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66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지난 시즌 우승팀.
회귀 전과 다르게 자신의 잠재력을 빠르게 개화시킨 루이스 너츠의 활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리그 우승을 가져올 수 있었다.
로빈 틸레만스와 호세 펠릭스.
그리고 다니엘 라로체로 이어지는 미드필더진은 2000년대 초반의 맨유를 이끌었던 위대한 미드필더인 마이클 캐릭-폴 스콜스- 라이언 긱스의 재림이라는 말까지 듣고 있었다.
그만큼 2020년대 중반의 맨유는 어마어마한 스쿼드를 만들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에게 기대감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리그 우승도 하고, 대륙 컵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도 맨유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쉽게 가질 수 없었다.
그것은 저주나 다름이 없었다.
‘빅이어의 저주’라고 불리는 이 저주는 회귀 전에도 꽤 유명했다. 분명히 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지만, 그가 은퇴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단 하나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컵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리그 우승은 많이 했고, 유로파리그 우승도 꽤 했었다.
이상하게도 빅이어는 들어 올리지 못했다.
준우승만 하는 리버풀과 빅이어는 구경도 못하는 맨유의 팬들은 덕분에 여러 축구팬들의 조롱감이 되었다.
아무튼 ‘맹구’라는 멸칭과 다르게 현재 맨유의 스쿼드는 매서웠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선수들로 구성이 되어 있었다.
이번 시즌은 첼시와 아스날에게 지면서 2패를 안고 시작해 5위에 안착하고 있지만, 퍼기경이 있던 시절의 맨유는 슬로우 스타터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강팀이었다.
“와…… 놀랍네.”
“지난 시즌에 30골을 넣은 공격수니까.”
“오! 그래? 대단한데.”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중앙 공격수가 아닌 어색한 윙 포워드 자리에서 만든 기록이라서 더 대단한 거지.”
테오 나두는 박규태의 말을 듣고 조금은 승부욕이 끌어 올랐는지, 갑자기 훈련장에 놓은 공을 잡고 현란한 드리블을 보이며 입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테오 나두! 빠릅니다! 이건 절체절명의 상황입니다! 테오 나두는 마지막 기회를 앞두고 공을 잡았습니다!”
“…….”
“나x키 스포츠의 축구화를 신고 있는 그를 막을 수 있는 수비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질풍처럼 빠릅니다! 현란한 개인기! 테오 나두 환상적인 움직임입니다!”
신나게 자신의 움직임을 자체 중계하는 테오 나두.
박규태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테오 나두! 마지막 슛!”
그때였다.
테오 나두가 슈팅을 하려는 순간에 맞춰 박규태가 빠르게 달려들어 그 슈팅을 막아냈다.
테오 나두가 얼빠진 표정으로 박규태를 보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박규태 선수의 수비에 막혔습니다! 오히려 박규태 선수가 먼 거리에서 상대 골대를 노렸습니다! 고오오오오올!”
“팍?”
“몰리뉴 스타디움이 환호성으로 울립니다! 팬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최고의 장면을 봤습니다! 김치팍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랍습니다! 관중들이 팍의 이름을 외칩니다!”
박규태가 두 손을 벌리며 소리쳤다.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김치팍!”
그러고는 공을 들고 샤워실로 천천히 달려서 빠져나갔다. 테오 나두는 그 순간에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샤워실로 향하는 사이에도 ‘김치팍’이 계속해서 테오 나두의 귓가에 들려왔다.
* * *
촉박한 일정이었다.
27일 리그컵 경기가 끝나고, 30일에 맨유와 경기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리그컵 4라운드에서 울브스는 2군을 내보내면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아꼈다는 것이다.
“맨유 원정이라니…… 지옥이야.”
엠마누엘 메르시에는 맨유 원정을 싫어했다.
뭔가 묘하게 기가 빨리는 느낌 때문에 그는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는 것을 그리 썩 반기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원정팀의 선수 중에서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는 것을 좋아하는 선수가 과연 몇이나 있을까.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박규태도 올드 트래포드와 안필드의 악명은 잘 알고 있었다.
안필드는 감기 때문에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뛸 수 없어서 경험할 수 없었지만, 이번에 올드 트래포드는 뛸 기회가 충분했다.
원정팀의 지옥이라 불리는 경기장을 경험할 것이기에 박규태도 조금은 긴장감을 가지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뒤에도 엠마누엘의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마치 사형을 앞둔 사형수의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너 진짜 괜찮아?”
“아니. 안 좋아.”
