 웅구레아누의 슈팅에 반응했습니다! 멋진 반응속도입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지네딘 지단의 아들인 루카 지단이군요! 아버지만큼 화려한 슈퍼스타는 아니지만, 항상 프리메라리가의 주전급 골키퍼로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입니다.
-웨스트햄과 셀타 비고에서 많은 활약을 했었죠? 그리고 지난 시즌에 테네리페에 합류했습니다.
-테네리페의 승격에 많은 도움이 된 선수입니다. 오늘도 박규태 선수의 슈팅을 2번이나 막아냈습니다.
다시금 맹렬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막다가 공이 빠져나가며 스로인을 내준 된 상황.
테네리페의 선수단은 벌써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특히나 박규태와 자주 마주친 호세 마리아는 다른 선수들과 다르게 녹색의 잔디즙이 가득 묻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몸이지?’
단 한 번도 공중볼 경합에서 이기지 못했다.
그는 키가 176㎝의 작은 신장의 수비수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단단한 근육과 높은 점프력으로 190㎝가 되는 공격수를 상대로도 항상 높은 확률로 공중볼 싸움에서 우위를 가져갔었다.
‘심지어 바르셀로나의 미구엘 모레노에게도 공중볼 싸움으로는 밀리지 않았는데……!’
그런데 자신이 마크하고 있는 동양인에게는 속절없이 밀리고 있었다.
오늘 경기의 첫 실점도 자신의 실수에서 나온 것이라서 더욱 속이 좋지 않았다.
거기다 상대는 무슨 이상한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귀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김치! 4강! 월드컵! 김치! 4강! 월드컵!”
“Cállate!(닥쳐!)”
“김-치! 4강! 월-드컵!”
“제기랄……. 이런 모자란 녀석한테 그렇게 골을 내어준 녀석들은 도대체 뭐냐고?”
자괴감이 가득한 호세 마리아의 혼잣말에 박규태가 씩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너도 모자란 놈한테 실점을 허용한 머저리 아니었어? 걱정하지 마! 아직 김치의 시간은 많이 남았으니까. 내가 진정한 발할라를 너에게 보여줄게.”
“발할라가 아니라 지옥이겠지.”
이제 호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저 경기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맹공은 계속 이어졌으니까.
테네리페의 원정 팬들은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내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들의 손에 땀이 가득했다.
“아우…… 살 떨린다!”
“오늘 무승부는 할 수 있겠지? 승점 하나라도 가져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경기가 힘들어 보이냐? 오늘 지면 7위권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제발…… 제발!”
“아! 다시 레알 마드리드의 공격이다!”
“또! 저 녀석이야? 망할 김치 악당!”
“저 망할 김치 악당을 막아! 발을 부러뜨려! 저 자식을 막으라고! 호세! 호세! 제발 막아!”
최근 스페인에서 박규태의 이미지는 ‘악당’이었다.
마드리드를 제외하면 모든 팀이 레알 마드리드와 박규태를 경계하고 있었다.
전승을 달리고 있으며 상대 수비수를 상대로 엉망진창인 트레쉬 토크까지 내뱉는 공격수.
거기다 얄밉게도 골도 잘 넣었고, 세리머니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바리에이션은 상대 팬들의 심장에 ‘분노’와 ‘역겨움’이라는 것을 제대로 불어넣었다.
덕분에 박규태는 최근에 ‘Rufián de Kimchi(김치의 악당)’이라고 불리고 있었다.
그리고 전반전 막판.
박규태는 자신이 왜 ‘악당’이라고 불리는지 제대로 보여주며 원정까지 따라온 테네리페 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 호세 마리아를 제치고 넣은 멋진 왼발 슈팅이었다.
철썩!
-고오오오오오오오올!
-전반전이 끝나기 직전에 터진 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고오오오오오올! 완벽한 쐐기이이이이고오오올!
-이거죠! 이겁니다! 최근에 박규태 선수가 조금은 조용했다고 볼 수 있었는데……. 오늘 경기에서 2골을 넣으면서 다시금 경기력이 올라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2 대 0으로 앞서나가는 레알 마드리드!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김치송이 울려 퍼집니다!
-하하하하! 이게 국위선양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죠! 이거죠! 김치팍! 위대한 김치팍! 어나더 김치팍! 이 장면을 보기 위해서 밤을 지새우는 분들이 분명히 많을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골을 넣은 박규태는 관중석 근처로 달려갔다. 그리고 김치송을 부르는 팬들 앞에서 지휘자처럼 두 팔을 휘적거리며 자신의 시즌 34호 골을 자축했다.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는 테네리페의 원정팬들은 이를 갈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망할 자식…….”
“길 가다가 김치로 귀싸대기나 맞아라!”
“너 테네리페로 오기만 해봐!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본 음식을 던지며 괴롭힐 거야!”
그렇게 길었던 전반전이 끝났다.
* * *
의외로 후반전은 싱겁게 끝났다.
네테리페는 추격할 의지를 순식간에 잃었다.
-고오오오올!
-박규태! 해트트릭! 해트트릭!
-순간적으로 뒷공간을 잘라 들어가는 움직임이 대단했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후반전 시작하기 무섭게 테네리페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립니다!
순식간에 터진 골.
