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87 >
“모두 진정해! 뻐킹 김치맨이 잠깐 운이 터진 것뿐이니까! 집중해! 이제 1골이야!”
맨유의 사무엘 토드 감독이 외친 말에 맨유의 선수들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표정은 썩 밝지 않았다.
감독의 말과 다르게 박규태의 움직임은 결코 운으로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선수들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박규태가 선보인 드리블은 운이 아니었다.
그가 갖춘 본연의 실력이었다.
‘뻐킹……. 이제 어떻게 막으라는 거지?’
박규태에게 허무하게 실점을 허용했던 데클란 토이스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루이스 너츠가 연결한 패스를 받은 트로이 퍼렛이 전반 23분에 골을 터뜨리며 동점을 만들었지만, 박규태가 2분 뒤에 수비수 둘을 드리블로 제치고 다시 달아나는 득점을 기록했다.
“할 수 있어! 2골을 내줘도 3골을 넣으면 이기는 게 축구야! 티모! 로빈! 루이스! 트로이! 공격해! 그리고 미드필더진은 라인을 끌어올리면서 울브스를 압박해!”
사무엘 토드 감독의 지시에 따르며 발악하기 시작한 맨유의 선수들은 기어코 전반 43분에 다시 따라붙는 골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중앙 미드필더인 로빈 틸레만스가 득점을 올렸다.
몰리뉴 스타디움까지 따라온 맨유의 팬들은 꾸역꾸역 따라붙는 그들의 선수들을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하지만 그 환호성은 1분 만에 꾹 닫히고 말았다.
압도적인 개인 능력으로 2골을 만든 박규태를 집중하여 마크하던 맨유의 선수들이 틈을 보이자 이번에는 가스통 렌도가 골을 넣으면서 3 대 2로 달아났다.
전반전의 성과로 만족스러운 점수였다.
거기다 상대는 지난 시즌에 우승했던 저력이 있는 맨유였으니까.
하지만 박규태는 그것으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맨유가 3 대 3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 희망을 망가트렸다.
-박규태! 빠릅니다!
-이번에도 홀로 돌파하는 박규태! 한 명! 두 명! 이어서 가볍게 패스를 하고……! 공을 잡은 임마누엘 메르시에가 슈우우웃!
-고오오오오오올! 박규태! 어메이징합니다! 맨유의 수비진을 전반전에 3번이나 흔들었습니다!
-2골 1도움! 오늘 박규태가 오늘 경기 3개의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몰리뉴 스타디움을 뒤흔듭니다!
“아…….”
사무엘 토드 감독은 무력감을 느꼈다.
전술로 막을 수 없는 선수는 처음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메시가 박규태처럼 움직였을까.
2골 1도움을 기록한 그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사무엘 토드가 결국에는 선수들에게 소리치던 것을 멈췄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 * *
[박규태! 맨유전 3골 1도움의 대! 활! 약!]
[이번에도 해트트릭! 박규태는 아직도 성장한다!]
[자랑스러운 한국인! 박규태는 어떻게 EPL을 정복했나?]
[이번 시즌에 대륙 컵 대회의 진행이 빠른 이유는?]
[‘잔니 인판티노’ 전 피파 회장과 다른 ‘티티 아르망’ 현 피파 회장! 테러 위협에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 밝혀!]
[5월에 테러가 있을 것이라는 뜬소문에도 반응한 피파! 대륙 컵 대회의 빠른 진행은 이번 시즌뿐이라고 대답하다!]
회귀 전에도 테러 덕분에 각 프로 스포츠의 시즌이 급격하게 변했고, 이것은 EPL은 물론이고 다양한 유럽 축구계가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주제였다.
덕분에 이번 시즌의 챔피언스리그는 물론이고 유로파리그 일정은 빠듯했다.
32강을 시작으로 16강부터 8강 그리고 4강까지 꽤 많은 경기가 상당히 이른 시일로 앞당겨졌다.
덕분에 체력적인 부분에서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촘촘한 간격으로 배치되었던 일정이 더 빠듯해진 것이니까.
