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뽕 박규태 선생 #54 >
“대단해!”
엔조 마이어의 외침.
테오 나두는 거침없이 손을 뻗어서 치킨 한 조각을 입에 쑤셔 넣고는 치킨 무에 포크를 찍었다.
“젠장……! 도대체 이 네모난 음식은 뭐야?”
“아아! 그것은 ‘치킨 무’라는 것이다! 코리안 페이머스 라디쉬 피클! 치킨의 맛을 3배 증가시키는 마법의 음식이지.”
신나게 치킨을 먹어치운 소쇼의 선수들.
그들과 함께 경복궁도 구경했고 한복도 입어봤다.
“대단해!”
한복을 입은 엔조 마이어의 외침.
테오 나두가 입은 한복을 보며 박규태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에는 막걸리와 전을 먹었다.
“대단해!”
“이건 뭐야?”
“코리안 페이머스 김치 프라이! 무봐라! 쥑인다!”
“와! 이거 진짜 바삭바삭해!”
“맛있다! 이게 막걸리라는 거지?”
“뭔가 요구르트에 알코올을 섞은 느낌이야.”
며칠을 그렇게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소쇼의 선수들과 함께 한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겼다.
그리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긴 소쇼의 선수들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인천공항을 떠났다.
특히 헤어지는 순간에 한국 여행 동안에 ‘대단해!’라는 말밖에 내뱉지 않은 엔조 마이어가 눈물을 글썽였다.
테오 나두는 울브스에서 보자는 말을 하고서 떠났다.
그리고 남은 휴식일 동안 박규태는 한국에서 할 수 있는 광고도 찍고, 축구협회에서 마련한 유소년 대회에 얼굴마담으로 나서서 어린 선수들도 독려해주었다.
(올여름! 김치 냉장고를!)
(살까! 말까! 살까! 말까!)
(김치팍이 보증하는 ㅁㅁ 김치 냉장고!)
“수고하셨습니다!”
“이야! 박규태 선수! 정말로 최고입니다! 덕분에 오늘 광고를 수월하게 찍었습니다! 역시 김치팍!”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렇게 박규태가 시즌이 끝난 뒤에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뱅상 엘라즈 감독의 배려 덕분이었다.
뱅상 엘라즈 감독은 이번 2030 월드컵 아시아 예선 2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월드컵부터 시작해서 아시안게임과 아시안컵을 치른 박규태와 이강민을 이번 엔트리에 넣지 않았다.
당연히 너무 오만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쏟아졌지만, 북한을 상대로 4 대 1, 홍콩을 상대로 4 대 0 대승을 거두면서 그런 말이 쏙 들어가게 했다.
덕분에 박규태는 프리시즌까지 푹 쉴 수 있었다.
그동안에 울브스는 분노의 영입을 시작했다.
[울브스! 바르셀로나의 백업 미드필더 아구스틴 퀴논 영입! 몸값은 한화로 980억!]
[분노의 영입 러쉬! 레버쿠젠의 주전 수비수 누룰라 갱스 450억에 영입한 울브스!]
[울브스! PSG 출신의 수비수인 앤디 수아즈 노려!]
[아스날의 핵심 풀백인 카를로스 디오고 780억에 울브스로 이적! EPL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울브스! 헤르타의 골키퍼 톤 필크만 영입!]
[단단히 독이 오른 울브스! 어마어마한 금액을 투자하며 이번 시즌에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노린다!]
-뭐냐? 뭐임? 울브스 뭐임?
-와……. 박규태를 영입하고 난 뒤에 미친 듯이 영입하네.
-톤 필크만이 470억이라고? 진짜 싸게 영입했네. 24살에 네덜란드 국대 주전 골키퍼 먹은 녀석인데;
-싸게 영입한 게 아니라 그냥 거저먹은 거지; 원래는 1,200억은 더 나가야 하는 골키퍼임.
-왜 저렇게 싸게 넘긴 거지? 뭐지?
-에이전트가 멘데스잖아. 거기다 요즘 헤르타도 조르제 멘데스가 깊게 관여하는 느낌이던데.
-대체로 적당한 가격이나 싸게 데려왔네. 거기다 선수들도 다 대륙 컵 대회 경험이 있음.
-진짜……. 이번에는 빅6의 아성을 넘겠다는 뜻이겠네.
-그렇지. 맨날 리그 7위, 8위만 하니까.
물론 영입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황지찬을 시작으로 울브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던 몇몇 선수들을 적당한 몸값에 타 구단에 넘기면서 선수단이 너무 커지지 않게 유지했다.
거액의 영입자금을 소모한 울브스.
팬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수비진이 파비오 델파우리를 제외하면 완전히 갈아엎은 수준인데? 너무 바꾼 게 아닌가 싶다.
-미드필더진도 꽤 바뀜. 여기는 영입이 얼마 없기는 했는데, 임대 보내서 키우던 루이스 페레즈랑 샘 빈치를 복귀시켰음.
-엠마누엘 메르시에는 좀 팔지? 27경기 나와서 11골 넣은 녀석인데…… 몸값이 아깝다.
