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27화 (227/255)

# 227

8장, 한중일(韓中日)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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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찝찝하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의사는 환자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전통 의학을 익힌 한의사에게도 똑같이 통용되는 법칙이다.

하지만 환자를 대하는 의사도 사람이다.

연쇄살인마를 치료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갈등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성병도 마찬가지였다.

비뇨기과나 산부인과 전문의라면 성병을 치료하는 게 일상일 것이다.

하지만 한의사가 성병 환자를 만나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한지호가 세계적인 명성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의뢰가 들어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상무위원 추위안차오가 자존심을 접어가며 진지하게 부탁을 했고, 한국 정부의 양해까지 얻어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주중 일본대사인 요시모 유타를 진료 해야만 한다.

보건복지부 장관 양성문이 은밀하게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요시모 유타는 그냥 성병도 아니고 심각한 중증의 성병을 앓는 중이다.

약물 치료가 어렵고, 추위안차오를 통해 한지호를 찾을 정도면 증세가 어느 정도일지 추측할 만 하다.

“대체 얼마나 심한 성병이어야 대사 자리에서 물러날 생각을 하는 거지.”

한지호는 약속 장소 근처에 도착해서 혼잣말을 읊조렸다.

양성문이 말도 안 되는 정보를 알려줬을 리 없다.

외교가에 떠도는 소문대로 요시모 유타는 성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오죽 심하면 치료가 안될 시 주중 일본대사를 그만둔다는 것일까.

환자로부터 정확한 사전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한지호는 다양한 상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추위안차오도 요시모 유타의 증세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게 VIP들을 치료할 때의 어려움이다.

소문이 나는 걸 극도로 꺼리는 VIP들은 직접 만나기 전까진 증세를 숨긴다.

미리 병명과 증세를 알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준비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처음 VIP 환자를 진료하게 되면 소위 멘붕에 빠지기 쉽다.

아무런 준비 없이 까다롭고 의심많은 환자를 진맥해서 적절한 처방을 빠른 속도로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VIP 전문 시스템을 표방한 원화 한의원의 성공 이후 여러 한의원과 병원이 우후죽순 벤치마킹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그 어떤 곳도 원화 한의원처럼 확실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럭셔리한 인테리어와 예약제를 갖춘다고 해서 VIP 전문이 되는 게 아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한지호는 강남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되지도 못 했을 것이다.

“후- 들어가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인근에 차를 세우고 걸어왔는데도 금방이었다.

요시모 유타는 일본 부호의 홍콩 별장을 빌려서 한지호를 초대했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리펄스 베이에 별장이 있어서 홍콩 원화 한의원에서 멀지 않았다.

한의원에서 만나면 소문이 날 수 있기에 별장을 약속 장소로 선택한 것이다.

딩동!

초인종 소리가 꽤 크게 울렸다.

한지호는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며 별장을 올려봤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살인적이다.

도심에서는 닭장 같은 아파트가 수십억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리펄스 베이에 이만한 크기의 저택을 별장으로 소유하려면 수백억, 아니 수천억 원 이상의 자산가여야 할 것이다.

여기서 바로 고위 공무원의 힘이 나온다.

자기 재산은 아니지만 재벌들의 재산을 마치 자기 것처럼 쓸 수 있다.

재력보다 위에 있다는 권력 덕분이다.

지이이잉-

그때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한지호는 평창동 황만금의 저택에 처음 찾아갔던 때를 떠올렸다.

마치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현관문 너머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것도 똑같았다.

‘나쁠 거 없지.’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황만금의 태자병을 고치면서 강남화타의 전설이 시작됐다.

지금도 황만금은 한지호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 주고 있다.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는 건 예감이 좋다는 뜻이다.

비록 성병이라는, 아주 찝찝한 증상이 사실인지 확인해야 하지만 말이다.

“닥터 한, 제가 모시겠습니다.”

황만금의 저택에 집사가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대사관 직원이 안내를 맡았다.

