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남화타-96화 (96/255)

# 96

7장. 충격요법(衝擊療法) (1)

“…….”

한지호는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두 눈으로 직접 허충욱의 상세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마창우와 백성필이 힘을 써준 덕분에 그는 넓고 호화로운 특실 안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았다.

주어진 시간 동안 허충욱을 치료하는데 신경을 기울이면 된다.

대학 병원의 의료진은 수액과 영양제를 보충해주는 게 전부였다.

그들은 허충욱이 쓰러졌을 때도, 의식을 찾은 뒤에도 실마리 하나 잡지 못했다.

그러나 마지막 희망인 한지호조차 상황을 낙관하기 힘들었다.

예상했던 경우의 수 중에서 최악의 증세를 목도했기 때문이다.

“어버… 어버버버…….”

병상에 누운 허충욱은 계속해서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혀가 딱딱하게 굳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상반신은 자유롭게 움직이지만 계속해서 손을 떨었고, 간병인의 도움이 없으면 혼자서 걷기도 힘들어 보였다.

특히 안면 경련이 심각했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윗입술이 쉴 새 없이 요동쳤다.

얼굴만 봐도 심각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이 상태로는, 혹여 조금 차도가 있어도 절대 공개 입찰 심사에 참여할 수 없다.

심하게 말하면 지금의 허충욱은 환자라기 보다는 폐인에 가깝다.

과연 일주일 안에 그를 정상 근처로 회복시킬 수 있을까.

포기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지만, 한지호의 표정은 무척 어두웠다.

그러나 언제까지 멍하게 서서 시간만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걸음을 옮겨 허충욱이 누워있는 병상 가까이 다가갔다.

한지호가 얼굴을 비추자 허충욱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삐 움직였다.

얼굴을 알아본 것일까.

그가 손을 뻗으며 입을 열었다.

“으어- 어음으어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한지호의 얼굴을 알아본 것 같았다.

이성과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니다.

다만 목화 현상의 증세가 심해져 몸이 불편해지고, 정신에도 약간의 충격이 왔을 뿐.

아예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알츠하이머 증상이 시작되면 한지호도 손을 쓸 도리가 없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미약하나마 희망이 있다.

한지호는 못 본 사이 앙상하게 마른 허충욱의 손을 꽉 잡았다.

그는 허충욱이 말귀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뱉어냈다.

“허충욱 위원장님. 한지호입니다. 누군지 알고 계시죠?”

“으어어…….”

허충욱이 신음 같은 소리를 내며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몸이 불편하지만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한 것이다.

한지호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보며 말을 계속했다.

“제 이름을 걸고 위원장님을 치료하겠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걷고, 말하고,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도록 만들 겁니다. 제가 하는 모든 일을 믿고 마음을 편히 먹으세요. 믿음,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힘이 실린 말이었다.

단순히 환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허풍을 치는 게 아니었다.

한지호는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스로를 믿었고, 그 믿음을 병상의 허충욱에게 전파시켰다.

허충욱도 이전보다 더 힘을 내서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지호가 자신을 낫게 해줄 거라고 믿는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계약이 성립된 것 같았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주 가끔은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계약보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믿음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

한지호는 내국인 카지노 사업에 대한 고민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런 부차적인 목적을 염두에 두고 환자를 대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제사보다 떡밥에 관심을 두고 치료를 하면 손발이 꼬일지도 모른다.

카지노 사업과 공개 입찰 심사는 허충욱을 회복시킨 후에 다시 생각하면 된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치료 자체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한지호는 진정성 있게 환자를 대할 때 최선의 결과가 나온다는 진리를 신봉했다.

그는 준비해온 침을 꺼냈다.

“위원장님의 상태가 위중하기 때문에 강력한 처방을 쓸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저를 믿고 맡기시면 됩니다.”

본격적으로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목화 현상이 시작되면 몸 안의 생기가 죽어간다.