-리그에서 20-30골을 넣을 수 있는 공격수라고 미친 듯이 떠들더니…… 현실은 11골임. 그래도 윙 포워드가 한 시즌에 11골을 넣으면 나쁘지 않은 기록임.
-그만큼 EPL의 벽이 높다. 박규태도 솔직히 한 시즌에 15골만 넣어도 성공한 시즌이라고 평해도 될걸?
그렇게 시끌벅적했던 휴식이 끝났다.
박규태가 프리시즌을 위해서 잉글랜드로 떠났다.
* * *
-잘 도착했냐?
“엉, 삼촌은 어때? 레나는 잘 있어?”
-쑥쑥 크고 있지.
“그래? 나중에 잉글랜드로 놀러 와! 내가 놀러 오는 날에 맞춰서 해트트릭해 줄게.”
-그 이상한 세레머니를 않는다면 놀러 갈게.
“미안하지만 그건 내 아이덴티티라 무리야.”
-아무튼, 잘 도착했다니까 다행이네. 푹 쉬고 잉글랜드에서도 잘 하고! 알겠지?
“내가 애야?”
-아직도 나한테는 애 같다.
“그래, 알겠어.”
짧은 통화를 끝내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박규태.
그가 구단이 구해준 집에 들어섰다.
“와! 크긴 크다!”
확실히 구단주가 돈이 많은 것 같았다.
소쇼의 숙소와 비교할 수 없는 건물이었다. 거기다 구단에서 지원해준 가정부가 그의 식단을 챙길 것이다.
그렇게 짐을 푼 박규태, 그가 프리시즌이 시작되는 날에 울브스의 훈련장으로 출근했다.
이미 몇몇 선수들이 와서 몸을 풀고 있었는데, 박규태는 자신을 보며 손을 흔드는 테오 나두에게 다가갔다.
“이번 시즌은 울브스에서 보내는 거야?”
“지난 시즌에 확실한 성과를 보여줬으니까.”
테오 나두의 말이 맞았다.
소쇼에서 테오 나두가 기록한 골이 25골이었다.
지난 시즌에 25골을 넣는 윙 포워드를 다른 구단으로 계속 임대를 보낼 구단은 없을 것이다.
아는 얼굴이 또 하나 보였다.
부담스러운 눈빛으로 박규태에게 다가온 퀴라시 아메드가 그의 손을 잡고 입을 바삐 움직였다.
“오! 규태! 정말로 반가워! 너랑 같은 팀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난 한국이랑 연이 깊단 말이야! 하하하! 규태도 봤었지? 이번 VTS의 서울 콘서트! 정말 아름답지 않았어? 거기다 이번에 캐릭터 양말을 샀는데…….”
계속 놔두었다가는 귀가 터질 것 같은 테오 나두가 그를 만류하며 퀴라시 아메드의 입을 닫게 했다.
다른 선수들과도 가볍게 인사를 나눈 박규태.
그때 울브스의 감독이 웃으며 훈련장에 들어섰다.
“하하하! 좋아! 아주 좋아! 벌써 와 있었군!”
거대한 성대의 울림.
2m에 가까운 거인과 같은 신체.
터질 것 같은 근육.
울브스의 감독인 마이크 타이슨이 선수들을 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축구 감독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링으로 올라가 사람 하나를 다짐육으로 만들어도 놀랍지 않을 모습이었다.
‘이름만 똑같다고 생각했는데…… 피지컬도 그 마이크 타이슨이랑 똑같은데? 완전 결전 병기잖아.’
혹시 몰래카메라가 아닐까.
박규태는 몰래 그런 생각까지 했다.
“반갑다. 울브스의 감독인 마이크 타이슨이다. 권투선수였던 그 마이크 타이슨과 이름만 비슷할 뿐이지, 상당히 마음이 여린 감독이니까. 여러분이 잘 따라주었으면 좋겠다.”
몇몇 선수가 요동치는 근육을 보고 침을 삼켰다.
‘마음이 여리지만, 몸은 행성도 파괴할 것 같은데?’
그렇게 시작된 오전 훈련.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선수들에게 체력 훈련이나 전술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
“술래잡기요?”
프리시즌의 첫날.
오전 훈련은 술래잡기였다.
* * *
“푸하하!”
“잡아! 잡으라고!”
“야! 피해! 튀어!”
‘술래잡기’를 하면서 선수들은 짧은 시간에 어느 정도 서로 친해질 수 있게 되었다.
새롭게 합류된 선수들과 원래 있었던 선수들.
그들이 어느 정도 안면을 튼 것처럼 보이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은 오후 훈련에는 청백전으로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폈다.
“테오 나두의 움직임이 좋군요.”
“소쇼로 임대를 보낸 것이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마크, 엠마누엘의 상태는 어떻죠?”
수석코치인 마크 캠밸이 마이크 타이슨의 물음에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재활은 거의 끝났습니다. 내일 훈련부터 팀에 합류해서 천천히 폼을 끌어올릴 겁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다친 부위가 오른쪽 발목이라는 점인데, 이 부분이 스타드 렌에 있던 시절부터 고질적으로 엠마누엘을 괴롭히던 부위더군요.”