거기다 EPL은 다른 리그보다 경기가 더 많았다.
“32강전 상대가 누구였지?”
생각해보면 1월에 있었던 유로파리그 32강전 상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12월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 덕분에 박규태는 경기 일정을 생각할 여력이 없었으니까.
“아탈란타였지.”
상대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중위권을 기록하고 있는 아탈란타였다.
그들을 상대로 울브스는 로테이션 맴버만 가동해서 승리를 거둬냈다.
처음에는 많은 축구팬들이 기대했던 매치였지만, 결과는 생각보다 허무했기에 크게 기억에도 남지 않은 경기였다.
그만큼 아탈란타의 졸전은 충격이었다.
“그래도 결승은 제대로 치르겠네.”
“결승전 날짜까지 앞당겼으면…… 난 자살했을 거야.”
“오히려 좋지 않아? 휴가가 길어지는 건데?”
테오 나두와 엠마누엘 메르시에의 말을 들으며 가스통 렌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리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전통이라는 고리타분한 것 때문에 챔피언스리그나 유로파리그의 결승전은 지난 시즌과 비슷한 일자에 치러진다는 점이었다.
박규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시즌은 테러 없이 조용히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프랑스 소쇼에 폭탄 테러!]
[사상자는 17명! 충격에 빠진 소쇼!]
[비탄에 빠진 프랑스! 그리고 유럽!]
하지만 미래라는 것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았다.
박규태는 대표팀에 합류한 날에 소쇼FC의 연고지에 폭탄 테러가 있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많은 도움을 받았던 친정팀의 연고지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연히 박규태는 뭔가 소쇼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소쇼 때문이었지. 그러니까 이번에는 내가 뭔가 도움이 되고 싶어.’
하지만 머릿속에 국뽕이 가득한 박규태에게 소쇼의 주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선사할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딱 하나 떠오르는 것이 있기는 했다.
“음……. 3월 21일에 있는 잉글랜드와 친선 경기에서 골을 넣으면 좋아하려나?”
딴 놈은 몰라도 잉글랜드 놈에게 지면 안 된다는 말을 자주 내뱉던 소쇼 주민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소쇼의 크리스티 조엘 감독님은 잉글랜드 출신인데도 거의 명예 프랑스인 수준으로 욕을 먹지 않았지.’
아무튼, 계획은 조금 그럴싸했다.
그가 골똘히 생각했다.
“그래, 소쇼에 기부도 하고……! 소쇼의 팬들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골을 잔뜩 넣어봐야지”
단순하게 생각하자.
골을 넣고 세레머니를 한다.
그리고 기부도 한다.
완전 기가 막힌 작전이 아닐까.
박규태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 *
“뭐야? 컨디션이 왜 이렇게 좋아?”
“젠장! 갑자기 왜 저러는 거야?”
잉글랜드 축구 대표팀의 수비진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은 박규태의 움직임을 보며 고개를 절레 흔들었다.
오늘 경기에서 2골을 몰아넣은 박규태는 이번 시즌에 가장 뜨거운 공격수답게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3 대 2로 잉글랜드가 이기고 있지만, 경기력을 보자면 솔직히 잉글랜드가 좋다고 볼 수 없었다.
거기다 골을 넣은 뒤에 관중석으로 달려가서 유니폼을 들어 올린 박규태의 이너웨어에 적혀 있던 ‘소쇼! 희망을 잃지 마!’라는 문구를 카메라에 보여준 뒤에 더 날뛰는 것 같았다.
다행히 4 대 3으로 친선 경기에서 대한민국을 잡아낸 잉글랜드였지만, 친선 경기의 진정한 승리자는 박규태였다.
[소쇼에 거액을 기부한 박규태!]
[박규태, ‘소쇼는 내 고향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들이 끔찍한 악몽을 슬기롭게 이겨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잉글랜드와 경기에서 좋은 경기력을 뽐내!]
[점점 세대교체가 끝나가는 대한민국! 손형민과 황지찬은 물러나고 이강민과 박규태의 시대가 온다!]
잉글랜드와 친선 경기가 끝이 아니었다.
