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141화 (141/255)

# 141

8장, 친화(親和) (1)

“식사는 드실만 하세요?”

“밥이 뻑뻑한데…… 그래도 고기 반찬이 있어서 기운이 납니더.”

한지호는 김금순의 병실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의 식단은 한지호가 특별 관리한다.

일반적인 암센터의 건강 식단과는 다르다.

밥을 지을 때 쓰는 쌀의 종류부터 반찬까지 일일이 한지호가 지정했다.

김금순은 Y대 암센터 요주의 환자다.

협진 프로젝트의 대상자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기에 암센터에서도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한지호는 깨끗이 싹 비워낸 김금순의 식판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잘 드셨네요. 입맛이 없어도 꼭 남기지 말고 드셔야 빨리 낫습니다.”

“예, 선생님. 그런데 이렇게 평상시처럼 잘 먹어도 되는 건가 모르겠습니더.”

“그럼요? 수술을 받았는데 평소보다 더 잘 드셔야죠.”

“우리 애들도 제가 먹는 밥 보고 신기하다고 하데예. 환자 밥 안 같다고 말입니더.”

김금순의 가족들이 식단을 보고 한 마디를 했던 모양이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한지호가 직접 짠 식단은 기존의 환자식과 많은 부분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채식 위주의 건강식을 많이 생각하시죠?”

“TV에서 보니까 선식인가, 그런 것도 암 환자에게 좋다고 하고…… 잘은 모르지만 밥 맛있게 먹으면서도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습니더.”

“원래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면 입맛이 뚝 떨어지고, 식사를 제대로 못 하다 보니 죽이나 선식을 먹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김금순 환자님은 항암 대신 한약 치료를 받으시니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죠. 죽이나 선식, 채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 권장 사항이 아니에요.”

“그런 거 맞지예? 선생님이 다 잘 아실 거라고 애들한테도 말 해놓았습니더.”

김금순은 언제 의심을 했냐는 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뻘, 아니 마리아 수녀보다 더 나이가 많은 김금순의 모습이 밉지 않았다.

한지호는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미국 의대나 암센터의 연구 결과에서도 암환자들의 충분한 단백질 섭취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현미밥과 나머지 생소한 반찬들, 이를테면 꽃송이 버섯이나 약재를 이용한 나물을 먹기 불편하겠지만 약이라고 생각하고 드세요.”

“여부가 없지예. 선생님 말씀만 잘 듣겠습니더.”

“그럼 옷을 걷어주시겠어요?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전신 혈도를 자극하는 침을 놓을 겁니다. 이전과 달리 많이 아플 수 있으니 참으셔야 해요.”

“아파도 암이 재발만 안 하면 뭔들 못 참을까예.”

김금순이 농담 같은 진담을 하며 상의를 걷어 올렸다.

의료진 회의에서 한지호가 주장한 대로 항암과 방사선 대신 침술과 탕약 치료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리 1기 환자라고 해도 수술 후 항암을 하지 않으면 재발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한지호는 위험 부담이 있음을 알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자신의 명예 때문이 아니라 한의학 치료가 환자에게 더 좋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모든 암 환자에게 한의학 치료를 적용할 수는 없어도 김금순의 케이스에서는 이 방법이 낫다고 판단했다.

“시작합니다.”

첫 번째 침을 명치 바로 아래에 꽂았다.

장침이 쑤욱 들어가는 장면은 아무리 봐도 적응하기 힘들다.

침을 놓는 한지호도 가끔은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었다.

이렇게 긴 침이 몸 안으로 들어가 혈도를 자극한다.

그렇기에 자격 없는 사람이 함부로 침을 놓으면 무슨 부작용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다.

“으으… 좀 아프긴 하네예.”

김금순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한지호가 주의를 줬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통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단순히 수면을 유도하거나 몸을 진정시키는 침이라면 아프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침술의 목적이 다르다.

전신의 혈도를 자극해 온도를 높이고, 기혈의 순환을 도와 자체 면연력을 회복시키려는 것이기에 통각(痛覺)를 자극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매일 이렇게 침을 맞으셔야 합니다. 쉽지 않은 건 알지만, 익숙해지셔야 해요.”