“좋지 않군요.”
“맞습니다.”
마크 캠밸 수석코치와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그는 청백전을 치르는 선수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플레이에 망설임이 보이는 선수가 있으면 천둥 같은 목소리로 지적했다.
“가스으으으통!! 자신의 플레이에 자신감을 가지고 돌파해! 플레이에 망설임이 느껴지면, 네 척추를 반으로 갈라서 우리 집에 있는 찹스틱으로 만들어버릴 거야!”
왼쪽 윙 포워드인 가스통 렌도가 마이크 타이슨 감독의 외침에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빠른 템포의 패스.
청팀에 속한 박규태가 바르셀로나 출신의 미드필더인 아구스틴 퀴논이 찔러준 패스를 받고 그대로 터닝슛을 때려버렸다.
철썩!
“좋았어!”
“어떻게 그런 골을 넣을 수 있는 거야?”
감각적인 터닝슛이었다.
조용히 청백전을 지켜보던 마이크 타이슨 감독도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골을 넣는 감각은 그야말로 귀신같군.”
“대단한 선수입니다. 거기다 소쇼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꾸준하게 발전했죠. 향상심이 상당한 선수입니다.”
다리우스 바셀 기술코치의 말에 마이크 타이슨 감독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가스통 렌도가 올린 크로스를 감각적인 헤딩으로 골을 넣은 박규태였다.
“빨리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팍이 골을 넣는 모습을 보고 싶군. 마크, 다음 친선 경기가 언제 있죠?”
“13일에 셰필드 Utd와 경기가 있습니다.”
“그 경기에서 팍을 선발로 넣죠.”
“알겠습니다.”
* * *
동명이인의 권투 선수와 도플갱어처럼 쏙 빼닮은 마이크 타이슨 감독.
감독과 반대로 상당히 지적이고 교수 같은 모습의 마크 캠밸 수석코치가 박규태에게 다가왔다.
“선발이요?”
“그래, 감독이 자네의 플레이를 청백전이 아닌 경기로 직접 지켜보고 싶다더군.”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마크 캠밸이 전해준 선발출전 소식에 박규태는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첫날에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던 박규태는 다음날에 울브스의 핵심 공격수인 엠마누엘 메르시에를 볼 수 있었다.
훈련장 입구에서 여성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던 그는 팬들에게 멋진 미소를 보여주던 것과 다르게 훈련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미소를 싹 지우고 늘어진 표정으로 훈련에 임했다.
가스통 렌도와 테오 나두처럼 팀의 공격을 같이 이끌어나가야 하기에 박규태는 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반가워. 난 박규태야.”
“…….”
“어…… 두 유 노 김치?”
박규태의 물음에 그가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반갑다. 슈퍼김치맨.”
“날 알아?”
“알지. 내가 스타드 렌에서 뛸 때 한 번 붙었잖아. 난 금붕어가 아니야. 그렇게 기억력이 나쁘지 않아.”
“그래? 아무튼, 잘해보자.”
그의 말에 엠마누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훈련에 돌입한 두 사람.
엠마누엘은 박규태에게 별 기대 없이 짧은 패스를 내주고 측면으로 파고들었다.
그 순간 놀랍게도 그가 원하는 위치에 패스가 들어왔다.
‘뭐지?’
그렇게 질이 좋은 패스라고는 볼 수 없었지만, 파고든 패스의 타이밍은 그 어떤 선수보다 날카롭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덕분에 손쉽게 측면을 뚫은 그가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슈팅을 가져갈 수 있었다.
철썩!
너무 쉽게 골을 넣은 엠마누엘 메르시에.
그가 잠깐 멍하니 골망을 바라보다가 휙 하고 고개를 돌려 박규태를 바라봤다.
‘우연이겠지.’
그래, 우연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훈련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우직한 황소랑 다르게 머리가 어느 정도 돌아가는 녀석인 것 같네? 거기다 피지컬이 되고 활동량이 많으니까. 내가 움직이기가 상당히 편해졌어.’
자신의 단점을 모두 커버해주는 박규태의 움직임에 엠마누엘이 훈련하면서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렇게 훈련이 끝나고, 짧은 순간이었지만 엠마누엘은 박규태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릴 정도로 찰떡궁합의 호흡을 자랑했다.
“젠장! 진짜 환상적인 움직임이었어!”
아까처럼 나른한 표정이 아닌 날이 선 표정으로 박규태에게 달려와 최고라고 소리치는 엠마누엘 메르시에.
그를 보며 박규태가 씩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주-모’라는 마법의 주문 덕분이지.”
“주-모……. 그때도 골을 넣고 그런 말을 내뱉었었지.”
“맞아. 축구를 잘하게 되는 주문이야. 자! 따라 해봐. 주-모우!”
“쥬…… 모우!”
“그래, 주-모우!”
“쥬-모우!”
소쇼를 뒤덮었던 마법의 주문인 ‘주-모우’가 이번에는 EPL의 울버햄튼 원더러스에 상륙했다.
< 국뽕 박규태 선생 #54 > 끝
ⓒ 엉심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