얼마나 올드 트래포드가 싫으면 단칼에 싫다는 대답이 나올까. 박규태는 묘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때 버스 뒷좌석에 앉은 샘 빈치가 물었다.
“엠마는 어째서 올드 트래포드를 싫어해요?”
“싫어하는 이유?”
“네, 뭔가 올드 트래포드에서 뛰기 싫어하는 이유가 있어요? 들어보니까 u-15까지는 맨유에 소속되어 있었다면서요.”
박규태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건 솔직히 몰랐던 정보였다.
“…….”
뭔가 고민하는 엠마누엘 메르시에.
그것은 마치 자신의 흑역사를 공개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묻어야 할지 고민하는 중학교 2학년의 표정과 똑같았다.
조금은 고민을 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차였어.”
“네?”
샘 빈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차였다니.
저 조각상처럼 잘생긴 남자가 차였다니.
“여자에게 차였다고?”
“음…… 비슷해.”
“그게 무슨 뜻이야?”
비슷하다는 뜻은 무엇일까.
박규태가 되묻기도 전에 엠마누엘이 자신의 흑역사를 열심히 방출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고백했는데, 사실 그 아이가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다는 거지.”
“…….”
“거기다 그 남자애가 게이였고.”
“홀리 카우.”
샘 빈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계속 듣기 괴로울 정도로 슬픈 과거였다.
“마지막으로 내 고백을 받은 남자애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측면 수비수인 죠니 에이든이야.”
“와우…….”
이건 놀라운 수준을 넘어서 굉장했다. 샘 빈치가 더 듣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럼 오늘 경기에서 호감을 느끼고 고백했던 여자처럼 곱상한 남자 게이를 상대로 90분 동안 몸을 부딪쳐야 하는 거예요?”
오우.
순간적으로 박규태가 상상했다.
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어째서 그가 올드 트래포드를 싫어하는지 알 것 같았다.
침묵하는 세 사람.
곧 버스는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에 도착했다.
빠르게 차에서 내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엠마누엘 메르시에가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 * *
필드에 입장하기 전.
박규태는 맨유의 측면 풀백인 죠니 에이든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엠마누엘 메르시에를 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 치명적인 프랑스 남자에게 보내는 미소가 박규태는 이상하게도 무서웠다.
‘확실히 여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잘생겼네.’
거기다 머리카락까지 길었다.
엠마누엘 메르시에는 이미 체념한 상태였다.
시선을 돌려 박규태가 맨유의 공격수를 바라봤다.
‘루이스 너츠, 저메인 알리송, 티모 베일리, 트로이 퍼렛.’
공격진은 주전이 모두 나왔다.
특히나 토트넘에서 한화로 약 2,100억 원의 몸값을 지급하고 데려온 트로이 퍼렛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시즌의 전반기까지 2,100억짜리 백업이라고 놀림을 받았던 선수인데…….’
후반기부터 폭주하기 시작하더니 이번 시즌 초반에는 루이스 너츠보다 더 대단한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때마침 필드에 입장하는 두 팀의 선수들.
그에 맞춰서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채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들이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글로리! 글로리! 맨 유나이티드!
그래, 정말로 멋진 응원가였다.
경기의 준비가 다 끝나는 순간에 맞춰서 이번에는 루이스 너츠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새롭게 만든 응원가 같았다.
(우리의 땅콩은 너희 김치를 죽일 거야!)
땅콩이 김치를 죽인다는 가사였다. 아마도 루이스 너츠와 박규태를 표현한 것 같았다.
계속 저 가사를 반복했다. 중간에 외설적인 욕설이 섞이기도 했지만, 박규태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원래 잉글랜드의 팬들은 극성이니까.
그리고 축구로 입을 닫게 하면 충분했다.
삐이이익!
주심의 휘슬을 불었다.
울브스는 4-3-3를 꺼냈고, 맨유는 4-2-3-1을 꺼내 들었다.
당연히 경기 초반에 기세를 잡은 쪽은 맨유였다. 홈인 것도 있고 미드필더진과 공격진의 능력만 보자면 울브스보다는 맨유가 더 뛰어났다.
특히나 공격형 미드필더인 저메인 알리송에게 계속해서 공이 연결되는 것이 문제였다.
수비형 미드필더인 루이스 페레즈가 최대한 저메인 알리송을 막고 있지만, 21살의 경험이 부족한 수비형 미드필더가 막기에는 31살의 저메인 알리송이 갖춘 경험과 기술은 어마어마했다.
-저메인 알리송 달립니다!
-빠르게 중앙으로 연결되는 공! 트로이 퍼렛이 공을 잡고 바로 슈팅을 가져갑니다!
