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115 >
A매치 기간에 박규태는 멋지게 활약했다.
사람들은 막말을 내뱉은 오타니 유키에게 참교육을 보여준 박규태의 모습을 보며 크게 좋아했다.
“박규태 선수! 파이팅!”
“꺄아아악! 오빠! 사랑해요!”
“규-메에에에엔!”
“그분이 날 보셨어! 날 보셨다고!”
“김치팍!! 여기 좀 봐줘요!”
잉글랜드로 떠나기 전.
박규태는 자신이 떠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공항을 찾은 많은 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까지 박규태는 최근에 늘어난 자신의 명성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잉글랜드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울브스에 복귀하니 먼저 온 선수들이 그를 반겼다.
테오 나두는 이번에 처음 프랑스 대표팀에 합류했다. 비록 교체로 15분을 뛴 것이 전부였지만 그는 기분이 꽤 좋아 보였다.
“엠마누엘을 대신해서 차출된 거라 다음 기회는 없을 것 같지만……. 내 꿈이 이루어졌어!”
그는 크게 기뻐했다.
박규태는 그런 테오 나두를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게 다 김치 덕분이다.”
“미친놈……! 하지만 이상하게 팍의 말에 반박할 수 없어……! 내 혈액에는 김칫국물 DNA가 있으니까.”
내가 미친 것이 아니다.
이 녀석도 미친 거다.
박규태가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그러는 사이에 두 선수는 훈련장에 도착했다. 벌써 다른 선수들은 몸을 풀며 오전 훈련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상대가 맨유였지?”
“거기는 또 감독이 바뀌었더라.”
“거긴 감독이 아니라 단장을 갈아야 해. 우드워드 체재의 맨유가 2013-14시즌부터 작년까지 리그 우승이 딱 한 번이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거의 10년을 넘게 무관에 가까웠어!”
어린 시절부터 맨유의 팬이었던 샘 빈치의 분노에 박규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거긴 다 좋은데 우드워드 부회장이 억제기 역할을 하고 있지. 예전 첼시의 구단주였던 로만 아브라모비치도 이 정도로 엉망이진 않았지.’
이번 시즌의 맨유는 리그 4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 전에 무승부를 기록한 감독이 경질됐다.
솔직히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감독들에겐 독이 든 성배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감독은 얼마나 갈 것 같아?”
“난 반 시즌에 김치 코인 5개.”
“그건 뭔데?”
“가상화폐야. 5유로에 김치 코인 1개.”
“난 3개월 만에 경질된다는 것에 10유로.”
“난 9개월에 5유로!”
“팍은 어떻게 할래?”
“3개월로 묻고 더블로 가!”
선수들이 내기하는 사이에 훈련장으로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들어왔다.
“모두 모여봐! 맨유전에 선발로 뛸 라인업을 발표하겠다.”
선수들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감독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에 발표하시네.”
“그러게 말이야.”
“주전이 대부분 뛰겠지.”
“엠마누엘은 재활하고 있고……. 카를로스 디오고도 감기로 이번 경기에서 뛸 수 없겠네.”
하지만 선수들의 예상과 다르게 주전 선수들의 대부분이 빠지고 백업 선수들로 로테이션이 되었다.
박규태와 아구스틴 퀴논.
그리고 앤디 수아즈.
셋을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가 모두 바뀌었다.
오랜만에 기회를 잡은 선수들.
특히나 젊은 유망주인 메튜 카니와 아마로 멜로는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맨유와 경기라니……!”
“잘할 수 있을까?”
두 유망주는 강팀과 경기에서 자신들이 잘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주장인 앤디 수아즈는 불안에 떨고 있는 두 유망주를 잘 챙기며 다독였다.
박규태는 잘 돌아가는 팀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이번 시즌에 리그보다 챔피언스리그에 더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맨유전이 끝나고 바로 모스크바를 상대해야 하니까. 16강 진출을 확정 짓고 싶었겠지.’
거기다 모스크바전이 끝나고.
다음 경기에서 첼시를 상대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0월 25일에 있을 리그컵 상대인 왓포드전까지 홈에서 상대방을 부르기에 여유가 조금 있었다.
그것까지 없었다면 정말 힘든 10월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10월 31일에 있는 모스크바 원정을 시작으로 11월 4일에 있는 안필드 원정이 조금 걱정이기는 하지만…….’
그건 똑똑한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잘 해결할 것이다. 그는 감독의 지시에 따라 골만 잘 넣어주면 그만이었다.
* * *
“아! 뽕찌니를 사랑하는 행님 누님들 안녕하십니다! 김국뽕TV의 국뽕입니다!”
미튜브 38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국뽕 관련 크리에이터인 김국뽕(본명: 김만식)은 카메라를 들고 있는 편집자를 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제가 오늘 어디에 왔느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짐에도 김국뽕은 부끄러움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이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울브스 테마파크입니다!”