한지호는 치료를 위해 다른 방법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그의 손은 이미 두 번째 침을 잡고 있었다.

꾸우욱-

피부 표면을 뚫고 또 하나의 침이 혈도로 파고들었다.

조금만 어설퍼도 핏방울이 송송 솟아날 수 있다.

그러나 한지호가 기초적인 실수를 할 리 없었다.

김금순은 처음과 달리 입술을 꽉 깨물고 신음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한지호에게 부담을 줄까봐 나름대로 노력을 한 것이다.

환자가 의사를 배려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만큼 김금순은 아들보다 더 어린 의사인 한지호를 특별히 신뢰하며 따르고 있었다.

“조금만 더 참으시면 됩니다.”

한지호가 말을 마치며 연달아 세 번째, 네 번째 침을 복부에 놓았다.

김금순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채혈 주사를 맞는 것보다 더 따끔한 통증을 느끼는 중이기 때문이다.

한지호는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보고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안도하며 계속 침을 놓았다.

전반적으로 몸의 온도가 높아지는 건 침술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뜻이다.

“후-!”

마지막 침을 다 놓은 한지호가 한숨을 뱉었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발휘하느라 그의 이마에도 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누워있는 김금순을 내려 봤다.

복부를 중심으로 자신이 놓은 장침이 제법 빽빽하게 각 혈도를 자극하고 있었다.

“매일 침을 놓으며 조금씩 범위를 넓힐 겁니다. 2주일은 더 입원해 계셔야 하니까 그동안은 매일 찾아오겠습니다.”

“선생님…… 참아야 하지만 많이 아프긴 아픕니더.”

“범위가 넓어지면 더 아플 겁니다. 지금 살짝 열이 나는 느낌도 드시죠?”

“예, 예. 감기 걸린 것처럼 그렇네예.”

“아주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혈도의 온도를 높여서 기혈의 순환을 도우려는 겁니다. 그래야 몸의 면역력이 빨리 살아나거든요.”

“낫는데 도움이 되는 거지예?”

“그럼요. 그리고 침을 맞으시는 게 많이 아플 수 있지만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받는 걸 생각하면 훨씬 환자의 몸에 부담을 덜 주는 방식입니다.”

한지호는 확신을 담아 말했다.

김금순도 항암과 방사선 치료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암센터에 입원해 있으면서 다른 환자들과 보호자들에게 별의 별 소리를 다 들었을 것이다.

물론 항암과 방사선 치료는 재발률을 떨어트리기 위해 꼭 필요한 선택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도 항암과 방사선 치료로 희망을 이어나간다.

그러나 항암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대신 환자의 면역 체계를 무너트리고, 몸의 밸런스를 붕괴시키는 부작용까지 부정할 순 없다.

부작용이 오죽 심하면 항암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들이 속출하고, 신뢰하기 힘든 민간요법에 의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실정이다.

“다른 환자 보호자가 그랬습니더. 암 때문에 병원 왔다가 항암 치료 때문에 사람이 죽어 나가게 생겼다고예.”

“그러니까 침이 아파도 잘 참으실 수 있겠죠?”

“여부가 없습니더, 선생님.”

“제가 지어드린 약은 내일부터 나올 겁니다. 식사 후 꼭 챙겨 드세요. 보호자분께도 말씀을 드려 놓겠습니다.”

“여기 암센터에서 약 대신 한약 먹는 유일한 환자인 거지예?”

“네. 김금순 환자님이 유일합니다. 그러니까 꼭 건강해지셔서 다른 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셔야 됩니다.”

“얼른 건강해질 겁니더. 그래서 TV에 나와서 선생님 칭찬 많이 하겠습니더.”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

한지호는 활짝 웃었다.

김금순과 보호자들에게도 여러 취재진들이 연락을 취해오고 있다.

양한방 협진 프로젝트의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지호는 치료가 우선이라는 명목 하에 언론 접촉을 금지시켰다.

보호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괜한 인터뷰나 취재로 미리 구설수에 올라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김금순의 말대로 치료가 무사히 끝나고 나면 영광의 순간은 얼마든지 누릴 수 있다.

한지호는 김금순과 이런저런 환담을 나누며 시간을 끌었고, 20분 정도 흘러 복부에 꽂아놓은 침들을 일일이 다 뽑았다.

