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45화 (245/255)

# 245

6장, 머리를 열다 (1)

“좀 어떻습니까?”

벌써 세 번째 대면이다.

한지호의 물음에 반다르 왕자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틀만 지나도 몸이 알 거라는 말이 과장이라 생각했는데…… 과연 그렇더군. 앞으로 닥터 한이 하는 말이라면 조금도 의심하지 않겠네.”

침대에 누워있는 반다르 왕자의 안색이 달라보였다.

한지호는 지난 이틀 동안 반다르 왕자의 균형을 다시 맞추는데 힘썼다.

쉬운 말로 하면 자세 교정이다.

턱과 목에 침을 놓고, 추궁과혈로 딱딱하게 뭉친 어깨의 혈을 풀었다.

그 결과 반다르 왕자는 눈에 띄게 좋은 자세를 회복했다.

하늘을 올려보던 턱 끝이 아래를 향하자 거북이처럼 툭 튀어나왔던 머리도 제자리를 찾았다.

머리와 목이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인 중에서 거북목 증상을 앓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일직선 상태가 되면 목이 받는 부담이 줄어들고, 덩달아 어깨도 힘을 줄 필요가 없어진다.

어깨가 자주 뭉치고 머리가 아픈 것은 알고 보면 자세가 안 좋기 때문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거북목 증상을 고치고 몸의 균형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한지호는 혈도를 깊숙이 자극하는 침술과 어혈을 푸는 추궁과혈로 이틀만에 차도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는 꽤나 놀라웠다.

반다르 왕자의 두통이 살짝이나마 덜해졌을 뿐 아니라 몸 전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균형이라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다.

사소한 부분 같지만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기는 무척 힘들다.

이틀만에 일정 목표를 달성한 한지호가 얼마나 대단한지 다른 의사들이 보면 더 놀랄 것이다.

“오늘은 전신의 탁기를 배출시키겠습니다.”

“탁기라는 것은…….”

영단어로 한의학을 설명하다보면 의사소통이 원활해지기 어렵다.

한지호는 궁금해하는 반다르 왕자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환자가 의사를 믿지 못하고 의심을 품으면 치료도 힘들어진다.

또 변수가 발생했을 때 환자가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있다.

그렇기에 많은 의사들이 간과하지만 환자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것 또한 치료의 일환이다.

“나쁜 기운을 탁기라고 합니다. 균형을 어느 정도 회복하고, 나쁜 기운까지 쫙 빼내면 왕자님의 몸은 비교적 순수한 상태가 될 겁니다. 그래야만 머리의 기운을 열었을 때 화기가 순전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내 머릿속에 있다는 화기, 불의 기운을 빼내기 위한 사전 작업인 것인가?”

“그렇습니다. 사전 작업인 동시에 독립적인 치료이기도 합니다. 이틀만에 몸이 가볍고 머리와 어깨가 덜 아픈 게 느껴지시죠?”

“놀라울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 기분 같아선 더 이상 두통이 극심해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기대 될 정도이네.”

“몸은 정직하니 조금만 달라져도 바로 신호를 주는 것이죠. 탁기를 배출해내면 공복감이 느껴지겠지만, 어제 오늘보다 더 많은 변화를 체감할 수 있으실 겁니다.”

“이미 내 목숨을 닥터 한에게 맡겼다는 걸 잊지 말게.”

한지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손짓을 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미리 언질을 받았던 반다르 왕자가 옷을 벗었다.

상의와 하의, 그리고 속옷까지 탈의해 완전한 알몸이 됐다.

그 사이 아지르는 침대 위에 배출물을 받아낼 하얀 천을 깔았다.

반다르 왕자의 측근인 아지르는 한지호가 필요한 약재와 재료를 빠짐 없이 구해준 장본인이다.

사우디에서 구하기 힘든 약재도 어떻게든 수를 써서 가져왔다.

덕분에 탁기를 배출하기 위한 준비를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조금은 떨리는군.”

반다르 왕자의 솔직한 말에 한지호가 옅은 웃음을 보였다.

“아직 떨리시면 안 됩니다. 내일이 빅 데이인데요.”

“내일은 오늘보다 더 떨면 되지 않나?”