그의 뒤에는 울브스 테마파크는 박규태와 관련된 테마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호불호가 충분히 갈릴 테마였지만, 기이할 만큼 울브스 테마파크는 인기가 좋았다.
어쩔 수 없었다.
매 시즌 리그 30골을 넣어주는 특급 공격수를 싫어할 축구팬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김국뽕은 국뽕으로 중독된 황홀한 표정으로 테마파크에 입장하는 울브스의 팬들과 외국인 관광객을 바라봤다.
카메라는 아까부터 관광객들이 박규태의 유니폼이나 태극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집중적으로 잡았다.
“자! 제가 오늘 왜 이곳에 왔느냐!”
아마도 미튜브였다면 이 부분에서 효과음이 들어갔겠지. 편집자는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김국뽕을 카메라에 담았다.
“과연 울브스의 한국 사랑이 거짓이 아닌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찾아왔습니다! 최근에 일본 네티즌이 울버햄튼에 퍼진 한류가 한국이 만든 주작이다! 그런 얼토당토않은 발언이 퍼졌었죠?”
그가 화가 난다는 표정으로 부자연스럽게 주먹을 움켜쥐며 카메라에 시선을 맞췄다.
“일뽕들의 날조가 거짓이라는 것을 김국뽕TV가 증명하겠습니다. 어떻게요? 이곳 현지인들에게 인터뷰할 생각입니다. 자! 그러면 누구에게 인터뷰해볼까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울브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중년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는 가족과 같이 있었는데, 중년인의 아버지로 보이는 노인과 10살쯤으로 보이는 아들과 함께 있었다.
김국뽕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익스큐즈 미!”
그는 조금 걱정했다.
혹시나 인터뷰를 거절할까.
또는 동양인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중년 남성은 울브스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를 목에 두른 김국뽕을 보며 사람 좋은 미소로 반겼다.
“오! 한국 사람인가요?”
“네! 맞습니다.”
김국뽕은 가벼운 인터뷰를 진행해도 될지 물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중년인의 입이 더 빨랐다.
“두 유 노 규태팍?”
“네?”
“두 유 노 김치?”
“한국 사람이니까 알고 있죠.”
중년인은 김국뽕에게 ‘두 유 노’ 시리즈를 잔뜩 물어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엄지를 내밀었다.
멍한 표정의 김국뽕.
그가 카메라를 보며 중얼거렸다.
“일뽕들! 이래도 주작입니까?”
* * *
김국뽕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몰리뉴 스타디움에 입장했다. 그리고 관중석에 앉아 잉글랜드 사람들의 축구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흐흐흐! 여러분 리그 9라운드 울브스와 맨유의 경기가 곧 있으면 시작합니다! 울브스는 맨체스터 시티와 함께 22 승점으로 리그 2위에 있습니다. 맨유도 리그 4위로 나쁘지 않은 출발을 보여주고 있지만, 오늘 경기에서 패배하면 리버풀과 레스터 시티에 밀려 리그 6위까지 떨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우아아아아아아!
“김치팍! 사랑해요!”
“커모오오오온! 김치팍! 코리아 넘버원 슈퍼 김치 워리어! 어나더 파아아아아아악!”
“오늘도 골을 넣어줘!”
“울브스를 승리와 김치가 가득한 발할라로 이끌어줘! 김치팍! 너만 믿고 있어!”
광기에 가득 찬 관중들의 외침.
김국뽕은 등줄기부터 올라오는 짜릿하고 기분 좋은 소름을 느끼며 같이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규태-오빠!! 국뽕-파티!!!”
필드에 입장한 선수들.
울브스의 몇몇 관중들은 오늘 경기에서 거의 1.8군에 가깝게 선발을 구성한 선수단을 보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아구스틴 퀴논이랑 팍을 제외하면 거의 백업이네?”
“앤디 수아즈와 톤 필크만도 있어.”
“그래도 거의 2군이잖아. 그나마 테오 나두가 있기는 하지만……. 알렉스코 아리에타는 큰 경기에서 아직 제대로 자신의 실력을 증명한 적이 없으니까.”
반대로 맨유는 풀 스쿼드였다.
원톱에 트로이 퍼렛을 시작으로 루이스 너츠, 저메인 알리송, 티모 베일리를 공격진에 세웠다.
거기다 수비진도 지금 맨유가 세울 수 있는 최고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감독이 바뀌고 전술이 바뀌고 있음에도 그들이 리그 4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탄탄한 수비진들 덕분이었다.
“여러분 시작합니다!”
김국뽕은 주심이 휘슬을 불자 주먹을 불끈 쥐고는 편집자가 들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신나게 울브스의 선수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가라! 울브스 맨유를 부숴버려!”
“김치규태교를 믿지 않는 이단을 때려눕혀!”
“그렇지! 볼을 따내면 전방으로 전개해!”
