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210화 (210/255)

# 210

10장, 군단의 심장 (1)

“드디어 시작입니다. 이곳에 걸려있는 것은 국가의 미래입니다. 의료 산업을 미래의 먹거리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절박한 의지가 K-메디컬 타운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1차로 입주하신 파트너분들, 그리고 추후 입주하실 병원과 센터의 관계자분들. 여러분의 친절과 노력이 국가의 미래를 바꾼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중국과 일본, 아시아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K-메디컬 타운을 찾고, 이곳에서 개발 된 의약 제품이 세계를 휩쓰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나갑시다!”

짝짝짝짝짝-!

보건복지부 장관 양성문의 축사가 끝나자 사방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김포 한강 신도시에 들어선 K-메디컬 타운의 1차 입주 행사 분위기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모습을 드러낸 타운의 퀄리티가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1차로 입주하게 된 병원과 연구실의 관계자들은 대부분 흡족한 얼굴이었다.

각각의 건물들은 물론이고, 타운 내부의 부대 시설과 거리도 정비가 완벽하게 돼 있었다.

이만하면 외국인들에게 이곳이 한국을 대표하는 의료 타운이라고 말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내국인들도 호기심을 갖고 찾아오기 충분해 보였다.

“양성문 장관님, 축사 감사드립니다. 장관님께서는 K-메디컬 타운을 위해 기획 초기 단계부터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한 두 사람의 힘이 아니라 정말 많은 분들의 마음이 모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식순에는 없었지만 아주 특별한 순서를 준비했습니다.”

사회를 맡은 유명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이 특별한 순서를 언급했다.

귀빈석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처럼 중요한 국가 행사는 완벽하게 정해진 각본대로 진행된다.

사전에 예고되지 않은 순서가 끼어들 틈이 없다.

하지만 방금 막 축사를 마치고 내려온 양성문 장관은 뭔가를 아는지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귀빈석 맨 앞자리에 앉은 한지호는 원화 정의 네트워크 소속 원장들과 함께 차분히 단상을 지켜봤다.

삐빅-

그때 단상 뒤쪽의 대형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이전까지 행사장을 비추고 있던 화면에 모두가 아는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와아아!”

“어? 대박-!”

행사장 여기저기에서 날 것 그대로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화면에 떠오른 주인공은 바로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70대를 넘겼지만 아직 정정한 대통령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한지호는 자신도 모르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는 부암동에서 대통령과 은밀한 만남을 가진 적이 있었다.

사석에서 보여주던 대통령의 카리스마는 상상 이상이었다.

외부로 보여지는 온화한 모습 이면에 무서운 뚝심을 품고 있는 거인이다.

곧이어 화면에 비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먼저 일정 상의 이유로 함께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립니다. 이렇게 영상으로라도 축하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 따로 부탁을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정부는 K-메디컬 타운에 대단히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울러 계속해서 투자를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어쩌면 제 임기 중 가장 잘한 일로 K-메디컬 타운이 꼽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을 정도입니다.”

대통령의 말은 계속됐지만, 처음 몇 줄에서 핵심적인 이야기는 다 나왔다.

그저그런 입 바른 소리가 아니었다.

굉장한 임팩트를 가진 메시지가 대통령의 입에서 직접 나온 것이다.

K-메디컬 타운이 대통령 임기 중 최고의 업적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흘려들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전폭적인 투자와 정부의 관심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이 직접 챙기는 국책 사업이라면 성공 가능성은 훨씬 높아진다.

대통령의 영상을 본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입이 귀에 걸렸다.

미리 언질을 받았던 양성문 장관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있어서도 K-메디컬 타운은 장관 재임기간 중 최고의 업적이 될지 모른다.

더불어 대통령과 같은 목표를 공유하는 한 장관 자리에서 낙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의 깜짝 영상으로 공식 행사가 훈훈하게 마무리됐다.

오늘은 1차 입주 첫 날이라 환자를 받지는 않는다.

아마 본격적으로 외국인 관광객과 환자들이 방문하려면 며칠이 지나야 할 것 같았다.