“하하, 왕자님답지 않으십니다.”

한지호는 벌써 사흘 째 반다르 왕자를 치료하며 그와 제법 가까워졌다.

치료를 하면 할수록 반다르 왕자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감이 커졌고, 이런 사람이라면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다짐도 점점 강해져갔다.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짧은 농담을 주고받았지만 허락된 시간이 길지는 않다.

사우디에서는 언제나 1분 1초를 아껴야 한다.

한지호는 하얀 천 위에 알몸으로 누운 반다르 왕자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를 천천히 살펴봤다.

탁기를 배출하는 치료는 예전에도 몇 번이나 해본 경험이 있다.

그렇지만 사람에 따라 미세하게 조절해야 할 것이 많다.

침을 놓는 것부터 약재를 쓰는 것까지, 체질을 완벽히 파악하지 않으면 탁기를 빼내려다 진원지기까지 뽑아내게 된다.

진원지기가 손상을 입으면 멀쩡한 사람도 금방 중환자로 변한다.

환자의 경우 생명이 위중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내일 머리를 여는 치료가 고비라고 했지만 오늘도 만만한 과정은 아니다.

한지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약침을 들었다.

어떤 약을 담느냐에 따라 약침의 효과는 천차만별로 나타난다.

반다르 왕자를 위해 한지호가 선택한 약재는 다름 아닌 접골목(接骨木)이었다.

접골목은 딱총나무로도 불리는데 원래는 이름처럼 부러진 뼈를 붙이는데 효능이 탁월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멍과 같은 타박상에도 주로 쓰인다.

하지만 한방에서는 접골목이 활혈거어(活血祛瘀)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활혈거어란 죽은 피를 없애고 맑은 피를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물론 접골목, 딱총나무를 우려낸다고 해서 전부 이런 효능을 내지는 못한다.

나무의 큰 줄기는 활혈거어의 효능과 아무 상관이 없다.

자잘하게 뻗은 잔가지만 골라내어 진하게 우려내면 피를 맑게하는 약이 된다.

시중에는 잔가지뿐 아니라 딱총나무의 모든 부분을 팔기 때문에 효과를 보기 어렵다.

한지호는 아지르에게 반드시 잔가지만 구해오라고 일러뒀다.

다행히 반다르 왕자의 건강을 자기 목숨보다 더 아끼는 아지르는 제몫을 톡톡히 해냈다.

사우디아라비아 1왕자의 최측근답게 있는 권력 없는 권력을 다 동원해서 접골목 잔가지를 구해온 것이다.

덕분에 한지호는 약침에 접골목 진액을 넣을 수 있었다.

그 진액은 한지호의 침을 타고 반다르 왕자의 혈도를 거쳐 온몸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접골목 진액이 활혈거어 작용을 일으켜 반다르 왕자의 몸에서 탁기를 밀어내기를, 그리고 피를 맑게 하기를 간절히 바랄 시간이다.

꾸우욱-

첫 번째 약침이 피부를 뚫고 혈도를 강하게 자극했다.

한지호는 끝까지 침을 밀어넣은 후 손가락으로 끝을 두드렸다.

톡톡!

충격이 전해지자 약침에 담겨있던 접골목 진액이 반다르 왕자의 몸 안으로 주입됐다.

분명 낯선 느낌일 것이다.

한지호는 반다르 왕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두 번째 약침을 손에 들며 입을 열었다.

“접골목은 임산부가 아니면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약이 몸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유쾌하진 않겠지만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왕자님.”

“그럼, 내가 이 나라를 가져도 아이를 가지는 임산부가 될 수는 없지.”

반다르 왕자는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였다.

긴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전긍긍하지는 않았다.

한지호는 안도하며 두 번째 침을 꽂았다.

시간이 일시적으로 정지한 것 같았다.

정신을 집중하고 침을 놓을 때, 한지호는 종종 몰아(沒我)의 경지에 접어든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지고, 자신의 존재마저 희미해지며 오직 침을 놓는 순간만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반다르 왕자의 전신에 듬성듬성 약침이 꽂혔다.

마지막 약침을 놓은 한지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의도한 혈도에 침을 놓고, 접골목의 약액이 전신을 휘감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각.