한지호는 요시모 유타의 비서를 따라갔다.

오늘의 환자인 대사님은 리펄스 베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저택 안방에 있었다.

미리 말을 해뒀는지 비서는 따로 노크를 하지 않고 문을 열어줬다.

끼이익-

한지호는 열린 문틈으로 요시모 유타를 찾으며 방 안에 들어섰다.

당연하게도 비서는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오! 반갑습니다.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해요, 닥터 한.”

요시모 유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가 아닌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를 했다.

50대의 나이, 대사라는 막중한 지위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윗사람을 만난 듯 행동하고 있었다.

일본인 특유의 스타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요시모 유타의 대인술(對人術)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한지호가 그의 구원자가 될 수 있기에 미리 굽신거리는 건지 모른다.

어쨌거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키가 작고 말랐지만 왜소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얼굴은 온화해 보였고, 안경을 써서인지 대학 교수 느낌이 물씬 났다.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일본 중년 신사 타입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사님. 한지호입니다.”

한지호는 요시모 유타와 악수를 나누며 속으로 의문을 품었다.

‘양 장관님께서 잘못 아신 건가? 중증의 성병과는 너무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외교가에 나도는 소문이 왜곡 됐을 가능성도 농후하다.

아니 땐 굴뚝에도 연기가 나는 게 세상사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지만 눈앞의 요시모 유타는 성병과 백만광년 정도 떨어진 사람 같았다.

“이거 정말 영광이네요.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을 주치의로 모시게 되고…….”

요시모 유타가 자리를 권하며 계속 한지호를 치켜세웠다.

칭찬도 끝없이 이어지면 듣는 입장에서 살짝 부담스러워진다.

한지호는 화제를 바꾸기 위해 웃으며 말했다.

“추위안차오 상무위원님께 말씀을 들었습니다. 몸이 불편하신데 치료가 쉽지 않고, 대사 직위에서 물러나 요양 하실 생각도 하신다고 말입니다.”

갑작스레 본론을 꺼내는 한지호의 화법이 당황스러웠을까.

요시모 유타는 잠깐 침묵을 삼키더니 이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요양을 생각한 게 아니라… 치료를 하지 못하면 정상적으로 대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으니까요.”

“어떤 증상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대사님.”

고삐를 잡은 한지호는 과감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곳에서 말을 빙빙 돌려가며 시간을 끌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게 말이지요.”

요시모 유타는 이미 한지호의 페이스에 빠졌다.

원래라면 차라도 한 잔 마시며 쓸데없는 한담을 나눈 다음 한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하지만 한지호는 환자가 아무리 VVIP라고 해도 이끌려 다니지 않았다.

의사가 주도권을 잡아야만 시행착오 없이 제대로 치료를 할 수 있다.

그동안 숱하게 많은 거물들을 겪으며 얻은 확신이다.

“조금 민망하지만, 성병에 걸린 것 같습니다. 이거 참 쑥스럽네요.”

소문이 사실이었다.

한지호는 다시금 양성문 장관에 대한 신뢰가 쌓이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어떤 성병이고, 증세는 어느 정도입니까?”

“정확한 병명조차 듣지 못했다는 게 제일 큰 문제이지요. 휴우우-.”

요시모 유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을 토해낼 듯 답답함이 짙게 느껴지는 한숨이었다.

사실 한지호도 어느 정도는 예상하던 바였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를 찾아온 환자 대부분은 병명조차 모른다.

현대 의학으로 가늠이 되는 질병 중 치료가 불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은 불치의 영역을 점점 줄여가고 있다.

문제는 가늠 자체가 안 되는 미지의 병마다.

황만금의 태자병, 김해수의 구음절맥을 어떻게 현대 의학으로 분류하겠는가.

또는 헨리오 무크의 난치성 발기부전이나 모샤드 일라이의 파킨슨병처럼 아직까지 과학이 정복하지 못한 질병도 한지호가 싸워야 할 대상이었다.