K-메디컬 타운에 들어선 병원들이 앞장서서 환자를 모집할 필요는 없었다.

초기에는 정부에서 일정한 수의 외국 관광객들을 보내주기로 약속했다.

관광청과의 협조로 메디컬 한류 투어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다.

정부에서 보내주는 외국 환자들을 상대로 진료를 하고, 홍보 역시 일임하면 된다.

그러면 머지않아 K-메디컬 타운이 널리 알려지게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김포 한강 신도시에 사는 수많은 주민들도 동네 병원 대신 K-메디컬 타운에서 대학 병원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누리려 할 가능성이 높았다.

이러한 호 조건 때문인지 행사장에는 희망적인 기운이 가득했다.

사업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도적으로 K-메디컬 타운 입주를 준비해온 한지호의 눈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

원화 정의 네트워크는 단독 건물 2채를 배정 받았다.

네트워크 소속 신입 한의사들을 키우기 위한 원화 정의 한의원은 2층짜리 아담한 건물이다.

K-메디컬 타운의 다른 건물들과 어울리는 현대적인 외관이 돋보였다.

1층은 대기실과 진료실로 쓰이고, 2층은 약재실 그리고 특수 처방실로 꾸며졌다.

한지호는 긴장된 얼굴로 나란히 서있는 신입 한의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원화 정의 한의원을 위해 공동으로 선발하고 교육시킨 한의사는 모두 5명이다.

중국어와 일어, 영어 가능자를 우대해서 선발했는데 경쟁률이 장난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에까지 이름을 떨치는 한의사는 한지호가 유일하다.

그가 이끄는 원화 정의 네트워크에 소속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젊은 한의사들은 앞다퉈 지원서를 냈다.

물론 연봉 등 대우도 한의학계 최고 수준이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실전에 돌입하게 됩니다. 한의사에게 실전이란 문제가 있는 환자를 만나고, 치료하는 것이죠. 부담을 주고 싶지는 않지만… 이곳이 전쟁터라는 각오를 다지기 바랍니다.”

한지호가 입을 뗐다.

K-메디컬 타운에 들어선 원화 정의 한의원은 외국 관광객들에게 한의학을 알리기 위한 창구다.

그러나 신입 한의사들 위주로 의료진을 구성했다고 해서 대충 운영할 수는 없었다.

그가 담담하지만 무게감이 실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환자에게 실수를 하는 것, 사소한 오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마세요. 전쟁터에서 한 번의 실수를 하면 다음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한의원의 특성 상 생명을 다투는 중환자가 많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과 수술을 하는 의사들처럼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야 합니다.”

한지호의 말이 끝나자 맨 끝에 서있던 신입 한의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원장님!”

한지호는 그를 쳐다봤다.

주눅들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을 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진맥과 처방, 시침은 자신감 넘치게. 하지만 신중하게. 이 두 가지 태도가 동시에 묻어나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손끝이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얼굴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이번에는 다른 네 명의 한의사들도 동시에 대답을 했다.

주목을 받은 동료에게 뒤질 수 없다는 듯 우렁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장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한지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신입 한의사들은 대부분 그와 동년배다.

심지어 한지호보다 더 어린 한의사도 있었다.

하지만 나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서울 원화 한의원의 문재영 부원장도 한지호보다 나이가 많고, 원화 정의 네트워크의 원장들은 모두 K대 한의학과 선배다.

그러나 한지호의 의술과 압도적인 명성은 고루한 장유유서 논리를 무의미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들 대표 원장인 한지호 앞에서 겸손한 자세를 보였다.

“오늘은 박우식 총괄 이사님이 실무 관련 브리핑을 해주실 겁니다. 시행착오 없이 바로 원활한 진료를 하는 모습, 기대하겠습니다.”

한지호의 말이 끝나자 박우식이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박우식은 역삼동의 원화 한의원에서는 사무장이지만, 그 밖의 장소에서는 네트워크 총괄 이사다.

한지호를 일찍 만난 덕에 한국을 대표하는 한의원 네트워크의 총괄 이사가 된 박우식은 신입 한의사들에게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그럼 잘 부탁하겠습니다, 이사님.”