15분이 지나면 약침의 효능이 발휘 될 것이다.

“모공이 열리고, 왕자님의 몸 상태에 따라 불쾌한 냄새의 액체가 배출 될 겁니다. 어쩌면 통증이 수반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놀라지 마시고 계속 누워있기만 하시면 됩니다.”

“알겠네.”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15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한지호는 슬슬 반다르 왕자의 몸에서 탁기가 배출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다시 시계를 쳐다볼 때, 드디어 기다리던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으으음…….”

미리 설명을 들었던 반다르 왕자도 당황스러운 듯 입술을 깨물었다.

약침이 꽂힌 자리에서 검은색 액체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왕자님 몸 안의 나쁜 기운이 배출되고 있는 겁니다.”

한지호는 탁기가 빠지는 광경을 지켜봤다.

하지만 방 안에서 반다르 왕자를 지키는, 마치 무생물과 같은 경호원들도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만큼 검은색 액체에서 풍기는 냄새가 지독했기 때문이다.

당사자인 반다르 왕자는 더욱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악취 때문만은 아니었다.

온갖 나쁜 기운이 몸 밖으로 나오며 그에게 열병을 앓는 듯한 통증을 안겨줬다.

한지호는 반다르 왕자의 안색을 체크하며 응원했다.

지금으로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일시적인 고통입니다.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이쯤이야… 우욱!”

반다르 왕자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했지만, 이내 헛구역질을 했다.

지독한 악취를 직격으로 맞고 있으니 속이 뒤집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아직은 몸 안의 탁기가 응축되어 흘러나온 검은색 액체를 닦을 수 없었다.

반다르 왕자의 몸을 닦다가 약침을 건드리게 되면 기껏 해놓은 수고가 무위로 돌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가?”

탁기가 배출된지 벌써 2분이 넘게 지났다.

한지호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양의 검은색 액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만큼 반다르 왕자의 몸 안에 나쁜 기운이 많이 쌓였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곧 끝이 보였다.

약침을 놓은 자리에서 흐르던 진득한 액체가 조금씩 줄어드는 게 확연했다.

“끝난 것 같습니다. 이제 침을 뽑고, 몸을 닦아낸 후 기력을 보충하는 약을 올리겠습니다.”

한지호는 안도한 얼굴로 반다르 왕자의 전신에 놓은 침을 하나씩 뽑았다.

그도 사람이기에 코를 찌르는 악취가 괴로웠다.

하지만 의사는 환자에게서 나는 어떤 것도 더럽게 여겨선 안 된다.

탁기를 배출해낸 반다르 왕자의 몸은 극히 예민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한지호가 직접 물수건으로 몸을 닦아냈다.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긴 건가?”

“네, 왕자님. 과정들이 순조롭습니다.”

“내일 나의 머리를 연다고 했지? 물론 외과 수술은 아니지만 말일세.”

“그 치료만 성공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건강하게 복귀할 수 있으십니다.”

한지호는 백회혈을 개문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한의사로서 경고는 충분히 했다.

이미 주사위를 던진 이상 희망적인 이야기로 격려를 하는 편이 낫다.

똑똑-

그때였다.

누군가 반다르 왕자가 치료 받고 있는 방문을 두드렸다.

반다르 왕자는 자신의 성 안에서도 매일 방을 옮기며 지낸다.

그렇기에 어느 방에 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다.

더구나 치료를 받은 도중이면 누구도 방해를 하지 않는다.

순간 방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문을 바라봤다.

“왕자님!”

방문을 연 사람은 바로 아지르였다.

반다르 왕자의 충신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서있었다.

아지르는 한지호가 왕자를 치료 하고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다.

그가 방해를 무릅쓰고 반다르 왕자를 찾아온 걸 보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무슨 일이기에 그런 표정을 짓고 서있나? 얼른 들어와서 말하게.”

반다르 왕자는 여전치 알몸으로 누워있는 상태다.

한지호도 그의 몸을 닦는 도중 아지르를 쳐다봤다.

경호원들을 지나쳐 침대 가까이 다가온 아지르가 황급히 보고를 올렸다.

“2왕자님이 직접 병문안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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