그러는 동안 김금순의 체온도 부쩍 많이 올라가 열이 나는 상태가 됐다.

“감기 걸린 것처럼 나른하고 몸이 뜨거울 겁니다. 문제가 생긴 게 아니니 주무셔도 좋고, 그냥 쉬셔도 됩니다. 간호사님이 수시로 체온 체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구요.”

“고생 하셨습니더, 선생님.”

“고생은 투병하고 계신 환자님께서 다 하시는데요. 저는 그저 도울 뿐입니다.”

한지호는 말로만 겸양을 떠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그의 역할은 김금순을 돕는 거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적 항암 치료의 목적은 환자의 몸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잠재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면역력이 살아나고, 자연 치유력이 회복되면 수술 이후 건강한 일상을 영위하게 된다.

합병증과 암 재발도 몸이 알아서 막게 만든다.

환자의 몸에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지 않는 것, 그것이 자연 친화적이고 인체 친화적인 한의학 치료의 가장 큰 장점이다.

침을 뽑고 병실 밖으로 나온 한지호는 참았던 한숨을 길게 들이마셨다.

수술을 마친 암 환자를 치료하는 건 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치료에만 신경을 집중하려 해도 국민적 관심과 그에 따른 책임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

이만큼 부담스러운 프로젝트가 또 있을까 싶었다.

“한 걸음씩 가자, 한 걸음씩.”

한지호는 암센터 복도에서 자기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치료에서는 빨리 가는 게 아니라 정확한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그는 치료 경과를 보고하기 위해 최규열과 유방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걸어가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문득 헤어진 이지은이 그리워졌다.

그녀라면 이럴 때 “오빠, 잘 하고 있어!” 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우웅- 우우웅-

그때 가운 안의 스마트 폰이 울렸다.

한지호는 깜짝 놀라 폰을 꺼냈다.

혹시 이지은이 마음을 바꿔 전화를 건 것은 아닐까.

부질없지만 텔레파시가 통한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어?”

하지만 스마트 폰 액정에 떠오른 이름은 이지은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반갑지 않은 이름인 건 아니었다.

“초아야.”

한지호는 전화를 받으며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

천사원 출신으로 지금은 D 대학 연극영화과를 다니고 있는 유초아가 전화를 한 것이었다.

“지호 오빠, 안 바쁘세요?”

“아냐, 괜찮아. 니 전화라면 언제든 받아야지.”

“요즘 양한방 협진 프로젝트라는 걸 하신다면서요? 뉴스에서 자주 오빠 이름이 나와서…… 잘 지내는지 궁금해 전화 해봤어요. 그동안 대학 생활이 바빠서 연락도 먼저 못 한 것 같아서요.”

“이렇게라도 생각 해주니 고맙다. 연영과 새내기로 지내느라 너도 많이 바쁠 텐데.”

“아니에요. 마리아 수녀님이랑 다른 아이들도 오빠 소식 많이 궁금해 하고 있는데 방해가 될까봐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조심 할 필요 전혀 없는데, 내가 조만간 천사원에 들러야겠네. 다들 잘 지내고 있지?”

“그럼요. 오빠 덕분에 다들 잘 지내요.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고 있어요.”

“목소리 들으니까 좋다. 또 캠퍼스에 놀러 갈게.”

“네, 오빠. 저도 더 자주 전화 할게요.”

“그래. 고마워, 초아야.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무슨 일 없어도 자주 연락하고.”

한지호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다.

유초아와의 짧은 통화가 힘이 됐다.

그는 조만간 D 대학 캠퍼스에 찾아가 이전처럼 밥도 사주고, 천사원에 들러 마리아 수녀와 아이들 얼굴도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그들이 바로 한지호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고향을 찾지 못한 기분이 들었다.

기존의 항암을 대신해서 인체에 친화적인 한의학 치료를 하는 것처럼 자신 역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더 잘 챙겨야 할 것 같았다.

그것이 결국 인생에서 부작용 없이 잘 사는 길이 아닐까.

한지호는 센치해진 것인지 따뜻해진 것인지 모를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쨌거나 그는 방향을 잃지 않고 목표를 향해 잘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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