테네리페가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의지부터 꺾는 박규태의 환상적인 세 번째 골이 터졌다.
그것으로 끝이 났다.
후반전 41분에 터진 호세 마르켄스의 골까지 터지면서 레알 마드리드는 테네리페를 상대로 4 대 0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이로 승리를 거두면서 전승 행진을 이어나갔다.
[박규태의 해트트릭! 그에게서 메시를 보았다.]
[우승청부사인 박규태! 이번에도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을 확정 지을 수 있을까?]
[압도적인 경기력! 그들의 패배는 언제 찾아올까?]
[1도움 기록! 올시 구르마의 데뷔전은 합격점!]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 가득 퍼지는 김치송! 국위선양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
-크아아아아! 주-모우우우우우우우!
-캬! 프리메라리가도 김치팍에게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 역시 축구는 축구고, 김치는 김치다!
-바르셀로나랑 계속 승점 9점 차이 유지하네;; 진짜 이번 시즌은 역대급 시즌인 것 같다.
-29년 3월부터 보면 거의 40경기 정도 무패행진임.
-와……. 그 정도임?
-ㅇㅇ 그래서 언론에서도 엄청 난리잖아.
-이번 시즌도 28경기 35골 6도움으로 압도적인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리그에서 18경기 나와서 27골을 넣고 있음.
-득점왕은 거의 확정이네;
-득점 2위가 발렌시아의 알렉산데르 이삭인데 10골임ㅋㅋㅋㅋㅋㅋㅋ 17골 차이;;
-규태가 EPL 스타일이 아니라 라리가에 더 어울리는 스타일이었구나;;; 진짜 무지막지하네;
-미구엘 모레노는 이번 시즌 망했네; 리그 16경기 나와서 6골 2도움ㅋㅋㅋㅋ
-모하메드 소우가 더 문제지;; 도대체 그런 버블버블팝 같은 새끼를 거액에 주고 인테르에서 사 왔어? 리그 18경기 2골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ㅋㅋㅋㅋㅋㅋ 인테르 진짜 잘 팔았네. 지난 시즌 42경기 19골 3도움이었던 놈인데……. 그게 커리어하이였을 줄이야……. 난 슬슬 포텐 터진 거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
다음 경기는 코파 델 레이 8강 1차전.
상대는 AT 마드리드였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리그 4-5위권까지 치고 올라오던 AT 마드리드는 이번 시즌에는 아직도 10위권 이상으로 치고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결국에는 12월 말에 감독까지 교체하는 강수를 둔 AT 마드리드였지만, 아직도 리그 상위권에 올라가기에는 그들의 경기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렇게 다가온 코파 델 레이 8강 1차전.
새롭게 AT 마드리드의 사령탑에 선 폴 부아예 감독은 착잡한 표정으로 박규태의 소쇼 시절 유니폼을 입고 박규태를 응원하는 그의 아내를 바라봤다.
“…….”
모르겠다.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다행히 레알 마드리드는 풀 로테이션을 돌리며 주전급을 모두 쉬게 했고, AT 마드리드는 그런 레알 마드리드의 틈을 잘 노려서 전반전에 먼저 골을 넣었다.
-엔오케 비센테 대단합니다!
-레알 마드리드에 제대로 된 한 방을 먹였습니다! 폴 부아예 감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군요!
-그만큼 대단한 선수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대감은 딱 5분까지였다. 레알 마드리드는 골을 내준 5분 뒤에 멋지게 동점을 만들며 AT 마드리드 홈 경기장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바꿔버렸다.
폴 부아예 감독은 갑자기 바뀐 레알 마드리드의 분위기와 움직임을 보고 급히 전술을 바꾸어 수비에 힘을 주었다. 1차전이기에 무승부로 만족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후반전 31분에 터진 티아고 알마에다의 오른발 슛으로 그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경기가 끝난 뒤에 폴 부아예 감독은 인터뷰에서 레알 마드리드의 강함에 찬사를 보냈다.
“이번 시즌의 레알 마드리드는 완전무결한 팀입니다. 2010년대 초반의 바르셀로나를 보는 느낌이죠. 그 시절 바르셀로나에 메시가 있었다면,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에는 김치팍이 있습니다.”
그의 발언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았다.
1월 20일.
리그 19라운드 경기.
레알 마드리드가 비야레알과 경기에서 5 대 0 승리를 거두자 그 의견은 더욱 공감을 받았다.
하지만 딱 한팀만큼은 그의 발언에 부정적이었다.
[에르네스토 리바스 감독, ‘2010년대 초반의 바르셀로나가 지금의 레알 마드리드보다 더 대단했다.’]
[카이오 실바, ‘비야레알과 경기에서 보여준 팍의 해트트릭은 대단하지만……. 바르셀로나의 수비진이라면 충분히 억제할 수 있다. 우리는 충분히 강하다.’]
[미구엘 모레노, ‘레알 마드리드는 분명히 좋은 팀이다. 하지만 항상 승리할 수 없을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의 리그 다음 상대.
레알 마드리드와 승점 9점 차이를 유지하며 리그 1위를 바짝 쫓고 있는 리그 2위 팀.
레알 마드리드의 영원한 경쟁자.
엘 클라시코의 또 다른 주인공.
바르셀로나.
그들이 자신의 홈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84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