“네, 원장님.”

박우식에게 바통을 넘긴 한지호는 원화 정의 한의원 건물 밖으로 걸어나왔다.

한의원 건물 맞은편에는 훨씬 더 큰 빌딩이 서있었다.

빛을 반사하는 전면 유리로 외관을 감싼 5층짜리 빌딩은 역삼동 M 타워 못지 않았다.

전체적인 규모는 역삼동 M 타워보다 작지만, 대신 최신식 설비와 보호 장치가 장점이다.

한지호는 새로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앞서 외관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간판을 쳐다봤다.

원화 아카데미(WONWHA ACADEMY).

세계를 뒤흔들기 위해 무려 2천억 원을 투자해서 만든 곳이다.

멋들어지게 새겨진 글자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나도 참, 주책이란 말이지.”

한지호는 콧잔등을 찡그린 뒤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1차 입주 행사가 있는 날이라 외부인은 K-메디컬 타운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러나 원화 아카데미 입구에는 벌써부터 전문 경비원들이 배치 돼 있었다.

이미 원화 한의원과 Y대 의대, 미한약품에서 중요한 연구 자료가 배송 됐기 때문이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기밀 자료들이 많기에 경비에 만전을 기했다.

원화 아카데미 경비는 조기운이 만든 HJ 에스코트에서 맡았다.

한지호는 HJ 에스코트의 투자자이자 조기운의 형으로서 그의 회사에 고정적인 일감을 선물해준 셈이다.

처억-

한지호의 얼굴을 알아본 경비원들이 고개를 숙였다.

조기운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인재들인 만큼 기세가 예사로워 보이지 않았다.

HJ 에스코트는 고해진이 입원했던 K대 병원의 관리도 흠 잡을 구석 없이 해냈었다.

한지호는 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지문 인식기에 손가락을 붙였다.

도난의 위험이 있는 카드 대신 지문 인식 시스템을 도입했다.

동시에 공항에서 쓰는 금속 탐지기도 설치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외부인은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시스템을 탄탄히 갖춰 놓았다.

원화 아카데미의 첫 번째 소유주라고 할 수 있는 한지호도 정해진 절차를 다 거쳤다.

예외를 적용하면 원칙은 언제든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신분 확인 시스템을 통과한 한지호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띠링!

엘리베이터가 5층에 멈췄다.

5층에는 원화 정의 한의원을 거치지 않고 먼저 도착한 네트워크 소속 원장들이 한지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Y대 암센터의 최규열 센터장과 미한약품 신영준 회장은 일정 때문에 오늘은 참석하지 못했다.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오늘만큼은 완벽히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네트워크 소속 원장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자, 주인공이 잔을 받아야지.”

한지호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최 원장이 샴페인 잔을 건넸다.

다른 세 명의 원장들도 샴페인 잔을 들고 있었다.

조촐하게나마 원화 정의 한의원과 원화 아카데미의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서 만든 자리다.

한지호는 웃으며 잔을 받았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기에 이르지만… 위대한 역사를 이루고 오늘 이 순간을 기억하면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원장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또 새로운 시작을 맞이했을 뿐이지만, 단순히 한의원을 성공시켜 잘 먹고 잘 살겠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목표를 세웠다.

정말 실현될까 싶었지만, K-메디컬 타운은 멋지게 완성이 됐다.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었으니 입주한 각각의 의료기관이 잘 하는 일만 남았다.

한지호는 든든한 동료인 원장들 앞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사실 마황을 이용한 신약 개발에 쓸만한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연구진과 함께 초기 검토를 해보고 결과를 함께 공유하죠.”

“저도 틈만 나면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실마리가 잡혔다는 말씀이십니까?”

과묵한 박 원장이 눈을 크게 떴다.

한지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더 많은 실마리를 잡고 몸통을 그려내야죠. 바로 이 곳, 우리를 미래로 이끌어갈 함대에서.”

원화 아카데미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한의학의 미래를 열어갈 지휘선이다.

한지호는 다른 원장들의 가슴에도 불을 질렀다.

역사에 길이 남을 도전이 정말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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