허충욱의 몸이 앙상해지고, 안면 경련을 비롯한 운동 성능 저하 증상이 일어나는 것도 생기(生氣)의 문제다.

바닥까지 떨어진 생기를 북돋으면 경련과 운동 성능은 눈에 띄게 좋아질 것이다.

물론 침술과 약으로 생기를 불어넣는다고 끝날 일은 아니다.

갑작스런 발병으로 손상을 입은 몸 전체와 정신의 균형을 되찾으려면 무슨 수를 써야 할지 아득하다.

그래도 일단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는 수밖에 없다.

치료를 시작한 첫날, 한지호는 여느 때처럼 과감하게 침을 놓았다.

꾸우욱!

기다란 침이 혈도에 박힐 때마다 참기 힘든 고통이 전해질 터였다.

그러나 기력이 없는 허충욱은 제대로 신음을 흘리지도 못했다.

다만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한지호의 침을 온전히 받아낼 따름이었다.

한지호는 침 하나 하나에 오금희의 기운을 담아냈다.

생기와 직관 된 장기는 크게 두 곳이다.

심장과 간.

오행으로 따지면 화기(火氣)와 목기(木氣)를 관장하는 장기이다.

의학적 상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심장과 간이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이라는 걸 모르지 않는다.

오금희에 기초하여 생각해봐도 이치가 딱 들어맞는다.

불은 나무를 만나면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법이다.

심장의 화기와 간의 목기가 만나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그 시너지 효과로 생기가 활활 타올라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오행에 기초를 둔 화타의 의술은 현대 의학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한지호는 화기와 목기를 침에 담아 허충욱의 혈도를 자극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침이 꽂힐 때마다 심장과 간이 반응하는 게 느껴졌다.

사실 침 몇 개를 놓았다고 인체 내부 장기의 즉각적인 반응이 느껴질 리는 없다.

그저 강렬한 믿음이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길지 않지만, 그렇다고 마냥 짧지도 않다.

한지호는 폐인처럼 전락한 허충욱을 그럴 듯하게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기세였다.

“오늘은 침만 놓고 가겠습니다. 내일은 준비한 약을 가져올 겁니다.”

시작부터 서두를 필요는 없다.

허충욱의 몸이 침술과 약재에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 살펴보며 치료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한지호는 허충욱의 몸에 놓았던 침을 다시 뽑았다.

시작은 미약할지라도 끝은 창대하리라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남은 한 주가 끝나는 날, 병상에서 일어선 허충욱과 함께 웃고 싶었다.

+++

역시 쉬운 치료는 아니었다.

그러나 한지호이기에 절망에서 희망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4일 째 특별면회를 가장한 치료를 이어나갔다.

겨우 나흘이 지났을 뿐인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인천으로 가는 게 익숙해졌다.

그동안 한지호는 최상의 약재로 기력을 북돋는 보약을 지었고, 얇은 침에 화기와 목기를 담아 심장과 간을 자극했다.

나흘 내내 이어진 집중 치료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허충욱의 손 떨림이 많이 진정됐다.

이제 자기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있을 만큼 상체의 운동 성능이 회복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리 역시 놀라울 정도로 좋아졌다.

여전히 절뚝거리고, 침대에서 내려올 때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혼자 걷는데 무리가 없었다.

이만큼만 해도 믿기 힘들 정도의 치료 성과다.

틈틈이 허충욱의 상태를 체크하는 대학 병원 교수들이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교수들은 손을 쓰기는커녕 정밀 검사로 원인조차 못 찾았는데 한지호가 4일 만에 눈에 뛰는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단순히 침을 놓고, 보약을 지어 먹이는 것만으로 이런 결과를 얻을 순 없다.

어느 한의사가 와도 4일 만에 상체와 하체의 운동 능력을 이만큼 회복시키긴 불가능할 것이다.

한지호는 목화 현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명확히 알고 있었고, 오금희의 기운을 실어 심장과 간의 기운을 자극하며 생기가 저절로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오직 화타의 의술을 계승한 한지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허충욱이 입원한 특실에 들어선 그는 밝은 표정을 짓지 않았다.