울브스의 박규태를 상대로 맨유의 수비진은 쉽지 않은 경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박규태는 상대의 체격을 신경 쓰지 않고 적극적인 몸싸움을 하며 맨유의 수비진이 쉽게 수비를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잔뜩 몸을 낮춰 무게중심을 내린 그의 움직임에 맨유의 주전 수비수인 디에고 페레즈가 혀를 내둘렀다.
‘지난 시즌보다 훨씬 노련해졌다.’
자신의 피지컬을 활용하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박규태는 공을 잡고 자신의 압박을 쉽게 견뎌냈다.
삐이이익!
거기다 파울까지 유도해서 프리킥 찬스를 만들었다. 디에고 페레즈의 파트너인 다니엘레 모레티가 주심이 들어 올린 옐로카드를 보고 이를 꽉 물었다.
박규태는 자신의 프리킥 능력을 제대로 살렸다.
그나마 맨유가 버티고 있는 것은 뛰어난 선방 능력을 갖춘 다비드 에레라 골키퍼 덕분이었다.
‘도대체 못 하는 게 뭐지?’
공격수가 갖춰야 할 것은 모두 가지고 있다.
그렇게 맨유의 수비진이 박규태에게 휘둘리며 고생하고 있는 가운데 그들의 공격진이 선취점을 만들어주었다.
공격수인 트로이 퍼렛의 슈팅이 톤 필크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온 것을 공격적으로 올라온 측면 수비수인 사뮤엘 벨라노바가 골로 연결했다.
관중석에 있던 김국뽕은 관중들이 내뱉는 어마어마한 야유를 들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맨유가 전반 12분에 선취점을 올렸습니다.”
맨유의 선취골이 터지면서 관중들의 눈이 아까와 다르게 상당히 살벌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김국뽕이 자신을 찍고 있는 편집자를 보며 침을 삼켰다. 분위기가 너무 무서워졌으니까.
‘이러다가 쓰레기통이나 구장 시설물이 망가지는 거 아니야? 이게 잉글랜드 훌리건이구나……. 진짜 무섭네.’
말로만 듣던 거친 잉글랜드 축구팬들의 응원을 보는 사이에 이번에는 울브스의 역습이 시작되었다.
시작은 아구스틴 퀴논이었다.
울브스의 플레이메이커인 그는 오늘 경기에서 맨유의 뛰어난 미드필더진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있었다.
“아구스틴!! 맨유를 찍어눌러!”
“팍에게 연결해! 팍이 알아서 할 거야!”
“발할라를 위하여!!”
아구스틴 퀴논은 그런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서 상대 미드필더를 가볍게 따돌렸다.
그리고 먼 거리에서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다. 박규태는 혹시나 튕겨 나올 루즈볼을 기대하며 빠르게 골대가 있는 방향으로 달렸다.
그런 박규태를 막기 위해서 디에고 페레즈가 빠르게 그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퍼억!
위력적인 슈팅을 힘겹게 쳐낸 다비드 에레라 골키퍼가 급히 다시 자세를 잡았다.
공은 페널티 마크 방향으로 빠르게 굴러갔고, 그곳으로 박규태와 디에고 페레즈가 같이 도달했다.
디에고 페레즈의 태클이 조금 더 길었지만, 박규태의 속도가 더 빨랐다.
“흡!”
두 선수가 뒤엉켰다.
우당탕하고 무너지는 두 선수의 몸.
하지만 박규태의 발은 어떻게든 공을 터치하는 데 성공했다. 다비드 에레라 골키퍼가 반응할 수 없는 각도로 튀어 오른 공이 그대로 골대를 흔들었다.
박규태는 힐끗 부심을 바라봤다.
‘반칙은 아니겠지?’
다행히 부심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동시에 주심이 휘슬을 불고 센터 마크를 가리켰다.
-고오오오오올!
-박규태 환상적인 마무리!
-선제골을 허용하고 딱 5분 만에 울브스가 동점으로 따라잡으며 자신들의 저력을 보여줍니다!
골이 들어가기 무섭게 박규태가 달렸다.
울브스의 관중들은 기다렸다.
그리고 기대했다.
그가 오늘 어떤 세레머니를 할 것인지.
그들은 준비하기 시작했다.
김국뽕도 그 모습을 보고 기대했다. 팬들의 기대에 박규태는 멋진 세레머니로 보답했다.
“주-모우우우우우!”
그의 외침에 관중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역시 팍이야!”
“뇌가 짜릿해! 팍이 골을 넣자마자 대뇌의 전두엽에 김칫국물이 스며들었어!”
“김치팍! 김치팍! 김치김치팍팍!”
김국뽕은 조용히 그 광경을 보며 눈을 감았다.
거대한 국뽕이 그의 심장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카메라가 자신을 담고 있는 것을 잊은 듯이 근처에 있는 관중들처럼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몰리뉴 스타디움이 국뽕으로 물들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115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