요시모 유타로 하여금 은퇴를 고려하게 만든 성병도 위와 같은 케이스였다.

투둑, 투두둑-

망설이고 또 망설이던 요시모 유타가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예고 없는 행동에 놀랄법 했지만 한지호는 가만히 그를 지켜봤다.

단정한 화이트 셔츠 단추를 다 풀어낸 요시모 유타는 그대로 상의를 걷었다.

이윽고 한지호는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을 목도하게 됐다.

매일 환부(患部)를 가까이서 접하는 의사가 아니라면 누구든 고개를 돌렸을 것이다.

“이런 게… 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어요, 닥터 한.”

말쑥하고 점잖게 생긴 요시모 유타의 얼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상처였다.

셔츠를 걷어낸 그의 아랫배, 단전이 자리한 곳의 피부는 보라색에 가까웠다.

색깔만 이상하게 변한 것이 아니었다.

보라색으로 물든 피부 군데군데 고름이 터져 흉측한 상처가 생겼다.

상처에서는 누런 진물이 흘러나와 엉겨 붙었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요시모 유타의 환부를 쳐다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을 할 게 분명했다.

당사자인 요시모 유타도 자신의 아랫배를 제대로 내려보지 않았다.

반면 한지호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바지도 벗어주세요.”

그는 평정을 잃지 않은 목소리로 하의 탈의를 요구했다.

요시모 유타는 살짝 당황한 것 같았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환부를 보여줘서인지 바지를 벗는 손길이 빨라졌다.

스르르륵-

통이 넓은 정장 바지가 바닥에 떨어졌고, 요시모 유타는 속옷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한지호는 무감정한 표정으로 속옷에 가려져 있던 환부를 유심히 살폈다.

“다행히 성기에는 고름이 차지 않았군요.”

특이한 일이었다.

요시모 유타의 성기, 즉 음경과 음낭은 보랏빛으로 변하지 않았다.

고름이 흐르는 상처도 없이 멀쩡했다.

다만 음경의 뿌리 윗부분부터 환부가 시작되고 있었다.

환부인 배꼽 아래부터 음경 바로 위까지는 그야말로 참혹했다.

그러나 성기가 멀쩡한데 왜 성병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한지호는 의문을 품고 요시모 유타의 눈을 마주봤다.

“솔직히 말씀드려 저도 처음 보는 증상입니다. 관련 서적과 문헌을 검토해서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역시… 그렇겠지요.”

“대사님께서 도움을 주시면 조금 더 빨리 해결책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절벽 끝에 서서 닥터 한을 찾은 것이기에 못 도울 부분이 없어요.”

요시모 유타는 실망한 기색을 보였으나 마지막 동아줄을 쉽게 놓치지 않으려 했다.

한지호는 그의 눈동자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질문을 던졌다.

“보기에도 고통스러워 보이지만, 대사님이 환부에서 느끼는 바를 자세히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왜 이 증상을 피부질환이 아닌 성병이라고 판단했는지도.”

“그게… 보는 것처럼 고름이 맺히고 터져서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할 정도가 됐어요. 가만히 앉아있어도 통증과 고름으로 집중이 힘들고, 외국에 나온 대사로서 수많은 행사에 참석해야 하는데 원활하게 움직이기가 불가능에 가까워졌으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성병이라 확신한 이유는요?”

“아무래도 성기 가까운 곳부터 문제가 생겼으니 자연스레 그리 생각을 했지요.”

요시모 유타가 뭔가를 감추는 것 같았다.

한지호는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정곡을 찔렀다.

“특정한 성관계를 가진 이후 증상이 시작되어 그렇게 판단하신 것 아닙니까?”

“그, 그건…….”

요시모 유타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말 못 할 비밀이 있어 보였다.

한지호는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질문을 하는 게 아니었다.

발병 원인을 알아야 치료 방법도 강구할 수 있다.

요시모 유타의 비밀, 거기에 실마리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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