-톤 필크만의 환상적인 선방!
펄쩍 뛴 톤 필크만의 선방으로 한숨을 돌린 울브스였지만, 맨유의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오른쪽 윙 포워드인 티모 베일리가 이번에는 울브스의 왼쪽을 거칠게 찢고는 중앙으로 파고들었다.
왼쪽 풀백인 카를로스 디오고가 급히 그런 티모 베일리를 막았지만, 이미 그의 발에 있던 공은 저메인 알리송에게 전달이 된 지 오래였다.
점유율도 밀리고 울브스의 수비진도 초반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조금씩 흔들리는 상황.
거기다 역습 상황에서 엠마누엘 메르시에가 상대 측면 수비수인 죠니 에이든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크립토 나이트에 닿은 슈퍼맨처럼 엠마누엘 메르시에는 벌써 3번이나 공을 빼앗기며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오오오올!
-루이스 너츠의 패스를 받은 트로이 퍼렛이 선취점을 만들었습니다! 올드 트래포드가 함성으로 가득합니다!
-루이스 너츠가 거의 만들어준 골입니다!
-울브스가 원치 않았던 실점이에요. 허무하게 실점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트로이 퍼렛이 잘하기는 했지만, 방금 장면에서 루이스 너츠가 3명의 선수를 뚫고 찔러 넣은 패스의 임팩트는 상당했다.
덕분에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채운 팬들이 루이스 너츠의 응원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루이스 너츠! 루이스 너츠! 맨체스터의 자랑스러운 땅콩! 그가 너희 땅콩을 터뜨릴 거야! 루이스 너츠!)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몇몇 울브스의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박규태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겠는데.’
분위기를 바꿀 한 방이 필요했다.
그리고 박규태는 그런 한 방을 잘 터뜨리는 공격수였다. 그가 조용히 가스통 렌도를 바라봤다.
‘엠마누엘은 글렀고, 오늘 경기는 최대한 가스통 렌도를 활용해야겠어. 저번 크라스노다와의 경기에서 뭔가 포텐이 제대로 터진 느낌이니까.’
최근에 패스의 질이 달라진 가스통 렌도였다.
오늘 경기에서 박규태는 그와 연계해서 맨유의 수비진을 뚫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시가스! 여기!”
가스통 렌도가 공을 잡기 무섭게 손을 번쩍 들어 올린 박규태가 공을 요구했다.
당연히 맨유의 수비진은 그런 박규태를 마크하면서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스나 패스에 대비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 다르게 가스통 렌도는 패스나 크로스가 아닌 과감한 돌파를 보여주었다.
-가스통 렌도! 사뮤엘 벨라노바를 제치고 측면을 파고듭니다! 기회가 생겼습니다! 크로스? 아니면 패스?
-가스통 렌도의 선택은 돌파였습니다!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박규태와 엠마누엘 메르시에가 중앙에 있습니다! 아구스틴 퀴논까지 중앙으로 파고듭니다!
중앙으로 파고들던 가스통 렌도가 이번에는 짧게 공을 내어주었다. 당연히 공이 도달한 목표는 박규태의 발이었다.
옆에서 강하게 그의 몸을 밀어붙이는 맨유의 중앙 수비수인 휴고 구안을 팔로 견제하면서 박규태가 더 깊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짧은 순간 슈팅을 할 수 있는 각도가 나오는 것을 놓치지 않고 그가 자신의 왼발을 휘둘렀다.
그것은 본능적인 감각이었다.
양발잡이인 박규태의 반 박자 빠른 왼발 슈팅에 맨유의 골키퍼인 다비드 에레라의 균형이 살짝 무너졌다.
예상외의 슈팅이었다.
당연히 공은 다비드 에레라 골키퍼의 손을 스치고 골라인을 넘어갔다.
철썩!
골망이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박규태가 팔을 휘두르며 원정 팬이 있는 관중석을 향해 무릎 슬라이딩을 하며 소리쳤다.
그의 외침에 울브스의 팬들이 호응했다.
“두-유 노우!”
규태 팍!
“두-유 노우!”
김치 팍!
“두-유 노우!”
코리아!!
올드 트래포드를 가득 채운 맨유의 팬들에게 박규태와 울브스의 팬들이 세레머니로 물었다.
그가 누구인지 아느냐고.
마지막으로 박규태가 팔을 벌리며 소리쳤다.
“대한민국 만세! 국뽕 만세!”
순간적으로 올드 트래포드에 국뽕이 터졌다.
< 국뽕 박규태 선생 #66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