박규태는 3월 25일에 있었던 말레이시아와 월드컵 예선 2라운드 경기에서도 해트트릭을 기록했고, 이번에도 똑같이 이너웨어에 적어놨던 글씨를 카메라를 통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소쇼! 우리가 있어!
덕분에 언론은 다시금 바쁘게 여러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작은 선행이었지만, 박규태의 기부와 이런 행동이 조명을 받으면서 의도치 않게 국뽕을 채우게 되었다.
-축하드립니다! ‘두 유 노 랭킹’ 11위에 기록되었다.
인공지능 델파포를 상대로 유일한 승리를 거두었던 바둑기사인 이해돌까지 넘어서면서 기어코 ‘두 유 노 랭킹’의 높은 순위까지 올라선 박규태였다.
그렇게 A매치 일정을 끝내고 울브스로 복귀한 박규태는 국내만이 아닌 유럽의 언론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박규태 덕분에 다양한 축구 선수들이 자극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테러로 슬픔에 잠긴 소쇼를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그들을 위로하기 시작했다.
SNS로 소쇼를 위한 위로를 하는 선수도 있고.
바쁜 일정에도 직접 소쇼를 찾는 선수도 있고.
아니면 큰돈을 기부한 선수도 있었다.
폭탄 테러는 여러 사람은 물론이고 각 리그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비록 5월의 루머와 다르게 3월 말에 터진 테러였지만, 어째서 티티 아르망 피파 회장이 대륙 컵 대회의 일정을 앞당기더라도 선수들을 지키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대륙 컵 대회 4강전의 일정이 변경되었다.
[피파의 결정! 4월에 있을 4강전을 다른 시즌의 일정처럼 5월 초에 치르겠다고 밝혀!]
[다시 원래의 일정으로 돌아온 대륙 컵 대회! 잔니 인판티노 전 피파 회장과 다른 티티 아르망 회장의 행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테러 덕분에 유로파리그와 챔피언스리그의 일정이 평소 시즌과 다를 것 없이 바뀌었다.
그렇게 소쇼에서 있던 폭탄 테러의 슬픔이 조금씩 잊히기 시작했고, 선수들도 시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 * *
박규태가 월드컵 아시아 예선 경기를 위해서 스쿼드에서 빠져 있는 사이에 울브스는 3월 25일에 풀햄을 상대하게 되었다.
로테이션을 꺼내든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마르시오를 최전방으로 내세웠다.
마르시오는 스컹크처럼 풀햄의 수비진을 괴롭히면서 기어코 팀의 승리에 크게 이바지했다.
이번에도 골을 넣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애초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마르시오의 골 결정력을 보고 영입한 것이 아니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문제는 마르시오는 득점이 나오지 않는 것을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박규태가 팀으로 복귀하자 마르시오가 자신이 아끼는 5년 묵힌 고추장을 선물하며 부탁했다.
“팍! 나에게 골 결정력을 가르쳐줘!”
난감할 따름이었다.
박규태는 자신이 남을 가르칠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마르시오의 부탁에 조금 당황스러워했다.
심지어 남을 가르치는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그가 가진 재능이 모두 그의 것이 아니기도 했다.
‘그냥 카드 받아서 재능이 생겼어!’
이렇게 설명할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고민에 빠진 박규태는 조심스럽게 마르시오에게 조언하기 시작했다.
대체로 기초적인 부분을 되짚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는 사람이 있다면, 박규태는 앞으로 넘어져도 코가 멍청한 부류의 사람이었다.
마르시오가 감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알 것 같아!”
뭔가 심취한 마르시오.
그가 뭔가를 알아냈다는 표정으로 박규태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5년 묵은 고추장은 물론이고 된장까지 선물했다.
그리고 찾아온 3월 29일.
마르시오는 크리스탈 팰리스와 경기에서 후반 33분에 교체로 투입되어서 기어코 데뷔골을 터뜨렸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박규태가 된장과 고추장으로 날 이끌었다고.
인터뷰가 있고 다음 날에 울버햄튼의 한인 슈퍼에서 팔던 고추장과 된장이 매진되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87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