허충욱이 자기 힘으로 화장실에 다녀오는 광경을 봤음에도 기뻐하기 힘들었다.

가장 심각한 문제인 안면 경련, 그리고 언어 능력 저하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제 발로 걸을 수 있고, 멀쩡하게 상체를 쓸 수 있는 건 참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쉬지 않고 입술을 덜덜 떨며 제대로 된 문장 하나 못 뱉어내는 사람을 누가 신뢰하겠는가.

남들이 보기에 지금의 허충욱은 혼자 거동하는 게 가능한 중증 환자, 또는 치매 환자와 다름없다.

인천시청과 정부 관계자들 틈에서 당당하게 공개 입찰 심사에 참여하려면 보다 더 멀쩡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4일간의 놀라운 치료 성과에 만족할 때가 아니었다.

이제 남은 시간은 고작 3일.

한지호는 침대 위에 앉은 허충욱에게 다가갔다.

“위원장님. 저 왔습니다.”

“으어… 어버버!”

허충욱이 반가운 듯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이 떨리고 표정이 자유롭지 않지만 웃으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한지호는 한숨을 속으로 삼키며 다시 입을 열었다.

“팔도 좋아졌고, 손 떨림도 거의 멎었고. 다리는 계속 불편하겠지만 지금처럼 걷고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목화 현상이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라서 조금씩 절뚝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허충욱은 설명을 들으며 계속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만큼이라도 단시간에 몸이 회복된 걸 고마워하는 게 분명했다.

병상에 누워 마른 나무처럼 말라가던 사람을 걷게 만들어 놓았다.

현대 의학에서도 목화 현상과 비슷한 파킨슨병의 경우 증세를 늦추는 게 한계다.

한지호처럼 빠르고 확실한 치료 효과를 낸 케이스는 전세계적으로 드물다.

말은 안 해도 대학 병원 교수와 의료진들 사이에서는 허충욱의 회복 속도를 놓고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있었다.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젊은 한의사 덕분에 이만큼 치료가 됐다는 걸 모르는 관계자는 아무도 없다.

그 덕에 대학 교수들은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지만, 유구무언(有口無言)일 따름이다.

정작 당사자인 한지호는 자신의 성과에 그리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허충욱과 눈을 맞춘 채 아주 중요한 말을 내뱉었다.

“위원장님, 아마 지금 깊은 생각을 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플 겁니다. 때때로 몇 시간씩 기억이 나지 않을 테고, 그렇게 증발해버린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불안하시겠지요.”

한지호는 허충욱의 온전하지 않은 정신을 언급했다.

목화 현상이 시작됐다고 해서 단번에 정신이 다 망가지지는 않는다.

알츠하이머에 걸려도 몇 시간은 멀쩡했다가 또 얼마 동안은 정신을 놓는 경우가 많다.

지금 허충욱은 멀쩡한 타이밍이다.

한지호의 말을 알아들은 그의 입술이 더 격하게 떨렸다.

“으어으으으……!”

가만히 있어도 보기 싫게 떨리는 입술의 움직임이 과해지며 침이 줄줄 흘렀다.

한지호는 허충욱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었다.

“공개 입찰 심사를 떠나서 이런 상태로는 위원장님의 남은 인생이 불행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위험한 시도를 해보려 합니다. 위원장님께서 동의한다는 전제 하에.”

말을 마친 한지호가 잠시 숨을 골랐다.

그는 환자들에게 절대 과장을 하지 않는다.

굳이 위험하다는 표현을 쓴 건 진짜로 위험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안면 경련도 나아지고, 언어 능력 역시 회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깜빡 깜빡 나가는 정신도 제자리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실패하면…… 4일 전보다 더 안 좋은 상태가 될지도 모릅니다. 다시 병상에 누워 꼼짝도 못 하게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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